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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77화 (77/325)
  • 77화. 이제부터가 시작.

    “고생 많으셨어요, 강철중 씨.”

    “아닙니다, 사장님. 솔직히 제가 너무 날로 먹은 게 아닌가 싶어 괜히 죄송스럽습니다.”

    나는 강철중과 함께 비행기에 올라 이야기를 나눴다.

    말은 저렇게 해도, 강철중이 일본에서 날 도와준 건 분명 많았다.

    야쿠자와 거래를 할 때도 항상 내 옆에 있었고, 잡일은 모두 저 사람이 도맡아서 했다.

    때때로 내 잔심부름도 해 주는 사람이니, 일본에 있는 동안 나는 정말 편했다.

    “그런데 이강찬 실장님은 먼저 가셨나 보네요.”

    “예. 제가 약속이 잡히는 바람에, 먼저 가시게 되었어요.”

    이강찬은 내가 같이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는 걸 알고, 무척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냥 차가운 표정으로 ‘알겠다’라고 대답할지 알았더니…. 의외로 그런 얼굴을 보여 내심 놀랐던 게 기억난다.

    “그럼, 또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예?”

    “또 미국으로 가셔야 하는 건가요?”

    “하하. 저도 좀 쉬어야죠. 물론, 조만간 가긴 할 겁니다.”

    강철중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사장님이 가는 곳이라면 꼭 따라가고 싶습니다. 항상 흥미진진한 일이 일어나니까요.”

    “제가 무슨 트러블 메이커도 아니고….”

    “그런 말이 아닙니다. 뭐랄까…. 마치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자신 있게 움직이시는 모습. 그런 모습이 매번 새롭다고나 해야 할까요. 아무튼, 사장님을 따르는 일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강철중은 완전히 내게 넘어왔다는 게 느껴졌다.

    “일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야마구치 구미가 정말 사장님의 말대로 움직인다면,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말씀하셔도 믿겠다고 말입니다.”

    “물론 기억합니다. 제가 기억력은 굉장히 좋거든요. 그리고 내일 해는 동쪽에서 뜨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강철중과 나는 서로 웃음을 터트리며 안락한 일등석에 앉아 편안한 비행을 즐겼다.

    이제 정말 가는구나.

    집으로….

    * * *

    “돌아왔습니다, 회장님.”

    이강찬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천성 그룹 회장실부터 찾았다. 이미 그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미리 들었는지, 회장실에는 이강찬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철호 회장과 정인재 대표, 그리고 이강찬의 큰 형이자 천성 그룹의 부회장 이강혁이었다.

    “그래. 일이 잘 됐다는 이야긴 들었다. 고생했다.”

    이철호가 흡족한 얼굴로 이강찬을 맞이했다. 거기다가 정인재 대표도 한 술 거들고 나섰다.

    “수고했어. 그쪽이랑 지금 라인 깔아서 협의하는 중이다. 조만간 계약서 완성되면 네가 직접 일본 가서 사인하고 와.”

    “예, 대표님. 감사합니다.”

    이강찬은 이제 이강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철호와 정인재 대표가 한마디씩 했으니, 이강혁도 뭔가는 말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애써 구겨지는 인상을 감추며 어색하게 이강찬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야, 우리 동생. 아주 훌륭한 일을 했어. 아주 잘했다.”

    “고마워, 형.”

    이강찬은 슬쩍 눈을 찡그리며 이강혁의 손을 맞잡았다.

    물론, 양쪽 모두 손에 힘을 꽉 주는 것은 잊지 않았다.

    “오늘은 강찬이도 왔으니까 집에 일찍 돌아가야겠다. 가서 가족끼리 식사라도 하자.”

    “그래, 이 실장.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일찍 들어가. 피로도 풀고.”

    “예, 감사합니다.”

    서로 많은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는 없다.

    이강찬은 느낄 수 있었다.

    이철호와 정인재, 둘 모두 이강혁이 한 짓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강혁을 벌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화가 난다고?

    천만에.

    오히려 지금 저 둘은, 일부러 이강혁을 회장실에 불러 면박을 주는 것이다.

    네가 방해 공작을 펼쳤음에도, 이강찬이 결국 했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지금쯤 이강혁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터.

    이강찬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이강혁과 눈을 마주쳤다. 차마 그 앞에서 화를 낼 순 없으니, 이강혁은 애써 눈웃음을 지어야 했다.

    * * *

    “이런 시발!”

    부회장실로 돌아온 이강혁은 테이블 위에 있던 걸 전부 내다 던지며 화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비서들은 질렸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도대체 너희들은 뭐하고 자빠져 있던 새끼들이야? 내가 그 쪽바리 새끼들 단단히 막으라고 했어, 안 했어!”

