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에서 벌어진 일 3 >
일본은 현재 국내에 있는 모든 각성자를 동원해 일단 던전 공략에 나섰다.
다른 나라의 각성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지만 그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릴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뉴타입 던전은 언제 터질지 알 수 없으니까.
오늘 당장 던전이 터지더라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일단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각성자를 동원하고, 자위대와 경찰 병력을 모조리 동원해 던전 주변을 감시했다.
뉴타입 던전만 150개가 떨어졌으니 그 주위로 흩어져 있는 일반 던전까지 하면 세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던전이 일본에 나타난 셈이었다.
마치 그동안 던전이 거의 안 나왔으니 이제 몰아서 주겠다고 시스템이 말하는 듯했다.
자위대와 경찰만 동원된 게 아니었다.
야쿠자까지 나섰다.
어쨌든 지금은 일본의 위기 상황이었다. 자칫하면 터전을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야쿠자건 뭐건 다 나서는 게 당연했다.
야쿠자 내부에도 각성자가 있었고, 그들이 모여 일반 던전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힘깨나 쓰는 자들이 무기를 들고 자발적으로 던전 감시를 시작했고.
그렇게 일본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와중에 한국에서 모인 각성자들이 출발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제영 그룹과 화신 그룹, 그리고 신라 길드와 ATG길드에서 모집한 각성자들이었다.
그들은 정말 각성자란 각성자는 탈탈 털어서 일본으로 향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번 원정은 생존이 달린 문제였으니 총력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포섭한 암흑가의 각성자들까지 박박 긁어서 데려갔다.
그래서 규모가 제법 컸다.
다음으로 움직인 건 암시장이었다.
최대길은 강하진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암시장의 전력을 일본 원정에 쏟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강하진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큰 공백이 생긴 암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물론 아주 은밀하게.
그 일은 명인혁과 윤경민이 주도했는데, A-마켓도 정아연을 통해 거기 한 발 얹었다.
그들에게는 한국의 암시장이 아니라 한국 암시장의 외국 지부가 주어졌다.
암시장의 전력 공백은 생각보다 굉장히 심각했다.
하지만 최대길은 그런 위험을 예상하고도 강하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각성만 하면 모든 걸 뒤집을 자신이 있어서였다.
아무튼 그렇게 암시장이 떠났고, 그 뒤로 개인적으로 일본 원정에 참여하는 각성자들이 떠났다.
그들은 친일 성향이 있는 자들이었는데, 주변에서 아무리 만류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양 공격대가 여전히 각성자를 모집 중이었다.
그들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각성자를 모아서 한꺼번에 데리고 출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각성자 모집이 누군가의 방해로 점점 어려워지고, 이미 모집했던 각성자들의 이탈까지 시작되는 바람에 부랴부랴 일본으로 떠났다.
하지만 그들이 떠날 때는 이미 각성자 이탈이 심각해진 상황인지라 애초에 계획했던 각성자의 수에 턱없이 모자랐다.
그렇게 한국의 각성자들이 일본에 갔고, 그 뒤를 이어 전 세계의 각성자들이 속속 일본에 도착했다.
그렇게 참여하는 각성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서 이제 일본의 던전 공습을 막아낼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일본 한가운데에 뉴타입 던전 하나가 뚝 떨어졌다.
놀랍게도 그 뉴타입 던전의 크기는 무려 지름 50미터짜리였다.
다른 던전의 지름이 2미터 정도인 것에 비하면 무려 25배나 되는 뉴타입 던전이었다.
* * *
일본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지금까지 나타난 던전만 해도 감당이 안 될 정도인데 난데없이 50미터짜리 대형 던전이 떡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했고, 그때부터 일본에 가려던 각성자들이 다들 발을 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본에 이미 도착한 각성자들도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기서 초강수를 두었다.
각성자의 출국을 금지시켜 버린 것이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하지만 공항으로 가는 길을 봉쇄해 버렸으니 어쩌겠는가.
일본 정부는 던전을 감시하던 자위대와 경찰 병력을 상당수 빼내 공항 봉쇄에 썼다.
