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우주검의 경지(1)
꿀꺽꿀꺽.
술을 병째로 들이켠 광영자가 술병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불청객들을(?) 노려보았다.
유라와 찬야, 운휘, 위지혁은 움찔하며 광영자의 시선을 피했다.
“남량 그놈이 당돌한 건 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광영자는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매원향이 무슨 화산파 전용 수련장인 줄 알아?”
유라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후손들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무림의 명운이 걸린 일인지라…….”
광영자는 손을 휘휘 저으며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다.
“선인은 무림사에 관여하지 않아. 무례는 용서해 줄 테니 돌아가.”
울컥한 위지혁이 날선 목소리로 물었다.
“무림이 마교의 손에 넘어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실 겁니까?”
광영자는 냉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정말 그것뿐인가?”
“네?”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이유가 단지 무림을 구하기 위해서야? 자신의 무예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는 사심은 없고?”
“조사님!”
얼굴이 붉어진 위지혁이 버럭 소리쳤다.
다급해진 유라가 엎드리며 말했다.
“간청드립니다. 제발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그러나 광영자는 여전히 냉담한 반응이었다.
“내가 거칠게 손을 써야 돌아갈 거냐?”
결국 폭발한 운휘가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이 자식! 네가 그러고도 우리 조상이냐!”
쇄애액! 운휘의 검이 바람을 가르며 광영자를 향해 쏘아졌다.
“허. 누가 동문 아니랄까 봐 그놈이랑 하는 짓이 똑같군.”
피식 웃은 광영자는 엄지와 검지를 세워 칼날 끝을 잡았다.
운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큭! 무슨 힘이!’
퍼억! 광영자가 뻗은 장력이 운휘의 명치에 적중했다.
운휘는 입에서 피를 뿜으며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광영자는 뻗은 손을 거두며 차갑게 말했다.
“방금은 큰 싸움을 앞두고 있다 하여 손속에 자비를 두었으나, 더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라.”
유라는 운휘를 부축해 일으키며 이를 악물었다.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그때, 찬야가 일어나 광영자의 앞으로 다가왔다.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못 들었나? 더는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광영자는 몸을 빙글 돌리며 말했다.
“이럴 시간에 돌아가서 검이라도 한 번 더 휘둘러.”
“휘두를 수 없습니다.”
찬야는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오른손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팔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왼팔이 남아 있습니다. 허나 곧 있을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조사님의 힘이라면 팔을 고쳐 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흐음.”
광영자는 고개를 돌려 찬야를 응시했다.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찬야에게 물었다.
“차라리 잘된 일 아닌가? 전투에서 물러나 목숨을 구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저였다면 그리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찬야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지금은 그리할 수 없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이 손으로 지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힘이 부족해 소중한 가족을 허무하게 떠나보낸 적도 있습니다. 다시는 그런 경험을 겪고 싶지 않습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지키고 말 겁니다. 그것이 제가 찾은 도(道)입니다.”
“찬야…….”
찬야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위지혁이 똑같이 무릎을 꿇었다.
“사심 따위는 없습니다. 믿지 못하신다면 전투가 끝난 뒤, 다시 이곳에 찾아오겠습니다. 그때 제 무공을 폐하십시오. 그럼 되겠습니까?”
운휘는 피가 흐르는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이봐, 당신도 한때는 우리와 같은 화산의 도사가 아니었어? 의와 협을 등에 지고 약한 사람들을 구했을 거 아니야? 정말 당신과 우리는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
일순, 광영자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유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응시했다.
‘왜 웃는 거지?’
한참을 웃던 광영자가 말했다.
“지금 화산에는 너희 같은 것들만 모여 있느냐? 그럼 한번 가 보고 싶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그는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건방진 것들. 좋다! 대신, 수련 도중 죽어도 나를 원망하지는 마라.”
“가, 감사합니다!”
매화오절은 크게 기뻐하며 외쳤다.
광영자는 찬야의 옆으로 가 말했다.
“팔 상태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네?”
“내가 보고자 했던 것은, 바로 네 진심이었다,”
광영자는 찬야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찾은 도(道)를,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찬야가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겠습니다.”
***
광영자가 유라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거대한 화로 앞이었다.
광영자는 화로에 손을 대고 말했다.
“자, 네가 앞으로 수련을 할 곳이다.”
“설마 화로 안에 들어가 수련을 하라는 건 아니겠지요?”
“정확해.”
유라는 정색하며 말했다.
“절 태워 죽일 작정이십니까? 전 손오공이 아닙니다.”
손오공은 생사부를 조작한 덕분에 불사의 몸이 되어 태상노군의 팔괘로(八卦爐) 안에서도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광영자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라. 불의 세기는 조절할 수 있으니까. 처음부터 타 죽지는 않을 거다. 백색화염의 경지에 들고 싶다고 했지? 이곳, 선염로(仙炎爐)의 불을 견뎌 낸다면 그 경지에 들 수 있을 거다.”
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겠습니다.”
“자, 그럼 들어가라!”
광영자는 유라의 팔을 붙잡고 화로 안으로 던졌다.
콰앙! 뚜껑이 닫히자 어둠이 찾아왔다.
밖에서 광영자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죽으면 남량 그놈이 날 찾아올 거야. 그건 사양이다.”
