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34화 (34/325)

34화. 삼대 조직(4)

“좋은 방법?”

“예. 꼬리부터 자르기보다는 머리부터 노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내 이야기를 듣던 성일환은 부정적인 반응부터 보였다.

“그게 쉽지가 않아. 내가 말 안 했어? 지금 대룡파 새끼들이 서로 오야지 해 보겠다고 난리 친다는 거.”

대룡파 두목 석태훈이 잡혀가면서 조직에 큰 혼란이 찾아왔다. 석태훈이 금방 석방이 되면 모를까, 언제 돌아올지도 알 수 없는 상태이지 않은가?

덕분에 호시탐탐 두목 자리를 노리던 간부들이 칼을 빼 든 것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뭉쳐야 할 시기에, 간부라는 놈들이 서로 칼질을 하고 있으니 대룡파의 미래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그만큼 석태훈이 조직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도 있다. 만약 권용일이 잡혀 들어갔다고 한다면, 화진파는 어떻게 될까?

적어도 대룡파 꼴이 나진 않을 거로 생각한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석태훈이 잡혀가면서 그 밑에 있는 간부들이 서로 싸우고 있다는 걸요. 그런데 간부들 전체가 날뛰려고 하겠습니까?”

“무슨 소리야?”

“오야 자리에는 관심도 없는데, 괜히 칼부림에 휩쓸려 죽을까 봐 살 구멍 찾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는 소리입니다.”

오야 자리에는 관심이 없다.

성일환은 이 말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태풍의 눈 안에 들어가 있는 간부들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살려고 발버둥을 치려 하진 않을까?

성일환이 여기까지만 생각을 해 준다면 내 말을 금방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내일 다시 오마. 내가 얼른 가서 알아봐야겠다.”

다행히 성일환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다음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벌써 결정한 것 같았다. 그가 급하게 일어서면서, 황규혁과 나는 제대로 배웅할 틈도 없었다.

황급히 나가는 성일환을 마중 나갔다 들어온 황규혁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넌 정말 사람 구워삶는 거에는 소질이 있는 거 같다.”

“그런가요?”

황규혁의 말에 난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아이디어가 참 좋아. 네가 통밥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굴린다. 어린놈이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건지….”

이번에도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런 제안을 성일환에게 꺼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난 권용일이 밟아온 전처를 똑같이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하다.

화진파가 대룡파를 재빨리 흡수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권용일이 대룡파의 머리를 노렸기 때문이다.

권용일은 내분에 휩싸여 서로에게 칼질을 하는 대룡파의 전쟁터에 미끼를 던졌다. 그리고 싸움을 원치 않았던 간부들은 그 미끼를 덥석 물었다.

그들은 권용일에게 항복을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살길을 연 것이었다.

말단 조직원도 아니고, 대룡파에 대해 속속 알고 있는 고위 간부들이지 않은가?

그들이 권용일에게 넘겨준 정보의 질과 양은 상당했을 터.

화진파는 이 방법으로 대룡파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그리고 이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박세훈이다.

현재는 대룡파의 고위 간부 중 하나이자, 훗날 화진 건설 부사장이 되는 인물이다.

회귀 전에 내가 박세훈이라는 사람을 조사하면서, 화진과 대룡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게 되었다.

“근데 우리 손을 잡는 놈이 나타나긴 할까?”

“제 말 믿고 뭐 하나 안 된 적이 하나라도 있으세요?”

“젠장. 그렇게 말하니까, 또 할 말이 없네. 재수 없는 새끼.”

황규혁은 내 뒤통수를 살짝 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국밥이라도 먹으러 갈까? 네 어머니가 계신 목동이면 더 좋고.”

* * *

다음 날 성일환은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항상 푸근하게 웃고 있던 사람이라, 저런 얼굴은 썩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황규혁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성일환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시발. 이거 나가리다.”

“예?”

나와 황규혁은 서로를 바라보다 다시 황규혁에게 시선을 옮겼다.

난 조금 불안하기까지 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태산이 말 듣고 알아봤는데, 확실히 대룡파에서 싸움을 원치 않는 놈들이 있긴 하더라고. 특히 그중에 박세훈이란 놈이랑 안면이 있어서 따로 얘기라도 하려고 했거든.”

역시, 성일환도 박세훈을 찾은 것인가.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한숨을 쉬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목이 탔는지 잔에 담겨 있는 물을 한 번에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형님께서 날 부르시더니 말씀하시더라. 전부 시마이 하라고.”

“예?”

“올스톱이야.”

황규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이미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면 되는 건데….”

“그러니까. 그 숟가락을 먼저 들이민 새끼가 있었다.”

숟가락을 먼저 들이민 새끼?

대룡파를 노리는 놈이 벌써 나타났단 말인가?

이건 내가 알고 있는 미래와 너무 다르다.

“그게 누굽니까?”

정말 궁금했던 터라 황규혁이 묻기 전에 내가 먼저 성일환에게 물었다. 그는 잠시 내 얼굴을 난처하게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천성이다.”

“천성이요?”

뜬금없이 천성이라니? 그놈들이 왜 대룡파를 노린단 말인가.

“저번에 여의도에서 네가 엿 먹인 천성 그룹 부회장 이강혁이라고 알지?”

설마… 내가 생각하는 뻔하디뻔한 그런 전개는 아니겠지.

“그 새끼가 그때 이후로 우리 뒤를 계속 캐고 다녔나 봐. 이번에 우리가 대룡을 노리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건지…. 갑자기 공격적으로 나서서 대룡 간부 애들한테 쇳가루 좀 먹이면서 주무르고 있나 보더라.”

