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수라의 심장(3)
‘저것이 수라의 심장인가?’
남량은 제단 위 구슬을 바라보다 눈살을 찌푸렸다.
구슬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기(邪氣)에 정신이 어지러웠다.
‘잠깐 바라본 것만으로 현혹될 뻔했어.’
직접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힘이다.
화령은 광소를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거야. 이것만 있으면……. 효초아 님을 최강으로……!”
화령이 수라의 심장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벼락처럼 몸을 날린 남량이 화령의 목을 노려 왔다.
화령은 깜짝 놀라며 재빨리 몸을 틀어 검을 피해 냈다.
‘쯧. 베어 버릴 수 있었는데.’
남량은 혀를 차며 제단을 등지고 화령과 대치했다.
“백발에 매화 문양의 도복……. 네놈이 백매화인가?”
화령은 살기 어린 눈으로 남량을 노려보며 말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군. 교의 대적(大敵).”
남량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를 대적이라 칭하는 건가. 하긴, 너희들의 계획을 번번이 가로막은 걸로 모자라 칠령귀를 둘이나 죽였으니…….”
쇄애액!
남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령이 공격해 왔다.
그녀가 효초아에게서 받은 무공은 백마경천조(白魔驚天爪).
한 번의 공격으로 상대방의 살을 찢고 뼈를 부순다는 무시무시한 조공(爪功)이었다.
남량은 매화천수검의 3초식, 매농낙화로 방어했다.
매화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장막이 남량을 둘러쌌다.
콰아앙!
폭발이 일어나며 남량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사이, 화령은 남량을 지나쳐 제단 앞에 도착했다.
‘불제가 도착하기 전에 빨리…….’
화령이 수라의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을 때였다.
그녀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흠칫 몸을 떨었다.
고개를 돌리자 반월 모양의 검강이 날아오고 있었다.
화령은 심장을 잡는 걸 포기하고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바닥에 착지한 화령이 이를 부득 갈며 남량을 향해 소리쳤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소원대로 죽여 주지!”
분노한 화령의 전신에서 위험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남량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냉정하게 생각하자. 내력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지금, 나는 화령을 이기지 못한다. 다만 시간을 버는 정도라면 가능하겠지. 그러니, 불제가 도착할 때까지만 버티자. 그거면 된다.’
불제가 도착하기 전에 심장을 가져가려는 화령.
불제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고자 하는 남량.
먼저 움직인 쪽은 역시 화령이었다.
손을 구부린 화령이 바닥을 박차며 유성처럼 쇄도했다.
백마경천조, 섬조격(閃鳥擊)!
백마경천조의 초식 중에서도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초식이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남량은 즉시 사자금강을 펼쳤다.
카카캉!
화령의 일격이 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튕겨 나갔다.
화령이 눈을 부릅뜨는 순간, 남량이 검을 휘둘렀다.
“낙영용섬.”
섬전처럼 빠른 일검(一劍)이 화령의 목을 노렸다.
촤악-!
칼날이 목에 닿기 전, 화령이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서늘한 목덜미를 매만지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알 수 없는 이능(異能)과 쾌속의 검격……. 듣던 대로군.”
공중으로 몸을 띄운 화령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백마경천조 난조격(亂鳥擊). 어디 한번 받아 봐.”
파파파파파팟!
화령의 손이 어느새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남량은 그에 맞서 낙영용섬 ‘난참(亂斬)’으로 대응했다.
쩡! 쩌엉! 묵직한 충격파와 폭음이 연달아 터졌다.
남량은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손에 가해지는 충격이 버티기 힘들다. 빠져나와야 해!’
이 순간, 남량의 풍부한 전투 경험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남량은 화령의 공격을 튕겨 내며 그녀의 발등을 노렸다.
‘멍청한 놈. 뻔히 보이는 수작에 당해 줄 것 같아?’
화령은 비웃음을 흘리며 발을 뒤로 숨겼다.
그녀의 정신이 발로 향한 바로 그때였다.
발등을 노리던 검격이 순식간에 턱을 노려 왔다.
매화천수검의 2초식, 옥녀유영으로 검로를 변화시킨 것이다.
‘이런, 속았구나. 진짜 노림수는 따로 있었어!’
당황한 화령은 다급히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남량의 일격은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턱을 스치고 지나갔다.
‘화령이 무방비가 된 지금이 바로 기회다.’
남량은 즉시 화산의 매화추영장(梅花追榮掌)을 펼치며 장력을 쏘아 보냈다.
쩌엉! 장력을 정통으로 맞은 화령이 크게 휘청거렸다.
남량은 기세를 몰아 낙영용섬 진(眞)의 초식을 펼쳐 검을 휘둘렀다.
쉬익-. 섬득한 파공음을 내며 신속의 참격이 날아들었다.
콰직! 다음 순간, 남량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화령이 강기를 두른 손으로 날아드는 칼날을 붙잡은 것이다.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반응한 건가. 빌어먹을.’
화령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씹어뱉듯 입을 열었다.
“백매화. 이제 그만 죽어라.”
말을 마친 화령이 수도(手刀)를 세워 그대로 내질렀다.
‘피해야 한다.’
지금처럼 검을 잡힌 상태에서는 피할 수가 없었다.
남량은 어쩔 수 없이 검을 버리고 물러나려 했다.
바로 그때, 우측에서 황금빛 권강(拳罡)이 날아왔다.
콰아앙!
공중에서 몸을 돌리며 바닥에 착지한 화령이 권강이 날아온 방향으로 소리쳤다.
“어떤 개자식이 방해를!”
주먹을 아래로 내린 홍선이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허허. 마교의 졸자라 그런가, 입이 참 거치시구려. 생긴 건 딱 소승의 취향인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기습이라고 날린 일격인데 상처 하나 없는 건 조금 충격이군. 이게 칠령귀인가.”