그 말을 들은 유라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살아남으라는 말인가.’
순간 화로 내부가 붉은 빛을 발하며 뜨거운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곧, 사방에서 불길이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으윽. 엄청난 열기다.’
유라는 다급히 삼매진화의 화염을 일으키며 몸을 보호했다.
엄청난 열기에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버텨라. 이를 악물고 버텨!’
유라는 이를 부득 갈며 더욱 내력을 끌어올렸다.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광영자가 웃으며 몸을 돌렸다.
‘잘 하고 있군. 그럼 이제 다른 녀석을 수련시키러 가 볼까.’
***
위지혁은 광영자를 따라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조사님은 왜 하필 수련 장소로 이런 동굴을 선택하신 걸까.’
직접 상대해 주시는 건가? 설마 면벽 수련은 아니겠지?
위지혁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광영자에게 물었다.
“조사님. 후손이 수련 방식에 대해 들을 수 있겠습니까?”
“도착하면 설명해 줄 테니 조용히 걷기나 해.”
“……네.”
그렇게 한참을 걷자, 커다란 공동(空洞)이 나타났다.
걸음을 멈춘 광영자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자, 여기 너를 가르쳐 줄 스승이 있다.”
“스승이요? 여긴 아무도 없는데…….”
“누가 사람이라고 했어?”
그 순간, 위지혁의 감각에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든 그가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으악! 저게 뭐야!”
그건 거미였다. 그것도 집채만큼 거대한 거미!
시선을 돌리자 천장에 가득한 거미줄도 눈에 들어왔다.
멍하니 서 있던 위지혁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설마, 스승이라는 게…….”
“그래. 바로 저 녀석이야.”
“지금 제정신입니까? 수련을 시켜 준다고 거미집에 데려와요?”
위지혁이 참지 못하고 꽥 소리를 지르자, 광영자가 대꾸했다.
“잘 들어, 독인(毒人) 도사. 저 거미는 선계에 사는 독지주(毒蜘蛛)라는 신수(神獸)야. 몸 안에 엄청난 양의 독을 가지고 있지. 너는 새로운 독공을 개발 중에 있다며? 그럼 저 신수를 상대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다 잡아먹히면?”
“명복은 빌어 주지. 그럼 열심히 하도록!”
슈육! 광영자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독지주는 입에서 독무(毒霧)를 뿜어내며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왔다.
“빌어먹을! 망할 조사놈 같으니!”
위지혁은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
광영자는 신선술(神仙術)로 찬야의 손을 치료했다.
그가 손목을 잡자, 은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빛은 무수한 실뭉치가 되어 손목으로 스며들었다.
대략 일다경 정도 시간이 흐르자, 빛이 사라졌다.
“이제 움직여 봐라.”
광영자의 말에 손에 힘을 준 찬야는 깜짝 놀랐다.
주먹이 쥐어졌다. 마침내 감각이 돌아온 것이다!
“우, 움직인다! 손이 움직여!”
찬야는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며 손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광영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표정이 좀 밝아진 것 같군.”
찬야는 광영자에게 넙죽 절을 올렸다.
“조사님의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광영자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일어나라. 손이 나았으니 수련을 시작하자.”
광영자는 찬야를 데리고 한적한 공터로 향했다.
그곳에는 검을 든 목제 인형 하나가 서 있었다.
“이것은?”
“내가 특별히 만든 수련용 도구다. 너는 지금부터 내력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이 인형을 베는 것을 목표로 해. 미리 말해 두는데, 쉽지는 않을 거야. 네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오의를 깨우치지 않는 한, 인형을 벨 수는 없을 거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오의…….”
광영자는 찬야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나조차도 오의를 깨우치는 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보름. 과연 너는 오의를 깨우칠 수 있을까?’
찬야는 천천히 검을 들어 자세를 잡았다.
그는 평소처럼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해 볼까.”
***
쏴아아-.
운휘는 폭포 앞에서 광영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광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녀석들은 수련을 시작했습니까?”
운휘의 물음에 광영자가 대답했다.
“그래. 다들 시작했지. 이제 네 차례야.”
운휘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무슨 수련이죠?”
“간단해. 나랑 대련을 하는 거.”
말을 마친 직후, 광영자는 검을 뽑아 들고 벼락같은 속도로 내리쳤다.
“이런 미친-.”
다급히 양팔을 교차한 운휘가 검을 막아 냈다.
그는 충격으로 날아가 강물에 빠졌다. 풍덩!
광영자는 칼날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흐음. 역시 금강불괴인가.”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 운휘가 버럭 소리쳤다.
“갑자기 무슨 짓이야!”
“뭐긴? 수련이지.”
씩 웃은 광영자가 말했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금강불괴는 방어 무공이면서 동시에 공격 무공이기도 하다. 그 활용법을, 지금부터 알려 줄 거야. 맞으면서 익히도록 해.”
“내가 맞고만 있을 것 같아?”
“후후. 이참에 예의를 차리는 법도 가르쳐 주마.”
광영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운휘를 응시했다.
‘금강명왕(金剛明王)……. 어쩌면 그 모습을 이 녀석에게서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군.’
땅으로 올라온 운휘가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조사님. 각오 단단히 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광영자는 피식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와라.”
“하아압!”
운휘는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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