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희망을 위한 찬가-5화 (5/300)

#   5-희망을 위한 찬가 - 읽지 않을 수 없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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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은 페달은 힘차게 밟았다. 주변의 풍경이 물처럼 흘렀고, 거센 바람이 두 사람의 몸을 훑었다. 미래가 은결의 허리를 꽉 잡고 외쳤다.

“오빠, 더 빨리!”

유원지 롤러코스터라도 타는 양 미래의 표정은 밝았다. 그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에서 충분히 미래의 감정을 읽어낸 은결은, 눈썹을 한번 위로 치켜 올려 씩씩한 여동생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고는 그녀의 요청처럼 자전거의 속도를 한결 높였다. 두 사람의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한결 요란해졌다.

“후아-!”

미래는 통쾌한 듯 숨을 쉬었다. 그리고 성천 고등학교의 교문이 멀지 않게 보였다. 듬성듬성 교문을 향하는 학생들의 다수는 부리나케 내달리고 있었다. 현 시각은 아침 8시 28분 약간. 예령은 울린 지 오래고 지각까지 2분이 남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사람의 발이라면 몰라도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가 긴장해야할 시간은 아니었다. 곧 은결의 자전거는 여유롭게 교문을 통과하고 운동장에 멈췄다. 미래는 활짝 웃는 낮으로 폴짝 뛰어 자전거에서 내렸다.

“아, 재밌었다.”

이어 은결도 자전거에서 내리며 말했다.

“넌 여자애가 뭐 그리 겁도 없냐. 유원지 놀이기구 타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 내가 다 오빠를 믿기 때문에 그러는 거니까.”

지그시 눈을 감으며 자신의 가슴을 탕, 치는 미래의 모습이 귀여웠다. 은결은 피식 웃으며 자전거를 끌었다.

“말이나 못하면... 끌끌.”

“헤헷. 으음- 그런데 오빠 매일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한 보람이 있네? 그렇게 빨리 달렸는데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미래가 은결의 옆에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은결은 머쓱하니 머리를 긁었다.

“아, 아아. 그런가.”

“훗, 그나마 다행이네. 인기가 없으면 몸이라도 튼실해야지.”

“이것이!”

“꺄하하!”

미래는 쌍심지를 돋우는 은결에게서 얼른 멀어졌다. 그리고 은결을 돌아보며 베- 하고 혀를 내밀었다. 그때 운동장을 지나가던 학생들 중 몇 명이 미래를 향해 반갑게 손을 들어 보이며 인사했다. 미래도 팔을 크게 흔들어 보이며 그들을 반겼다. 그런 동생의 모습을 바라보는 은결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훗.’

자신과는 달리 동작 하나하나에 생기가 돋아나는 활발한 미래의 모습은, 언제나 은결에게서 자그마한 미소를 피워냈다. 그는 그녀의 순결하고 밝은 미소가 언제까지고 지켜 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미래가 다시 은결 곁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곧 두 사람은 자전거 주차장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은결은 자전거 앞바퀴를 틀에 끼우고 자물쇠를 잠그며 말했다.

“그런데 너도 자전거 하나 마련하는 게 어때?”

“아, 뭐야! 이런 귀여운 여동생 학교까지 자전거 태워주는 것도 못하겠다는 거야?”

미래가 부- 하고 볼을 부풀렸다. 그녀가 삐지면 대책이 없다. 은결은 서둘러 변명했다.

“그, 그게 아니라 너도 자전거 마련해서 타고 다니면 오늘처럼 허둥지둥 바쁘지 않아도 좋을 테고, 운동도 될 테고, 나 말고 친구들과 오다닐 수도 있을 테니 좋지 않을까 하고.”

애당초 오늘도 미래가 아니었으면 이런 위험한 시각에 등교할 일이 없었다. 은결이 학교 갈 준비 하라고 기껏 깨워놨더니 미래는 한 10여분 정도 혼곤하게 깨어 있다가 5분만 더, 라며 또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물론 은결이 자기 방 나가곤 난 뒤에 한 말이다. 식사 준비한다고 바빴던 은결은 그 준비가 끝나고서야 미래가 아직도 자고 있다는 청천벽력할 사실을 알았다. 그때는 이미 꼴딱 30분 이상의 시간이 날아간 뒤였다. 덕분에 미래만 놀이기구 타는 기분 내며 신이 났다.

“싫어. 전용 운전사 놔두고 뭣 하러 귀찮게.”

미래는 단박에 거절했다. 거절까지 필요했던 시간은 정확히 0.2초였다. 은결의 제안은 미래에게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단 말이다. 하기야 늦으면 늦는 대로 신나게 즐길 수 있으니 그녀가 고려의 필요성을 못 느껴도 이상하지 않다.

“아, 그러십니까. 마님.”

“호홋, 물론이죠.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입가로 손등을 올리며 미래가 간드러지게 말했다. 은결이 떫은 감씹은 표정으로 미래를 쳐다보며 진솔한 감평을 전했다.

“...안 어울려.”

“흐, 흥!!”

