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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5화 (5/325)
  • 5화. 예쁨 받을 짓 (2)

    “연합에 있는 똘마니들?”

    황규혁은 부정적인 반응부터 보였다.

    “네가 이쪽 생활을 안 해봐서 그런가 본데. 고등학생들로 달건이 치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마 내가 아직 어리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 정도로 간단한 것을 내가 모를까? 당신보다 내가 더 오래 이 바닥에서 굴렀다.

    “무식하게 정면충돌을 하진 않을 겁니다. 스파이를 몇 명 심어 놓는다고 생각하십시오.”

    “스파이?”

    “예. 영남파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야 대비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놈들이 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치자?”

    “그렇습니다. 놈들이 미리 오는 걸 알고 있다면 식은 죽 먹기 아닙니까?”

    영남파가 화진파를 밀어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오성파의 지원도 있지만, 가장 큰 요인은 기습이었다.

    물론, 화진파가 패한 뒤 몇 달 후에 황규혁이 다시 쳐들어와 화랑 나이트를 되찾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굳이 알려 줄 필요는 없다.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불만 끄게 하면 내 존재가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근데 영남파가 오히려 우리를 엿 먹이면 어떡하고?”

    스파이들이 배신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세상에서 제일 의리 없는 놈들이 조폭 아니던가?

    아무리 고등학생들이라도 조폭 물에 푹 젖어 버리면 똑같은 쓰레기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직접 들어갈 생각이니까요.”

    “뭐?!”

    깜짝 놀란 황규혁의 모습을 또 한 번 보게 되니, 이제 슬슬 재미가 붙는다.

    “진심이야?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다. 너 그러다 진짜 죽는 수가 있어.”

    “농담으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껄떡대지 마라. 넌 이미 화진파의 식구다. 그러다 네가 들켜서 죽기라도 하면? 난 그 꼴 못 본다.”

    진심일까? 어차피 나 말고 이 일을 맡을 만한 사람을 고를 거면서. 마치 그들의 죽음은 손실로 보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들렸다.

    “괜찮습니다.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안 된다니까.”

    “저도 조폭의 세계가 무엇인지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빠져나오겠습니다. 제가 눈치 하나는 빠르니까요.”

    솔직히 내가 눈치가 빠른 건 아니다. 그랬다면 이렇게 죽어서 다시 과거로 돌아오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네가 조폭 세계를 잘 몰라서 그래. 고등학생들처럼 좀 맞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야. 뿌락지라는 게 들통나면 그날로 공구리야.”

    “그 정도는 각오한 일입니다.”

    황규혁은 내 고집을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신음을 흘렸다.

    “끄응. 신삥한테 이게 뭔 쪽인지.”

    신입을 가르치고 도움을 줘야 할 처지에, 오히려 신입에게 도움을 받고 있으니 하는 말일 것이다.

    “좋아. 해! 하지만 조금이라도 눈치깐 것 싶으면 바로 빠져나와.”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오히려 내가 너한테 절해야 할 판인데.”

    화진 나이트를 빼앗긴 이후, 분명 황규혁은 조직에서 처벌을 받지 않았을까?

    어린 나이에 빠른 진급을 했으니, 이를 곱게 보지 못하는 놈들이 꽤 되지 않겠는가? 그들이 아주 도끼눈을 하고 황규혁을 찢어 놓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몇 달 후에 다시 복귀해서 화랑 나이트를 점령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그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그래. 자주 연락해. 네 학교 3학년 중에 한 명이 우리 똘마니다. 걔가 네 연락망 담당을 할 거다.”

    한 명은 무슨.

    내가 믿음직한 놈이라는 판단이 설 때까지 내 주위에 감시원을 쫙 뿌려 놓을 게 분명하다.

    “믿을 만하겠죠?”

    “완전 이쪽 환상에 젖어 있는 놈이다. 걱정 마라.”

    조폭 세계의 환상에 젖은 놈만큼 미련한 놈이 없다. 그런 놈은 얼마 못가 환상이 깨지고 조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을 칠 테지만, 들어 올 때와 나갈 때는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 * *

    “영남파? 거기라면….”

    영남파라는 이름이 가물가물한지 연욱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손뼉을 쳤다.

    “오성파 들러리 선 놈들 아니야?”

    “기억하는구나.”

    “이게 참 웃긴 게, 몸이 십 대로 돌아오니까 기억력도 엄청 좋아지는 거 있지? 이걸 왜 옛날에는 몰랐나 싶더라.”

    사법고시를 앞두고 있을 때 연욱이가 항상 자신의 기억력을 한탄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역시 사람은 나이가 들어봐야 젊은 시절을 돌아본다.

    “아무튼, 화진파에서 내 이름을 알리려면 영남파를 이용해야 해. 혹시 기억나는 거 있냐?”