화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 승려 맞아? 더럽게 시끄럽네.”
“비록 출가한 몸이지만 천성을 쉽게 바꾸기는 어렵더군요.”
홍선은 몸을 날려 남량의 곁으로 다가왔다.
남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고맙군.”
“별말씀을요.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왜 혼자 왔지? 방월 대사는?”
“방장님은 매일 지하 깊은 곳의 연공실에 드십니다. 그리고 급히 시주를 따라오느라 남들에게 알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남량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내가 가서 알리라고 했잖아!”
“그 덕분에 목숨을 구한 건 생각 안 나십니까?”
홍선은 자세를 취하며 나직이 말했다.
“마기가 숭산 전체에 퍼졌으니 다들 이곳으로 몰려올 겁니다. 그때까지만 버티시지요.”
“흥. 발목이나 붙잡지 마라.”
남량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검을 들었다.
“잘 들어라. 저자는 조공(爪功)을 구사한다. 한번 붙잡히면 방어고 뭐고 그대로 끝이니 무조건 거리를 유지하도록. 그리고 명심해라. 우리는 시간을 벌기만 하면 된다. 틈이 보인다고 해서 무리하게 공격할 생각은 마.”
“명심하겠습니다.”
화령은 이를 악물고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방해꾼이 한 명 더 늘어났군. 젠장할.’
화령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불제가 이곳에 당도할 것이다. 그가 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심장을 포기하고 도망쳐 버릴까?’
이런 생각이 들자, 화령은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라. 효초아 님을, 내 주인을 절대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저 심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가져가고 말겠다.’
생각을 마친 화령이 전력을 다해 달려들었다.
그녀가 우선적으로 노린 건 상대적으로 약한 홍선이었다.
“죽어라.”
화령은 백마경천조의 가장 강한 초식 중 하나인 천괴조격(天怪鳥擊)을 펼쳐 공격했다.
그녀가 손을 뻗자 거대한 발톱 형상의 강기가 형성되며 홍선을 잡아먹을 듯 쏘아져 나갔다.
‘빠르다! 저건 피할 수 없어. 그렇다면 받아친다!’
홍선은 진각을 내딛으며 힘차게 주먹을 내질렀다.
터엉! 손끝에서 터진 백색의 권강이 호쾌하게 뻗어 나갔다.
소림의 72절예 중 하나인 백보신권(百步神拳)이었다.
그러나 화령의 일격을 막기에는 위력이 부족했다.
강기가 홍선의 코앞까지 날아든 순간!
질풍처럼 달려든 남량이 뇌전포화 초식으로 공격을 막아 냈다.
홍선이 남량의 등을 응시하며 말했다.
“남량 시주. 구해 줘서 고맙…….”
“피해!”
남량은 홍선의 어깨를 밀치며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콰앙! 직후, 두 사람이 있던 자리에 강기가 떨어졌다.
화령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양쪽으로 조격을 내쏘았다.
“크윽!”
남량은 사자금강으로 조격을 막았으나 바닥을 굴렀다.
홍선은 비명을 내뱉으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공격을 피했다.
그사이, 화령은 날듯이 제단으로 올라가 구슬을 잡았다.
“흐흐. 됐다. 이제 이곳을 벗어나기만 하면…….”
화령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쩌엉! 한 줄기 광선(光線)이 그녀의 옆구리에 적중했다.
“끄억?”
화령은 허리가 반으로 접힌 채 날아가 지하 벽에 처박혔다.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남량이 중얼거렸다.
“방금 그건……. 탄지신통(彈指神通)?”
그것도 화령을 단번에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이다.
고개를 돌리자 늙은 고승(高僧) 한 명이 가사 자락을 펄럭이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북 십성의 불제, 방월 대사였다.
마침내 그가 이곳, 수라동에 도착한 것이다.
“흑승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자가 바로 자네였군. 화령.”
방월 대사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남량은 그가 지금 매우 분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뒤로 강한 기운을 가진 승려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왔다.
“십팔나한승(十八羅漢僧). 팔대호법(八大護法). 그리고 사대금강(四大金剛)까지……. 소림의 전력이 거의 전부 모였어!”
홍선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옆구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킨 화령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사색이 되었다.
‘남북 십성, 불제에 초절정의 무인들이 십수 명이라. 이건 내가 아니라 효초아 님이라고 해도 빠져나갈 수 있을지…….’
분노한 방월 대사는 말없이 손을 치켜들었다.
저 손이 떨어지면 죽는다. 화령은 확신했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수라의 심장을 손에 넣었는데…….’
그 순간, 그녀의 귓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삼켜라. 나를 삼켜서 힘을 얻어라.
화령은 깜짝 놀라며 자신의 손에 들린 구슬을 응시했다.
‘만약 내가 수라의 심장을 삼키게 된다면.’
효초아가 간절히 원하는 그 힘을 손에 넣는다.
그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구슬의 마력(魔力)에 현혹당했음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방월 대사의 손이 아래로 떨어지는 바로 그때.
화령은 홀린 채로 구슬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다음 순간, 화령의 전신에서 터져 나온 검은 안개가 수라동 내부를 휩쓸었다.
“꺄아아아아악!”
화령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남량이 몸을 일으켰다.
“마기다! 모두 내력을 일으켜 몸을 보호하라!”
어둠 속에서 방월 대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남량은 불가의 힘과 가장 가까운 사자금강을 펼쳐 몸을 보호했다.
촤앙-! 방월 대사가 내력을 끌어모아 방출하니, 찬란한 빛이 퍼져 나오며 마기의 안개를 몰아냈다.
‘화령은, 화령은 어떻게 된 거지?’
고개를 돌린 남량은 화령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저, 저건……!’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