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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143화 (143/164)

<143화>

황제의 부름(1)

살아남은 자들은 전후 수습을 시작했다.

우선 사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신원을 조사한 뒤, 장례를 치를 준비를 했다.

부상자들은 비교적 멀쩡한 건물에서 치료를 받았다.

남량을 제외한 매화오절은 커다란 상자를 나르는 중이었다.

부상자들을 치료할 약재가 든 상자였다.

“천양신경 말이야. 보면 볼수록 대단한 능력 같아.”

상자를 잔뜩 실은 수레를 끌며, 찬야가 말했다.

“남 사제가 신유유합 능력으로 치료해 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병상에 누워 있었겠지? 나중에 가르쳐 달라고 해 볼까?”

옆에서 걷던 운휘가 피식 웃었다.

“인마. 너한테 천양신경을 가르쳐 주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무슨 짓이라니?”

“몰라서 물어? 예를 들면 통찰안을 사용해 여도관을 몰래…….”

“뭐? 야! 너 지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흥. 당연히 호색한 도사로 보지.”

“니들 둘 다 좀 닥쳐……. 창피하니까.”

가볍게 한숨을 내쉰 위지혁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기긴 했지만 피해도 심각해. 무림맹은 특히…….”

“곧 새로운 사람들로 자리를 대체하겠지.”

네 사람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맹주의 자리였다.

과연 무신의 뒤를 이을 맹주는 누가 될 것인가?

그들은 돌아가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남궁천 대협이 아닐까? 무림 연합 세력의 수장이기도 하고.”

“음. 무예 실력도 가장 뛰어난 분이니 그럴 수 있겠다.”

“아니면 태화 진인은 어때? 고결한 인품으로 명성이 자자한 분이니 맹주 자리에 어울릴지도 몰라.”

“나이만 따지고 보면 유종학 대협이 될지도….”

한참 떠들던 도중, 찬야는 조용히 걷던 유라에게 물었다.

“유 사매는 누가 맹주 자리에 적격이라고 생각해?”

“…….”

잠시 생각하던 유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검황(劍皇).”

예상치 못한 대답에, 세 명은 걸음을 멈추었다.

“에이……. 그건 조금 무리다.”

“그래. 형님이 아무리 대단해도 힘들지…….”

“다른 대협들에 비해 관록이 부족해.”

유라는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난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야.”

맹주가 되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의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로 뛰어난 무예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는 군주로서의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

셋째는 모두가 인정할 만한 업적을 쌓아야 한다.

그 외 뛰어난 지성과 당당한 풍채, 유창한 언변 등이 있었다.

“남 사제는 남북 십성이 힘을 합쳐도 쓰러뜨리지 못한 탄영을 쓰러뜨림으로서 천하제일인임을 증명했다. 군주로서의 위엄은 그를 곁에서 지켜본 너희들이 가장 잘 알 것이고 업적은 말할 필요도 없어. 판단력도 뛰어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냉정하며 흔들림이 없지. 외모가 너무 화려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군.”

유라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던 세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매 말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나, 방금 형님이 맹주 자리에 오르는 상상을 했어.”

“정말 그렇게 되면 역대 최연소 맹주가 되겠군.”

유라는 고개를 돌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딱히 그가 맹주가 되었으면 해서 말한 건 아니다.”

“응? 사매. 방금 뭐라고 했어? 잘 안 들려.”

“아, 아무것도 아니야!”

버럭 소리친 유라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때, 네 명의 고개가 동시에 한곳으로 돌아갔다.

화산파의 장문인, 공월 진인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평소와 다르게 격양된 표정으로 다급히 물었다.

“남량! 남량은 어디에 있느냐!”

살벌한 눈빛에 움찔한 찬야가 대답했다.

“반 시진 전에 흑영대원들이랑 같이 어디로 가던데요?”

“장문인. 무슨 일입니까?”

유라의 물음에, 공월 진인이 굳은 어조로 말했다.

“황실에서 사람을 보냈다.”

황실이라는 단어에 네 명은 눈을 크게 떴다.

황실이라면 황제의 집안이 아닌가.

갑자기 황실이라니.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황실 사람이 여기를 왜…….”

찬야의 물음에, 공월 진인이 대답했다.

“남북 십성을 황도(皇都)로 불러들이라는 황제의 명령이다.”

그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남량은 흑영대원과 함께 지하 통로를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철문을 열고 흑영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흑영대원은 구석에 있는 목함 하나를 들어 탁자에 올렸다.

“이것은?”

“흑영대가 수집한 마교의 정보입니다.”

흑영대원은 목함 뚜껑을 열고 안에서 죽통 하나를 꺼냈다.

“이건 근 한 달 동안 들어온 정보들인데,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이렇게 끝에 표시를 해 둡니다.”

대원은 죽통에서 서신을 꺼내 남량에게 건네주었다.

서신을 펼쳐 확인한 남량이 눈을 부릅떴다.

서신에는 너무나 중요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바로 지월의 행방에 관한 정보였다.

[처음 지월이 목격된 장소는 북경의 한 찻집. 한 명의 여인을 대동하고 있었는데 그의 심복인 복마십군의 일원으로 추정.]

[두 번째로 목격된 장소는 북경의 객잔. 외형은 이전과 거의 일치. 거주하는 곳은 황도 내곽에 위치한 저택.]

서신을 내린 남량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삼천위를 상대하며 이상하게 여긴 점이 있었다.

