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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64화 (64/325)

64화. 안녕, 미국

“저 새끼 당장 죽여 버려!!”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들리는 어감은 아마 날 빨리 죽이라는 것 같았다.

내 총알에 어깨를 관통당한 채 신음을 터트리고 있던 놈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며 부하들을 재촉했다.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 총알이 없다니.

내가 너무 막 쏜 건가.

“미, 미스터 김. 어쩌려고 이런 짓을!”

어쩌다 나와 제대로 엮인 디에고는 울상이 된 얼굴이었다.

밖으로 나가자니 한패로 오인당하여 총알받이가 될 거 같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곧 있으면 저놈들이 다가온다.

디에고에게는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대놓고 총을 갈겨 댔으니, 저놈들이 이를 갈며 다가올 터.

거기다가 저놈들은 내게 남은 총알이 없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점점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내게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지 않은가.

“미, 미스터 김!”

디에고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나는 개머리판을 위에서 아래로 찍으며 엄폐물 밖으로 나왔다. 운 좋게도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던 놈 중 하나의 정수리에 정확하게 꽂았다.

조금만 타이밍이 늦었어도 혼자 뻘짓 하다 개죽음을 당할 뻔했다.

“이 새끼가!”

개머리판에 가격당한 한 놈은 기절해 버렸다. 나는 놈이 쓰러지지 못하게 팔로 붙들었다. 그래야 잠깐이라도 나머지 두 놈이 망설일 수 있으니까.

타타탕-!

하지만 이놈들에게는 동료라는 자각이 없어 보인다. 전혀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겨 버리다니.

좀만 늦게 옆 방향으로 몸을 날리지 않았더라면 내 옆에 쓰러진 저놈처럼 새빨간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한 놈은 어찌어찌 쓰러뜨리긴 했다.

문제는 몸을 날리면서 총을 챙기지 못했다는 건데….

철컥-!

잠깐 생각을 하는 사이, 벌써 두 놈이 내 앞에 달려와 총구를 이마에 들이댔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뭐라고 말하는 건지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시발….

이건 어떻게 할 수가 없겠는데.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저 총구를 맨손으로 잡고, 이 두 놈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싶다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건 영화 속이 아닌, 현실이다.

이럴 때를 위해 배워 놓은 호신술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죽더라도 최소한 시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타타탕-!

저 두 놈이 방아쇠를 반쯤 당기는 찰나.

여러 발의 총성이 들리면서 내 앞에서 두 개의 머리가 수박처럼 쪼개졌다.

“괜찮으십니까, 사장님.”

그리고 내게 손을 건넨 건 강철중이었다. 그의 뒤에는 로이 루스테가 함께 있었다. 항상 그랬듯이 로이는 유쾌한 톤으로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리틀 보스. 좀만 늦었으면 위험했겠다. 괜찮아?”

간발의 차였다.

오려면 일찍 좀 올 것이지,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사람 심장 떨어지게….

정말 좀만 늦었으면 지금 쓰러져 있는 건 저 두 조직원이 아닌, 바로 나였을 것이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그렇게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는데요, 뭐.”

“하하. 역시, 베짱이 두둑하네?”

“아무튼, 다음부터는 좀 더 빨리 오세요.”

“알겠어. 아니지.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어야지. 안 그래?”

깔깔 웃는 로이 루스테를 보며 나는 실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강철중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맙습니다, 강철중 씨.”

“아닙니다, 사장님. 부하 직원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사장님! 위험합니다!”

같이 고개를 숙이던 강철중이 갑자기 나를 거칠게 뒤로 밀었다. 그리곤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 그 찰나의 순간 내 눈에 보이던 것은, 알 수 없는 말로 소리치며 소총 방아쇠를 당기려던 남자였다

저놈은 아까 내게 어깨를 관통당해 악바리를 쓰던 바로 그놈이다.

타앙-!

하지만 먼저 발포를 한 건 놈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쏜 것인지, 녀석은 고개를 바닥으로 숙인 채 풀썩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뒤에 서 있던 것은 바로….

“괜찮으십니까, 사장님?”

타이트한 여성 정장 차림을 하고 있던 김아름이었다.

그녀는 연기가 밖으로 흘러나오는 총구를 든 채 안경을 치켜 올렸다.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남성들 모두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리고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김아름을 바라보았다.

“어…. 기, 김아름 씨.”

“예. 사장님.”

“총을… 쏠 줄 아시네요.”