    애꿎은 비서들에게 분풀이한 이강혁이, 망설임 없이 직원들의 뺨을 갈기며 욕설을 내뱉었다.

    “내가 이따위로 하라고 너희 같은 쓰레기들한테 돈을 퍼다 주는 줄 알아? 내가 아가리에 돈을 쑤셔 넣어 줬으면 똑바로 일해야 할 거 아니야, 이 새끼들아!”

    나중에는 주먹으로 구타가 이어져, 몇몇 직원의 입가엔 피가 흥건했다.

    그렇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이강찬에게 일방적인 구타를 당하던 때, 마치 구원자처럼 한 사람이 부회장실 안에 등장했다.

    “밖에 아무도 없어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이강혁은 갑작스레 나타난 이강찬의 모습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강찬은 힐끗 미소를 지으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회장실에서는 웃는 얼굴로 있더니 갑자기 왜 이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그 사이에 있었나 봐?”

    무슨 일인지 빤히 알면서도, 저렇게 말하는 이강찬이 너무 얄미웠다.

    이강혁은 이를 갈며 이강찬에게 말했다.

    “입 닥쳐, 이 새끼야. 쥐뿔도 없는 새끼가 감히 누구 위에 기어오르려고 하는 거야?”

    “하하. 여전히 그 더러운 성격은 어디 안 갔구나.”

    “뭐야?! 이 새끼가 오냐오냐하니까 눈에 뵈는 게 없냐? 너 같이 근본도 없는 새끼가, 회사에서 날뛸 때부터 내가 알아봤어.”

    거듭되는 이강혁의 욕설에 이강찬은 인상을 굳히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본도 없는 새끼? 그럼, 형은? 첫째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회장까지 된 사람이 할 소린 아닌 것 같은데. 그만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형이 밑바닥부터 시작했으면 대리도 못 달았을걸?”

    “이 새끼가 끝까지!”

    참다못한 이강혁이 주먹을 휘두르려 하자 이강찬이 그 팔을 붙잡아 막았다. 그리고 똑바로 이강혁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주먹질이야? 어릴 땐 맞아줬지만, 이젠 안 그래. 내가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을 거로 생각한 거야?”

    “이, 이런 개 같은….”

    “입 닥치고 형도 내 말 잘 들어. 앞으로 또 그런 개수작 부리면 알아서 해.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니까.”

    이강찬은 그 말을 남기고 부화장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한동안 이강혁은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이강찬이 떠나간 자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는지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마치 미친 사람마냥 한참을 웃던 이강혁은 술잔을 부회장실 입구로 집어 던지면서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이강찬이 일본에서 뭘 했는지 전부 알아와!”

    “…예?”

    “귀먹었어! 저 새끼가 일본에서 어느 호텔에 있었고 누구랑 밥을 처먹었는지, 뭘 먹었는지까지 다 알아오라고!”

    “예, 부회장님!”

    이강혁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직원들은 후다닥 부회장실 밖을 나갔다.

    이강혁은 숨을 헐떡이며 풀리지 않는 분을 풀기 위해 계속해서 뭔가를 집어 던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끓는 속이 진정이 되지 않는다.

    * * *

    “새끼. 결국, 왔네.”

    “말도 마라. 끽했으면 뒤졌어.”

    집으로 돌아오니, 나를 처음 반기는 건 연욱이었다.

    이 자식은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지?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너,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야?”

    “응? 그, 그거야. 네 어머니가 혼자 계시고 적적해하시니까…. 같이 있어 드리는 거지.”

    새끼. 어디서 빤히 보이는 구라를.

    “밥 처먹으러 왔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이 새끼야.”

    “아, 아니야. 내가 거지새끼도 아니고 무슨…!”

    연욱이는 아니라고 강력히 부정하며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그나저나 일본 쪽 일은 잘 처리 된 거냐? 뭐하고 왔는지, 이 형님한테 처음부터 다 보고해야지.”

    나는 소파에 몸을 던지며, 일본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씩 연욱이에게 풀어 주었다.

    한참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던 연욱이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와-! 진짜 타이밍이 좋았네.”

    “네가 봐도 그렇지? 생각해 보니 아다리가 딱 맞더라고. 그래서 한 번 미끼를 던져 봤는데, 와타나베를 확 낚아 버린 거지.”

    “그러게. 근데 네 말 들어보니까, 누구라도 걸릴 수밖에 없는 일이긴 하네.”

    연욱이 말이 맞다.

    와타나베가 멍청해서 내게 속아 넘어간 게 아니다. 누구라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넌 요즘 공부 잘하고 있냐?”

    “뭐, 그럭저럭. 어차피 그쪽 분야는 빠삭하니까.”

    “그러다 바람맞지 말고, 열심히 해.”

