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80화 (80/325)

80화. 레이건이 준 대박 (1)

다사다망한 85년이 지나고 86년의 해가 밝았다.

역시, 내 예상대로 어머니의 가게는 호황을 맞이했다. 한창 닭갈비가 유행을 탈 때였고, 어머니가 만드신 비법 소스가 사람들 입맛에 딱 어울린 것도 있었다.

이 상태로 쭉 성장하게 되면, 프렌차이즈를 시작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어머니의 결정에 따를 생각이었다.

연합 상황도 아주 좋았다.

85년 말에 서울 전역을 통합하기에 이르렀고, 인천까지 흡수한 터라 경서 연합의 힘은 그냥 고등학생들이 만든 불량 써클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연욱이가 앞으로의 진로 문제로 인해 연합에서 손을 떼게 됐다. 그로 인해 관리가 좀 힘들긴 했지만, 새로 부회장으로 취임한 이세린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내가 관리하는 여의도도 별 탈 없이 잘 흘러갔다.

이곳이 화진파의 영역이라는 걸 모르는 조직이 없기에, 감히 구역을 침범하는 놈은 없었다. 또한, 오성파가 주춤거리면서 영등포도 계속 발전을 이어 갔다.

이대로만 간다면 오성파는 저절로 화진파에게 흡수가 될 것 같았다.

“미국으로 간다고?”

“예.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2월에 출발할 생각입니다.”

권용일은 내 말을 듣더니 갑자기 상자에서 시가 하나를 꺼냈다.

저 양반이 시가를 무는 건 오랜만에 본다.

“허허. 갑자기 거긴 왜 가는 거냐?”

“좋은 건수가 있을 것만 같은 냄새가 나서요.”

“그게 나한테도 좋은 일이라는 거겠지?”

욕심도 많은 영감. 하지만 이런 권용일의 모습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적어도 나한테만은 솔직하다는 거니까.

“주머니 좀 비워 두세요. 새로 두둑이 채워 드리겠습니다.”

권용일은 손뼉까지 치며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놈아.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네놈 때문에 돈 통에 빠져 죽겠다.”

“그걸 원한 거 아니셨어요? 제가 기꺼이 넣어 드리겠습니다.”

“허허. 내 마음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는 녀석은 아마 너밖에 없을 거다.”

이번 일이 잘만 된다면 권용일은 꽤 짭짤한 수입을 챙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몇천억이 넘는 돈을 거머쥐게 될 터. 그 몇천억이 몇조로 불어나게 되는 건 또 순식간일 것이다.

1986년.

그 유명한 콘트라 사건이 일어나는 해이다.

냉전 시대를 종식한 레이건 대통령은, 그 업적을 높이 평가받아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뻔했다. 하지만 콘트라 게이트가 터지면서 그동안 쌓아온 업적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콘트라 사건이란, CIA가 적성국인 이란에게 무기를 몰래 수출하고, 그 차익으로 니카라과 공화국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다 발각된 일이다.

사회주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콘트라 반군을 돕는 건, 미국의 입장으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마약이다.

이란에게 세 배가 넘는 가격으로 무기를 팔고, 그 돈으로 콘트라 반군을 돕는 것까진 좋으나…. 콘트라 반군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코카인을 챙기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일로 레이건 대통령은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하고, 탄핵 직전까지 가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나는 이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이다.

모든 걸 휩쓸어 갈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

기다리던 그때가 온 것이다.

“비행기 표는 끊었고? 내가 끊어주랴?”

“괜찮습니다. 이미 끊어놨습니다.”

나는 86년의 해가 밝자마자 미국행 티켓을 끊었다. 어차피 내가 이 시대로 회귀한 이상, 노릴 수 있는 한탕은 최대한 노려야 하지 않겠는가?

증권맨이었다면 주식으로 대박을 쳤겠지만, 그런 거로 돈을 벌기에는 이목이 너무 집중된다. 그리고 세관의 조사도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행하는 범죄라면….

그것도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쓸어 담는 돈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리스크는 크지만, 그만큼 리턴도 크다.

