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32화 (32/200)

< 길드 창설 1 >

강하진은 A-마켓에 들어섰다.

미리 연락을 받아 대기하고 있던 정아연이 기대감 넘치는 얼굴로 강하진을 맞이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평소 만나던 장소로 강하진을 데려간 정아연이 다급히 물었다.

“그래서 이번엔 몇 개나 판매하실 건가요?”

“전에 판 것도 아직 많이 남았을 텐데요?”

지난번에 만 개나 팔았다. 그 정도면 아무리 물 쓰듯 연구에 쓴다고 해도 6개월은 너끈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실험 한 번 한다고 송곳니가 사라져 버리는 것도 아니고, 깃든 힘이 사라질 때까지 특성을 연구하는 식일 테니까.

정아연이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하아. 갑자기 새로운 성과 몇 가지가 나오면서 연구원들이 미쳐 날뛰고 있어요. 2주 안에 동날 거 같아요.”

“2주요? 제가 만 개 판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러니까요. 저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답니다.”

정아연이 그렇게 말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강하진을 빤히 바라봤다.

그 무언의 압박에 강하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을 테이블 위로 향하게 했다.

촤르륵!

아공간에서 레모노의 송곳니가 우수수 쏟아졌다.

그걸 보는 정아연의 눈이 몽롱해졌다.

“또 만 개입니다. 가격은 더 올릴 건데, 이해하시죠?”

“그럼요, 그럼요. 설마 또 만 개나 팔아주실 줄은 몰랐어요. 내친 김에 나머지도 가격을 확 올려서 싹 팔아주시면 안 될까요?”

“오늘 것은 개당 500만원입니다.”

가격이 지난번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올랐지만, 정아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 범위에 포함된 액수였다. 사실 이번엔 개당 천만 원까지 각오했으니까.

물론 그래도 500억에 달하는 거액을 지불해야 하지만, A-마켓에게 500억은 별로 부담되는 액수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결국 그걸 소화할 수 있는 곳은 우리뿐인데, 지금 가격 좋을 때 판매하시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연구를 A-마켓이 독점하고 있으니 강하진이 레모노의 송곳니를 판매할 곳 역시 A-마켓뿐이었다.

“왜요? 나중에 가격 후려치시게요?”

“아뇨. 아마 안 그럴 거예요. 하지만 그건 제 생각일 뿐이고, 실제로 그 일이 닥쳤을 때, 누가 우리 회사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어요?”

그 말에 강하진이 좀 흥미로운 시선으로 정아연을 쳐다봤다. 저런 얘기를 한다는 건, 실권자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일 테니까.

“내부에 복잡한 일이 벌어진 모양이군요.”

“복잡할 것까진 없어요. 흔한 파벌싸움이죠. 양측이 워낙 팽팽해서 쉽게 끝나지 않는 게 문제라면 작은 문제겠죠.”

“정아연 씨는 어떻습니까?”

“예? 저요? 글쎄요. 어쩌면 담당자도 바뀔지 모르겠네요.”

“그건 좀 곤란하군요.”

정아연이 피식 웃으며 손을 슬쩍 내저었다.

“에이, 그럴 일 없어요. 어차피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레모노의 송곳니를 구입하고 적당한 가격에 협상하는 게 전부인데 그마저도 강하진 씨가 다 알아서 결정하잖아요?”

한 마디로 누가 이 자리에 있든 강하진 입장에서는 달라질 게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강하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오면 마음이 불편해서 가격을 더 올릴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미친 척하고 레모노의 송곳니를 몽땅 부숴 버리거나.”

정아연이 깜짝 놀라서 강하진을 바라봤다. 왠지 지금 하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아서였다.

강하진은 씨익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이 방에는 도청장치가 되어 있다. 그러니 지금 한 말이 A-마켓의 지배자들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더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제가 이번에 길드를 하나 만들까 하고 있습니다.”

“예? 갑자기 길드를요?”

워낙 뜬금없는 얘기인지라 안 그래도 커진 정아연의 눈이 거기서 더 커졌다.

“그런데 길드 구성원들이 좀 여기저기 관심을 받는 자들이라서 후원이 좀 필요합니다.”

“후원······ 보호가 필요한 건가요?”

