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황성 전투(1)
열흘이라는 시간은 금방 흘렀다.
수련을 마친 네 명의 도사들은 광영자의 부름을 받고 한자리에 모였다.
광영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수련을 훌륭하게 마쳤다. 수고했다.”
매화오절은 뿌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유라가 그들을 대표해 예를 갖추며 말했다.
“모두 조사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유라는 선염로 안에서의 수련을 마치고 백색화염의 경지에 들었다.
찬야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오의를 깨우치고 인형을 상대로 승리했다.
위지혁은 독지주를 상대로 자신만의 독공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운휘는 광영자와의 대련을 통해 금강불괴의 새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들 모두 새로운 힘을 얻음과 동시에 한 단계 경지를 뛰어넘었다.
“너희는 분명 강해졌다. 허나 복마십군을 상대로 이길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명심해라.”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물을 하나씩 주지.”
광영자는 천잠사(天蠶絲) 실로 지은 도복과 만년한철(萬年寒鐵)로 만든 검을 선물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매화오절은 광영자에게 큰절을 올린 뒤, 매원향을 나왔다.
유라는 서산 너머로 지는 해를 가만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곧 중양절인가.”
위지혁이 사당 근처에 묶어 둔 말을 가져왔다.
“서둘러 북경으로 가자.”
말에 올라타 고삐를 잡은 운휘가 물었다.
“너희들, 복마십군 상대할 자신 있냐?”
찬야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반드시 이긴다.”
네 명은 말을 타고 북경으로 향했다.
***
거사 당일. 황궁에서는 한창 중양절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연회장에는 황제를 비롯한 황실 일가. 지월까지 참석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맛보고 있던 민에게, 누군가 전음을 보냈다.
-전하. 도성 밖에 있던 수비대가 무림인들과 접촉했습니다.
시작이다. 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연회장을 벗어났다.
그가 몰래 황궁을 나서자, 두 명의 도독이 합류했다.
“황실 친위대의 숫자는 파악되었는가?”
“네, 전하. 대략 이천 정도입니다.”
“우리 군의 숫자는 일만.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민이 예복을 벗어 던지자, 검은 갑옷이 드러났다.
장수는 민에게 투구와 장창(長槍) 한 자루를 건넸다.
투구를 쓰고 창을 든 민이 말했다.
“나는 군을 이끌고 황궁으로 쳐들어가 폐하를 확보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동안 친위대를 처리해라.”
“왕명을 받듭니다.”
민은 내성 앞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병력은 그곳에 집결해 있었다.
내성 수비대장이 민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오셨습니까. 전하.”
“무림인들은?”
“지금 오고 있는 중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벽 위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민이 말했다.
“성문을 열어라.”
드드드-. 거대한 문이 열리고 수백의 무인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림이 황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남북 십성을 비롯한 무림인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민은 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지월은 황궁 내 연회장에 있다. 너희 무림인들은 지월과 그의 수하들을 처리하도록 하라. 알겠느냐?”
“황태자 전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고개를 돌린 민이 좌도독에게 물었다.
“좌도독. 내 명을 서문, 북문, 동문에 전달했느냐?”
“네, 전하. 쥐새끼 하나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황실 일가는 단 한 사람도 내보내서는 안 된다. 알겠는가!”
“예! 전하!”
“가자. 단숨에 들이칠 것이다.”
말에 올라탄 황태자가 창을 높이 치켜들고 말했다.
“전군. 진격하라-.”
민을 선두로, 일만에 달하는 군대가 황궁으로 진격했다.
채앵! 검을 뽑아 든 남궁천이 무림인들을 향해 말했다.
“이것이 마교와의 마지막 전투다. 이기자.”
무림인들은 마교와의 마지막 일전을 치르기 위해 몸을 날렸다.
남량은 성장한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간부들을 부탁한다. 할 수 있겠나?”
유라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맡겨라.”
“그래. 믿는다.”
남량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찬야, 운휘, 위지혁이 차례대로 말했다.
“드디어 설욕할 기회가 왔군.”
“너희들. 힘들면 신호 보내. 금방 구하러 갈 테니까.”
“자만하지 마라. 운휘. 그러다 당한다.”
유라는 그들에게 말했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다시 만나자.”
***
연회장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은 그때였다.
“폐하!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황실 친위대 한 명이 다급히 연회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흥에 젖어 있던 황제가 눈살을 찌푸리며 외쳤다.
“무슨 일이냐!”
“여, 역모입니다! 황태자 민이, 역모를 일으켰습니다!”
쨍그랑!
황제의 손에서 비싼 술잔이 떨어져 산산이 조각났다.
“뭐,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느냐?”
“황태자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지금 군대를 이끌고 황궁으로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눈치 빠른 관료들이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멍하니 서 있던 황제는 분노하며 노성을 질렀다.
“민, 네 이노오옴!! 감히 하늘을 뒤엎으려는 것이냐!”
황실 친위대장이 다급히 달려왔다.
“폐하! 반란군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이건 무슨 소리냐! 당장 반란을 진압하고 민을 내 앞으로 끌고 오라!”
“폐하, 그것이……. 막을 수 없습니다.”
친위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황태자가 도독부의 수장들을 전부 포섭한 것 같습니다. 지금 황궁을 향해 밀려드는 적들의 숫자가 일만에 달한다고 합니다. 친위대로는 그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일만?”
황제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그럼 어찌해야 하느냐?”
친위대장은 침착하게 말했다.
