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6화 (6/300)

#   6-희망을 위한 찬가 - 읽지 않을 수 없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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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공기를 들이키며 은결은 뛰었다. 도천시의 가장 높은 빌딩도 한 달음으로 간단히 뛰어넘는 거대한 도약은 비행을 닮아 있었다. 그의 눈은 고정됨 없는 무심함으로 세상을 직시하며 목적하는 곳만을 향했다. 은결의 발아래에서, 도시는 소란과 빛으로 아득했다.

곧 은결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는 허공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도시의 흐릿한 뒷골목이었다. 노란 가로등의 불빛만이 규칙적으로 이어지며 좁은 길목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빛 아래 드러난 골목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은 곳과 대조되며 차라리 한결 무서웠다.

“후- 하-”

길게 심호흡을 한 은결이 손을 맞대고 엄지와 검지 사이의 공간으로 그 골목을 맞췄다. 곧 그의 손이 파랗게 빛났다. 일순, 공간이 흔들렸다. 웅- 하는 사람으로서는 느낄 수 없을 낮은 떨림이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그리고 은결은 손을 풀고 골목으로 내려갔다. ‘그것’들의 기운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둘이었다. 숫자가 맞아 떨어졌다. 은결은 속으로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그것들만 정리하면 일단 도천시내의 ‘그것’들은 모두 정리하는 것이 된다.

은결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세상을 직접 대하는 은결의 눈동자로 예리한 빛이 번뜩였다. 그의 손이 움직였다. 대기가 진동하며 폭발했다. 동시에, 검은 연기 같은 것이 튕겨나갔다. 은결은 곧장 동작을 이어 발을 움직였다. 그의 동작과 동시적으로 발끝에 원형의 복잡한 빛 무리가 떠올랐다. 파앙-! 은결의 발끝이 허공의 한 곳을 격하게 강타했다. 키이이이잉-! 충돌점으로부터 파문 같은 빛이 번쩍였다. 그곳으로부터도 안개 같은 검은 무언가가 뒤로 튕겨나갔다. 은결은 호흡을 정리하며 조용히 발을 골목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아직이다.’

은결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런 공격에 그것들이 처리될 리 없었다. 그는 발끝을 섬세하게 움직이며 기의 흐름을 조절했다. 세계의 전일성에 기초하는 무한의 힘- 몸 가운데로 뜨거운 흐름이 느껴졌다. 그것을 육체의 곳곳으로 이동시키고 관념과 연동해 술식을 짰다.

‘됐다!’

은결의 양 손등으로 복잡한 문양을 속으로 품은 원이 나타났다. 이것으로 두 발 정도는 자신의 힘을 개방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이 정도의 결계로 방어할 수 있는 힘은 대단한 것이 못 된다. 지나치게 개방하면 주변 일대에 큰 영향을 미칠것이다. 그러나 이 결계를 통해 해방할 수 있는 힘은 적어도 이것들을 쓰러뜨릴만한 정도는 된다. 때마침 기척이 느껴졌다.

‘왔다.’

은결의 발이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움직였고, 그의 허리와 손 역시 그 흐름을 이으며 완곡한 힘의 흐름을 짜냈다. 흐름의 뒤로 선명한 힘의 궤적이 남아 어둠을 몰아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아름다운 빛의 선이었다. 퍼억! 은결의 주먹이 약속한 것처럼 안개 같은 검은 무언가의 가운데 처박혔다. 동시에, 쿠웅! 하는 중저음의 소리가 나며 은결이 밟은 대지와 그의 주먹이 꽂힌 허공이 희게 번뜩였다. 여분의 에너지를 흡수한 것이다.

-끄라라라... 끄르...

그리고, 안개 같은 무언가는 비명과도 흡사한 소리를 내며 흐트러졌다. 곧 그것은 정말 한 줄기 연기가 되어 대기 가운데로 날아갔다. 매캐한 흙냄새가 주변의 채웠다. 한국의 어디서도 맡을 수 없는, 이국의 내음이다. 먼 바람을 타고 이곳으로 날아온 슬픈 흙내음. 그러나 그 내음에 생각을 앗길 틈은 없었다. 쿠앙! 폭탄이 터진 것 처럼 대기가 진동했고, 주변의 건물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검은 덩어리가 은결을 향해 돌진했다. 은결은 두 팔을 교차해 그 돌진을 막았다. 퍼억! 은결의 몸 앞에서 결계가 발생하며 그 충격을 걷어냈다. 하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은결의 몸이 뒤로 붕 떴다. 그는 허공에서 두 바퀴를 돌고 대지에 안착했다. 팔이 얼얼했다.

-목- 말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듯 검은 연기 같은 그것은 날카롭게 비산했다 뭉치기를 반복했다. 영원을 뛴 마라토너의 심장이 박동치는 것 같았다.

-뜨거운... 빛- 뿐... 나는-

은결은 이를 악물었다. ‘나는’이라니!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한 자의식을 가지게 되면 처리하기 힘들어진다. 원래 사념에서 발생한 존재는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막대한 정보를 품고 있다. 인간이 발하는 대부분의 사념은 어떤 정보와 결합함으로서만 발해지는데, 이런 존재들은 그런 사념이 모이고 모인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초기에는 그런 정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들은 저급한 동물과 닮았다. 자아는커녕 본능조차 희미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이것들은 내부에 품고 있는 막대한 정보를 기초로 스스로를 구성한다. 그 구성이 완료되어 언어구사가 가능해질만큼 명료한 ‘자기’가 발생하면 그것이 품고 있는 정보는 자기라는 중심점을 기준으로 차곡차곡 정리되어 의미를 가진다. 의미를 가진 정보- 그것은 ‘힘’이란 말과 큰 거리가 없다. 다시 말해 ‘교활’해진다. 그런 최악의 사태는 피해야 했다.

