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옥룡교의 비밀(2)
가유를 향해 쇄도하며, 매화오절은 흥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날이 떠오른다. 악몽과도 같던 1년 전, 폭우가 쏟아지던 화산.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적.
그리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죽은 소중한 사람의 모습이.
그들의 장례를 치르며 결심했다.
강해지겠다고. 강해져서, 더는 무력하게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겠다고. 그 일념으로 힘든 폐관 수련을 견뎌 냈다.
그리고 마교의 간부를 눈앞에 둔 지금, 가슴속에 담고 있던 분노가 마침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
네 명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가유가 웃으며 외쳤다.
“쥐새끼가 또 들어왔군!”
그는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매화오절을 공격해 왔다.
‘저건 호신강기로도 막을 수 없다.’
공격의 위력을 직감한 유라가 침착하게 외쳤다.
“산개(散開)! 만천매화검진의 대형으로!”
일행은 공격을 피해 각자의 위치로 몸을 날렸다.
가유가 노린 것은, 일행들 중 가장 느린 운휘였다.
쇄애액! 운휘를 향해 가유의 앞발이 날아들었다.
운휘는 검막을 펼친 다음 양팔을 교차해 막았다.
쩌어엉! 검막을 부순 앞발이 운휘를 강타했다.
운휘는 한참을 날아가 벽을 부수고 처박혔다.
몸을 일으킨 그는 기침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엄청난 위력이다. 칠령귀 관로의 공격보다 훨씬 더 빠르고 묵직해. 금강불괴의 신체인데도 이 정도 충격이라니…….’
당황한 것은 가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멀쩡하다고? 믿을 수 없군. 외공을 극한까지 익힌 것인가? 아니면 뭔가 더…….’
찬야는 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이십사수매화검법 16초, 화조월석(花朝月夕)을 펼치며 검강을 날렸다.
쩌엉! 찬야의 일격이 가유의 옆구리에 적중했다. 검강을 맞은 자리에 십자 모양의 상처가 생기며 피가 뚝뚝 떨어졌다.
바닥에 착지한 찬야가 가볍게 실소를 흘렸다.
‘피부가 마치 강철 같군. 손이 저릴 정도야.’
비틀거리며 물러난 가유가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네까짓 놈이 감히 내 몸에 상처를 입혀?”
직후, 유라와 위지혁이 가유의 측면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두 사람은 각자 초식을 펼치며 공격했다.
“매화홍주검 20초, 화전충화(花田衝火).”
“매화영롱검 17초, 월아산영(月牙散影).”
화르륵! 불꽃에 휘감긴 검이 수직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독기를 머금은 검이 찬야의 검격으로 생긴 상처를 찔러 갔다.
“고작 그따위 공격으로 날 어찌하겠다고?”
가유는 날개를 움직여 날아드는 공격을 전부 튕겨 냈다.
뒤로 밀려난 유라와 위지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간단히 막힐 줄이야. 과연, 마교의 간부라 이건가.’
‘검이 상처에 닿았다면 그 틈으로 독을 침투시켰을 텐데…….’
날개를 접은 가유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해도 나를 이길 수는 없다.”
운휘는 이를 부득 갈며 외쳤다.
“웃기고 있네. 그 말은 우릴 전부 쓰러뜨린 다음에나 해야 할 거다! 이 더러운 괴물 자식아.”
웃음을 멈춘 가유가 분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럼 지금 그렇게 해 주지!”
슈와아아아악!
길게 늘어난 가유의 털이 마치 날카로운 가시처럼 뻗어 왔다.
파파파팟!
매화오절은 민첩하게 몸을 움직이며 가유의 공격을 피했다.
‘빌어먹을! 엄청 빠르군!’
‘잠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죽을 거야. 집중해!’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반격을 해야 한다.’
‘안쪽으로 파고들어라.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폭우처럼 쏟아지는 가시 공격을 가장 먼저 돌파하는 데 성공한 유라는,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매화홍주검의 25초식, 신량등화(新凉燈火)였다.
“더 이상 네놈이 사람들을 해치게 놔두지 않겠다!”
콰아앙!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으며 가유를 덮쳤다.
“이 빌어먹을 년이!”
가유가 포효했다. 불을 끄느라 그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놈이 회복할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유라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러 초식을 이어나갔다.
화르륵! 그녀는 매화홍주검의 26초식, 정중구화(井中求火)로 가유의 등과 옆구리를 베었다.
그런 다음, 매화홍주검의 27초식, 급어성화(急於星火)를 펼쳐 급소 부분을 연달아 찔렀다.
“크아아아!”
유라는 괴성을 지르며 가유를 정신없이 몰아붙였다.
필사(必死)의 각오로 휘두른 일격은, 그녀 자신도 놀랄 정도의 위력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내력의 소모도 빨랐다.
“크윽!”
마침내 가유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라가 29초식 해의포화(解衣抱火)에서 30초식 포신구화(抱薪救火)로 잇는 순간이었다.
후웅.
맹렬히 타오르던 불꽃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내력이……. 내력이 바닥난 것이냐. 하필이면 지금!’
한 번, 아니, 두 번만 더 휘두르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유라는 극심한 피로와 절망감에 몸을 떨었다.
그사이, 충격에서 벗어난 가유가 섬뜩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지친 모양이군. 나름 인정해 주마.”
그가 입을 쩍 벌린 채 유라를 집어삼키려는 순간!
질풍처럼 달려온 운휘가 칠절매화검의 3초식 뇌정벽력으로 턱을 가격했다.
콰르릉!
한 차례 뇌성이 울리며 공격에 맞은 가유가 피를 토했다.
“정신이 번쩍 들 거다. 어때? 괴물 놈아.”
