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옥룡교의 비밀(3)
남량이 가유를 향해 쇄도한 순간.
누군가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저놈의 몸속에서 나와 비슷한, 인세의 것이 아닌 기운이 느껴진다. 매우 난폭하군. 지독한 혈향(血香)도 나는데…….
그것의 정체는 남량과 동화(同化)된 수라였다.
1년 전, 폐관으로 들어온 남량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수라와의 교감을 시도한 것이었다.
정신을 지배받지 않으며, 그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대화를 시도했을 때는, 몸을 차지하기 위해 날뛰는 놈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그리고 조금 진정되자 차분히 설득을 했다.
남량이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결과, 수라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 번째 조건으로 자신을 봉인하려 들지 말 것.
두 번째 조건으로 자신이 원할 때 몸의 주도권을 잠시 넘겨줄 것. 단, 적과의 싸움 한정으로.
남량은 조건을 받아들였고, 수라는 힘을 빌려주었다.
그 뒤로 수라는 남량과 정신을 공유하게 되었다.
‘꼭 혼령에 빙의된 상태 같네. 아니다. 악령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묘한 기분이군.’
폐관에서 수련하는 동안, 대화할 존재가 있다는 건 즐거우면서도 매우 골치 아픈 일이었는데…….
-인간을 죽이고 싶군. 같이 사냥하러 가자!
-여긴 답답하다. 언제 나갈 생각이냐, 인간?
-벽곡단 맛도 질리는군. 더 맛있는 걸 먹고 싶어.
-인간. 너 생식할 짝은 없나? 능력 없는 놈이군.
수라가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걸어오는 탓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계약 조건에 입을 닫는 것도 포함시켰어야 했는데…….’
현재로 돌아와, 남량은 수라의 말에 대꾸했다.
“인세의 것이 아닌 기운? 강신술(降神術)을 써서 악령이라도 부른 건가? 뭐, 일단 천천히 파헤쳐 보면 알게 되겠지.”
-신난다! 오랜만의 전투로군.
“넌 좀 조용히 하고 보기나 해.”
수라는 ‘건방진 놈. 하등한 인간 주제에…….’라고 투덜거렸다.
“혼자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죽어라!”
슈융! 가유가 휘두른 앞발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자세를 낮춰 공격을 피한 남량이,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바닥을 박차며 주먹을 날렸다.
쩌엉! 주먹이 명치에 깊숙이 박히며 가유의 거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는 컥, 하고 신음을 내뱉었다.
남량은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감히 내 동료들을 다치게 만들어?”
파팟! 위로 솟구친 남량은 공중에 떠 있는 가유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매화천수검 4초식, 뇌전포화였다.
콰르릉! 뇌성이 울리며 검은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수라의 힘을 받은 지금, 펼치는 초식의 위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기겁한 가유는 다급히 날개를 펼쳐 몸을 보호했다.
직후, 엄청난 충격이 그를 덮쳤다.
“크악!”
가유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처박혔다.
콰직!
떨어진 충격으로 바닥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구석으로 몸을 피한 채 지켜보던 교도들이 비명을 질렀다.
정신을 차린 흑영대원은 그 광경을 보고 몸을 떨었다.
‘강하다! 저 괴물을 아이처럼 가지고 놀다니……!’
효초아를 단신으로 죽인 그의 위명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터억. 가볍게 착지한 남량이 쓰러진 가유를 향해 말했다.
“그럼 이제 네놈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지.”
몸을 일으킨 가유가 남량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백매화……. 백매화!”
그는 입을 쩍 벌린 채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남량은 피하지 않고 손을 뻗어 가유의 이빨을 붙잡아 세웠다.
깜짝 놀란 가유가 눈을 부릅떴다. 남량은 덤덤하게 말했다.
“생각보다 약하군. 덩치가 아깝다.”
말을 마친 남량은 가유를 반대쪽으로 힘껏 던졌다.
고작 한 손으로, 집채만 한 크기의 가유를 던진 것이다.
‘이럴 수가. 엄청난 괴력이다!’
