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33화 (33/325)
  • 33화. 삼대 조직(3)

    정부는 계획했던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조직들이 운영 중이던 아편굴을 덮쳐, 그곳에서 잡아 들인 마약사범들과 함께 학생들을 엮어 모든 신문과 뉴스에 올렸다.

    혁명을 외치던 학생들이 사실은 마약에 빠져 살던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것을 선전한 것이었다.

    거리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조직들의 군기를 단단히 잡는 것과 동시에, 연이어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도 주춤거리게 만드는 현 정부의 움직임에 난 혀를 짧게 찼다.

    지금이나 미래나, 정부의 모습은 항상 변함이 없다.

    그들의 술수에 놀아나는 건 언제나 군중이지 않던가?

    “너, 이 자식…!”

    황규혁이 사무실에 돌아오면서, 난 보고 있던 TV를 껐다. 저 얼굴을 보니,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들은 모양이었다.

    “오늘은 좀 늦게 출근하셨네요.”

    황규혁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물을 벌컥 들이켰다.

    “일환이 형님을 만나 뵙고 오는 길이다. 진짜 네 말대로 되었더라.”

    “제 말대로 되었다는 건, 대룡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미 뉴스에도 따로 보도가 된 내용이다. 군부가 대룡파를 제대로 갈아버렸다. 이미 대룡파 수장까지 잡히지 않았던가?

    “그래. 내가 그거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며칠 전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대룡파 애들은 알아서 사라질 거라고. 그때 알겠다고 대답도 하신 분이….”

    “그러니까! 네 말대로 뭐든 척척 되는 게 신기해서 그러는 거잖아!”

    별 호들갑을 다 떨고 있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란 말인가.

    황규혁은 한 번 더 물을 들이켠 다음 말을 이었다.

    “대룡파가 완전히 분해되었다는 거 듣고, 간담이 서늘하더라. 내가 그때 네 말 듣지 않고 대룡파랑 한 판 붙었으면….”

    “형님도 TV 타셨겠죠.”

    “그렇게 됐으려나….”

    황규혁 입장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만한 일이긴 하다. 나와 상의도 없이 일을 벌였다면 그는 대룡파와 함께 군부 손에 박살이 났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황규혁과 덩달아 화진파도 엮여서 두드려 맞았을 것이다.

    “잘 참으셨습니다. 좀 위험하긴 했네요.”

    “네 덕분에 내가 똥 밟지 않았다고 생색이라도 내는 거냐?”

    “에이-. 설마요.”

    “어이구, 퍽이나 그러시겠다.”

    자, 이제 장난은 여기까지다. 본격적으로 일 이야기를 해 볼 차례다.

    “지금이 제가 말씀드린 적기입니다.”

    “대룡파를 쳐도 정말 괜찮을까?”

    내일이라도 당장 대룡파를 쳐야 한다고 열을 내던 사람이, 한 번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자 잔뜩 움츠러든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움츠러들고 있을 때가 아니다.

    누구보다도 빨리 달려가야 할 때이지 않은가?

    “군부도 더는 손을 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다 찢어진 대룡파를 신경 쓸 만큼 그놈들이 한가하지도 않고요.”

    황규혁은 아직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대룡파가 조금 난동을 피웠다고 군부를 투입한 정부였다.

    화진파가 대룡파를 흡수하겠다고 난리를 치게 되면 정부가 똑같은 대처를 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미래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정부에서 군부를 투입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으름장을 놓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번 한 번뿐이다. 지금 군부는 건달들이나 잡고 다닐 여유가 없다.

    곧 있으면 판문점에서 남북 군사회담이 있지 않은가? 온 신경이 그쪽에 쏠려 있을 터.

    지금이 바로 대룡파를 집어삼킬 기회다. 다른 조직들이 주춤하고 있을 때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다시 군부의 눈이 이쪽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번 믿어 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네 말대로 해서 뭐 제대로 안 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냐?”

    싱숭생숭해 보이던 얼굴이 말끔히 사라졌다. 황규혁도 결심을 한 것이었다.

    “위에 보고부터 하자. 일 벌이기 전에 귀띔이라도 하라고 일환이 형님이 그러시더라.”

    “예, 알겠습니다.”

    황규혁은 사무실 밖을 나가다가 다시 내게 말을 붙였다.

    “이번에 제대로 한 방 먹였다.”

    “예?”

    “그 노땅들 있잖아. 대룡파가 씹어 먹히는 거 보고 다들 등골이 오싹했을 거야. 그 양반들 당분간 너한테 해코지도 못 할 거다.”

