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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8화 (28/325)
  • 28화. 날개와 발톱 (1)

    조직원들은 서둘러 마약을 화물차에 옮겼다.

    혹시나 더 마약이 있을지 몰라 황규혁은 꼼꼼히 창고 안을 체크했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 외에는 모두 쌀뿐이었다.

    “어떻게 알았냐?”

    “어떤 걸 말씀이십니까?”

    “모른 척하지 말고. 이것들이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냐고.”

    “우연히 알게 된 겁니다.”

    “우연히? 지금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황규혁은 웃음을 터트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말해 줄 생각이 없는 거냐?”

    글쎄. 뭐라고 말을 해 줘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다.

    검사 시절 때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대한민국에 있었던 유명한 마약 사건을 배우다 알게 된 내용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애들 풀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외국인 딜러 하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마약을 이곳에 들여온 장본인이죠. 그래서 그놈 뒤를 밟은 것뿐입니다.”

    “그놈 뒤를 밟았다고? 들키지도 않고?”

    양주까지 오는 차가 많지 않다 보니, 미행이 붙으면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황규혁은 그걸 꼬집어 말하는 것이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말해 줄 생각이 없다는 거네.”

    “정말이라니까요?”

    “됐어, 인마.”

    이 양반 성격이 원래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냥 대충 넘어가는 것 같았다.

    “큰 형님이 이거 보면 입이 찢어지시겠다.”

    “다른 형님들은 배가 좀 아프겠죠?”

    “너 우습게 보던 사람들 생각이 좀 달라지긴 하겠지. 아마 널 더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진용처럼 날 경계하는 사람들은 이번 일로 더욱 나를 주시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가 아니던가?

    같이 손을 잡던가, 아니면 먼저 찌르던가.

    이번 기회에 내 등에 날개를 달아야겠다. 저놈들의 칼이 내게 닿지 못하도록.

    * * *

    “야, 이놈아. 넌 도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놈이기에 또 이런 대형 사고를 치는 게야!”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긴 하지만, 권용일 얼굴에 만연한 미소는 사라지질 않는다.

    “선물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처음에 화물차가 밀고 들어오기에, 난 또 오성파 놈들이 쳐들어오나 싶었잖냐.”

    “지금쯤 큰 형님께서 말씀해 주신 창고로 물건들을 옮기고 있을 겁니다.”

    “허허. 어림잡아도 수백 킬로는 될 것 같던데?”

    “1톤 가까이 될 겁니다.”

    1톤이란 말에 권용일은 입이 귀에 걸린 듯이 찢어졌다.

    “네놈은 어떻게 날이 가면 갈수록 내 배 불려 주는 건지, 원. 어디서 네놈 같은 복덩이가 넝쿨째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이 양반, 나에 대한 호감이 점점 노골적이군.

    하지만 이런 걸로 퉁 칠 순 없지.

    하나를 줬으면 하나를 받아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가 아니던가?

    “너도 나한테 퍼주기만 하면 아깝지?”

    이 영감은 역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덥석 미끼를 물 순 없다.

    “아닙니다. 저야 조직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행동하는 겁니다.”

    “예끼! 이놈아. 차라리 그 손으로 하늘을 가려라. 네놈 눈동자에 가득한 그 탐욕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이럴 땐 남자가 원하는 걸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정당한 거지.”

    정당함이라.

    수백 킬로의 마약을 가격으로 매기자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럼, 작은 선물 하나만 주십시오.”

    “작은 선물? 어떤 걸?”

    “외국에서 마약을 들여올 때 브로커를 통해서 거래하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주로 어디서 거래하시죠?”

    “미국이지. 중국이랑 소련도 있긴 한데, 알잖냐. 그 새끼들 질이 틀려먹었어.”

    중국은 자국민도 믿지 못할 정도로 가짜가 판을 치는 나라다. 하물며 마약이라고 그러지 않겠는가?

    물론, 그쪽 삼합회나 마피아 놈들에게 대놓고 가짜 마약을 파는 미친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약 퀄리티가 미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건 문제가 된다.

    “그럼, 이제 외국 마약 거래는 전부 저한테 맡겨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 제안에 권용일은 나를 빤히 쳐다보다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놈 보게? 아주 속에 능구렁이들로 가득 채웠구먼!”

    “어차피 외국에서 브로커들과 거래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사실은 더 고생스러울 거로 생각하는데요?”

    “네가 지금 날 바보로 아는 거냐? 내가 영어 한마디 못하지만, 그쪽 바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놈아.”