“뒤에서 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아, 아닙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태연한 김아름의 표정에 더욱 황당했다.

무서운 여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다음부터는 좀 더 조심해야겠다.

“이야. 역시, 미스 김. 오늘도 정말 최….”

오두방정을 떨며 김아름을 칭찬하려고 했던 로이는, 그녀의 표독스러운 눈빛을 보자마자 입을 꾹 다물었다.

“얼른 물건들 옮기고 가시죠. 이 정도 소란이 있었으니, 경찰이 올 수도 있습니다.”

김아름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창고 밖을 나갔다.

항상 매혹적으로만 보이던 저 뒷모습이 오늘은 정말 멋있게만 보였다.

마치 거대 조직을 이끄는 보스의 포스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 * *

“디에고. 그만 두리번거리고 날 보세요.”

이제 혼자 남게 된 디에고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대충 창고 정리가 끝난 뒤, 디에고를 내 앞에 무릎 꿇렸다.

이제 이 남자의 운명을 정할 때이지 않은가.

그는 바짓가랑이라도 잡을 기세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미스터 김. 전 아무 잘못도 없지 않습니까. 제발 살려 주십시오.”

난 그런 그를 보며 익살스럽게 대꾸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누가 보면 죄 없는 사람 죽이는 줄 알겠습니다.”

“미, 미스터 김! 목숨만 살려 주신다면 앞으로 당신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뭐, 디에고는 능력이 좋으니까 제 밑에서 일해 준다면 참 좋긴 하겠네요.”

긍정적인 내 대답에 디에고의 얼굴빛이 조금 나아졌다.

“대신, 제가 묻는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하냐에 따라서 선택이 달라질 겁니다. 조금만 수틀리면… 아시죠?”

디에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좋습니다. 그럼, 혹시 이번 일을 칼리 카르텔 상부에 보고했습니까? 저와 거래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 위에서는 이번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거기다가 벵코 그 미친놈이 메데인 창고를 습격했다는 것도요.”

벵코라면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다 죽은 그놈을 말하는 건가.

“그 뜻은 이번 약물 강탈 사건은 그냥 정신 나간 놈의 독단적인 행동이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벵코는 약을 빠르게 처분하려고 했죠. 위쪽에 이번 일을 들키게 되면 시끄러워질 테니까요.”

결국, 그 미친놈 하나 때문에 이 사달이 났단 말인가.

그놈만 아니었으면 이런 개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그놈이 그런 짓을 한 이유가 뭡니까?”

“저번에 그놈이 도박으로 조직 돈을 건드린 모양입니다. 원래 이쪽 놈들이 다 그렇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 구멍을 채우려고 이런 짓을 벌인 것 같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3천 달러를 부를 게 아니라 1천 달러보다 낮게 불렀어야지. 그럼, 나도 정말 살짝 흔들렸을지도 모르는데….

하긴. 디에고 말대로 원래 이런 놈들이 그렇고 그렇지 않던가.

앞만 보고 뒤의 일은 생각도 하지 않는 단세포 같은 놈들이다.

아마 뭘 해도 저렇게 막장으로 치달을 거다.

“그렇군요…. 그 말은 칼리 카르텔 쪽에서는 제 정체를 모른다는 겁니까? 제 회사도?”

“제 회사…? 설마, 미스터 김….”

“아.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실장이란 직책은 사실 그냥 위장이었습니다. 디에고가 칼리와 전혀 관계없는 척하고 온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회사는 실제로 있긴 합니다. 뭐, 제가 실장이란 직책을 맡은 것도 진짜이긴 하죠. 하지만 그 회사의 100% 지분을 가진 게 바로 접니다.”

디에고가 나를 처음 속였던 것처럼, 나도 그를 속였다.

우리 서로 속이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디에고도 자신이 당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잠시 눈을 감으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칼리 쪽에서는 제 정체를 알지 못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애초에 보고를 한 적이 없으니까요.”

“다행이네요.”

나는 옆자리에 두었던 글록을 들고 디에고의 머리를 조준했다.

화들짝 놀란 디에고가 손사래를 치며 소리쳤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대답만 잘하면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선택을 하겠다고 했지, 언제 살려 주겠다고 했습니까?”

“미, 미스터 김!”

“미안합니다, 디에고. 만일 칼리 쪽에서 제 정체를 알고 있었다면 당신을 내 옆에 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칼리는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 않습니까? 당신만 빼고요. 그러니까 그쪽만 없어지면 후환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건데….”