항상 같이 움직이지 않고 따로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효초아와 탄영은, 각자 수라의 심장과 혈마의 돌이라는 다른 목적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무림의 멸망으로 같았지만.

‘이들 사이에 불화가 생긴 것인가?’

남량은 탄영의 마지막 말을 다시 머릿속에 떠올렸다.

‘지월이 거창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었지….’

이 말대로라면 이들 세 명은 그동안 서로의 계획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럼 불화가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

허면 어째서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개별 행동을 한 것일까.

오랜 시간 그들을 봐온 남량은 쉽게 결론을 내렸다.

‘누가 먼저 천하를 손에 넣을지, 일종의 경쟁을 한 것인가.’

효초아와 탄영이 죽었으니, 이제 남은 건 지월뿐이었다.

‘이제 놈만 잡으면 내 복수는 끝이 난다.’

앞선 두 명을 상대할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북경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당장 가서 결판을 낼 것이다.

‘지월……. 네놈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든, 기다려 줄 생각은 없다.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끝을 내줄 테니까.’

남량이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서려는 때였다.

철문이 열리며 다른 흑영대원이 들어왔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당장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흑영대원의 눈빛을 보니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듯했다.

“무슨 일입니까?”

“황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남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황궁이라고 했습니까? 황궁에서 사람이 왔다고요?”

“그렇습니다. 황제의 칙서(勅書)를 들고 왔다는데……. 남북 십성을 부르고 있습니다.”

남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월이 황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흑영대의 정보.

그리고 하필 전투가 끝난 직후 칙서를 보낸 황제.

이 상황이 과연 우연일까? 아니면 누군가 계획한 일일까?

남량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황궁에서 왔다는 사람,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

무림맹 정문에 도착하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자 관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십여 명의 관리와, 그 앞에 엎드려 있는 남북 십성이 보였다.

남량을 발견한 노인이 물었다.

“자네는?”

남량은 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소인. 화산파의 도인이자 남북 십성의 일원인 남량입니다.”

노인은 살짝 놀란 표정을 했다.

“그럼 자네가 천하에서 손꼽히는 무인이란 말인가?”

“소인에게 과분한 명성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

“으음. 대단하군. 아직 어려 보이는데…….”

감탄한 노인이 헛기침을 한 다음 입을 열었다.

“모두 모였으니 황제 폐하께서 내리신 칙서를 읽도록 하겠소.”

노인은 젊은 관리가 내민 두루마리를 받아 펼쳤다.

그가 칙서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남량은 생각했다.

‘황제가 남북 십성을 부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의 일에 무림인이 도울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황제의 의중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해서, 남궁천, 팽인호, 당지황, 방월, 태화, 유종학, 유선, 남량 등은 명에 따라 황궁으로 달려오라.”

두루마리를 내린 노인이 말했다.

“이것이 황제 폐하의 명이니 서두르도록 하시오.”

남북 십성은 예법에 따라 절을 올렸다.

몸을 일으킨 남궁천이 노인을 향해 물었다.

“대관. 황제 폐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없겠소?”

“미안하지만 나도 알지 못하오.”

노인의 말에 남량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야. 조정에서 결정한 안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럼 황제가 개인적으로 불렀다는 말인데…….’

관리들이 떠나자, 팽인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림과 황실은 과거 불가침의 조약을 맺었습니다. 현 황제가 그것을 모를 리 없을텐데…….”

방월 대사가 말을 받았다.

“최근 무림의 일이 시끄럽기는 했지요. 그것 때문에 부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황제의 칙명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조서가 내려오는 대로 출발합시다.”

***

그날 밤, 남량은 남북 십성에게 흑영대의 정보를 전해 주었다.

“그래서 저는 황제를 알현하고 난 다음, 지월을 찾아내 바로 죽여 버릴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잠시 생각하던 남궁천이 입을 열었다.

“나는 찬성일세.”

유종학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방월 대사가 조심스레 말을 받았다.

“하필 위치가 황제가 있는 도성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지월을 상대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그의 수하인 복마십군을 같이 상대해야 하는데, 도성에서 벌어진 소란을 황제가 모른 척할 수 없으니 책임을 물으려 들 것입니다.”

그때 유선이 말했다.

“그럼 황제에게 이 사실을 먼저 알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무슨 말인가?”

“황실에서도 사교(邪敎)는 반드시 박멸해야 할 대상입니다. 차라리 황제에게 사교 토벌이라는 목적을 밝히고, 군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이득일 수도 있습니다.”

남북 십성이 보기에, 나쁘지 않은 방법 같았다.

팽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다른 십성들도 이에 동의했다.

***

조서는 금방 내려왔다. 북경으로 떠나기 전, 남량은 화산으로 떠나는 동료들을 배웅했다.

“이번 토벌 작전만 성공하면, 모든 게 끝난다.”

남량은 그들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화산에서 가서 기다리고 있어라. 좋은 소식을 들고 돌아갈 테니까.”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꼭 무사히 돌아와.”

그들이 화산으로 떠나자, 남량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사람을 떠올렸다.

그의 스승이었던 매화검선 유우화. 그리고 한때 정인이었던 낭연청을.

‘유우화. 너와 약속했던 것을 이룰 때가 온 것 같다. 그리고 청아. 조금만 기다려라.’

그때, 멀리서 남궁천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상념을 멈춘 남량은 최후의 결전을 치르러 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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