    화진파 고위 간부들을 말하는 것이다.

    저번 날 회의에서 봤었던 간부 중 대부분이 내게 적대감을 보였다. 그리고 오성파를 치면 안 된다는 내 의견에 버럭 화를 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번에 대룡파가 군부 손에 박살 나는 것을 보고 그들은 느꼈을 것이다.

    내 의견이 또 한 번 맞아 떨어졌다는 걸.

    “아무튼, 오늘 보고부터 하고 날 잡는 대로 움직이자.”

    “알겠습니다, 형님.”

    황규혁은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사무실 밖을 나섰다.

    다른 조직도 아닌, 대한민국 삼대 조직 중 하나를 치는 일이 저렇게도 기쁠까.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대조직을 친다는 것만으로도 황규혁에게는 큰 기쁨인 것이다.

    물론, 나도 조금은 기대가 되었다.

    * * *

    “갈 데까지 가는 구먼.”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연욱이의 평은 간결했다.

    “이제 시작인데 뭐.”

    “근데 가만히 있어도 원래 대룡파는 화진파가 흡수하는 거 아니었나?”

    “그렇긴 하지. 근데 대룡파가 눈앞에서 찢어지는 걸 봤는데, 누가 섣불리 움직이려고 하겠냐?”

    “네놈이 있잖아.”

    “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런 거고.”

    대한민국 삼대 조직 중 하나인 대룡파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것도 무능하다고 생각한 정부의 손에 말이다.

    덕분에 대부분의 조직이 당분간 조용히 숨을 죽이며 살게 된다. 물론, 성질 급한 권용일이 타이밍을 잘 맞춰 대룡파를 단숨에 흡수해 버리긴 한다.

    이것이 정해진 미래였다. 하지만 내가 먼저 움직이면서 또 한 번 미래는 바뀌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애들 필요하냐?”

    “아냐. 이번에는 필요 없어. 언제까지 연합원에게 손을 벌릴 순 없지.”

    “하긴. 화진파가 동네 양아치들도 아니고.”

    연욱이는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런 연욱이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룡파 일이 끝나면 외국에 좀 다녀올 것 같다.”

    “외국?”

    “미국에 좀 다녀오려고. 태혁이도 같이 데리고 가고.”

    “그래서?”

    “그동안 연합 좀 잘 관리해 달라고.”

    “언제는 네가 관리했냐? 이제까지 내가 다 했지. 가뜩이나 공부 때문에 바쁜 사람을 그런 일에 매달리게 하고 말이야.”

    말은 저렇게 해도 연합 관리를 은근히 즐기는 녀석이다. 물론, 그런 말을 함부로 했다가는 면상에 주먹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지금은 자세를 낮추고 녀석에게 부탁해야 할 때였다.

    “부탁 좀 하자. 너 아니면 누가 그런 일을 하겠냐. 다른 놈들한테 맡겼으면 벌써 연합도 쪼개졌겠지.”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기는. 그렇게 정 아부라도 하고 싶으면 올 때 좋은 거 좀 사오던지.”

    “좋은 거? 말만 해.”

    “그게….”

    연욱이는 우물쭈물하며 선뜻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주변 눈치까지 보는 걸 보니, 합법적으로 가져오지 못하는 거라도 원하는 건가?

    설마, 대마초는 아니겠지?

    “쿠바산… 그거 있잖아.”

    이 자식이.

    괜히 놀랬네.

    “난 또 뭐라고.”

    “여기서는 못 구하는 거잖아.”

    “구할 순 있긴 한데, 짝퉁이 많긴 하지. 그래서, 뭐로 가져왔으면 하는데?”

    “흐흐. 코이바 시가를 한 번이라도 더 필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시가’하면 대부분 떠올리는 게 코이바 시가다. 시가의 황제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제품인데, 가장 품질도 좋고 인기 많은 상품이다.

    영화에도 자주 출연하는 코이바 시가는 82년부터 글로벌 시장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인기가 늘면서 가격이 천정부지 솟게 된다.

    연욱이도 돈을 모아서 사던 시가가 바로 코이바 시가다. 한 개비 당 백만 원에 달하는 값비싼 시가이니, 이 녀석이 좋아하는 술도 끊고 돈을 모으던 게 기억난다.

    “그래. 내가 시가만큼은 원 없이 피게 해 줄게. 대신, 내가 부탁한 일들은 잘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요즘 연합에 신경을 쓸 수 없어서.”

    “콜.”

    연욱이는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만히 보니, 내가 이놈 꾀에 휘말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너, 돈은 얼마 정도 모았냐? 미국 가면 베팅부터 할 거 아냐?”

