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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7화 (27/325)
  • 27화. 마법의 가루 (5)

    “야! 기, 김태산!”

    죽음에서 돌아온 후, 연욱이의 목표는 항상 검찰총장이었다.

    정의롭고 의로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깨끗한 검찰총장.

    난 녀석의 소망을 반드시 이루어 줄 것이다.

    하지만 이놈은 그 이후의 일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거다. 아마 은퇴하고 유유자적하려는 게 전부였겠지.

    검찰총장이 대통령을 한다라-.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총장 임기가 끝난 사람은 더는 공직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게 암묵적인 약속이다.

    물론, 한물간 총장이라고 해도 그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터라 대기업에서 모셔가기에 바쁘긴 하다.

    하지만 총장 다음이 대통령이라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과연 어떤 정당이 검찰총장 출신을 밀어준단 말인가?

    온갖 더러운 구정물은 다 묻히고 나오는 게 총장이란 작자들이거늘.

    국민들이 그걸 모르겠는가?

    “네 말이 지금 얼마나 허황된 건진 알고 있냐?”

    “네가 총장이 될 때쯤이면 난 벌써 대한민국을 휘어잡고 있을 거야. 모든 범죄 세력들을 다 장악하고 있을 테고. 그럼, 넌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마음대로 하면 돼.”

    “내 칼이 너한테 향하게 되면 어쩌려고? 네 말대로라면 상대해야 할 놈이 너밖에 없다는 거잖아.”

    연욱이도 조금씩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이놈 말이 맞다.

    대한민국의 악을 내가 장악하고 있다면 결국, 가장 먼저 처단해야 할 사람은 나 김태산이 된다.

    “약속한다. 넌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내 걱정은 하지 마.”

    연욱이는 빛의 일인자가 되고, 난 어둠의 일인자가 된다. 이것이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었다.

    연욱이가 대통령이 되는 순간, 내가 장악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악을 다 드러낼 것이다. 그럼, 연욱이는 그 더러운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정의의 사도가 되어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게 된다.

    이제야 조금 내가 바라보는 이상을 연욱이도 보게 되는 것인가?

    녀석은 잠깐 멍한 얼굴빛을 띠더니,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진짜 그런 날이 오면 넌 어떡하려고? 네가 잡혀서 감옥에 가게 될 텐데?”

    “걱정하지 마. 그때쯤이면 다른 나라들도 장악하고 있을 테니까.”

    대한민국에서만 일인자가 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이왕 왕이 되기로 한 거, 황제가 되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

    전 세계의 어둠을 다스리는 황제.

    이것이 바로 나의 진짜 목표다.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우리가 과연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건지.”

    “옳은 길은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승자가 되는 길이라면 이 길이 맞아.”

    연욱이에게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이 녀석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내가 누구와 함께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튼, 네가 너무 망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 노력할게.”

    몇 번이고 연욱이를 설득할 생각이었다.

    난 이놈과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퍼즐 조각이 모두 맞춰진다.

    세상 누구보다도 날 잘 이해해 주는 친구가 아닌가?

    * * *

    간부들은 한 삼일이면 권용일이 마음을 바꿔 다시 아편굴을 오픈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정말 일주일동안 권용일이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자, 슬슬 똥줄이 타기 시작했나 보다.

    이놈들은 다시 영등포로 몰려와 황규혁과 나를 들들 볶았다.

    인내심 없는 것들. 좀만 더 참으면 될 것을.

    하지만 지금쯤이면 권용일도 자신이 희대의 병신 짓을 한 건 아닌지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다.

    겨우 윗사람들을 떼어낸 황규혁은 식은땀을 닦으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야. 진짜 네 말대로 되긴 하는 거냐? 도대체가 하루에 몇 번씩 저러는 건지, 젠장.”

    젊은 놈이 엄살 부리기는.

    “아마 내일부터는 괜찮으실 겁니다. 그땐 꼭 약속대로 하셔야 합니다.”

    “약속한 거?”

    황규혁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내 머리를 가볍게 쳤다.

    “새끼. 대가리만 커져가지고.”

    “약속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내가 그깟 큰절 한 번 못하겠냐? 그러니까 뭐라도 좀 돼라. 이건 똥줄이 타니까 뒤지겠다.”

    똥줄이 탈 정도겠는가?

    안에서 불이 나고 있을 거다.

    그건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라는 건데….

    이놈들이 좀 더 바짝 말라가는 걸 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디데이가 됐다.

    현재 시각 오후 다섯 시.

    지금쯤이면 대한민국 온 아편굴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을 것이다.

    “형님-!”