-꾹, 꾸 크으...

그것은 계속 웅얼거렸다. 그러나 살기 넘치는 박동은 여전하다. 넓게 퍼졌다가 모이고 원을 그렸다가 점을 이룬다. 자기 형체에 대한 복잡한 제어였다. 저런 무정형의 육체는 명확한 형태를 가진 육체에 비해 제어하기 어렵다. 저 모습은 자아구성이 완료되기까지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증거였다. 아직 사람을 죽인 적이 없는 때문에 며칠 전인가 쓰러뜨린 녀석에 비해 전투력은 낮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잘하면 뉴스에 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그런 것까지 고려할 수는 없었다. 왼손에 남은 손등의 문양이 번쩍였다. 은결은 결심을 굳히고 뛰었다. 대기의 벽이 박살나며 공간이 폭발했다. 결계가 은결의 힘을 흡수하다 못해 파열했다. 여분의 힘이 대지를 강타했다. 콘크리트 바닥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졌다. 꽝! 이어 허공에서 폭음이 터졌다. 우르르르- 주변 건물과 대지가 흔들렸다.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은결이 대지에 섰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몸 주변에서는 봄날 아지랑이처럼 빛이 복잡하게 굴절했다. 순간적이라고는 해도 마찰열이 작지 않았다.

“젠장, 놓쳤나.”

은결은 주변을 둘러봤다. 전쟁이라도 한 것처럼 골목길이 바닥은 박살이 나 있었다. 틀림없이 수도관도 박살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다 기를 잔뜩 사용한 덕분에 전신이 죽을 것처럼 피곤했다. 곧 쓰러질 것 같다. 중력이 우주를 구성하는 4가지 힘 가운데 제일 약하다던데, 지금이라면 무슨 농담이냐고 크게 웃어줄 자신이 있었다.

‘아니, 웃을 힘도 없군.’

그런데 놓쳤다. 한심했다.

‘더 이상 사람을 습격할 힘은 남아있지 않을 거란 데서 만족하기로 할까...’

정중앙에 정확히 꽂아 넣지는 못했지만 손에 감촉은 분명히 있었다. 그 일격에 집적시킨 힘의 크기를 생각하면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무력화는 가능했다. 귀신을 봤다고 호들갑떠는 사람이야 좀 나올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의 피해는 없을 것이다.

“후, 오늘은 얌전히 집에 가서 자야겠군.”

남은 기를 모아 몸을 날렸다. 지쳤다는 말이 거짓말 같게 은결의 몸은 허공으로 높게 치솟았다. 지친 날개를 꺾지 않고 바람을 타는 매처럼 밤하늘의 먼 공간으로 도약하는 은결의 모습은 굳건했다.

집은 어두웠다. 은결은 발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은결이냐?”

하지만 은결이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섰을 때 점잖은 목소리가 그를 맞이했다. 은결의 아버지였다.

“아, 예. 아버지 지금 돌아왔습니다.”

은결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오늘도 수고했다.”

덜컥. 방문이 열리고 은결의 아버지가 거실로 나왔다. 열려진 문 뒤로, 스탠드 빛이 새하얗게 보였다. 선연한 빛이 그 아래 펼쳐진 책자를 고요하게 비추고 있었다. 은결의 얼굴이 걱정에 찌푸려졌다.

“아버지, 몸도 안 좋으신데...”

은결의 아버지는 고요하게 웃었다.

“그래도 매일같이 송장처럼 누워 있을 수는 없잖겠니. 날이 따스해진 덕분인지 요즘은 몸이 좀 괜찮아 지기도 했고, 또 어차피 하는 일이래 봐야 글이나 읽고 쓰는 건데, 뭐 그리 무리가 갈까. 네가 하는 일에 비하면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 그러니 걱정할 것 없단다.”

은결은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열려다 그만뒀다. 은결의 아버지는 정말 생각한 바가 있다면 은결이 무어라 말한다 해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은결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스스로 처리할 사람이다. 그래서 은결은 그저 간곡한 심정을 담아 한 마디만 전했다.

“몸조심하세요.”

“그러마.”

다 안다는 듯, 은결의 아버지는 희미하고 진솔한 미소로 그 걱정을 받았다.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문틈 사이로 희미한 백광이 길게 뻗어 나왔다. 은결은 안타까운 눈으로 그 빛을 한동안 바라보다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더러움을 씻어낸다는 본연의 목적뿐만 아니라, 따스한 물에 몸을 내맡기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특히 오늘 같은 일을 하고 난 다음에는 더욱.

*요 며칠간 너무너무 재수가 없었습니다. 시간과 돈만 버리고 뭐하나 제대로 된 일이 없군요. 우울합니다. 하아- 마침 새 연재 시점과 겹친 불운이니 액땜한 셈 치고 이 글이 내외적으로 성공적인 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재수가 없었던 데 겹쳐 몸도 많이 피곤합니다. 쌓인 일도 적잖고, 읽어야 될 책도 적잖고... 그러니 내일 안 올라오면 4일 뒤라고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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