    외국에서 마약을 거래하는 건 어느 정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긴 하다. 특히 중국과 소련 같은 경우에는 시도 때도 없이 칼과 총이 난무하는 터라 더욱 그렇다.

    하지만 화진파는 이미 오래전부터 외국에서 자리를 잡은 조직이다.

    화진파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미리 해외에서 자리를 선점해 마피아들의 힘을 빌렸기 때문이다.

    자리가 잡혀 있는 조직일수록 마약 거래를 통해 챙기는 수수료가 꽤 된다. 물론, 그깟 수수료를 떼려고 그러는 거였으면 저 마약들을 전부 내가 가졌을 거다.

    난 좀 더 위를 바라보고 있다.

    “저도 그쪽 시스템이 어떤지 대충 알고 있습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어쩌면 권용일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질리도록 그런 놈들을 파고들어 기어코 수갑을 채운 사람이 바로 나였다.

    “거래하면서 수수료도 좀 때 가고, 마약으로 재미도 좀 보는 그런 자리 아닙니까?”

    권용일도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다. 수수료 몇 푼과 마약 조금 빼돌리는 건 눈 감아 줄 것이다.

    어차피 수고비 같은 개념이지 않은가?

    “잘 알고 있네. 그래서 너도 재미 좀 보고 싶다는 게냐?”

    “아뇨. 겨우 그런 일이었다면 큰 형님께 저 마약들을 전부 가져다 바치진 않았겠지요.”

    “허허. 이런 당돌한 녀석을 봤나.”

    권용일은 어느새 비워진 내 잔에 차를 채워주며 다시 물음을 던졌다.

    “네가 총명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 자리를 달라는 건 다른 뜻이 있다는 거겠지?”

    “예. 그런 소소한 재미나 보자고 그 위험한 자리를 달라고 조르는 게 아닙니다.”

    “지금 조르는 거였냐?”

    “아닌가요?”

    “난 네놈이 마약 줬으니, 그 자리 얼른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 양반, 또 어울리지도 않는 엄살을 부리고 앉아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한테는 엄연히 큰 형님이신 데요.”

    “허허.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무튼, 그 자리를 너한테 주면 나한테도 그리고 화진파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거겠지?”

    “믿어 주신다면 좋은 수확물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오늘처럼?”

    욕심도 많다.

    오늘은 그냥 운이 좋았다는 걸 모르는 건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 다른 놈은 몰라도 널 믿지 못하면 내가 누굴 믿겠냐?”

    권용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어. 일환이냐? 그래, 나다.”

    바로 성일환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건 내게 선뜻 자리를 내주겠다는 뜻인가?

    “애들 좀 다 모이라고 해 봐. 화투 치고 노는 것밖에 못 하는 놈들이니까 시간이 남아돌게야. 그래. 얼른 오고.”

    할 말만 딱 하고 권용일은 전화를 끊었다.

    “너, 미운털이 아주 제대로 박히게 생겼다.”

    “이미 여의도 때부터 박히지 않았나요?”

    “그랬지. 하지만 그건 네가 똘마니들 끌고 가서 빼앗은 거니까, 터치를 크게 안 하는 거야. 그런데 이건 다르잖냐? 눈 뜬 채로 자기 밥줄 강탈당하게 생겼으니까.”

    원래 있던 책임자를 몰아내고 내가 새로운 책임자가 되겠다고 했으니, 반발이 적잖게 있을 것이다.

    “제가 괜한 말을 꺼낸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맘에도 없는 소리 할 거면 집어치워라.”

    책임자가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나한테 원한을 가지게 될 건 분명했다.

    그쪽이 사고 치기 전에 내가 먼저 묻어 주는 게 나으려나?

    “그런데 넌 그 많은 약이 거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냐?”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하면 안 믿으시겠죠?”

    “말하기 싫다는 거냐?”

    “우연히 알게 된 겁니다.”

    “허허. 근데 타이밍이 아주 절묘해. 이번에 경찰이 대어 하나를 낚았다고 하더구나. 멕시코에서 온 카르텔 놈인데, 아무래도 그놈이 마약을 사방에 뿌리고 다녔던 놈인 거 같다.”

    그놈이 벌써 잡힌 건가?

    정부가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큰 대어를 낚은 건 맞다. 그러나 겉만 크지, 속은 텅 비어 있는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 우리 잘나신 나라님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참 궁금하다.

    그들이 원하던 대량의 마약은 이미 내가 전부 강탈하지 않았던가.

    죄 없는 멕시코 카르텔 놈만 며칠 더 고생하게 생겼다.

    그놈도 어떤 새끼가 자신의 마약을 훔쳐간 건지 참 궁금해할 것이다.