미래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은결은,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녹화 기능을 가진 휴대폰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오늘도 체육이 들었다. 얼마 전의 바람이 거짓말처럼 대기는 조용했다. 넓은 운동장으로 1학년과 2학년이 함께 체육 수업을 받고 있었다. 몇 일전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준비운동 다음 학생들은 좋을 대로 짝을 이뤄 운동했다. 은결은 오늘도 전과 마찬가지로 파고라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여!”

은결은 책을 덮고 고개를 돌렸다. 민성이 서 있었다. 오늘은 다른 학생들과 운동하는 데 참여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씨익 웃으며 은결의 옆자리에 앉았다.

“거참, 너도 참 징하다. 얘들이 별로 안 좋게 본다니까.”

사실은 민성이 파악하기로 벌써 평판이 안 좋다. 벌써 몇 몇 학생들은 책만 파는 은결을 뒤에서 조롱하고 있었다. 은결이 성적이 아주 좋으면서 그런다면 공부를 잘하니까 그렇겠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은결의 작년 성적 평균은 중상위로 나쁘지 않지만 눈에 띄는 것도 아니었다. 참고로 중학교 당시 미래의 성적은 최상위였다. 은결은 여러모로 불초한 오라비다.

“괜찮아.”

하지만 은결은 부드럽게 웃어넘겼다. 민성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는 그도 은결의 평판이 나쁘다는 점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그가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서도 지난번에 한 번쯤 말을 붙여본 이상 더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은결의 판단을 존중한다기 보다 그런 일은 귀찮기 때문이다. ‘정의의 사자’ 놀이 따위를 할 나이는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그런데도 이렇게 방침을 바꾼 것은 오늘 체육 시간 전에 옷을 갈아입으면서 슬쩍 은결의 몸을 보았기 때문이다. 몸이 좀 말라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감탄스럴 만큼 건장했다. 자신도 운동한답시고 끙끙대 보았기에 아는데, 은결과 같은 몸을 가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런 녀석이 학교에서는 책만 판다. 그 책이 성적에 연관이 된다면 또 이해를 하겠는데, 쭉 살펴보자니 별로 교과목과는 상관없는 데다 재미도 없는 책이었다. 민성으로서는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전학밖에 길이 없게 되고서 후회해도 난 모른다.”

반쯤은 위협을 담아 민성이 말했다.

“글쎄다...”

“이런 말 하면서 나도 참 스스로 구식이라고 느낀다만, 그 놈의 책에 뭔 꿀이라도 발라뒀냐? 맨날 책이야 책이. 세상에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민성이 답답한 듯 말했다. 은결은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을 긍정했다.

“그래. 책 보다 재밌는 건 세상에 얼마든지 있지. 세상에 비할 때 책은 시시해.”

“엥? 알면서 그러고 있냐?”

“나는... 읽지 않을 수 없거든.”

읽지 않을 수 없다. 은결은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고 그렇게 답했다. 실망도, 기쁨도, 자부심도, 창피함도 없었다. 살기 위해 숨을 쉬는데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은결은 ‘읽기’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인 양 담담하게 말했다.

“읽지 않을 수 없다고?”

민성은 되물었고, 은결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읽지 않을 수 없어.”

“으으으음...”

민성은 글을 읽어야만 하는 사정이란 게 대체 뭔지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학자나 되면 책 안 파면 굶어 죽을 수도 있을 테니 그 말이 납득이 가지만, 새파랗게 어린 고딩이, 그것도 스스로 말하길 자기는 딱히 책을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놈이, 늙은이처럼 책 파기를 운명인양 말하는 뒤에 있을 사정이란걸 그는 상상할 수 없었다.

“푸하, 역시 모르겠구만.”

그리고 민성은 은결에게 눈길을 보냈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좀 알려주라, 라는 뜻이었다. 유감이지만 민성의 텔레파시는 은결에게 닿지 못했다.(혹은 무시당했다.) 그저 은결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리고 은결은 책의 페이지를 접어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성이 의아한 눈길을 보내자 은결은 그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가서 농구라도 같이 하자. 이렇게까지 권해주는데 물리치는 것도 할 짓이 아니지.”

“좋아. 그럼 한판 할까.”

민성은 여기서 만족하기로 하고 시원하게 답했다. 알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깊이 파고들어 갈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은결의 애늙은이 같은 태도도 궁금하긴 했지만, 역시 그 보다 궁금한 것은 은결이 얼마나 운동을 잘 하느냐, 하는 부분이었다. 은결의 평소 학교생활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로서는 그의 건장한 몸이 도무지 연결이 안 되니 말이다.

“승자가 음료수 하나. 어때? 가격은 안 묻기로 하고.”

“좋아.”

흥을 돋우고자 민성이 제안했고, 은결은 가벼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농구공을 들고 운동장을 누볐다. 결과는 민성의 완승이었다. 은결은 분루를 삼켜야했다. 진건 분하지 않았다. 문제는 ‘가격은 안 묻기로’가 함정이었다는 점이다. 민성은 매점에서 ‘컨디션’을 빼들었다. 겨우 콜라 정도나 상상했던 은결로서는 심대한 타격이었다. 뒤늦은 분루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독자 분들이 읽기에 이 글은 많이 편해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문장이 단문이니까요.

*이제 비축도 별로 안 남았군요. 한 두화쯤 하고 나선 4일 체제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성원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만.(성원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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