세계 각국에서 일본 정부에 항의를 하고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그냥 죽게 생겼는데 욕 좀 먹는 게 대수인가.
그들은 더욱 뻔뻔하게 나섰다.
그 각성자들을 구하고 싶으면 얼른 다른 각성자들을 보내라고 했다. 던전을 모두 닫으면 모두 무사히 돌려보내주겠다면서 말이다. 막대한 보상은 덤이고.
상황이 그렇게 되니 일본에 있는 각성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던전 공략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저 거대한 던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서.
* * *
전 세계의 이목이 일본에 집중되었다.
그 중에는 강하진도 있었다.
일본의 상황은 TV를 통해 자세히 보도되고 있었다.
그리고 A-마켓의 도움을 받아 그들이 보유한 위성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했다.
A-마켓의 위성은 굉장히 뛰어났다.
상당한 해상도로 지상 상황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 강하진이 보고 있는 장면은 일본에 새로 등장한 뉴타입 던전이었다.
‘너무 빨라.’
강하진의 표정은 심각했다.
회귀 전과는 여러모로 달라졌다는 걸 계속 겪어왔으면서도 저런 걸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어쨌든 회귀 전보다 던전이 빨리 나타나긴 했지만, 그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그때와 똑같은 선택을 했고, 그 뒤로 흘러가는 상황도 그때와 대동소이했다.
“미국이랑 영국, 러시아 애들 돌려보내는 것도 똑같네.”
회귀 전에 세 나라를 시작으로 힘 있는 나라의 각성자를 몰래 빼돌려 돌려보냈는데, 그것도 똑같았다.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하고 그들을 돌려보냈는데, 세상에 비밀이 어디 있는가. 알음알음 그 사실이 퍼져 나가서 굉장히 격렬한 반응이 끓어올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가장 나중에 나타난 큰 던전을 공략 중이었다.
물론 모든 전력을 그쪽으로 돌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당한 역량을 거대 던전에 집중했다.
회귀 전에는 저 던전의 공략에 실패해 파국으로 치달았다.
저 던전은 말하자면 페이크였다.
터지지 않는 던전이었고, 애초에 터트리려고 보낸 던전도 아니었다.
나머지 다른 던전을 터트리기 위한 마르바스의 기만전술이었다.
그러니 올바른 공략법은 저 던전을 무시하고 다른 던전부터 모두 닫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정보를 전해준다고 한들 일본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 중이었고.
사실 강하진은 저 던전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일본 정부에 은밀하게 정보를 전달했다.
그들이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상황에 따라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하려고도 했다.
만일 강하진이 말한 대로 저 던전을 무시하고 다른 던전들부터 공략하면 일본을 도와줄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걸 싹 무시해 버렸다.
그들이 보기에는 새로 나타난 거대한 던전이 훨씬 위협적이었으리라.
심지어 저 던전이 나오기 전에 그 사실을 알려줬음에도 그랬다.
누군가 미리 저 상황을 예측했으면 그 사람의 말을 한 번쯤 귀담아 들을 법도 한데, 일본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강하진이 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일본은 한국처럼 분위기를 띄우거나 할 정도로 정보망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사실 그럴 생각도 없었고.
어차피 망할 나라에 왜 공을 들인단 말인가.
아무튼 거대한 뉴타입 던전 주위에 각성자들이 바글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한 번 들어가서 확인해 보고 싶기는 하네.’
저 던전은 회귀 전에도 가보지 않았다.
그때는 다른 던전을 바쁘게 도느라고 이미 괴물의 나라가 되어버린 일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한데 저걸 보고 있으니 왠지 나중에라도 꼭 한 번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강하진은 그걸 염두에 두고 TV를 껐다.
이제 최대길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 * *
최대길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드디어 각성을 한 것이다.
당당하게 시스템에 접속해 자신의 정보도 확인했고, 레벨이 1이라고 찍힌 것도 확인했다.
스킬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딴 것 필요 없었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레벨을 30까지만 올리면 그 뒤로 승승장구할 수 있는 보물이 있으니까.
성장 잠재력을 최상으로 만들어주는데 좋은 스킬이야 나중에 얼마든지 나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최대길은 강하진을 만나 각성하고 다시 거처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해 이동 경로를 숨겼고, 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미행과 감시를 따돌리기 위한 모든 방법을 다 썼다.