“빠르기도 하구먼. 그래서 2월 언제 출발하려고?”

“잡힌 날짜는 2월 5일입니다.”

“음-. 2월 5일이라….”

권용일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2월 5일을 자꾸만 중얼거렸다.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났지만, 물어봤자 오리발을 내밀 게 뻔하니 그만뒀다.

“아. 그리고 이따 갈 때 가방 좀 챙겨가.”

“예? 무슨 가방을….”

“수고비다. 우리 태산이가 내 주머니를 채워주는데, 내가 받기만 할 순 없지.”

별걱정을 다 한다. 곧 있으면 권용일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보다 내가 더 많아질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거저 준다고 하는데 안 받을 수도 없지.

영감님 땡큐.

“그리고 아마 네가 미국 다녀올 때면, 우리도 조금 변화가 있을 거야.”

“변화요?”

“그래. 내가 깡통 좀 사 놓으려고.”

깡통이라고 하면….

“혹시 건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허허. 그래. 슬슬 우리도 변화가 필요할 때야. 네가 말했잖아. 얼마 못 가 우리 같은 놈들이 설 곳도 사라진다며.”

화진 그룹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는구나.

화진 건설을 출범시켜서 조직의 변화를 꾀해 보겠다는 권용일의 생각은 아주 시기적절했다.

지금은 땅이 보이면 못부터 박아 놓는 시대이지 않은가?

화진 건설은 한동안 호황을 누리며 빠르게 성장을 하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벌써 기대가 되네요. 과연 어떻게 하실지….”

“허허. 이미 위쪽이랑 얘기는 다 끝냈어. 이번에 나라에서 호텔도 지어 놓는다는데, 우리가 그쪽에 손을 대 볼 참이야.”

역시, 발 빠른 사람이다.

화진은 점점 들어서는 고급 호텔들을 집중적으로 지어서 차익을 남긴다. 그러다 아파트까지 발을 뻗어 꽤 많은 비자금을 빼돌리게 되는데, 이때 마련한 돈으로 화진 화학을 비롯한 여러 계열사가 줄줄이 나오게 된다.

권용일이 라인도 잘 잡았고, 그만큼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 사람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물론, 곧 있으면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긴 하다.

노일영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범죄와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던가. 그 이후의 대통령들도 마치 관례처럼,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래서 조폭들의 기세가 한참 꺾이는데….

“아무튼, 이건 돌아와서 다시 얘기하자. 난 네가 얼마를 챙겨올지 그것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허허.”

권용일은 내가 가지고 오는 돈으로 뭘 해야 할지 벌써 고민하는 모양새다.

과연 이 양반이 내가 들고 온 액수에, 얼마나 놀랄지 즐겁게 감상을 해야겠다.

* * *

“몸조심해서 다녀와. 태혁이도 들여다봐 주고.”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기어코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어머니의 걱정은 항상 나와 태혁이밖에 없다. 당신의 안위 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

그래도 요즘은 어머니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장사도 잘되고, 자기만의 가게를 가지고 계시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신 것 같다. 항상 몸이 가볍고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니, 나 역시도 기분이 좋다.

언제나 항상 이렇게 건강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알겠어요,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잘 다녀올게요.”

“그래그래. 알겠다.”

나는 어머니 뒤에 있는 조직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어머니 잘 모셔다드려요.”

“예, 사장님.”

어머니 앞에서는 형님이 아니라, 무조건 사장님이라고 부르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다행히 띨띨하지 않은 몇몇을 추려온 참이라, 내 명령을 잘 이행하고 있었다.

“몸 건강히 다녀오십시오, 사장님.”

조직원들의 깍듯한 인사를 받으며 나는 출국장 입구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계속 손을 흔들고 계셨다. 아마 내가 탄 비행기가 무사히 뜰 때까진 공항에서 벗어나지 못하실 거다.

“어서 오십시오, 김태산 고객님.”

비행기에 오르자, 일등석에서 대기 중이던 승무원들이 나를 반겼다.

처음에는 일등석이 참 편하고 좋았는데, 지금은 그냥 이 지루한 비행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일등석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도 입에 대지 않고 잠부터 잤다.