경악하는 가유에게, 남량이 달려들었다.
그는 낙영용섬 초식으로 검을 휘둘렀다.
스걱-. 가유의 오른쪽 앞발이 깨끗하게 절단되었다.
직후, 가유의 몸에서 붉은 섬광이 번쩍이며 잘려 나간 앞발이 빠른 속도로 재생되었다.
남량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저건가. 놈이 가진 이능(異能)이.’
잘린 다리도 단번에 재생시킬 정도다. 어중간한 공격으로는 놈을 죽일 수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한 번의 공격으로 소멸시켜야겠군.’
남량은 검을 수직으로 세운 다음, 천천히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칼끝에서 흘러나온 검강이 이내 꽃잎처럼 분해되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꽃잎의 색깔은 칠흑처럼 검었다.
매화천수검 9초식, 천류신화.
검은 매화가 허공을 가득 채운, 장엄한 경관이 연출되었다.
“어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가유에게, 남량이 말했다.
“이것도 한번 재생해 보거라. 떨어져라. 화우(花雨).”
직후, 꽃잎의 파도가 가유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콰콰콱!
가유를 휘감은 꽃잎이 그의 전신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지하 공동을 가득 메웠다.
남량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가유를 응시했다.
‘재생 능력 덕분에 소멸되는 것은 막고 있군.’
남량의 시선이 가유의 심장 부근으로 향했다.
붉은 섬광은 바로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여 봐라 가유. 탄영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인지.’
꽃잎이 가유의 가슴을 가르며, 그 안에 든 것이 모습을 드러났다.
‘돌?’
피처럼 붉은 색깔의 돌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남량은 경악하며 눈을 부릅떴다.
‘저건 설마! 혈마의 돌?’
혈마(血魔). 마교의 교인이라면 그 이름을 모를 수 없었다.
그는 초대 천마와 함께 마교를 세운 교조(敎祖)였다.
동시에 천마의 가장 믿음직한 부하이기도 했다.
그의 무공은 바로 피를 섭취해 힘을 얻는 흡혈마공(吸血魔功)이었다. 여인의 음기를 빨아들일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효초아의 자전마공(紫電魔功)과 비슷했다.
이런 무공의 부작용은, 힘을 얻을수록 이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었다. 혈마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결국 피만를 갈망하는 광인(狂人)이 되어 버린 탓에, 천마의 손에 처단당했다.
‘전설에 따르면 혈마는 죽기 직전, 금단의 비술을 사용해 자신의 힘을 담은 혈마의 돌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것을 어딘가에 숨겨 두었다고 했어. 그럼 탄영은 혈마의 돌을 찾아냈다는 말인가?’
혈마의 재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남량은 이를 부득 갈며 욕설을 내뱉었다.
‘탄영. 이 아둔한 계집 같으니! 혈마조차 감당하지 못한 힘을, 네년이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냐!’
그러는 사이, 초식이 풀리며 꽃잎이 사라졌다.
드러난 가유의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전신이 갈가리 찢겨 나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반쯤 짓뭉개진 입을 열며 웃음을 흘렸다.
“우흐흐……. 보았느냐? 나는 머리가 독에 의해 녹아내려도……. 온몸이 갈가리 찢겨 나가도 다시 살아난다. 네놈은 결코 나를 죽일 수 없을 것…….”
푸욱! 다음 순간, 가유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심장에 있던 혈마의 돌이 어느새 남량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진정한 괴물이 되기 전에 사라져라. 탄영의 개여.”
남량은 혈마의 돌을 허공에 던진 다음, 검을 휘둘렀다.
쩌엉! 돌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며 섬뜩한 곡성이 울렸다.
“아, 안 돼! 으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치던 가유는 곧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군.”
남량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
남량과 매화오절은 주어진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심지어 사흉마의 일원 가유를 죽이는 업적까지 세웠다.
뒤늦게 도착한 무림맹의 풍운검대는 옥룡교 교당을 폐쇄하고, 교도들을 납치해 가유에게 바쳤던 여인들을 체포해 데려갔다.