그렇게 해서 거처에 도착한 최대길은 즉시 던전을 섭외했다.
이제부터 30레벨을 만들어야 한다.
* * *
강하진은 시스템 접속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늘 최대길을 만나 접속권을 이용해 칭호,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를 내려줬다.
놀랍게도 최대길은 각성을 하면서 1레벨이 되었다.
강하진은 그 광경을 굉장히 집중해서 확인했다.
일반인이 각성하는 과정에서 뭔가 성장의 실마리 같은 걸 발견할 수도 있었으니까.
최대길이 시스템과 연결되는 과정을 지켜보니, 그 순간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동안 강하진이 계속 신경 쓰면서 연구하고 있는 바로 그 힘이 최대길의 정수리로 확 내리 꽂히는 걸 분명히 감지했다.
제법 크다면 큰 소득이었다.
뭔가 살짝 감을 잡을 것 같았으니까.
다만, 그렇게 시스템과 연결된 뒤에는 더 이상 그 힘을 느낄 수 없었다.
강하진은 시스템 접속권의 사용 횟수가 하나 줄어든 걸 가만히 보다가 그걸 다시 아공간에 넣었다.
오늘 이렇게 된 김에 그동안 궁금했던 걸 전부 확인하기로 했다.
강하진은 마르바스의 창, 그리고 복종의 팔찌, 마르바스의 약속, 마지막으로 마르바스의 마석 조각을 꺼냈다.
지금 강하진이 가진 마르바스와 관계된 아이템은 이 네 가지가 전부였다.
그렇게 네 개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는데, 갑자기 마르바스의 마석 조각이 부르르 진동했다.
깜짝 놀라 살펴보는데, 마석 조각이 산산이 부서지더니 마르바스의 창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갔다.
강하진은 서둘러 정보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정보는 예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마석 조각만 하나 삼킨 것이다.
하지만 강하진은 분명히 이 창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창이 풍기는 느낌이 달라졌으니까.
아마 창에 깃든 권능이 강화되었거나, 아니면 새 권능이 생겼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걸 알아보려면 봉인을 풀어야 하는데······.’
강하진의 고민이 또 시작되었다.
물론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직 연구가 더 필요했다. 그리고 잘못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강하진은 한동안 세 아이템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연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의 던전 공습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 * *
일본의 던전이 하나씩 터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나타난 던전에 집중하느라 다른 던전의 공략이 상대적으로 소홀해졌고, 그 사이 던전이 하나 터져 버린 것이다.
던전은 터지기 전에는 그냥 검은 포탈에 불과하지만, 일단 터지면 재앙 덩어리가 된다.
일단 던전이 터짐과 동시에 강력한 폭발이 주변을 한 차례 휩쓸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괴물들은 주변을 철저히 유린했다.
자위대와 경찰 병력이 있긴 했지만, 수가 너무 모자랐다. 공항을 봉쇄하느라 병력이 많이 빠져 있어서였다.
공교롭게도 병력이 가장 적게 배치된 던전이 터져 버렸다.
뉴타입 던전이 터지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한 데이터가 생겼다.
그 뉴타입 던전과 함께 나타난 일반 던전들도 순차적으로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가디언스와 던전 브레이커가 미리 던전을 닫았기에 거의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뉴타입 던전을 세 개쯤 닫았을 무렵, 던전 하나가 더 터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던전이 또 터졌다.
일본 정부는 부랴부랴 거대 던전에 투입한 각성자들을 일부 돌려 다른 던전을 닫는 데 동원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하나씩 하나씩 던전을 닫았지만, 그 때마다 하나씩 던전이 터져 나갔다.
그렇게 몇 개의 던전이 터지고 나니 이제 수습이 불가능해졌다.
괴물이 일본 전역으로 서서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괴물이 퍼져 다른 던전 근처에 출몰하면서 던전을 닫는 일이 훨씬 어려워졌다.
일본 정부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던전 닫는 걸 포기하고 모든 각성자를 한데 모아서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세계에 도움을 요청했다.
살려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