    “음-.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검사 됐을 땐 영남파는 다 옛날이야기로 취급됐잖아. 그놈들이 뭘 하고 지냈는지 알 턱이 없지.”

    연욱의 말대로다.

    우리 둘이 검사가 됐을 때의 나이가 28살이었다. 다른 사람에 비해 꽤 빠르게 검사 직함을 달은 건데, 그때가 1994년이니까 영남파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조직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야. 그놈들의 행동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영남파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미쳤냐? 그러다 죽는 수가 있어.”

    “네가 황규혁이랑 똑같은 소리 하니까 좀 소름 돋는다.”

    연욱이가 굳은 얼굴로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런 조폭 쓰레기랑 비교하지 마라. 기분 나쁘니까.”

    몸과 나이는 어려도 검사 때의 성질이 여전히 남아 있는 우리 두 사람이다.

    사실, 연욱이는 원래 몸도 약했던 놈이라서 항상 맞고 다니는 약자에 속했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 지금은 운동도 열심히 하고, 검사 때 기른 깡도 제법 있는지라 간 큰 놈이 아니면 연욱이를 건드릴 만한 학생이 학교 내에는 없다.

    “이 방법밖에 없어. 영남파로 들어가야 해.”

    “굳이 영남파를 이용해 화진파에 이름을 날릴 필요가 있을까? 조금만 더 있어 보면 기회가 올 텐데.”

    “지금 주춤거릴 시간이 없어. 세월이 언제 우리 기다린 적이 있냐? 항상 훅훅 가는 놈이 시간이라는 놈이잖아. 이러다 우리가 또 오십 살 먹는 건 순식간이야.”

    “젠장. 말은 참 지랄 맞게도 잘해요.”

    연욱이는 손을 휘저으며 결국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영남파에는 어떻게 들어가려고?”

    “영등포에 있는 고등학교부터 족쳐 봐야지. 이미 영남파에서 스카웃 한 놈들이 꽤 있을 거야.”

    “뭐, 그럼 애들한테 연락 좀 넣어 보라고 말해 볼게. 이럴 땐 참 스마트폰이 그립네.”

    “그러게.”

    스마트폰이라. 바쁜 와중에도 자동사냥은 쉬지 않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개 같은 놈들. 좀만 더 있었으면 만렙 찍고 새로운 캐릭터 키우는 건데.”

    한창 빠져 있었던 스마트폰 게임이 생각났는지 연욱이는 투덜거리며 검찰총장과 그 밑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싸잡아 욕을 해댔다.

    나도 이럴 땐 참 핸드폰이 그리웠다. 바로 통화 버튼만 누르면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과도 직통으로 연락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지금 시절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을 그땐 놀라울 정도로 무감각하게 한 것 보면, 인간만큼 둔감한 동물이 또 있을까 싶다.

    “휴-. 난 공부하러 가야겠다.”

    연욱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켰다.

    다시 법학 공부를 하려니 아마 죽을 맛일 거다. 거기다가 또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 졸업까지 해야 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고생이다. 그 법 공부를 또 해야 하고, 연수원까지 가서 개고생해야 되니까.”

    난 조금 고소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연욱이는 똥 씹은 표정으로 내게 역공을 날렸다.

    “너랑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참 좋은데 말이야. 좆 같은 게 뭔지 알아?”

    “응?”

    “군대에서 3년을 다시 썩어야 된다는 거야.”

    “헉.”

    이번에는 나도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 * *

    다음 날이 돼서야 내게 운이 따른다는 것을 또 한 번 알 수 있었다.

    “누가 찾아와?”

    “영남파라고 하던데?”

    “하-. 그놈들이 제 발로 찾아오네?”

    “그러니까. 너, 어디서 이상한 소리 흘린 거 아니지?”

    연욱이는 영남파가 이미 우리의 계획을 눈치챈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했다. 하지만 황규혁이 입을 나불댄 것이 아닌 이상, 그럴 일은 없다.

    이건 분명 그들이 날 스카웃 하기 위해 온 것으로 판단했다.

    “가서 꼬락서니나 구경해 볼까?”

    “너나 가. 조폭 새끼들 보는 것만으로도 토 나온다. 방금 보니까 그것들은 아주 저질이더라.”

    공부량 때문에 짜증이 폭발한 연욱이를 놔두고 나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정문 밖으로 나가보았다. 그리고 복장부터 꽃무늬인 80년대 깡패들이 건들거리며 침을 바닥에 찍찍 뱉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왜 연욱이가 나오기 싫어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화진파 일만 아니었으면 이런 양아치 같은 것들을 만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참 심정이 복잡하다.

    “영남파에서 오셨다고요?”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자, 그들 중 하나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놈이 대장인가?

