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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7화 (7/325)
  • 7화. 예쁨 받을 짓 (4)

    고영남이 건네준 돈 가방을 챙긴 뒤, 난 곧바로 화랑 나이트에 들어갔다.

    혹시 있을지 모를 미행 때문에 일부러 길을 빙빙 돌아왔더니 벌써 시간이 꽤 흘렀다.

    곧 있으면 나이트 오픈 시간인지, 일하는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5월 20일입니다.”

    “확실해?”

    “제 앞에서 대놓고 말했습니다. 5월 20일 날 화진파를 완전히 재낄 거라고요. 굳이 제가 갈 필요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냥 그놈한테 조직원 몇 명만 심어 놨어도 될 일이었어요.”

    황규혁은 생각보다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를 유심히 관찰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오호라-. 이놈 보게?

    내가 검사 생활만 20년을 한 사람이다. 그동안 조사실에서 상대한 범죄자 수가 몇 명인지도 모를 만큼 많았다.

    저놈이 띠고 있는 건 바로 의심의 눈초리였다.

    검사 노릇을 했던 시절에도 저런 눈빛을 짓는 놈들이 꽤 있었다.

    내가 그럴듯한 거래를 제시하면 날 상대하는 변호인들과 피고인들은 꼭 저런 눈빛을 띤다.

    내 말이 정말 사실인지 아닌지 관찰하는 눈빛.

    하지만 내 포커페이스를 꿰뚫으려면 아직 백 년은 더 이르다, 이 양반아.

    “절 의심하시는 겁니까?”

    “으응?”

    굳이 돌려 말할 필요 없다. 내가 황규혁을 속이고 있는 건 아니니 제대로 불만을 표현해야 한다.

    “실망입니다. 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형님께서는 절 의심하고 계시군요. 학교에 뿌리신 연락책들이 제가 허튼짓 하고 다닌다는 보고라도 올렸습니까?”

    연락책이 아니라 연락책‘들’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네가 학교 내에 뿌린 첩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다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제대로 한 방 맞았는지, 황규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내가 연락책을 몇 명 뿌렸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당연한 소리.

    정말 황규혁이 연락책을 한 명만 뿌렸다면 내가 저 사람을 다시 판단했을 것이다.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새 식구라고 해도 신분 보증은 확실하게 해야 하니까요.”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도 확신이 필요했다. 솔직히 위에서는 네가 뺑끼친다고 생각하거든. 아! 물론, 내가 그렇다는 건 아니야. 난 네가 맘에 들어. 진짜다.”

    내가 마음에 들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나저나 위에서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본 다라-.

    차라리 잘된 일이려나?

    그들의 의심을 싹 거둬 주기 위해서라도 영남파를 박살 내고 화랑 나이트를 지켜야 한다.

    아니지. 그것보다 한 발 더 나가 제대로 된 성과를 보여 준다면, 그들은 나에 대한 의심을 믿음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그럼, 난 더 빠르게 저들 앞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렇군요. 이번에 영남파를 제거하면 의심을 좀 거두시겠지요?”

    “그러시겠지. 그땐 아낌없이 지원해 주실 거야.”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섭섭한 건 어쩔 수가 없군요. 그래도 이 바닥이 바닥인 만큼, 제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은 자세다. 하하.”

    황규혁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나에 대한 의심을 어느 정도 거둔 것이려나?

    “그런데 그거 돈 가방이지?”

    내가 들고 온 가방을 가리키는 황규혁에게 대충 설명을 해 주었다.

    어떻게 고영남과 만나게 되었고,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까지.

    이야기를 다 들은 황규혁은 다시 한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한데? 고영남 그 새끼 너한테 뒤통수 맞은 거 알면 아주 까무러치겠어. 널 위해서라도 그놈은 묻어야겠다. 그런 놈이 나중에 작정하고 담그면 답이 없어.”

    후환을 대비하기 위해 미리 싹을 자르겠다는 건가?

    황규혁이 직접 손에 피를 묻혀 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다.

    “감사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묻어 버릴 만큼의 배짱은 아직 없어서요.”

    “뻥 치지 마, 임마. 넌 네 앞에서 누굴 담그고 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놈이야.”

    제대로 본 것일지도 모른다.

    예전과 지금의 나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난 조폭들 손에 죽어 나간 젊은이들을 많이 봐왔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는 조금 덤덤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내 손으로 죽인 시체가 눈앞에 있어도, 정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무르게 살기에는 내가 지나쳐 온 죽음의 무게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손에 묻힐 피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모든 것을 뒤엎을 테니까.

