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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78화 (78/325)
  • 78화. 썩은 동아줄

    “심란하지? 내가 뭔 짓이라도 할까 봐.”

    이강혁과 함께 온 곳은 어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하지만 레스토랑이 그렇다는 거지, 이강혁과 내 분위기가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내 주변으로 이강혁의 보디가드들이 쫙 깔려있고, 입구도 단단히 막은 채였다.

    뭐지. 이런 비싼 레스토랑에서 내 피라도 보겠다는 건가. 차라리 그럴 거면 어디 창고라도 가던가.

    “아니라고 하면 안 믿으시겠죠?”

    “하하. 농담도 할 줄 아는 새끼였네.”

    자. 침착하자.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 이놈이 날 찾아왔을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강찬의 일을 방해했던 놈이다. 그런데 내 덕분에 이강찬이 닌텐도와 성공적으로 계약을 맺었다.

    이강혁이 이렇게 찾아왔다는 건, 내가 이강찬을 도와줬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건데….

    이강찬이 어떻게 닌텐도를 구워삶았는지 조사라도 했다는 건가.

    “배고픈데 일단 음식부터 시킬까?

    지금 밥 처먹을 상황이 아닐 텐데….

    하지만 이강혁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말에 따라야 했다.

    “공짜 밥을 사주신다면야….”

    나는 최대한 의연하게 대꾸하며 메뉴판을 살폈다.

    가격표도 적혀 있지 않은 레스토랑이라….

    재벌들이 돈지랄 하는 곳이라는 건 대충 봐도 알겠다.

    “전 연어 스테이크로 하겠습니다.”

    “생각보다 고상하네. 연어 먹어본 적은 있고?”

    말도 안 되는 무시를 다 하고 있구먼.

    지금이야 연어 구경하는 게 힘들다고 하지만, 좀만 시대가 지나면 다 수입을 해오지 않는가. 국민들도 잘만 먹고사는 것이다.

    그리고 딱히 시대 때문이 아니더라도 난 충분히 잘 먹고 잘살고 있다. 그만큼 풍족한 돈을 벌고 있으니까.

    “너무 무시하시네요. 그래도 나름 잘 먹고 잘사는 중입니다.”

    “아아. 나도 잘 알고 있지. 남의 땅 강탈해서 잘 먹고 산다는 거.”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영 거슬린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내가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의 비위나 맞추면서 있어야 한단 말인가.

    상대가 저렇게 말하는데, 나라고 좋은 말이 나갈 수는 없다.

    나는 살짝 말을 비꼬았다.

    “원래 주인 없는 땅에 깃발 먼저 꽂는 사람이 다 갖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실실 웃고 있던 이강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런 건방진 새끼….”

    “제가 그리 예절이 바른 놈은 아닙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이쯤 되면 이강혁이 뒤에 있는 똘마니들에게 뭔가를 시킬 것 같았다. 그래서 나름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강혁은 오히려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야-. 어린놈의 새끼가 배짱도 넘쳐요. 너, 강찬이 앞에서도 그러냐?”

    “이강찬 실장님은 절 어린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을 해 주시죠. 그래서 서로 존대를 하며 지냈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가 너한테 존댓말이라도 써줘? 아니면 고개라도 숙일까?”

    역시, 근본부터가 되먹지 못한 새끼다.

    이런 놈이 천성의 부회장이라고 앉아 있다. 이러니까 회사는 ‘부’자 들어간 놈들 없어도, 잘만 돌아간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잠시 우리 둘 사이에 대화가 끊기면서 이강혁은 뒤에 있던 놈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야. 사람 불러서 주문부터 받으라고 해. 여긴 식사도 안 된다냐?”

    “예, 부회장님.”

    말하는 품새부터 글러 먹은 놈이다.

    같은 의미여도, 기분이 나쁜 게 있고 좋은 게 있다. 저놈은 말 한마디를 해도, 꼭 상대방의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이윽고 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주문을 받기 위해 다가왔다.

    이강혁은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거 채끝살로 주고, 저놈은 연어 스테이크 먹는다니까 그걸로 줘.”

    “예, 부회장님.”

    저 지배인은 상대가 부회장이란 것을 알고 있다. 더군다나 이강혁이 레스토랑 전체를 빌린 것 같았다. 이강혁 쪽 똘마니들 빼고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 천성에서 만든 곳이야. 일반 손님은 잘 안 받아. 천성에서 초대장 보낸 사람만 올 수 있지. 물론, 지금은 내 개인 레스토랑처럼 운영되고 있지만.”

    천성에서 만든 곳이라.