    “저번에 재범파랑 양양파 털었을 때 얻은 돈이 4억 정도 되지. 거기서 2억 5천 정도는 벌써 썼어. 위에 상납도 하고, 연합원한테 돈 좀 뿌리고… 아파트도 사고 어머니한테 옷도 선물하다 보니….”

    연욱이는 짧게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가 오십 가까이 살면서 그렇게 돈 많이 쓴 적이 또 있었냐?”

    “없었지. 지금 시대에 2억 5천이면 25억 정도를 한방에 쓴 거니까.”

    이렇게 말을 하고 보니, 내가 정말 돈지랄을 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에도 2억이란 돈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물가가 10배 정도 낮은 80년대가 아닌가?

    “그래서? 지금은 얼마 남았는데?”

    “권용일이 던져 준 2억까지 합하면 4억 정도?”

    “지금 환율이 800원 정도 하나?”

    “어제 알아보니까, 정확히는 847원이더라.”

    “900원으로 계산하면 대충 44만 달러 정도 나오겠네.”

    “그렇지. 일 벌이기에는 충분한 돈이야. 44만이 4,400만 되는 건 한순간이니까.”

    44만 달러는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44만 달러가 순식간에 400만… 4,000만으로 늘어날 수 있는 곳이 바로 미국 도박판이다.

    80년대 복싱 4대 영웅들인 슈가 레이 레너드와 토마스 헌즈의 두 차례 경기를 통해, 어마어마한 판돈이 오고 갔다.

    그때 오고 간 판돈만 7,500만 달러.

    1,000달러가 1,000만 달러가 되는 건 한순간이라는 게 괜히 스포츠 도박판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대충 생각해 놓은 경기들이라도 있냐?”

    “그냥 눈에 보이는 건 다 해 봐야지.”

    “하긴. 네가 권투에는 빠삭하니까.”

    권투에는 빠삭하긴 하지만, 과연 도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나도 문외한이었다. 그 부분은 미국에 가서 직접 배워야 한다.

    “그런데 네 어머니도 가시냐?”

    “이왕 가는 거 미국 구경 좀 시켜드리게.”

    “오, 괜찮네. 나도 꼽사리 껴서 가면 안 되려나.”

    “넌 연합 관리해야지.”

    “젠장. 대신, 약속은 꼭 지켜라. 적어도 스무 개는 사와.”

    스무 개라.

    코이바 시가는 미국에서도 한 개비당 1,000달러에 판매하고 있는 고가 제품이다. 그걸 스무 개나 사 오라는 건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44만이 4400만 되는 건 한 순간이라며. 설마, 고작 2만 달러가 아까운 건 아니겠지?”

    음흉한 연욱이의 얼굴을 보니, 다음부터는 말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오셨습니까, 형님.”

    성일환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가 영등포에 온 건, 대룡파를 접수하는 일을 직접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오야지께서도 허락을 하셨다. 그리고 속전속결로 작업 쳐야 한다. 각오 단단히 해.”

    “예, 형님.”

    나와 황규혁의 대답에 성일환은 잔뜩 기합 주던 목소리를 풀었다.

    “어휴. 어떻게 된 놈이 하루가 멀다고 일을 벌이냐. 이젠 질리지 않냐?”

    “아직 쌩쌩합니다.”

    내 대답에 그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 일 끝나면 네가 직접 천안 내려가서 큰 형님께 보고해. 그렇지 않아도 너 한 번 내려오게 하라고 성화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성일환은 잔에 술을 채우며 말을 이어 갔다.

    “알아보니까, 대룡파 내부에서도 문제가 많은가 봐. 자기들 오야지가 잡혀갔으니, 서로 대장 하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거야. 가뜩이나 똘마니들이 다 잡혀가서 구역 관리하는 것도 힘든데, 지들끼리 싸우고 있는 거지.”

    “생각보다 더 쉽게 대룡파를 가질 수 있겠는데요?”

    “그렇지. 문제는, 이놈들 구역이 꽤 많아. 명동에서부터 목동에, 영등포에…. 다 나열하는 것도 귀찮다. 이놈들을 다 흡수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그전에 군부가 또 움직이기라도 하면 다 나가리 되는 거지.”

    대룡파는, 재범파와 양양파처럼 자리 하나만 지키고 세력을 이어 가는 놈들이 아니다. 대한민국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 전부 장악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성일환의 생각일 뿐.

    그는 밑에 있는 놈들부터 차례차례 쳐서 흡수하려고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저한테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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