“이 버러지 같은 새끼…….”
욕설을 내뱉은 가유가 운휘를 향해 앞발을 뻗을 때였다.
“이번에는 확실히 베어 주지.”
모습을 드러낸 찬야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13초식, 낙화일섬(落花一閃)으로 검을 휘둘렀다.
번쩍! 섬광이 지나간 자리에 잘려 나간 다리가 둥실 떠올랐다.
“크아악!”
가유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의 머리 위에 착지한 위지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마지막이다. 죽어라.”
푸욱! 검을 치켜든 위지혁이 가유의 미간을 정확히 찔렀다.
독기가 파고들며, 그의 몸이 머리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크윽. 내가 이런……. 버러지들 따위에게…….”
분한 듯 중얼거리던 가유가 천천히 쓰러졌다.
쿠웅! 가유의 거구가 엎어지며 땅이 진동했다.
한 차례 정적이 흐른 뒤, 운휘가 입을 열었다.
“이긴 건가? 우리가? 우리 힘만으로?”
찬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가 이긴 거야. 마교의 간부를.”
위지혁은 희열에 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스승님! 혁련 사숙! 보고 계십니까? 이겼습니다.’
유라는 몸을 일으키며 덤덤히 말했다.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곳에 갇힌 사람들을 꺼내야지. 기뻐하는 건 그다음이다.”
정작 그녀도 슬쩍 올라간 입꼬리를 감추지는 못했다.
그들이 납치된 사람들을 향해 다가갈 때였다.
화악-! 갑자기 등 뒤에서 붉은 섬광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린 직후, 네 명은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분명 죽었을 터인 가유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콰드득! 콰득. 위지혁의 독에 녹아내린 얼굴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찬야의 검격에 의해 잘려 나간 다리도 재생되었다.
“말도 안 돼…….”
운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후우. 이번에는 정말 죽을 뻔했군.”
가유는 긴 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찬야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체 저건……. 무슨 사술(邪術)이지?”
유라는 낙양혈사 때처럼 죽은 시체를 조종하는 술법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것과는 달라. 혈천마화대법으로 살아난 시체들과는 달리, 저놈은 자아를 가지고 있어. 그럼 정말 죽었다 되살아난 거라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 정녕 가능하단 말인가?’
가유는 매화오절의 표정을 발견하고 폭소를 터뜨렸다.
“낄낄낄. 그 멍청한 표정들을 보아하니 내가 어떻게 되살아난 것인지 꽤나 궁금한 모양이구나.”
그는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천천히 설명해 주고 싶지만,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말이다. 우선 너희들로 배를 채워야 할 것 같군.”
“……누구 맘대로!”
매화오절이 싸울 태세를 취했다. 가유는 그들을 비웃었다.
“크하하! 내력을 전부 소진한 몸으로 검이나 제대로 휘두를 수 있겠느냐?”
쉬익! 순식간에 다가온 가유가 앞발을 휘둘러 운휘와 찬야를 후려쳤다.
퍼퍼퍽! 두 사람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운휘! 찬야!”
퍼퍽! 유라와 위지혁도 가유에게 걷어차여 바닥을 뒹굴었다.
쓰러진 네 사람을 바라보며, 가유가 입맛을 다셨다.
“누굴 먼저 먹을까? 넷 다 강한 기운을 가지고 있으니 분명 맛도 최상일 테지.”
스윽. 고개를 돌린 그가 유라를 바라보았다.
“그래. 나를 가장 괴롭힌 네년부터 먹어 치워 주마. 영광인 줄 알거라.”
가유가 입을 쩍 벌리고 유라에게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천장이 무너지며 검은 벼락이 가유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쩌엉!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가유가 괴성을 질렀다.
“꿰엑!”
잠깐 기절해 있던 유라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앞에는, 꿈에서도 그리워했던 존재가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
피부는 검었고, 두 눈은 홍옥처럼 붉었으며, 머리에는 뿔이 돋아나 있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예전과 똑같았다.
그가 유라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늦지 않은 모양이군. 사저.”
유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놈을 조심해라……. 분명 한 번 죽였는데 다시 살아났어.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터……. 불사(不死)가 아닌 이상 분명 약점이 존재할 거야…….”
그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사흉마를 한 번 죽였단 말인가? 1년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했는데, 이건 기대 이상이군.”
검은 손이 유라의 이마를 짚었다.
“수고했다. 잠시 쉬고 있어. 금방 끝난다.”
“그래…….”
잠든 유라를 조심스레 눕힌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유는 휘날리는 백발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네놈은 설마 백매…….”
가유는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뛰어오른 검은 사내가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한 것이다.
가볍게 휘두른 듯 보였지만 실은 태산과도 같은 위력이 담겨 있었다.
쩌엉! 포탄처럼 뒤로 날아간 가유가 거꾸로 벽에 처박혔다.
바닥에 착지한 사내가 매화 문양의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탄영, 그 여자가 시켰느냐? 사교를 만들고 신도들을 잡아먹으면서 힘을 키우라고?”
“크으으…….”
고개를 털어 충격을 해소한 가유가 으르렁거렸다.
“감히 내 주인을 그렇게 불러?”
“그럼, 음탕한 계집년이라고 불러 줄까?”
“그 입 닥쳐라! 네놈이 그분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적어도 네놈보다는 많이 알겠지.”
사내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그놈들이 또 금지된 비술을 꺼내 든 모양인데, 하나 알려 주자면 세상 어디에도 절대자가 되는 비술은 없다.”
“웃기지 마라. 이 힘은…….”
“정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알려 주지.”
화아아아악!
직후, 사내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네가 믿는 그 능력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말이다.”
터엉!
사내, 남량은 바닥을 박차고 가유를 향해 쇄도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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