    “네가 김태산이냐?”

    묻는 품새부터가 글러 먹은 놈이다.

    “예. 맞습니다.”

    “생긴 건 기생 오라버니처럼 생긴 게, 주먹 좀 쓴다며?”

    이놈들 날 스카웃하러 온 게 맞나? 아니면 단순히 시비를 걸려고 온 건가?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던가?

    대놓고 상대를 무시하는 놈에게 좋은 말이 나갈 리가 없다.

    “무슨 용건 때문에 오셨습니까?”

    “애새끼가 싹수없게 구네. 연합인지 뭔지 좀 세웠다고 가오라도 잡는 거냐?”

    완전히 시비조로 딴죽을 거는 놈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놈의 턱주가리를 후려치고 싶었지만, 난 꾹 참고 대답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곧 있으면 수업 시작하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차피 깡패 될 새끼가 공부는 무슨.”

    이런 개….

    후-. 일단은 참자.

    괴이한 머리 스타일에 패션 감각까지 엉망인 놈이 자꾸 바닥에 침을 뱉으며 지나가는 여자에게 눈짓을 날렸다.

    얼른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우리 오야지께서 널 꼭 데려오라고 하신다.”

    “지금 말입니까? 수업 중인데요?”

    “오라면 올 것이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죄송합니다. 수업 중에는 갈 수가 없습니다. 학교가 끝나는 대로 찾아뵙죠.”

    이놈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것은 나를 얻는 것일 테니까. 그리고 내 밑에 있는 연합을 탐내는 것도 틀림없었다.

    “뭐야? 이 새끼가 사람이 좋게 말하면 따라올 것이지. 지금 오야지 명령이라고 했어, 안 했어?!”

    슬슬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찾아왔다.

    “그건 그쪽 분의 형님이시고, 제 형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런 식의 강제적인 만남은 원하지 않습니다. 한 번만 더 이러시면 저도 더는 그쪽 분들을 만날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개새끼가!”

    이놈이 끝내 주먹까지 들었다.

    마침내 꾹꾹 잠그고 있던 꼭지가 돌아가 버렸다.

    “아악-!”

    내가 냅다 가랑이를 걷어차자 이놈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당분간 그 물건 쓰려면 시간 좀 걸릴 거다.

    뒤에 있던 놈들은 차마 나서지 못하고 뒤에서 주춤거렸다.

    이게 바로 영남파의 현실이다.

    만일 화진파에 속해 있는 조직원들이었다면 내가 발을 뻗자마자 달려들었을 것이다.

    언뜻 봐도 급조된 놈들이라는 게 티가 났다.

    이런 놈들이 화랑 나이트를 점령하다니.

    역시, 오성의 지원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건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저 멍청한 놈들에게 난 눈을 부릅떴다.

    “너희들 큰형님한테 똑똑히 전해. 앞으로 이런 일을 할 때는 좀 생각 있는 놈을 골라서 보내라고 말이야. 그리고 내가 내일 낮에 직접 찾아뵐 테니까 기다리시라고. 알았냐?”

    놈들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재빨리 쓰러진 놈을 일으키고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금만 더 참을 걸 그랬나? 하지만 저런 놈에게까지 고개를 숙이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달리 생각을 해 보니, 차라리 이런 전개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당당한 입장에서 고영남을 만난다면 조금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영남파에서 나를 대접해 주는 위치에 따라 넘겨주는 정보도 다르지 않겠는가?

    화진파에서는 내게 돈까지 쥐여 주며 스카우트 하려고 했다. 영남파라면 더 큰 돈을 주는 한이 있어도 날 얻고자 할 것이다.

    이 정도 충돌로 문제를 삼는다면 고영남 그놈이 미친놈이다.

    “태산아.”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담임이신 김대현 선생님께서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계셨다.

    “선생님….”

    “잠깐 따라와라.”

    난 조용히 그분의 협소한 등을 바라보며 따라갔다.

    회귀 전에도 나는 경서 고등학교에 다녔고, 3년 동안 김대현 선생님께서 내 담임이셨다.

    이미 경서 고등학교 자체를 포기한 다른 선생들과는 말도 섞기 싫었지만, 저분만큼은 학생을 위할 줄 아는 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길잡이를 해 주신 아주 고마운 멘토셨다.

    내가 검사가 될 수 있게 금전적인 부분까지도 지원해 주신 분이니까.

    저분께서 돌아가셨을 때 나와 연욱이가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모른다. 사실, 이 순간도 저분의 얼굴만 보면 울컥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래서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당신의 가르침대로 살았지만, 결국 세상의 더러움을 이기지 못한 제자의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선생님과 내가 교무실에 들어오자, 다른 선생들이 우리 둘의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교무실 안이 텅 비고, 나와 김대현 선생님만이 남게 되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태산아. 네가 앞으로 되고자 하는 게 뭐냐?”