“우선 북문을 통해 황궁을 벗어나시지요. 그런 다음 지방의 군대를 모아 황궁을 탈환하면 됩니다. 소장이 모시겠습니다.”
“그대는 여기 남아 반란군을 막아야지! 지월이 짐을 호위할 것이다.”
황제는 고개를 돌려 지월에게 말했다.
“지월. 네 수하들을 불러 모으거라. 황궁을 나갈 것이다.”
지월은 뒷짐을 진 채 남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황제를 응시한 그가 웃으며 말했다.
“축제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 내가 어딜 간단 말이냐.”
다음 순간, 황제가 괴로운 듯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월이 팔을 휘젓자, 그의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폐하!”
경악한 친위대가 지월에게 창검을 겨누었다. 친위대장이 소리쳤다.
“지월! 네놈이 폐하를!”
지월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뭐 하고 있나? 어서 가서 반란군을 막도록. 아니면 황제를 죽이겠다.”
황제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다.
친위대는 결국 지월의 말대로 반란군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우르르르-.
그들이 연회장을 나가고 둘만 남게 되자, 지월이 말했다.
“나는 오직 이 날만을 기다렸다. 마도세계(魔道世界)를 여는 날을.”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 사내 한 명이 지월에게 작은 목함을 내밀었다.
목함 안에는 검은 구슬 하나가 담겨 있었다.
구슬을 손에 든 지월이 중얼거렸다.
“천하 위광의 내단(內丹)……. 마도세계를 여는 가장 중요한 열쇠.”
지월은 구슬을 든 손을 하늘 높이 뻗었다.
우우웅-. 콰앙!
손끝에서 검은 광선이 터져 나오며 하늘 높이 솟구쳤다.
숨이 막혀 흐릿해진 시야로, 황제는 보았다.
검은 광선이 밤하늘에 거대한 구멍을 만들고, 그 안에서 엄청난 숫자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세상이……. 멸망한다.’
황제가 질식해 죽자, 지월은 그의 시체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동안 이용당하느라 고생했다. 아둔한 황제여.”
지월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에는 어느새 열 명의 수하들이 부복해 있었다.
“경하드립니다. 지월 님. 드디어 오랜 숙원을 드디어 이루셨군요.”
복마십군의 일원인 검군(劍君), 적연이 입을 열었다.
“나를 방해하러 오는 자들이 있다. 너희들이 상대해 주겠느냐?”
지월의 말에, 화군(火君) 방림이 대답했다.
“적당히 즐기면서 상대하고 오겠습니다.”
복마십군이 연회장을 나가자, 홀로 남은 지월이 잔에 술을 채웠다.
“위광. 보고 있어?”
지월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난 언제나 이 세상의 파괴를 원했지. 너는 그런 나를 비웃었고.”
꿀꺽. 단숨에 술잔을 비운 지월이 미소를 지었다.
“그곳에서 지켜보고 있어. 내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모습을.”
쾅! 쾅! 하늘에서 집채만 한 괴수들이 떨어졌다.
지월은 그들을 환영하듯 양팔을 벌린 자세를 취했다.
“오늘 밤, 천하는 진정한 마도(魔道:악마의 세계)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는 고개를 젖힌 채 파안대소를 내뱉었다.
***
챙! 채채채챙!
내성 광장에서는 반란군과 친위대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휘릭. 파파파팟!
장창을 회전시켜 친위대 세 명을 단숨에 찔러 죽인 민에게, 친위대장이 다가왔다.
“전하. 어찌하여 반란을 일으키셨습니까?”
창을 늘어뜨린 민이 대꾸했다.
“백성들을,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을 막아선 친위대장을 향해 소리쳤다.
“친위대장! 정신 차려라. 지금 나를 막아서는 안 된다. 그대도 잘 알고 있을 터다. 지금 폐하를 움직이는 것이 누구인지를!”
“…….”
친위대장은 일순 갈등했다. 바로 그때, 재앙은 일어났다.
“저, 저게 뭐야?”
한 병사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든 병사들이 전투를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병사들은 하늘에 생겨난 구멍과, 그곳에서 떨어지는 괴수들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민은 이를 악물고 외쳤다.
“전투를 멈추어라!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민은 고개를 돌려 친위대장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큰일이 벌어질 것 같다. 일단 힘을 빌려 다오.”
잠시 망설이던 친위대장이 민의 앞에 엎드렸다.
“전하를 따르겠습니다!”
***
파팟!
궁전의 지붕 위로 착지한 남량은 고개를 들었다.
‘이건……. 분명 마도세계의 문.’
마도세계란 다른 말로 저승을 뜻한다. 또 마도세계의 문이란, 말 그대로 이승과 저승을 잇는 문을 말했다.
‘지월. 이게 네놈의 진정한 목적이었나? 마도세계의 문을 열어, 지옥의 악마들을 이곳으로 끌어오는 것이?’
마도세계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하나는 자연경의 경지에 이른 마인의 내단(內丹).
다른 하나는 수만에 달하는 인간의 진기(眞氣).
지월은 지난 시간동안 이 두 가지의 조건을 모두 채운 듯했다.
문이 열리고 저승의 것들이 넘어오기 시작했으니, 막지 않으면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너는 대체 왜 이런 선택을…….’
남량은 한때 지월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넌 원하는 게 있나? 예를 들면 쾌락이나 명예 같은 거.’
그 물음에, 지월은 분명 이렇게 대답했다.
‘딱 하나 있긴 합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파괴.’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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