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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6화 (6/325)
  • 6화. 예쁨 받을 짓 (3)

    “오셨습니까, 형님?”

    “그래. 황규혁이. 잘 지냈나?”

    화진파에서 고급간부 노릇을 하는 성일환은 미리 마중을 나와 있는 황규혁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조직원들도 열을 맞춘 채로 성일환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황규혁은 그를 사무실까지 인도한 뒤에 술을 따라 올렸다.

    “이번에 새로 데려온다던 놈은?”

    “아. 경서 고등학교의 김태산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놈 이름이 김태산이었나?”

    “예, 형님. 별로 힘들이지 않고 거두긴 했는데….”

    “했는데?”

    “이거, 정말 재밌는 놈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황규혁의 미소에 성일환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밌는 놈이 들어왔다고?”

    “예. 제가 그놈을 스카웃하려다가 오히려 도움을 받은 꼴입니다. 쪽도 그런 쪽이 없었습니다.”

    “하하하-! 규혁이, 네가?”

    고급간부는 회사로 치면 이사급, 그러니까 임원급의 직위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밑에 있는 중간보스들과는 달리 성일환은 황규혁을 질투하는 시선을 띠고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의 격차가 상당하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니까 그놈이….”

    황규혁도 성일환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편했는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보고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성일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규혁처럼,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 대단하다는 것에 딱히 들 뜬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신중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것 같았다.

    “그놈이 청룡파의 제안도 거절하고 굳이 우리의 손을 잡았단 말이지.”

    “예. 우리의 성장세를 보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그래? 겨우 18살 고등학생인 놈이 그런 통밥을 굴린단 말이야?”

    진중한 성일환의 목소리에 황규혁은 살짝 긴장했다.

    “그저 그런 놈들과는 다른 녀석입니다. 경서 고등학교의 통합 통에 오르고 연합까지 만들어 서울 절반을 먹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그 정도면 우리 화진파가 눈에 차겠어? 그런 놈이라면 우리나라 삼대 조직 중 하나에 들어가려고 했을걸?”

    듣고 보니 황규혁도 그 점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진파의 세력이 아무리 빠르게 성장한다고 해도 청룡파와 비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태산은 화진파를 선택했다.

    “만약 내가 그놈 입장이었다면 화진파로 절대 안 들어와. 더 큰 조직에 들어가려고 했겠지.”

    성일환의 부정적인 반응에 황규혁은 다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김태산이란 놈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설마, 그놈이 화진파를 가지고 노는 것인가?

    “그리고 영남파에 직접 들어가서 스파이 노릇을 하겠다고 했다며?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이유는 또 뭐야? 굳이 그놈이 아니더라도 이 일을 맡길 만한 애들이 우리한테 없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날카로운 성일환의 판단이었다. 황규혁은 자신의 짧은 식견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송구합니다, 형님. 제가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아냐. 당연히 그럴 수 있어. 그 좀만한 놈이 그렇게 나오니까 너도 당황을 했던 거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만약 그놈이 오성파에서 보낸 뿌락지라면….”

    “일단 지켜보자고. 어차피 경서 고등학교에서 그놈 감시하는 똘마니 몇 있을 거 아니야?”

    “그렇긴 합니다.”

    태산에게는 한 명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여럿 있었다. 황규혁도 나름 대비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성일환도 무조건 태산을 스파이라고 몰아갈 순 없었다. 정말 그가 조직을 위해 큰일을 해 주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번 일이 잘되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지. 그땐 그놈을 잘 도와줘 봐. 하지만 일이 반대로 흘러간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놈 모가지를 네가 비틀어야 한다. 우리 공사친 놈을 살려 둘 순 없잖아?”

    성일환의 살벌한 명령에 황규혁은 곧장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형님.”

    정말 태산이 다른 조직에서 보낸 첩자인 것일까? 물론, 아직 밝혀진 것은 없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황규혁은 태산을 더욱 신중하게 지켜볼 생각이었다.

    만일 태산이 오롯이 조직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들어온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형대로 보내야 할 도적놈이 들어온 것이리라.

    * * *

    “처음 뵙겠습니다. 김태산이라고 합니다.”

    영등포에 있는 영남파 사채업 사무실에 발을 들이자, 모두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소파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는 내가 등 뒤에 비수를 꽂아야 할 영남파의 보스, 고영남이었다.

    그는 한동안 나를 살펴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

    “내가 보낸 똘마니를 깠다던데. 우리 조직이 좀만 해서 그런 건가?”