    아니나 다를까, 황규혁의 똘마니 하나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때가 왔음을 알렸다.

    “지금 짭새들이 아편굴들을 한꺼번에 덮치고 있답니다! 우리 쪽에도 몰려왔지만, 저희는 일주일 전에 폐업한 터라 그냥 물러갔다고 합니다.”

    역시, 톱니바퀴는 정확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아편굴부터 시작해 곧 있으면 각 지방에 있는 아편굴들도 경찰들 손에 탈탈 털리기 시작할 것이다.

    “진짜야?!”

    “예, 형님! 짭새들 수가 장난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경찰 병력을 움직인 것이니, 그 숫자가 꽤 될 것이다.

    황규혁은 멍청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란 새끼는 도대체 어떻게 된….”

    난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약속 지키실 거죠?”

    “….”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고 있던 황규혁인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내가 졌다. 여기 앉아 봐. 내가 진짜 시원하게 큰절 한 번 올리게.”

    이 남자, 진심인가?

    난 정말로 바닥에 무릎을 꿇으려고 하는 황규혁을 붙잡았다.

    “농담인 거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네가 그런 농담도 할 줄 아는 놈이었냐?”

    “하하. 절은 됐습니다. 대신, 다른 소원을 들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오체투지 하라고 시켜도 순순히 해 줄 생각이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형님.”

    간신히 황규혁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이런 거에 은근히 고집이 세구나. 앞으로는 이런 장난치면 안 되겠다.

    “들어 달라는 게 뭐야?”

    “혹시 화물 차량 좀 구할 수 있을까요?”

    “화물 차량?”

    “예. 좀 큰 게 필요한데. 1톤 가까이 되는 물건을 좀 옮겨야 해서요.”

    뜬금없이 화물 차량을 내놓으라고 하니, 이번엔 또 내가 무슨 꿍꿍이인지 파악하려는 눈빛이 선했다.

    “갑자기 화물 차량이라니? 네가 용달할 게 뭐가 있다고?”

    “큰 형님 선물 좀 드리려고 준비했습니다.”

    “큰 형님 선물?”

    “예. 양주에 좀 가야 하는데 괜찮겠죠?”

    황규혁은 아리송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번에는 또 뭔 일을 벌이는지 한번 보자.”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그래? 기대되는데? 깜짝 안 놀라기만 해 봐.”

    놀라서 펄쩍 뛰게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쇼.

    1톤에 가까운 마약이 잠자고 있는 창고를 털러 가는 거니까.

    * * *

    황규혁의 능력은 알아줘야 한다.

    나의 갑작스러운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5톤 화물차를 어디선가 구해왔다.

    “애들도 데려가야 한다고?”

    “물건 옮길 사람이 필요해서요. 최대 몇 명까지 동원하실 수 있으십니까?”

    “아편굴도 놀고 있으니까 스무 명까지 가능할 거다.”

    스무 명이라.

    과연 그 창고를 지키고 있는 놈들이 몇 명이나 되려나.

    일단, 그 정도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럼, 스무 명만 동원해 주세요.”

    “그려. 도대체 뭘 옮기려는 건지 미리 말 안 해 줄 거냐?”

    “서프라이즈 아닙니까?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끙. 이건 안 갈 수도 없고.”

    나와 황규혁은 화물차와 조직원들이 탄 봉고들을 이끌고 경기도 양주로 갔다.

    이 당시 양주는 의정부, 동두천, 남양주보다 개발이 더딘 곳이었다.

    ‘시’로 승격된 것도 2003년의 일이라서 아직은 양주군이라고 불린다.

    개발이 더디니, 사람들의 왕래가 그리 잦지 않다. 그래서 많은 창고가 양주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중에 불법적인 물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꽤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창고들만 노려 도둑질하는 일당들이 꽤 있지 않던가?

    “양주 어디로 가야 한다고?”

    “주한미군 기지 쪽으로 가야 합니다.”

    양주가 개발이 더딘 이유는 주한미군 영향도 적잖게 있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주한미군이 양주에 주둔을 하는 터라 정부에서 개발을 추진하지 않은 것이었다.

    한 가지 웃긴 점은, 내가 털고자 하는 대한민국 최대 마약 창고가 바로 미군기지 옆에 있다는 점이었다.

    85년 8월 1일.

    이날 경찰은 미국에서 대량의 마약을 들여와, 우리나라 조직에 뿌린 마약상을 붙잡게 된다.

    이 마약상은 멕시코 카르텔로 인터폴에서도 수배 중인 범죄자로 밝혀졌다.

