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낙양혈사(落陽血史)(2)
남량은 유회를 향해 돌진하며 그의 정보를 떠올렸다.
칠령귀(七靈鬼)는 효초아가 직접 키운 그의 심복이다. 유회도 마찬가지로 효초아의 가르침을 받았다.
유회는 마교 내에서도 흉악하기로 악명이 높은 살인마였다.
자신과 함께 가르침을 받던 교인들을 그저 재미 삼아 수백 명 가까이 살육했고, 효초아는 그 자질을 높이 사 자신의 심복으로 거두어들였다.
유회가 효초아로부터 받은 마공은 흑광사염창(黑光死染槍).
빛처럼 빠른 창격으로 닿는 적들을 모조리 참살하는 무시무시한 창술이었다.
채채챙!
남량의 검과 유회의 창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대등하게 합을 주고받았다.
이는 폭혈기공의 발현으로 내력이 증폭된 상태인 데다, 남량의 노련한 기교가 더해진 결과였다.
유회는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해! 조금 전에 싸울 때보다 더 강해졌군! 좀처럼 예측을 할 수 없는 상대는 네가 처음이야! 이거 점점 더 싸움이 재미있어지는데? 아직 보여 줄 것이 남았지? 어서 꺼내 봐! 날 더 즐겁게 만들어 보라고! 으헤헤!”
유회는 창을 돌리며 그대로 내질렀다.
번쩍하고 섬광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흑광(黑光)이 남량의 미간을 향해 날아들었다.
남량은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사자금강의 능력을 펼쳤다. 황금빛의 기막이 남량의 주변을 둘러쌌다.
쩌엉!
남량의 몸이 크게 흔들거렸다.
유회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지만 가해진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듯했다.
남량은 사자금강을 풀며 반격을 가했다.
매화천수검의 1초식, 낙영용섬의 일검(一劍)이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유회의 목을 노렸다.
쇄애애액!
유회는 검이 목에 닿기 직전, 고개를 뒤로 젖히며 아슬아슬하게 검격을 피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그때, 기회를 엿보고 있던 운휘가 뒤에서 검을 휘둘렀다.
“뇌봉전별(雷逢電別)!”
콰르릉!
일격필살의 검격이 우레 소리를 동반하며 수직으로 떨어졌다.
유회는 히죽 웃으며 창대를 내밀어 검격을 막아 냈다.
쩌엉!
충격음과 함께 운휘의 검이 뒤로 튕겨 나갔다.
운휘는 저릿저릿한 팔을 응시하며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무슨 창이 이렇게 단단해!’
일반 철로 운휘의 일검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남량은 저 창도 쇠사슬처럼 한철로 이루어졌을 것이라 짐작했다.
“방금 공격은 아까웠어.”
유회는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양팔을 휘둘러 쇠사슬로 남량과 운휘를 공격했다. 검을 들어 쇠사슬을 막아 낸 두 사람이 뒤로 물러났다. 남량은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칠령귀를 상대하는 건 쉽지 않군.’
유회는 가볍게 목을 꺾으며 말했다.
“둘 중 누구를 먼저 잡아먹을까? 음. 원래 가장 맛있는 음식은 맨 나중에 먹는 법이지. 그럼 우선 너부터 죽여야겠다.”
유회의 시선이 운휘를 향했다. 운휘가 코웃음을 쳤다.
“내가 무슨 고기인 줄 알아? 이 미치광이 자식아.”
쉬이이익!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회의 창끝이 운휘를 찔러 왔다.
그 남량조차 피하지 못하고 막기를 선택했을 정도다. 운휘가 이 공격을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도 피할 생각은 없다.’
운휘는 몸을 비틀며 목 대신 어깨를 내밀었다.
쩌엉!
유회의 창격이 운휘의 금강불괴를 부수고 그의 어깨 근육을 파고들었다. 만약 금강불괴의 신체가 아니었다면 어깨가 뜯어져 나갔으리라.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운휘는 웃었다.
“잡았다.”
손을 뻗어 유회의 창대를 잡은 운휘는 검기를 끌어올렸다.
“크아아아!”
운휘는 짐승처럼 포효하며 자신이 가진 최강의 초식 중 하나를 발휘했다. 칠절매화검의 포호빙하(暴虎馮河) 초식이었다.
운휘가 검을 휘두르자 푸른 검기가 맹호의 형상처럼 변하며 유회를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듯 쏘아져 나갔다.
운휘가 전력을 다해 휘두른 필살의 일격은, 제아무리 마교의 고수라고 해도 경시할 수 없었다.
결국 유회는 창 하나를 버리고 운휘의 검격을 피해 몸을 뒤로 피했다. 운휘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힘겹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겨우 창 하나밖에 빼앗지 못했…….”
남량은 유회를 향해 쇄도하며 대답했다.
“너는 충분히 했다. 나머지는 내게 맡겨.”
운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남량은 번득이는 눈으로 유회를 노려보며 말했다.
“죽여 주마. 반드시.”
남량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뜩한 살기는 살인에 미친 유회마저 한순간 움찔하게 만들었다.
남량은 내력을 한껏 끌어모은 다음 매화천수검의 4초식, 뇌전포화 초식으로 검을 내리쳤다.
유회는 불안정한 자세로 다급히 창을 내질렀다.
콰르릉!
한 차례 뇌성이 울리며 충격파가 발생했다.
충격을 받은 유회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남량은 기세를 몰아 매화천수검의 7초식, 유성추월 초식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검강의 소용돌이가 무시무시한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유회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슈슈슈슈슉!