    “내 일은 걱정하지 말고, 너나 잘하세요.”

    연욱이는 뭔가 떠올랐는지 자세를 고쳐 잡고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너랑 상의할 게 있다.”

    “응? 뭔데.”

    “곧 있으면 3학년이잖아. 그때 되면 나도 이제 연합 일은 접고, 공부에 매진해야지.”

    연욱이가 연합에서 손을 뗀다라.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만큼 이 녀석이 연합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상당하지 않던가. 거기다가 내가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기 때문에, 연욱이가 나를 대신해 연합을 이끌어 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 연욱이가 연합을 떠나게 된다면….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네 미래를 위해서라도.”

    어릴 적의 주먹 놀이는 여기서 끝내야 한다.

    연욱이는 이 나라의 검찰총장, 그리고 대통령이 될 사람이지 않던가.

    계속 연합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훗날 경서 연합이 연욱의 큰 약점으로 변모해 공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불상사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슬슬 손을 떼는 것이 좋다.

    “후임은?”

    “음…. 솔직히 나만큼 뛰어난 놈이 없어서 걱정이긴 한데, 어쩌겠냐. 정식이라도 시켜야지.”

    “최정식? 진심이냐?”

    정식이의 실력은 인정하겠다만, 이건 단순히 주먹만으로 연합을 이끌 수 있는 게 아니다. 쉽게 말해서 행정 쪽에 능통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아아. 물론, 정식이한테 전부 다 몰아준다는 건 아니고. 그놈한테는 주먹 쓰는 일만 맡기고, 나머지는 세린이한테 맡겨.”

    이세린한테 맡긴다?

    다른 간부 녀석들보다는, 이세린에게 연합 부회장직을 맡기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이세린이라면 로비스트로 명성을 날리게 될 여자니까.

    그런 여자가 이런 연합 일쯤은 쉽게 해내지 않겠는가?

    “좋아. 그럼, 간부들이 모이는 때에 세린이한테 말해 보자.”

    솔직히 정식이나 세린이 보다는, 연욱이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게 안정적이겠지만…. 지금은 잠시 이 녀석을 떠나보낼 때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디 계셔?”

    “응? 어디 계시긴. 식당에 계시지.”

    “뭐?!”

    나는 진심으로 질겁했다.

    더는 식당 일을 하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까지 하셨던 분이, 기어코 또….

    “어디냐, 거기.”

    “뭐야. 너 진짜 몰랐어?”

    “미쳤냐? 내가 어머니 일하는 꼴을 또 볼 거 같아?”

    이제는 그만 인생을 편하게 사시라고 그렇게 말을 했건만.

    어머니는 당최 하루도 그냥 쉬려고 하지 않으시는구나.

    나는 어리둥절하고 있는 연욱이를 앞장세워, 어머니가 일하고 계시는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웬 고급 차량 하나가 우리 앞에 서더니 길을 가로막았다.

    “뭐야?”

    연욱이는 그냥 정차한 차량이겠거니 하며 길을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뒷좌석 창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내가 알고 있는 얼굴이 나왔다.

    “김태산?”

    다짜고짜 나부터 찾고 있다. 그것도 결코 좋은 의도로 찾는 것 같진 않았다.

    오는 말이 짧은데, 가는 말이라고 길 턱은 없었다.

    “예.”

    상대는 창문 너머로 내 위아래를 살펴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번에 봤을 때랑 여전히 똑같네. 나 기억나지?”

    당연히 기억하지. 내가 어떻게 그 얼굴을 잊을 수 있겠는가.

    “천성 그룹 부회장님이시지 않습니까?”

    “잘 알고 있네.”

    옆에 있던 연욱이가 부회장이란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이강혁은 내 옆에 있던 연욱이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내게 명령조로 말했다.

    “일단 타라.”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제가 무작정 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뭐야?”

    내가 당연한 말을 했는데도, 이강혁은 버럭 화낼 기미부터 보였다. 어지간히 다혈질인가보다. 거기다가 마치 모든 사람은 자신의 발아래 있다는 듯한 저 말투.

    저번에 만났을 때와 똑같았다.

    “타라고 할 때 타. 내가 지금 너 해코지나 하자고 온 줄 알아?”

    이미 이강혁이 타고 있는 차 뒤로, 여러 대의 검은 차량이 줄지어 있었다. 그의 신호가 떨어지면 언제든 밖으로 튀어나와 나를 강제로 데려갈 놈들이 분명하다.

    “연욱아. 먼저 들어가 있어.”

    “태, 태산아.”

    나는 연욱이의 손을 뿌리친 다음, 이강혁 옆자리에 올라탔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강혁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기사에게 눈짓을 보냈고, 그렇게 차는 빠르게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놈이 갑자기 나를 왜 찾아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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