    무겁게 운을 뗀 선생님에게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앞으로도 당신이 제게 주신 가르침대로 살 겁니다. 당신께서 생각하시는 것과는 매우 다른 삶이겠지만.

    “그럼, 판검사가 되는 게 꿈이니? 네 친구 연욱이는 검찰총장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하더구나.”

    벌써 연욱이가 자신의 계획을 밝힌 건가?

    그놈도 아마 선생님을 보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이 틀림없다.

    “네. 연욱이는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 될 겁니다.”

    “그럼, 너는?”

    “선생님, 저는….”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 참 난감한 부분이었다.

    정의를 위해 깡패가 된다고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일까?

    한동안 내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선생님께서 내 어깨를 두드리며 대신 말씀을 해 주셨다.

    “네가 어떤 길을 가더라도 난 널 믿는다, 태산아.”

    널 믿는다.

    이 말 한마디가 내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내가 어떤 길을 가려고 하는지 아시게 된다면 날 경멸하지 않으실까?

    세상 사람들이 날 손가락질하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이분마저도 나를 경멸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그땐 정말 참지 못할 것 같았다.

    “난 네가 이미 큰 꿈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 1년 전에 처음 너를 봤을 때부터 느꼈다. 넌, 너의 길이 무엇인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전생에서 선생님을 처음 마주하게 됐을 때가 나도 생각난다. 그땐 정신 좀 차리라고 참 많이도 맞았는데 말이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내 전생을 모르시기 때문에 저리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전생에서 선생님과 가졌던 첫 만남은 그리 밝지 않았다.

    나 같은 쓰레기를 사람 만들겠다며 부단히 노력하시지 않았던가? 그때 참 많이도 맞았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옳지 않다고 여기는 길을 제가 걷는다고 해도, 선생님께서는 절 믿어 주시겠습니까?”

    “네가 말했지? 정의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그 마음만 변치 마라. 그럼,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떳떳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선생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항상 드리고 싶었습니다.”

    “녀석. 내가 뭘 했다고.”

    지금의 저를 만드시지 않으셨습니까? 비록 선생님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네가 어떤 일을 하든, 네가 갖고 있는 그 신념을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반응은 꽤 의외였다.

    “선생님. 깡패가 정의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검사, 판사가 된다고 해서 정의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은 네 생각처럼 그렇게 녹록지 않다. 저 군인들을 봐라. 정의가 정의롭게 살아있다고 생각되느냐.”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다. 마치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아시는 분처럼 보였다.

    전생에서 내가 깡패가 되겠다고 했으면 몽둥이부터 들어서 내 정신을 개조했을 분이다.

    “모든 건 네 선택에 달려 있단다.”

    맞는 말씀이다.

    모든 건 내 선택에 달렸다. 나도 처음에는 판검사가 세상에서 제일 청렴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조폭보다 더 더럽게 썩어 버린 사회의 악을 여럿 봤다.

    공권력을 등에 업은 악인들.

    이들도 처음에는 정의로운 사도를 꿈꿨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락할 만큼 만만하지가 않다.

    나도 어둠의 손이 내미는 돈뭉치에 흔들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녔으니까.

    내가 악인들과 다른 점은 딱 하나다.

    -이번 한 번만 눈 감고 넘어가자.

    -딱 한 번만 모른 체하면 큰돈이 생긴다. 어차피 나라에서 주는 월급으로 뭘 하겠냐?

    바로 이 생각들을 따라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어 영원히 풀 수 없는 족쇄가 된다.

    정의로운 길을 가느냐, 아니면 타락의 길을 가느냐.

    결국, 모든 건 내 선택에 달렸다.

    선생님께서도 그걸 말씀하신 것이었다.

    저분의 말씀처럼 난 절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저번 생에서도 타락의 손길을 모두 뿌리쳤으니까.

    설령 내가 깡패들의 제왕이 된다고 해도 내 생각은 항상 같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사회의 악인들을 모두를 갈가리 찢어 죽일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신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악인들은 죽어도 마땅하니 괜찮다고 하실까, 아니면 아무리 악인이라도 내 손에 피를 묻히면 안 된다고 하실까?

    죄송스럽지만, 어떤 말씀을 하셔도 내 결정에는 변함이 없다.

    법의 심판?

    뭐, 몇 놈은 법의 심판대에 설 것이다. 하지만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풀려날 놈들을 순순히 정부에 넘겨 줄 생각은 없다.

    이번 생에서 그놈들은 곱게 숨을 거두긴 틀렸다. 내가 모두 생매장시켜버릴 테니까.

    바뀐 건 하나다.

    난 이 나라의 제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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