    고영남 뒤에 있는 깡패들을 바라보니, 그중에 어제 학교를 찾아왔던 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놈들을 바리바리 모아 놓은 것을 보면 날 린치라도 할 속셈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만일 그랬다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겠지요. 그렇지 않아도 저놈들이 형님과 제 사이를 이간질할까 봐 직접 들른 겁니다.”

    고영남은 눈가를 꿈틀거리며 뒤에 있는 조직원들에게 물었다.

    “저 말이 사실이야?”

    그러자 내게 가랑이를 맞아 뒹굴뒹굴했던 놈이 발악하며 나를 모함했다.

    “저놈이 지금 큰형님께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다짜고짜 우리를 공격했습니다!”

    역시, 제 잘못은 생각지도 않은 채 목소리만 높이는 애새끼였다.

    고영남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스스로 변호를 해 보라는 눈짓이었다.

    “영남파에서 오신 분들이라는 걸 뻔히 아는데, 제가 왜 공격을 합니까? 먼저 제게 욕설을 하고 주먹을 뻗은 건 그쪽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쪽이 모시는 형님께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건 너무 뻔뻔한 거 같은데.”

    나는 아무 잘못도 없으니, 화를 낼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담담히 변론을 했다.

    침착한 내 모습이 고영남에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던 것일까? 그는 나머지 조직원 두 명에게도 물었다.

    “니들이 이빨 깐거야?”

    “그, 그게….”

    그들은 바로 대답 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떨었다.

    게임 끝이다.

    “이런 호로 새끼가!”

    순간 화가 폭발한 건지, 고영남은 재떨이를 들어 방금 전까지 나를 모함하기 바빴던 놈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붉은 피가 사방에 튀겼지만, 상대가 더 이상 꿈틀대지 못할 정도로 무식한 폭행이 이어졌다.

    그는 깨진 재떨이를 집어 던진 뒤, 다시 자리에 앉아 길게 숨을 내뱉었다.

    “후-. 이거 첫 만남부터 서로 안 좋은 인상을 남긴 것 같은데, 내가 대신 사과한다.”

    “전 괜찮습니다. 형님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형님께서 믿을 만한 사람을 곁에 두지 못하신 거죠.”

    당돌한 내 지적에 고영남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을 곁에 두지 못했다라-.”

    당장 부하들이 고영남을 바라보는 눈빛만 봐도 이 남자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이놈은 부하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오성파에서 주는 돈으로 이들을 산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하들이 저렇게 두려움 가득한 눈빛만을 띠진 않을 것이다.

    “뭐, 네 말이 맞다. 내 주변에 믿을 만한 놈이 없어요. 능력 있는 놈도 없고.”

    부하들 앞에서 대놓고 믿을 놈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서로 간의 신뢰가 바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보다 쉽게 일이 풀릴 것 같았다. 저런 놈 구워삶는 것쯤은 내겐 일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너 같이 능력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었던 거야.”

    더군다나 고영남은 내게 아주 노골적이었다. 여기서 살짝 튕겨 줘 볼까?

    “글쎄요. 제가 그럴 만한 사람입니까? 이제 고등학생인데요.”

    “아니야. 될 놈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넌 그 꼴통 고등학교에서 시작해 지금은 서울 절반 이상을 먹은 연합까지 만들었잖아.”

    “그래 봤자 고등학생입니다. 연합 만드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죠.”

    “어허. 과하게 사리는구만. 충분히 넌 잘난 척해도 좋아. 그 정도의 업적은 이제까지 아무도 이룬 적이 없으니까. 솔직히 너처럼 연합을 만들려고 했던 놈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저 말은 사실이다. 나 이전에 있었던 선배들도 연합을 만들어 서울을 제패하려고 했지만, 당장 경서 고등학교조차도 통합하지 못했다.

    꿈은 꿈으로 남았다는 것이었다.

    “형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영남파로 들어간다고 하면 조건이 있겠지요?”

    고영남은 내게 매우 호의적이다. 그는 날 일반 고등학생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럼, 그가 날 더욱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조건을 걸어야 한다. 무턱대고 조건 없이 영남파에 들어간다고 하면 오히려 의심을 살 것이다.

    “물론이지. 대신, 네가 데리고 있는 연합 애들도 함께 동원할 수 있겠나? 그럼, 충분한 사례를 하지.”

    “저를 포함해서 연합까지 스카웃 하시려면 액수가 상당할 겁니다.”

    “흐흐.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얼마나 동원할 수 있는지 말해 봐.”

    날 도발하는 건가? 확실히 오성파에서 준 돈이 꽤 크긴 큰가 보구나.

    어디 한 번 깜짝 놀라게 해 줘 볼까? 네놈은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숫자로.

    “백 명입니다.”

    “뭐, 뭣!?”