    인터폴에 사건을 넘기기 전, 돈다발 냄새를 맡은 경찰은 잠도 재우지 않고 그놈을 추궁했다. 결국, 마약 창고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곳이 바로 이곳이다.

    양주 곡물 제2 창고.

    겉으로는 양주에 있는 논밭에서 나온 쌀들을 저장하는 곡식 창고로 보이지만, 그 안을 파보면 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가루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이곳이 미군기지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미군들이야말로 마약상들에겐 VIP가 아니던가?

    미군들로 인해 다양한 마약이 우리나라에 건너왔다는 건 불편한 진실 중 하나다.

    “여기냐?”

    “예. 주변에 있는 쓰레기들만 정리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와 황규혁이 밖으로 내리자, 조직원들도 모두 하차를 했다.

    창고를 지키고 있던 놈들은 당황한 얼굴로 허둥지둥거리는 게 훤히 보였다.

    “너희들 어디 놈들이야?”

    앞장을 선 건 황규혁이었다.

    그의 물음에 열 명밖에 되지 않던 놈들은 우물쭈물하며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디 놈들이냐고 묻잖아!”

    “그, 그냥 돈 받고 일하는 겁니다! 소속은 없습니다.”

    소속이 없는 놈들이라.

    그 마피아 놈이 머리 좀 썼다.

    저런 놈들에게 이런 창고를 지키도록 하는 게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래야 이곳에 대량의 마약이 묻혀 있다는 정보가 밖으로 누설되지 않을 테니까.

    “그럼, 여기서 계속 죽치고 있을 거냐?”

    “아,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퇴근하려고 했습니다.”

    이럴 땐 쪽수로 협박하는 게 최고다.

    어차피 저놈들도 우리가 들이닥친 이상, 반항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너희가 어디 가서 입 털면 안 되니까, 여기 다 모여 있어. 일 끝나면 보내 줄게.”

    “아… 예.”

    황규혁은 창고를 지키던 십여 명의 남성들을 붙잡아 놓았다. 그들 중 한 명이 이곳을 벗어나, 누군가가 창고를 털려고 한다는 정보를 책임자에게 퍼뜨리기라도 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그들도 이런 때를 대비해 조직원들을 잔뜩 준비해 두지 않았겠는가?

    “이게 전부야?”

    “예. 여기 지키고 있던 인원은 열 명이 전부입니다.”

    “그래? 알겠어.”

    황규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있던 조직원들에게 손짓했다.

    그의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그들은 품 안에 있던 칼을 꺼내 눈앞에 있는 남성들을 거침없이 찔렀다.

    “커헉-!”

    “도, 도대체 왜…!”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해. 우리가 여기 왔다고 너희들이 떠들기라도 하면 큰일이거든.”

    역시, 황규혁도 어느 정도의 머리가 돌아가는 터라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이곳에 뭐가 묻혀 있는지 황규혁은 모르지만, 조직원들이 지키고 있다는 건 분명 구린 게 저장되어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극단적인 조처를 내린 것이었다. 항상 그랬듯이.

    “시체는 같이 싣고 가자. 이따 통에 담아서 바다에 던져.”

    “예, 형님.”

    이런 일은 많이 겪어 봤는지, 조직원들도 행동이 참 빨랐다.

    난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괜히 멍청한 표정을 보여준 건 아닌지 좀 걱정이 됐다.

    “놀랐냐?”

    “아니요.”

    “아닌 척하기는. 너무 쓰레기처럼 보진 마라. 네가 여기에 뭐가 있는지 말은 안 해 줬지만, 지금은 대충 알 것도 같다.”

    황규혁은 주삿바늘을 팔에 꼽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이거지?”

    역시, 눈치챘군.

    “맞습니다.”

    “하-! 왠지. 이런 떨거지 같은 놈들이 있을 때부터 대충 눈치깠다.”

    황규혁은 저 창고 안에 있는 것이 마약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 양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 놀라 까무러칠 거다.

    “들어가 볼까?”

    자물쇠로 잠겨 있는 문을 따고 조직원들과 함께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눈에 들어오는 건 수북이 쌓인 쌀가마들이었다.

    “뭐야? 여기 맞아? 있는 건 쌀밖에 없잖아.”

    창고를 둘러보던 황규혁은 의심 어린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난 싱긋 웃으며 다른 쌀가마들과는 다르게 높이와 넓이가 일정하게 쌓여 있는 곳에 다가갔다.

    그리고 칼을 꺼내 가마 하나에 살짝 흠집을 냈다.

    “오-!”

    황규혁과 조직원들이 동시에 탄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황금보다 귀하다는 마법의 가루를 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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