“정확히는 아무나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요. 겸사겸사 불이익도 좀 걷어내고.”

“······그걸 우리 A-마켓보고 해달라고요?”

“예. 문제 있습니까?”

“지금까지 A-마켓은 각성자들이 만든 길드를 공식적으로 후원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럼 이제 시작하면 되겠군요. 마침 기회도 생겼고.”

“시작이야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회사에 강하진 씨 길드가 귀속될 수도 있어요.”

강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거야 금전적인 도움을 받는 경우에나 그렇죠. 내가 원하는 건 그냥 이름입니다. 대가를 지불할 수도 있으니 일단 보고나 한 번 해보시죠.”

“이름이요?”

정아연은 멍하니 강하진을 바라봤다. A-마켓의 이름을 가져다가 길드의 보호막으로 써먹겠다는 말을 이렇게 대놓고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한 번 보호를 받을 때마다 레모노의 송곳니를 500개 지불한다고 하세요.”

그 말에 정아연의 눈이 또 반짝반짝 빛났다.

한 번 보호할 때마다 레모노의 송곳니 500개라면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었다.

레모노의 송곳니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개수가 정해져 있어서 나중에는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을 테니까.

“제가 어떻게든 되게 만들게요. 그런데······ 대체 어떤 자들 때문에 저희를 끌어들이시는 건가요?”

“제영 그룹이요.”

정아연이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영 그룹이요? 뭔가······ 좀 애매하네요.”

“아주 음흉한 놈들입니다. 겉으로 보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뭐······ 그거야 조사해 보면 알겠죠.”

“그럼 좋은 결과를 기다리겠습니다.”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제 자잘한 일들을 처리할 차례였다.

예를 들어 길드 개설 신고 같은 것들 말이다.

* * *

강하진은 그동안 인연을 맺은 사람들을 전부 불렀다. 다 모여서 보니 인원이 제법 많았다.

일단 김지혜 일행만 해도 열다섯 명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이 정도로 많지 않았는데, 김지혜가 한 명씩 끌어들여서 결국 이렇게나 모인 것이다.

김지혜가 믿을 수 있다고 보증하는 사람들이니 당분간 사고를 치진 않을 듯했다.

거기에 유동훈과 명인혁, 명인수까지 더해서 총 18명이었다. 강하진을 포함하면 19명이나 되는 수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길드를 만들어 운영하기에는 좀 부족하다.

아무리 소규모 길드라고 해도 25명은 넘어야 뭔가 활동하기 원활하다.

던전에 사냥을 나갈 때도 그 정도 규모는 되어야 수월하게 허가를 받을 수 있고 말이다.

물론 다른 길드 사냥에 끼어 갈 수도 있지만, 그건 강하진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전혀 원치 않았다.

어쨌든 그들이 모인 자리에서 강하진은 길드 창설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취지와 A-마켓에 대한 것까지 모두 얘기하니 다들 굉장히 놀란 눈치였다.

“어······ 좀 갑작스럽긴 하네요. 솔직히 계속 숨어서 활동할 줄 알았거든요.”

김지혜 일행도 그동안 최대한 조용히 활동했다.

어차피 암시장을 통해서만 던전을 공략하니 외부에 그녀들의 흔적이 드러날 일도 없었다.

암시장을 끼고 던전을 공략하면 비밀 유지에는 유리하지만, 던전에서 얻는 마석이나 괴물의 부산물 혹은 아주 드물게 등장하는 특별한 아이템을 얻을 때, 손해를 각오해야 한다.

또한 웬만큼 레벨이 되지 않고 강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넘어서 아주 탈탈 털리거나 아니면 몹쓸 꼴을 당할 수도 있었다.

예전에 김지혜 일행이 제대로 사냥을 하지 못해 레벨이 정체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강하진 아래로 들어가면서 그녀들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린 셈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경험한 강하진의 성향이나 행동방식 역시 그녀들에게 아주 딱 맞았다.

지금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길드에 가입하기 곤란한 점이라도 있습니까?”

김지혜는 난감한 표정으로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대형 길드랑 척을 좀 졌거든요.”

“어느 길드입니까?”

김지혜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함께 있는 일행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었다.