    이런 곳이 많긴 하다.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레스토랑인데….

    대부분 어떤 용도로 쓰이냐면, 이강혁이 말했던 것처럼 개인 레스토랑처럼 쓰인다.

    명목적으로 손님 환대와 직원들의 혜택을 위해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손님을 받는 경우가 드물고 직원들은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게 허다하다.

    거기다가 이런 레스토랑, 아니 건물은 재벌 2‧3세들이 여자를 끼고 와서 노는 곳이다.

    자기들 돈으로 만들었다면 말도 안 한다. 대부분, 아니 전부 회삿돈으로 만든 곳이니까 하는 말이다.

    “너도 이런 곳에 들락거리고 싶지 않냐? 여자도 데리고 와서 놀고. 요즘 연예인 애들 있잖냐. 게네들도 불러서 놀아도 돼. 말만 하면 다 불러줘.”

    갑자기 나한테 이런 얘기를 꺼내는 의도가 뭐지?

    “그런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아랫도리 달린 이상, 여자 싫다는 놈은 없어.”

    이강혁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자꾸 이상한 쪽으로 말을 돌리는 게 이상했다. 이렇게 시간을 끌 바에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게 좋다.

    “부회장님.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저한테 뭘 원하시는 겁니까?”

    이강혁도 자신이 너무 딴소리만 했다고 여겼는지 헛기침을 뱉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너, 이강찬한테 얼마 받고 일하냐?”

    “…예?”

    “그놈한테 얼마 받고 일하냐고. 내가 다섯 배로 줄게. 아니, 열 배로 줄 수도 있어.”

    설마 내가 이강찬한테 돈 받고 일하는 것으로 아는 건가?

    어이가 없는 놈이다. 이건 제대로 나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냥 제멋대로 찔러 보는 것일 수도 있다.

    “부회장님.”

    “그래. 얼마면 돼?”

    “전 이강찬 실장한테 돈 받고 일하지 않습니다. 서로 거래를 했고, 그 거래에 합당한 값을 지불했을 뿐이죠.”

    “거래? 무슨 거래?”

    이 양반은 내가 대룡파를 걸고 거래한 사실도 모르는 건가?

    “그것까진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아무튼 저는 이강찬 실장한테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잘난 거래를 나랑도 할 수 있다는 거네?”

    호오.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물론입니다. 거래 내용이 제 이익 관계와 합당하다면야 얼마든지요.”

    이강혁도 재미가 붙었는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려는 찰나, 쉐프들이 플레이팅한 음식을 직접 가지고 나와 우리 앞에 놓기 시작했다.

    코스 요리였는지 에피타이저부터 식탁에 놓였다.

    “일단 배부터 채우자.”

    이강혁의 말에 따라, 나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한 점씩 집어 먹었다. 에피타이저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새콤한 맛이 식욕을 자극해 주었다. 솔직히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맛에 감탄사가 나왔다.

    애피타이저를 다 비울 즈음, 메인디쉬를 든 쉐프가 다가와 접시를 교체해줬다.

    서로 아무런 말도 없이 식순에 따라 음식의 맛을 음미했다. 덕분에 대화의 템포가 끊겼다.

    이강혁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운을 뗐다.

    “아까 그 거래 말인데.”

    “예.”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거야?”

    “글쎄요. 그건 부회장님이 결정하셔야죠. 부회장님이 어떤 걸 요구하시느냐에 따라, 저도 결정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무조건 예스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밝힌 것이었다.

    “돈만 주면 뭐든 다 하는 놈은 아니다?”

    “전 청부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어차피 깡패 새끼인 건 맞잖아. 어디서 가오를 잡고 있어?”

    뭐. 저놈 눈에는 내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깡패는 맞습니다만, 양아치 같은 놈들과는 질적으로 달라서 말이죠.”

    이강혁은 어이가 없는지 와인을 들어 목을 축였다. 솔직히 이번 발언은 나조차도 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냥 깡패는 아니란 걸 말해 줘야 하지 않은가.

    “그럼, 거래 중에 이런 것도 되나? 이강찬을 담가라. 뭐, 이런 거.”

    뒷배들이나 쓸법한 ‘담가’라는 말이 이강혁의 입에서 나왔다.

    과연 담근다는 의미가 이강혁에게는 무엇일까?

    “칼로 찔러서 아예 묻어버리라는 뜻은 아니시겠군요.”

    이강혁은 살짝 놀란 눈치다. 내가 진지하게 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 죽이라는 뜻은 아니야. 설마, 내가 동생 놈을 죽일 정도로 냉혈한처럼 보이냐?”

    아니. 그보다 더 지독한 놈이라는 건 알겠다.