    “최소 백 명까지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 그럼 이빠이 끌어 올리면?”

    “글쎄요. 한 삼백 명은 넘지 않을까요?”

    솔직히 나도 제대로 셈을 해 본 적은 없다. 진짜 백 명이 모일지도 미지수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뱉긴 했지만, 지금 연합의 규모를 생각해 본다면 꼭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었다.

    고영남은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 당황해야 하는 건지 갈팡질팡하며 눈알을 굴렸다. 그 뒤에 있던 조직원들도 깜짝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했다.

    저 무식한 머리로 돈 계산을 해야 하니 무척 바쁠 것이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물잔을 들이킨 고영남은 자신의 당황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한데? 백 명이라니. 그게 정말 가능한 숫자야?”

    목소리에 섞인 감정은 의심이었다. 이럴 땐 자세히 설명하기보다는 단순하게 말하는 게 옳은 방법이다.

    “학교에 있는 애들을 끌어 오는 일인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지.”

    그는 다시 물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어지간히 놀랬나 보군.

    “그럼, 한 오십 명만 동원해 줄 수 있나? 액수는 이백으로 하지.”

    난 살짝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서 좋다고 덥석 받으면 안 된다.

    “좀 더 쳐 주시죠. 애들이 멀리서 오는 건데.”

    “허. 이백도 솔직히 많은 액수야.”

    알고 있다. 대기업 임원들 월급보다 2배는 더 많은 액수니까.

    “애들이 오십 명인데 이백이면 제대로 나눠 먹지도 못합니다. 깔끔하게 삼백이면 될 것 같은데요?”

    몸값을 후려칠 땐 확실히 후려쳐야 된다. 그래야 더 믿음이 가는 법이다.

    입술이 바짝 말라가고 있는 고영남의 얼굴이 훤히 보였다. 솔직히 삼백은 내가 봐도 도둑놈 심보였다. 21세기로 따지자면 2~3천만 원을 생으로 터는 것이니까.

    완전히 날강도나 다름없는 짓이지만, 이런 놈들에게 돈을 뜯는 건 도적이 아니라 의적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흐음. 삼백은 솔직히 많은 액수이긴 한데, 좋아. 오십 명을 동원하는 대가로 삼백을 주마. 대신, 앞으로도 날 쭉 도와야 할 거야.”

    의외로 고영남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물론입니다. 형님 말씀이라면 넙죽 절이라도 하면서 따르겠습니다.”

    “시원시원해서 좋네. 아직 젊어서 그런가? 깡다구도 있고 보기 좋아. 앞으로도 날 잘 따른다면 더 많은 돈을 받으면서 살 수 있을 거야.”

    그래 봤자 몇 달 안 가서 사라질 놈이 제 주제도 모르고 지껄인다.

    저놈의 기분을 맞춰 주는 것도 좋겠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놈의 계획을 파고들 때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형님. 왜 무리하게 돈까지 쓰시면서 오십 명을 동원하려고 하십니까? 어차피 저희는 고등학생들이지 않습니까? 그 정도의 돈을 주시면서까지 쓸 필요가 있습니까?”

    고영남의 의심을 피하고자, 난 최대한 돌려서 말을 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나?

    이놈은 스스럼없이 내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 그렇지 않아도 말하려고 했다. 이주 후에 화랑 나이트를 접수할 참이거든. 그렇지 않아도 인력을 보충해야 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때마침 네가 나타나 준 거지.”

    “화랑 나이트라면 화진파 거 아닌가요?”

    “맞아. 잘 알고 있네. 이번에 아주 화진파를 재낄 거다. 그러니까 너도 이주 안에 오십 명을 모아 와야 해.”

    이주 후면 5월 20일이다.

    생각보다 이놈들이 빨리 움직인다. 하지만 이주일 이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연합 애들은 제가 부르면 즉각 오게 되어 있으니까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영남은 내가 부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 정도의 인원을 말 한마디로 불러 모을 수 있는 힘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선금은 절반만 주십시오. 일이 잘 끝나면 나머지 금액을 받겠습니다.”

    선금을 먼저 받고 나머지 금액을 후에 받는 건 계약의 기본이다. 고영남은 흔쾌히 허락했다.

    “아, 그래. 가는 길에 가지고 가라. 내가 똘마니들 시켜서 준비해 주마.”

    백오십 정도의 돈은 아쉽지 않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도대체 오성에게서 얼마나 받아먹었던 것일까?

    이참에 저놈이 오성에게서 받은 돈을 내가 전부 빼앗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난 저런 쓰레기들의 주머니를 터는 의적이 아니던가?

    벌써 손맛이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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