    “그렇군요. 그 마약들이 멕시코 놈 소유였다면, 경찰들이 그거 찾으려고 한창 뛰어다니게 생겼습니다.”

    “허허. 그렇지. 멕시코 놈도 아주 미쳐 팔짝 뛸 거다. 누가 훔쳐간 건지 알 길이 없으니까. 그래서 내게 물은 거야. 어떻게 알았냐고 말이다.”

    이럴 땐 CCTV가 없는 이 시대가 참 편하게 느껴진다.

    “말씀드렸듯이 우연히 알게 된 겁니다. 제가 미래에서 온 것도 아니고,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네가 미래에서 왔다? 그럼,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구나. 허허.”

    이런 우스꽝스러운 농담에 맘 놓고 웃지 못하는 건 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네가 어떻게 알았든 난 상관 안 한다. 결과만 좋으면 되는 거야. 과정 같은 건 너만 알고 있으면 돼.”

    전형적인 빠져나가기 수법이다.

    결과만 보고 받고 과정은 생략한다.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충분히 오리발을 내밀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은가?

    결과만 알고 과정을 알지 못하니, 검찰이나 경찰도 그걸 문제 삼아 구속할 순 없으니까.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 보고한다.

    나한테 딱 좋은 지침이다.

    * * *

    “다 모였나?”

    열 명의 간부들이 권용일의 집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왜 이렇게 집무실이 크나 했더니, 이 사람들을 한꺼번에 들이려고 특별히 크게 만든 것 같았다.

    그들은 권용일이 왜 자신들을 불렀나 궁금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대부분이 내게 표독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중에는 이진용이 내게 손짓하며 동네 아저씨 같은 미소를 보였다.

    “다들 인사해라. 이놈이 태산이라는 녀석이다. 앞으로 너희도 이놈이랑 볼 일 많을 테니까, 얼굴 잘 익혀 놔.”

    날 바라보는 시선들이 참 날카롭다. 한쪽은 경계의 눈빛을, 다른 한쪽은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띠고 있었다.

    “이번 일은 다 들었지? 우리 태산이가 또 한 건을 크게 해냈다. 이 핏덩이도 하루가 멀다고 화진을 위해 큰 건수를 팡팡 터트리는데, 네놈들은 머리에 똥만 채우고 있냐?”

    권용일은 시작부터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곧, 간부들은 자신들을 욕먹게 만든 놈이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보자며 소란스러워졌다.

    “이러니까 노땅들을 다 갈아 버려야 한다는 소리가 아랫놈들한테서 들려오는 거야. 정신 똑바로 차려!”

    하지만 권용일의 노성에 간부들은 다시 꼬리를 내렸다.

    “예, 큰 형님.”

    그들은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그리고 날 바라보는 눈빛들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해외 마약 거래하는 책임자가 누구더라? 김 사장이었나?”

    “예, 큰 형님. 제가 맡고 있습니다.”

    저 사람 얼굴은 나도 모르겠다. 그렇다는 건 화진파가 그룹으로 성장하기 전에 잘려나갔다는 뜻이다.

    “그래? 그동안 주머니 좀 두둑이 채웠지? 이제 좀 바꿀 때가 된 거 같다.”

    “…예?”

    “못 들었어? 너 자르고 다른 책임자를 놓겠다고.”

    “크, 큰 형님!”

    “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권용일은 재떨이를 김 사장에 냅다 던져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던 김 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내가 나이 좀 들었다고 지금 무시하는 게냐? 어디 계급장 떼고 칼춤 한번 쳐 봐!?”

    “제가 잠깐 미쳤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큰 형님!”

    역시, 권용일은 나이가 들었어도 카리스마를 잃지 않는다. 화진파를 이 정도로 키운 사람이지 않은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무얼 두려워하겠는가. 젊은 놈과 칼 들고 싸우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다.

    이렇게 보니 우리 영감님, 좀 새롭게 보인다.

    “아무튼, 앞으로 해외에서 하던 일은 다 손 떼.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주인의 명령을 하인 따위가 거부할 순 없다. 그는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그에 반해 다른 하인들은 눈빛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꿀이 떨어질까 기대하는 저 눈빛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기대는 철저히 짓밟혔다.

    “앞으로 외국 놈들이랑 하는 거래는 전부 태산이한테 맡긴다. 마약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 마디로 전부다.”

    오-. 이런 서프라이즈 선물을.

    우리 영감님 통도 크시다.

    마약뿐만이 아니라 그 외의 거래들까지 전부 내게 맡겨 버렸다.

    이건 날개에 발톱까지 달아 주는 격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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