“미스터 김. 차, 차분하게 이 문제를 대화로….”

타앙-!

난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 디에고의 머리를 꿰뚫었다.

“싫어요.”

짧은 신음과 함께 쓰러지는 디에고의 눈빛 속에 나를 향한 원망이 가득 담겨있었다.

솔직히 아까운 인재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후환을 남겨 두는 만큼 멍청한 짓이 또 어디 있겠는가.

“갑시다, 이제.”

내 뒤에 묵묵히 서 있던 강철중과 김아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따랐다. 혹시라도 오해하고 있을까 봐 난 그들에게 몸을 돌려 말했다.

“전, 저를 배신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절대 치지 않습니다. 설령 그 사람을 죽여야 이득이 된다고 해도, 절 배신하지 않은 사람을 먼저 배신하진 않을 겁니다. 한 번 제 사람이 되면 영원히 제 사람으로 남아야 할 겁니다. 아! 물론, 제가 제때 돈을 두 분께 준다면 말이죠.”

내가 돈을 줄 동안은, 없는 충성심이라도 바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날 배신하지 않은 사람을 나 또한 배신하지 않는다.

영리한 사람들이니, 내 말을 잘 알아들었을 것이다.

아무튼,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 속 시원하게 마무리가 된 하루였다.

* * *

“잘 가, 리틀 보스.”

“그놈의 리틀 보스는 그만하면 안 됩니까?”

“하하. 좋아하면서 또 그러기는.”

로이는 내가 바라지도 않았던 마중까지 나왔다.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왜 저 어깨들까지 같이 데려온 건지 원….

이건 누가 봐도 폭력배 놈들이 공항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이미 공항 보안 요원들이 주변에 쫙 깔린 채 우리를 매의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태산아. 이분들은 도대체 누구시니?”

어머니는 험악하게 생긴 조직원들과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셨다.

젠장. 이걸 또 어떻게 설명해 드려야 하나.

그런데 로이가 갑자기 어머니 손을 덥석 붙잡더니, 호쾌하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여기 리틀 보스 어머니 되시죠? 로이 루스테라고 합니다. 듣던 대로 참 아름다우시네요. 아드님이 누굴 닮았나 싶었더니. 하하하!”

어머니는 영어를 배워 본 적이 없으신 분이다. 그런 분께 영어로 좋은 말을 늘어놓아봤자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분이 뭐라고 그러시는 거니?”

“그냥… 조심히 가시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래? 혹시 이분도 널 도와주시는 분이니?”

“아뇨. 그냥 일하다 알게 된 사이에요. 아, 어머니. 늦겠어요. 얼른 들어가요.”

“어휴. 잠깐만 기다려봐.”

어머니는 내 손을 뿌리치며 로이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태혁이에게 다가가셨다.

“태혁아. 이제 엄마, 정말 간다. 몸 조심히 있어.”

줄곧 로이와 조직원들을 경계하고 있던 태혁이는 엄마 앞에서 표정을 풀었다.

“응, 엄마. 나 정말 열심히 살게. 내가 한국 갈 때까지 건강하게 있어야 해?”

“그럼! 우리 태혁이도.”

어머니는 몇 번이나 더 태혁이의 뺨을 쓰다듬은 다음에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셨다.

“이제 형 진짜 간다. 또 올게.”

“응. 그런데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야?”

“신경 쓰지 마. 그냥 이상한 놈이야.”

태혁이는 귀에 손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이거?”

“어. 그거.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김아름 씨에게 말하고. 아니면 강철중 씨한테 말해도 돼.”

나는 조금 거리를 둔 채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김아름과 강철중을 가리켰다.

“흐흐. 그 누나, 형이랑 무슨 사이인 건 아니지?”

“시답잖은 소리 하지 마. 그리고 저 누나 아주 무서운 누나니까, 조심해야 한다.”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이제 형 간다.”

“잘 가, 형!”

나는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김아름과 강철중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올 겁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사장님.”

두 사람은 내게 정중히 인사하며 나를 배웅해 주었다. 그 뒤에서 실실 웃고 있는 로이 루스테는 덤이었다.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슬쩍 살펴봤다.

다행히 저번처럼 무슨 일이 터지진 않았다.

난 어머니와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일등석에 앉아 편안하게 몸을 기대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래도 수확은 상당히 컸다. 그렇기에 마음이 훨씬 더 가볍다.

이제 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안녕,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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