유회는 다급히 흑광사염창의 암중방광(暗中放光) 초식으로 창을 찔러 댔다. 칠흑의 강기가 어지러이 뻗어 나가며 남량의 일격을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유회는 흥분에 차 소리를 질렀다.
“정말 끝내주는 물건이구나. 백매화! 어디 끝까지 싸워 보자!”
남량은 검을 휘둘러 허공에 원을 그렸다.
유회는 순간 자신이 지하에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매화의 꽃잎 때문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떨어지는 꽃잎 하나하나가 검강의 조각임을 깨달은 직후였다.
“매화천수검 9초식. 천류신화.”
콰콰콰콰콰콰콱!
무수히 많은 검강의 조각들이 떨어져 내리며 장엄한 광경을 연출했다. 말 그대로 죽음을 부르는 화우(花雨)였다.
“그게 너의 비기(秘技)냐?”
파파파파파파팟!
유회는 창대를 옆구리 사이에 끼운 다음, 온 힘을 다해 내질렀다. 일순 창끝이 수십 갈래로 나뉘며 칠흑의 강기가 거대한 그림자처럼 변해 떨어지는 매화의 꽃잎을 막아 냈다. 흑광사염창의 유암화명(柳暗花明) 초식이었다.
‘천류신화 초식마저 막힌 건가.’
최강의 패가 막혔지만 남량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가 유회의 등 뒤에서 솟아오르는 수십의 인영(人影)을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흑영대!’
남량, 운휘와 유회의 전투가 시작된 직후, 흑영대는 지하 복도를 타고 흐르는 기(氣)의 변화를 눈치채고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암영은 이를 악물고 유회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이 기습은 반드시 성공시킨다!’
그때, 고개를 돌린 유회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런 허접한 기습이 통할 것 같아?”
유회는 공중으로 몸을 날리며 흑영대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창을 휘둘렀다.
슈슈슈슉!
흑광에 적중당한 흑영대원들이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암영 역시 유회의 공격에 아랫배를 관통당하며 쓰러졌다.
“크억…….”
암영은 피를 뿜으며 죽어 가는 순간에도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 시간을 벌었으면 충분하다. 그렇지 않은가. 남량!’
파파팟!
남량은 흑영대의 기습으로 유회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한 순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회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가장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낙영용섬. 진(眞).”
스걱-.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오싹한 소리와 함께, 유회의 동작이 그대로 멈추었다.
유회는 창을 떨어뜨린 채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숨을 세 번 정도 내쉬고 난 뒤에야 잘린 목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
남량은 폭혈기공을 해제하며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유회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남량을 향해 말했다.
“훌륭해. 정말 빠른 검이었어. 덕분에 만족스러운 대결…….”
촤악-!
남량은 검을 휘둘러 유회의 목을 벤 다음, 차갑게 내뱉었다.
“졌으면 입 닫고 빨리 뒤지기나 해라. 변태 자식아.”
목이 잘려 나간 유회의 몸뚱이가 힘없이 쓰러졌다.
남량은 바닥에 떨어진 유회의 목을 응시했다.
드디어 마교의 간부를 이 손으로 쓰러뜨렸다.
그러나 흑영대와 운휘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남량은 곧장 쓰러진 운휘에게 달려갔다.
“운휘! 정신 차려라!”
남량은 운휘의 어깨에 박혀 있는 창을 뽑아낸 다음, 신유유합의 능력으로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으음…….”
정신을 차린 운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님…….”
“그래.”
“그 미치광이 놈은 해치우신 거죠?”
운휘의 물음에, 남량이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운휘는 그제야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운휘의 치료가 끝난 남량은 암영에게 다가갔다. 암영은 편안히 눈을 감은 채 흑영대원들의 품에 안겨 있었다.
“유회의 공격에 당한 직후,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대원 한 명이 덤덤히 말했다. 남량은 잠시 애도를 표했다.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면 유회를 쓰러뜨리지 못했을 거야. 네 목숨이 헛되지 않도록 내가 반드시 마교 놈들의 계획을 막아 내겠다고 약속하마.’
암영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새겨져 있었다.
남량은 몸을 돌려 비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비석 앞에 선 그는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이 비석을 부수면 시체를 조종하는 술수를 더 이상 부릴 수 없을 것이다.’
남량이 강기를 머금은 검으로 비석을 내리치려던 순간.
천장에서 검은 섬광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콰앙!
남량은 다급히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한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역시 이곳에 있었구나. 연청.’
검은 비단옷을 휘날리며 등장한 낭연청은 고개를 돌려 유회의 시체를 힐끗 쳐다보았다.
‘믿을 수가 없군. 유회를 처리하다니…….’
유회가 비록 칠령귀 중 가장 경지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엄연히 마교 실력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남북 십성도 아니고 고작 후기지수 따위에게 목숨을 잃을 줄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백매화는 무슨 수를 써서든 운대산에서 죽여 버렸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검성 남궁천의 방해로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스릉.
낭연청은 검을 뽑아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의 전신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백매화. 오늘이 네놈의 마지막이다.”
남량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멀쩡한 몸으로도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였는데, 지금은 폭혈기공의 부작용으로 몸이 상하기까지 한 상태였다.
그때 남은 흑영대가 낭연청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떻게든 남량이 비석을 부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낭연청의 무형검(無形劍)을 막아 내지 못하고 금세 전멸했다.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였다.
“소용없는 짓이다.”
낭연청은 남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남량은 이를 악물었다. 더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순간, 남량의 머릿속에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청아.”
남량의 입에서 쓸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느냐?”
낭연청은 눈살을 찌푸렸다. 남량이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량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내가 위광이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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