    “그럼, 어떤 걸 원하시는 겁니까? 사회적으로 매장되길 원하시는 겁니까? 하나만 묻겠습니다. 이강찬 실장이 부회장님의 후계 자리를 위협할 정도입니까?”

    나의 물음에 이강혁은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강찬을 인정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넌 아무것도 몰라. 우리 회장이란 양반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지금 부회장 자리에 앉아 있지만, 언제라도 내 자리를 갈아치울 수 있는 양반이야. 이강찬이 내 위협이 돼? 물론 그놈이 좀 똑똑하긴 하지.”

    이강혁은 물을 한 모금 들이켠 다음에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놈이 똑똑하다는 이유로 내가 견제하는 줄 알아? 이 천성의 씨앗이라는 것 때문에 경계하는 거야. 그 양반의 아들이라면 누구든지 회장 자리에 앉을 수 있으니까!”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다는 게 물씬 풍겨 나오는 어조였다.

    “난 당연히 회장 자리를 꿰찰 줄 알았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 슬금슬금 내 동생이란 새끼들이 올라오더니, 어느새 내 자리를 노리고 있더군. 거기다가 그 양반은 누가 더 회장 자리에 적합한 사람인지 매일 간을 보고 있고.”

    솔직히 이강혁이 이 정도로 내게 많은 걸 털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무슨 정신과 상담사도 아니고….

    “이러는데 내가 분통이 터지지 않게 생겼어! 날파리 같은 새끼들이 감히 내 자리를 노리고 있는데!”

    고작 첫째라는 이유로, 당연히 차기 회장이 될 거라 믿고 있다. 저것이 장남이 가진 특권인가, 아니면 착각인가.

    아무튼, 여러모로 좀 딱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다.

    “회장 자리는 내 거야. 방해하는 새끼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짓밟아 버릴 거고. 그러니까 너도 줄 잘 잡아. 이강찬 그 새끼는 얼마든지 내가 날려 버릴 수 있어.”

    열변을 토한 이강혁은 다시 물을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

    “내가 이강찬을 죽이라는 소리가 아니야. 대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들라는 거지. 그놈이 다시는 내게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이강혁이 원하는 건 하나다.

    이강찬을 철저히 짓밟는 것.

    난 당연히 이 제안을….

    “좋습니다. 그럼, 부회장님께서는 제게 뭘 해 줄 수 있으십니까?”

    내가 선뜻 받아들이자 이강혁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 물었다.

    “고민하는 척도 안 하네?”

    “제가 왜요? 설마, 제가 이강찬 실장과 정이라도 쌓고 지내는 줄 아셨습니까?”

    “아니었나?”

    “아닙니다. 그저 거래를 했던 사이에 불과하죠.”

    나는 당황해 하는 이강혁을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보였다.

    “이강찬 실장이 썩은 동아줄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부회장님이라면야… 당연히 위로 올라가게 해 줄 든든한 동아줄이 되겠죠. 제가 왜 부회장님의 손을 뿌리치겠습니까?”

    나의 대답에 이강혁은 큰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야-. 사회생활 할 줄 아네. 나이도 어린… 아니지.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 안 그래, 김 사장?”

    얼씨구. 한 번 좀 띄워 줬다고 좋단다.

    이럴 때 보면 참 다루기 쉬운 사람 같다.

    멍청한 새끼.

    “물론입니다, 회장님.”

    회장이란 소리에 이강혁의 입꼬리가 찢어질 듯 올라갔다.

    “우리 김 사장, 볼수록 맘에 드네.”

    “하하. 과찬이십니다.”

    기분이 좋은지 이강혁은 와인을 음미하며 내게 슬쩍 물어보았다.

    “이제부터 날 돕는 거 맞지?”

    “저도 회장님 도움을 좀 받을 수 있다면야 언제든지요.”

    “물론이지. 말만 해. 내가 김 사장 말하는 건 최대한 들어줄 테니까.”

    처음에는 당장이라도 날 죽일 것처럼 험악한 기세를 풍기더니,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천성의 부회장이란 사람이 이렇게 마음이 갈대 같아서야….

    이러니까 이철호가 이놈을 갈아 치우고 이강찬을 세웠겠지.

    “이강찬 그 새끼,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밟아 버릴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김 사장도 나를 잘 도와.”

    “예, 회장님.”

    원하는 바다.

    난 이강찬이 절대 승승장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철저히 무너지고, 또 무너져서 마침내 의지할 곳이 없을 때….

    바로 그때가 오기를 원한다.

    내가 그에게 마지막 동아줄이 되는 그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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