부유한 삶에 점점 익숙해져 가는 기분이다.

* * *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도착하자 김아름과 강철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철중은 내 짐을 받으며 인사를 건넸다.

“편안한 비행 되셨습니까, 사장님.”

“예. 금방 뵙네요.”

김아름도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곧장 일 이야기로 넘어갔다.

역시, 이 여자와는 영원히 비즈니스 관계로 남지 않을까 싶다.

조금의 정도 주지 않겠다는 기운이 흠씬 풍겨 나온다.

“사장님께서 저번에 말씀하셨던, 올리버 노스 NSC 중령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김아름의 보고에 난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NSC 중령과 연줄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김아름은 안경을 슬쩍 추켜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올리버 노스의 부인을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그쪽 집에 베이비시터로 들어가 친분을 쌓았죠.”

“베, 베이비시터요?”

베이비시터라.

이건 정말 예상외의 생각이었다.

베이비시터로 올리버 노스의 집에 침투하다니.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무서운 여자다.

이런 여자와는 쭉 비즈니스 관계로 남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NSC는 국가안전보장회의이지 않습니까? 갑자기 왜 그쪽과 줄을 만드시려는 건지….”

웬만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명령대로 움직이던 김아름이, 어지간히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건 강철중도 다르지 않은지 눈을 반짝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란. 국가 안보에 대한 대외 정책과 군사 정책 등에 대해, 여러 부처에게 대통령이 자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나라의 안보를 위해 만들어지긴 했지만, 오히려 나라를 병들게 하는 곳으로 전락하는데…. 그 결정적인 역할을 맡게 될 사람이 바로 올리버 노스다.

이란에게 판매한 무기의 차익으로 콘트라 반군을 도우자는 의견이, 올리버 노스에게서 나온다.

“곧 있으면 그 사람이 아주 중요한 일을 시작할 예정이거든요.”

“중요한 일이요?”

김아름이 그게 어떤 거냐고 묻는 듯한 눈빛을 보냈지만, 지금 당장 대답해 줄 순 없지 않은가.

“그걸 다 말해 버리면 재미없지 않겠어요? 그냥 한 번 보세요.”

김아름과 강철중이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얼굴을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일단, 올리버 노스의 스케줄을 알 수 있을까요? 가족과 산책하러 나간다든지….”

“그건 제가 따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우연찮은 만남을 가장해야 해서요. 고생 좀 해 주세요. 그리고 강철중 씨.”

“예, 사장님.”

나는 강철중에게도 할 일을 던져 주었다.

“로이 루스테에게 연락을 넣어주세요. 올리버 노스와 대화가 잘 이뤄지면, 메데인 카르텔에게 협력을 구해야 합니다.”

“메데인 카르텔의 협력이요?”

김아름과 강철중 둘 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빛이었다.

NSC와 메데인 카르텔이 서로 협력을 할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들은 아직 NSC의 본질을 모른다.

국가의 안보라는 위장막으로 온갖 범죄를 정당화시키는 곳이 바로 NSC다. 그러니까 겁대가리 없이, 대량의 마약을 들여와 미국을 지옥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모든 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승인 아래 이루어졌다는 것.

얼마나 미국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지 알려 준다.

지금도 거리에 나가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그녀가 마약을 하지 말자며 경고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사방에 걸려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이란 사람이 마약을 흑인 사회에 뿌려 생지옥을 만들어 놓았으니….

아무튼, 이번 작전은 치밀한 계획이 없으면 실패하게 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모든 죄를 뒤집어써야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상당한 리스크를 짊어져야 할 일이지만, 나는 자신 있었다.

무려 수십 톤의 마약이 걸린 건수이지 않은가?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으면서, 동시에 나의 세력을 넓힐 작정이다.

아마 이번 계획이 먹힌다면, 나는 진정 메데인도 무섭지 않은 조직을 이곳 미국에서 키울 수 있게 된다.

“아까도 말했듯이, 벌써 모든 걸 다 알려 주면 재미없겠죠? 그러니까 천천히 보세요. 제가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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