부상을 당한 매화오절과 흑영대원들은 며칠간 운남 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지냈다.
몸이 다 나은 대원들이 떠나는 날, 남량은 서신 한 장을 건네주며 말했다.
“마교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입니다. 비설 대주께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흑영대원은 서신을 품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배웅한 남량은 다시 의원으로 돌아왔다.
병실 문을 열자,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여기서 일하는 젊은 의생에게 물어봤는데 말이야, 근처에 운남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 있대.”
“오, 그래?”
“나도 들었다. 나는 두민반(豆燘飯:콩과 밥을 함께 익힌 요리)이라는 음식을 먹어 보고 싶군.”
“돈은 누가 내고?”
“당연히 네가 내야지. 찬야 네가 우리들 중 가장 부자인데.”
“위지혁. 너 아주 뻔뻔해졌다?”
조용히 듣고 있던 남량은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떠드는 걸 보니 이제 살 만한 모양이지?”
“남 사제. 물어볼 것이 있다.”
유라가 남량을 향해 물었다.
“이제 수라의 힘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는 건가?”
“그래. 1년간의 폐관 수련이 헛되지 않은 셈이지.”
운휘와 찬야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형님이라면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하하.”
“이걸로 우리 쪽 전력이 한층 막강해진 셈이네.”
위지혁이 문득 궁금하다는 듯 질문했다.
“그럼 수라는 어떻게 된 거야? 수라의 혼은 잠재운 건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라가 남량의 입을 빌려 소리쳤다.
-건방진 인간 놈들이 멋대로 지껄이는군! 닥쳐라!
“으악!”
일행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남량이 껄껄 웃었다.
“방금은 내가 잠깐 주도권을 내준 거야. 내 허락 없이 나올 일은 없으니 안심해라.”
그때, 창문 사이로 전서구 한 마리가 들어왔다.
“화산에서 보낸 서신이군. 또 임무가 내려온 건가?”
“장문인도 참 너무하시네. 인재들이라고 너무 막 굴리는 거 아니야?”
운휘가 나직이 투덜거렸다.
서신을 펼쳐 확인해 본 남량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무림학관(武林學館)의 강사를 맡으라고?”
***
한편, 어딘지 모를 방 안에서 탄영은 수하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가유가 죽었다고?”
“네, 그렇습니다. 흉수는 백매화 남량…….”
퍼억! 대답하던 수하의 머리가 터졌다.
탄영이 손을 휘둘러 머리를 박살 낸 것이다.
그녀는 살기 충만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백매화. 이 씹어 먹어도 모자랄 놈 같으니. 감히 가유를…….”
가유는 그녀의 충실한 부하이자 애첩이기도 했다.
효초아가 수하를 뽑는 기준은 바로 광기(狂氣)였다.
광기가 클수록 더 강한 마인이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것이 칠령귀 중에 정상적인 인물이 없는 이유였다.
반면, 탄영이 수하를 뽑는 기준은 바로 외모였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미남을 찾아 힘을 나누어 주고 충실한 하인이자 애첩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뽑은 네 명이 바로 사흉마였다.
탄영은 평소 그들을 매우 아꼈다. 그런데 한 명이 죽었으니, 그녀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혈마의 돌까지 나누어 주며 힘을 키우게 했는데…….”
“백매화가 수라의 힘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 힘은 효초아 님까지 죽일 정도였으니까요.”
대답한 이는 사흉마의 제3위(位). 도철(饕餮) 윤손(尹遜)이었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탄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주인님. 저에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제가 가서 백매화를 처리하겠습니다.”
“위험해. 네가 질 거야.”
“놈의 강대한 힘은 어디까지나 수라에게서 비롯된 것. 그 힘을 봉인할 수만 있다면 남량은 상위 초절정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방법이 있어?”
탄영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 윤손이 말했다.
“들어오라.”
어둠 속에서 검은 장포를 입은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윤손은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자가 있으면 수라를 봉인할 수 있습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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