    나는 무자비한 칼잡이 역할을.

    연욱이는 그 칼에 잘려나간 놈들을 치우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근데 삼백이나 뜯었으면 꽤 선방했네. 조금 더 부르지 그랬어? 네 말 들어보니까, 고영남 그놈한테 떨어진 돈이 상당할 것 같은데 말이야.”

    나도 그게 궁금하다. 과연 고영남은 얼마를 챙긴 것일까?

    “삼백이면 충분합니다. 너무 불렀으면 고영남이 불쾌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굳이 그놈과 밀고 당기기를 격하게 할 필요는 없지요.”

    고영남이 얼마를 챙겼든 그 돈은 내가 다 가질 생각이다. 누구와도 나눌 생각이 없다.

    “그렇구나. 그럼, 이제 일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네가 모으겠다고 한 50명. 진짜로 모을 건 아니지?”

    황규혁은 심히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아무리 오합지졸에 불과한 고등학생 50명이라고는 하지만, 영남파와 힘을 합친다면 수적으로 황규혁이 매우 불리하게 된다.

    “모을 겁니다.”

    “뭐? 아니, 왜? 네 일은 이미 끝났잖아.”

    이 양반은 또 의심의 눈초리를 내게 보내고 있다. 내가 딴생각이라도 품는 건 아닌지 살피는 듯한 그런 눈빛 말이다.

    “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연막이 필요할 뿐이죠. 제 학교에 분명 고영남이 뿌려 둔 놈들이 있을 겁니다. 그놈들의 눈을 속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끄응. 그렇긴 하다만….”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시는군요.”

    “뭐, 숨기지는 않으마. 네가 그 50명으로 영남과 손을 잡기라도 하면 난 그날로 모가지가 날아가거든.”

    “반대로 말씀드리자면 형님의 위치가 더 올라갈 수도 있다는 것이군요.”

    이번 일을 잘 처리하게 되면 조직 내에서 황규혁의 위치가 높아진다는 말이었다.

    그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린놈이 꿀 바른 말은 참 잘한단 말이야. 그 말을 들으니까 이건 안 할 수도 없고, 참.”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께서 우려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영남파, 머지않아 형님 손에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겠습니다.”

    이건 네 작품이 아닌, 바로 내 작품이다- 라는 것을 풍긴 은유적인 표현이었다.

    서로 윈윈하는 전략이었기에 황규혁도 기분 좋은 웃음을 만연했다.

    “그래. 이 일만 잘 끝나면 앞으로 널 의심하는 일은 없을 거야.”

    “예.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황규혁이 돈 가방을 가리켰다.

    설마, 이 돈을 원하는 건가?

    “드릴까요?”

    뺏기면 억울할 것 같았지만, 고영남이 오성파에게 받은 금액을 전부 내 손으로 강탈할 생각이니 크게 아깝진 않았다.

    “아니, 돈 가방 잘 챙기라고. 네가 번 수입이니까, 내가 건드릴 이유는 없어.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내가 번 수입을 바치지 않고 내 주머니에 넣어도 터치하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이런 거에는 깔끔한 사람이구나.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고영남 돈을 다 강탈한 뒤에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했었는데.

    “감사합니다, 형님.”

    * * *

    “5월 20일?”

    난 집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연욱의 집부터 찾아갔다. 난 영남파에서 있었던 일들부터 시작해 황규혁과 나누었던 이야기까지 전부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유일하게 나와 과거로 돌아온 아군이 아니던가?

    “그래. 5월 20일이다.”

    “거기다가 50명이란 말이지.”

    “맞아.”

    내가 연합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연욱이는 자연스럽게 부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연합을 관리하는 전반적인 일은 모두 연욱이 맡았다.

    50명의 학생을 불러 모으는 것도 연욱이 할 일이었다.

    “50명 정도는 어렵지 않게 불러 모을 수 있을 거야. 그냥 우리 학교에서 모으는 게 훨씬 빠르겠네.”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내 부름에 모일 연합원의 숫자는 얼마 정도 될까?

    “연합원을 총동원한다면 어느 정도 모일 거 같냐?”

    연욱은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왕 노릇이라도 하고 싶어졌냐?”

    “아니, 그냥 궁금해서.”

    “네가 이제까지 뿌린 씨앗이 있으니까. 아직 너한테 적대적인 놈들은 없어. 아마 대부분 모이려고 할 거야. 최소 삼백 명은 넘겠지?”

    삼백 명.

    어마어마한 숫자다.