“태성 길드, 블루드래곤, 명성, 클라우드.”

그리고 김지혜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치료사 길드.”

강하진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많긴 하군요.”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는 예상도 했고, 그게 한 군데가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고려했다.

하나의 조직에서 저렇게 많은 수가 튕겨 나오면 보통은 좀 더 시끄러워지니까.

“그래서 우리가 암시장 쪽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어요. 뭐······ 솔직히 말하면 그것도 한계이긴 했지만. 아마 강하진 씨 안 만났으면 지금쯤 굉장히 끔찍했을 걸요?”

김지혜가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했지만 같이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녀처럼 웃지 못했다.

그게 농담이 아니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쩌다 그렇게 척을 지게 된 거죠? 김지혜 씨는 레벨도 상당했잖아요.”

처음 김지혜를 만났을 때, 그녀의 레벨은 129였다. 그 정도까지 키우려면 혼자서는 절대 안 된다.

“사실 처음에는 치료사가 아니라 보조였어요. 방어 스킬이 있으니까요. 어떤 사냥이든 제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으니 레벨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더라고요.”

그때 옆에 있던 이지영이 슬쩍 말을 덧붙였다.

“지혜 언니, 그때 굉장히 혹사당했어요. 하루에 잠자는 시간이 2시간이 채 안 될 정도였으니까요. 가끔 사나흘 정도 밤을 새면서 사냥하기도 하고.”

“그래도 덕분에 레벨도 오르고 새 스킬도 얻었죠.”

“그게 치료 스킬입니까?”

김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때부터 일이 꼬였어요. 아시죠? 치료사가 굉장히 대접받는다는 거.”

“방어 스킬이 더 좋을 거 같은데······.”

강하진의 생각은 그랬다. 김지혜에게 방어 스킬이 있다는 건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봤으니 알고 있었다.

상당히 괜찮은 스킬이었다.

적어도 흔한 치료 스킬보다는 훨씬 쓸모가 많은 스킬임은 분명했다.

‘아, 치료사들이 많아지는 건 몇 년 더 있어야겠구나.’

첫 번째 재앙 이후에 각성자가 늘어나면서 치료 스킬을 가진 각성자도 급증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치료사의 대우가 평범해졌다. 아마 지금은 제법 괜찮을 것이다.

“치료 스킬을 얻은 뒤에 치료사 길드로 옮겼어요. 여기 지영이가 많이 도와줬죠. 덕분에 지금은 같이 이 모양이지만.”

“우린 원래 클라우드에 있었거든요. 거기 진짜 지저분한 길드에요. 저도 몸 로비에 써먹기 직전에 나왔죠. 어찌나 협박을 거창하게 하던지.”

이지영은 나머지 일행을 힐끗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 여기 있는 애들은 다 저랑 비슷해요. 레벨은 안 올려주고 창녀로 만들려고 하니 나온 거죠. 거기에 순응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저희는 그럴 수 없었거든요.”

이지영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얘기를 하다 보니 예전 기억이 툭툭 떠올랐다. 그리 즐겁지 않은 기억들이.

“클라우드 길드 마스터가 한 말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각성자는 맛이 특별해서 찾는 사람이 많다더군요.”

김지혜는 이지영이 더 침울해지기 전에 얼른 나섰다.

“아무튼 치료사 길드로 옮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치료사 길드에서 방출 됐어요.”

“방출?”

“처음에는 왜 이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클라우드랑 짰더군요. 둘 다 똑같은 놈들이에요.”

강하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좀 이해가 안 가는데? 그놈들이 왜 그렇게 복잡하게 일을 처리한 거지?”

“제가 스킬 하나를 숨겼거든요. 그걸 치료사 길드에서 알아냈어요.”

강하진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김지혜를 쳐다봤다.

엿보기 스킬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아직까지 메인이 되는 스킬 하나뿐이었다. [상처치료]만 확인했는데, 다른 스킬이 또 있다니 흥미로웠다.

레벨이 200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는 건 상당한 인재라는 뜻이었다.

“질병흡수라는 스킬이에요.”

“질병흡수?”

강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스킬인지 확실히 알기 때문이었다.

김지혜가 그 스킬을 왜 감췄는지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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