아니길 바랐는데, 역시나 그랬다.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라고 해야 할까.

내게서 여의도를 빼앗긴 이강혁이 이런 치사한 방법으로 우릴 괴롭힐 줄은 몰랐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 그놈은 치졸한 복수심 때문에 돈 지랄을 하고 있다.

다 무너져가는 대룡파 놈들에게 돈을 뿌리는 것만큼 미친 짓이 또 있단 말인가? 차라리 나라면 오성파나 청룡파를 이용해 대룡파를 흡수하게 한 뒤, 화진을 견제하도록 했을 것이다.

역시, 이강혁 그놈 머리에는 똥만 차 있다. 그러니까 자기보다 한참 어린 동생에게 발리기나 하지.

“한심한 새끼.”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깜짝 놀란 성일환과 황규혁이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성일환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하하-! 이 새끼, 꼭지가 좀 돌았나 본데? 너도 한 방 맞으니까 화가 나긴 하지? 이강혁 그 새끼는 여의도 빼앗겼을 때 아주 돌아버릴 것 같아 미쳤을 거다.”

이강혁 그놈이 확실히 내게 쌓인 원한이 꽤 있을 거다. 여의도를 빼앗은 건 화진이지만, 결정적으로 그 역할을 하게 만든 건 바로 나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치다니.

이왕이면 아직은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그놈이 먼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런 선물을 내게 던져줬으니, 나도 곱절로 갚아줘야 속이 풀릴 것 같다.

“큰 형님께서 중단시키신 거죠?”

“그렇지. 여의도 때 일 이후로 천성과 부딪히는 일을 자제하셨으니까. 이번에는 누가 봐도 이강혁 그 새끼가 도끼를 갈고 온 게 뻔히 보이잖아. 무서워서 피하기보다는, 더러워서 피하는 거지.”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해결해 보겠습니다.”

성일환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나를 붙잡아 다시 앉혔다.

“네가 해결을 해 보겠다고? 그냥 이번 일은 넘어가. 지금 천성이 저렇게 돈 지랄을 해도, 대룡은 어떻게든 무너지게 되어 있어. 그때를 노려도 늦지 않아.”

성일환의 말도 맞다. 지금 대룡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놈들이다.

손가락만 한 구멍 뚫린 댐이, 지금은 큼지막한 바위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정도로 뚫려 있다. 아무리 많은 돈으로 그 구멍을 메워 보려고 해도 한계라는 게 있다.

더군다나 이강혁은 재벌이지, 깡패가 아니다. 자신의 회사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놈이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의 구역을 다스리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하지만 천성이 발을 빼고 난 뒤에, 대룡파가 무너지기까지 기다리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그 사이에 군부가 다시 시선을 이쪽으로 옮길지도 모르는 상황.

내가 알고 있는 미래가 바뀌는 것이니,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그 물살을 헤아리지 못하고 휘말릴 수도 있다.

“플랜 A가 실패를 했으니까, 플랜 B라도 시도를 해 봐야죠.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성일환은 날 붙잡던 손을 놓으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영어 쓰지 말고 쉽게 말해라. 그리고 가끔 네가 이럴 때 보면 우리 큰 형님이랑 완전히 판박이라서 소름 돋는 거 아냐? 네가 그분 손자라도 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니까?”

이 양반은 또 시답잖은 소리를 하고 있다. 그나마 제대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황규혁 뿐인가 보다.

“그 뿔랜비라는 게 뭔데?”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시원하게 풀어 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비밀리에 누군가와 나눠야 할 이야기다.

“그건… 일이 잘되면 말씀드릴게요. 아직 확실하지가 않아서 말씀드리기가 좀 꺼려집니다.”

“복잡하기는.”

황규혁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조금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반해 성일환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우리 태산이가 뭐 한다고 해서 언제 안 된 적이 있었냐? 이번에도 길게 묻지 않을 테니까, 우리 태산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해 준다. 물론, 조직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허락해 준다는 뜻일 것이다.

“상의할 거 있으면 언제든 와서 말하고.”

“예, 형님. 그럼, 오늘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지금부터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먼저 들어가.”

나는 성일환과 황규혁에게 차례로 인사를 올린 뒤,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 급하게 움직일 만한 일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지금부터 만나야 할 사람은 최소 일주일 전부터 약속을 잡아야 만날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물론, 내게는 저번에 받아둔 명함이 하나 있긴 하다. 이 명함을 통해서 약속을 잡는다면 생각보다 빨리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자네가 나한테 먼저 만나자고 연락할 줄은 몰랐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정한 이철호는 가벼운 미소로 운을 뗐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정말 이렇게 만나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천성 그룹 회장 이철호.

나 같은 고등학생이, 그것도 화진파 깡패 나부랭이가 함부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번 날 받아 두었던 천성 그룹 전략팀 실장 이상현의 명함으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처음 이상현은 내 전화에 무척이나 놀란 듯 보였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내게 용무를 물었다.

내가 회장 이철호와 독대를 하고 싶다고 하자, 이상현은 큰 기대는 하지 말라며 일단 약속을 잡아 주겠다고 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하면 이철호를 만날 수 있을지 궁리를 계속 이어 갔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이상현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철호가 나를 만나주기로 한 것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도록 해.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시간이 별로 없거든. 다음 스케줄도 소화하려면 길게 들어 주지 못해.”

물론, 그리 긴 시간 동안 말하진 못한다. 이철호가 좀 바쁜 사람이겠는가?

거기다가 내가 영양가 없는 말이라도 내뱉는 순간, 이철호는 내게 축객령을 내릴 사람이다. 나도 질질 끌면서 얘기를 나눌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부탁을… 아니,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회장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