    “하긴. 내가 밉 보일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

    “맞아. 네가 애들 주머니 턴 적이 없잖아. 군림하려 들지도 않고, 지금처럼 평화롭게 균형을 유지했으니까. 대부분 학교 학생들이 널 좋아해.”

    다행이다.

    그들 중에서 훗날 판검사, 혹은 기업을 이끌만한 사람들에게 충분한 호감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쭉 연합원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럼, 네가 쓸 만한 애들로 50명 추려 줘. 아직 조직의 손에 닿지 않은 애들이어야만 해.”

    “젠장. 공부할 것도 많은데.”

    “부탁 좀 하자.”

    “알았어. 늦었는데 어서 집에 들어가라. 아 참. 네 어머니는 잘 계시지?”

    “그래. 너 요즘 안 놀러 온다고 아쉬워하시더라.”

    “미래의 검찰총장이 될 사람이라 바쁘다고 말씀드려.”

    음흉하게 이빨을 드러내는 연욱을 보며 나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 녀석은 분명 해낼 것이다.

    * * *

    “다녀왔습니다.”

    다 무너져 가는 집에 돌아오자 벌써 마음이 무겁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일을 하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 왔니?”

    밤새 일을 하셔도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 항상 살갑게 맞아 주시는 어머니.

    핼쑥해진 얼굴을 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예, 어머니. 이제 그만 쉬세요. 일은 제가 대신 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야. 네 동생이 도와줘서 다 끝났어.”

    김태혁 그놈이?

    옆구리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져 고개를 돌려 보니 동생 태혁이 내 옆에 서 있었다.

    깜짝 놀라 하마터면 욕설을 내뱉을 뻔했지만, 애써 티 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인기척 좀 내고 다니지.

    “어머니 도와드렸다면서? 잘했어.”

    “아닙니다.”

    “존댓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 갑자기 왜 그래?”

    “괜찮습니다.”

    어머니는 요즘 들어 형제 사이가 부쩍 좋아진 것 같다며 우리 둘을 더욱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내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만 해도 우리 둘은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놈들처럼 살았다.

    주먹 하나는 끝내주게 잘 휘두르던 동생 놈은 주먹질을 사방에 해 대느라 정신이 없었고, 쥐뿔도 없던 내가 그런 동생에게 훈계한답시고 나대다가 사이가 틀어진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정반대가 되었다.

    내가 눈을 뜨게 된 이후로 난 동생에게 한 번도 손찌검을 한 적이 없다. 그 흔한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예전에 잘해 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도 있고, 내가 행동으로 보여 주면 저절로 바뀔 것임을 믿었기에 그리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형이라고도 부르지 않던 놈이 지금은 형님이라 부르며 존댓말까지 하고 있다.

    난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를 도와드린 뒤, 방 안에 틀어박혀 밤이 새도록 공부를 한다.

    이런 장면만 보면 흠잡을 곳 없는 모범생으로 보겠지만, 밖에서는 서울 절반을 먹은 연합회장 노릇을 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동생 녀석은 날 존경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부끄럽다.

    양아치 짓이나 다름없는 연합을 세워 회장이 된 게 무슨 존경 받을 거리가 된단 말인가?

    난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머니. 이제 일은 그만두시면 안….”

    “싫다.”

    “그렇게 단번에 자르지 마시고요.”

    “안 된다.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너희들을 놔두고 내가 일을 그만두면 어떡하니?”

    밤낮 가리지 않고 일을 하시는 어머니다.

    아버지라는 놈은 도박에 빠져 살다가 어머니가 모아 둔 돈까지 다 날려 먹고 난 뒤에는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가 고작 10살 때 일어난 일이었으며, 그 당시 동생은 8살이었다.

    땡강만 부리는 자식새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식당 일부터 잡일까지 도맡아 오셨다. 그리고 내가 대학에 졸업하는 날 갑자기 쓰러지셔서 숨을 거두신다.

    뇌졸중에 합병증까지 겹쳐 일어난 불상사였다.

    난 이런 불행이 두 번 다시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호의호식하며 살게 해 드리고 싶다.

    “이 돈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난 고영남에게 받은 돈 가방을 어머니 앞에 내놓았다. 이 돈이면 당분간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 안에 든 돈뭉치를 보신 어머니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너, 너 이, 이 많은 돈을 어떻게 구한 거냐?”

    동생 녀석도 기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앞으로 일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앞으로 생활비는 제가 벌겠습니다.”

    “이놈아!”

    그런데 어머니는 내 등을 때리시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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