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87화 (87/164)

<87화>

운휘의 각성. 금강불괴(金剛不壞)(3)

팽가의 연무장은 넓고 고요했다.

남량과 운휘는 연무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칙적으로 객(客)은 마음대로 출입이 불가하나, 남량의 부탁을 들은 팽자엽은 흔쾌히 출입을 허락해 주었다.

운휘는 연무장에 모인 세 사람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다들 모여 있었네?”

“운휘.”

남량이 연무장의 문을 걸어 잠그며 말했다.

“저들이 네 각성을 도와줄 거다.”

“그렇군요. 그런데 어떤 식으로…….”

신나서 말하던 운휘의 시선이 그들의 손으로 향했다.

길고 단단해 보이는 목봉이 들려 있었다.

운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찬야를 응시했다.

찬야의 입꼬리에는 불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설마…….

운휘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남량이 뒤에서 운휘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그럼 수련 방법을 설명해 줄게.”

운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뭔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자, 지금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저 셋이 너를 목봉으로 공격할 거야. 물론 내력을 실어서. 너는 연무장을 벗어나지 않고 그 공격을 전부 막아 내면 된다. 간단하지?”

“가, 간단?”

간단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반대가 된 거지?

운휘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형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해.”

“반격을 해도 되는 거죠?”

남량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안 되지. 너는 무조건 ‘방어’ 또는 ‘회피’만 가능하다. 이 수련은 너를 금강불괴로 만들기 위한 수련이야. 네가 집중해야 할 건 건원청심법의 정순한 내력을 운용한 방어다. 명심해. 공격이나 반격은 절대 안 돼.”

운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찬야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목봉을 들었다.

“남 사제 말 들었지? 공격은 안 된다네.”

유라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운휘. 너의 각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다.”

위지혁은 허공에 대고 목봉을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로 하면 죽으려나? 으음……. 감이 안 잡히는군.”

운휘의 입에서 실성한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무림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죽을 수도 있을 듯했다.

그것도 수련 도중에 동문들에게 두들겨 맞아서 말이다.

“그럼 시작하지.”

남량이 멀찍이 물러나자 세 사람이 운휘의 주변을 둘러쌌다.

운휘는 이를 부득 갈며 맨손으로 자세를 취했다.

‘금강불괴라…….’

처음 그 기운을 느낀 것은 딱 삼백 번째 되는 비무에서였다.

팽자엽의 일격을 허용해 무기를 놓친 직후였다.

그의 도가 날아드는 순간, 전신에서 금빛의 기운이 퍼져 나와 온몸을 감싸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금빛 기운은 팽자엽의 도격을 완벽히 막아 냈다.

그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후로도 몇 번이나 발현되었지만,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한 적은 없었다.

만약 그 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전설상의 경지인 금강불괴의 힘을 얻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질 수 있으리라.

그래. 남량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해낸다. 반드시 해내고 말 거야.’

운휘는 의지를 불태우며 말했다.

“준비됐어. 봐주지 말고 덤벼.”

“좋아.”

찬야와 유라, 위지혁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은 운휘의 주변을 돌며 빈틈을 노려 왔다.

운휘는 자세를 낮추며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공격에 대비했다.

휘이익!

은밀하게 접근한 찬야가 운휘의 등을 노리고 목봉을 휘둘렀다. 감각을 예민하게 세우고 있던 운휘는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공중에서 몸을 돌려 착지한 운휘에게, 유라가 달려들었다.

파파팟!

그녀는 운휘의 어깨와 가슴을 향해 봉끝을 찔러 왔다.

운휘는 손을 뻗어 봉을 막아 냈다.

봉에 실린 내력이 운휘의 몸을 타고 들어와 충격을 주었다.

“크윽.”

운휘가 주춤거리는 틈을 타, 위지혁이 짓쳐 들었다.

그는 낮게 봉을 휘둘러 운휘의 다리를 가격했다.

하체가 휘청거리며 운휘의 중심이 무너졌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찬야가 봉을 내질렀다.

퍼퍼퍽!

순식간에 세 번의 공격을 허용한 운휘가 뒤로 날아갔다.

다행히도 공격을 받는 순간 몸을 뒤로 띄워서 충격을 줄일 수 있었다.

운휘는 공중에서 제비를 돌며 바닥에 착지했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유라와 위지혁이 측면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퍼퍽! 퍼퍼퍼퍽!

목봉과 주먹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운휘는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러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세를 버텨 내지 못하고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퍼퍽!

유라의 봉이 운휘의 팔을 양쪽으로 쳐 내는 데 성공했다.

방어가 깨진 틈을 타, 위지혁은 운휘의 가슴팍에 정확히 봉을 찔러 넣었다.

쩌엉!

운휘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구르던 그는 기침을 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만히 지켜보던 남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정도로는 기운을 끌어내지 못하는 건가.’

아무래도 더 강한 공격이 필요할 듯했다.

남량은 찬야, 유라, 위지혁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목봉이 부르르 떨리며 주변에 기(氣)가 서리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직감한 운휘가 한숨을 내쉬었다.

“더럽게 힘드네. 젠장…….”

운휘는 가볍게 목을 풀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파파팟!

이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든 찬야가 봉을 휘둘렀다. 운휘는 거의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

퍼억!

운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봉을 휘두르는 속도가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이번에는 유라가 수직으로 목봉을 내리쳤다. 운휘는 황급히 양팔을 교차시켜 막아 냈다.

쩌어엉!

운휘의 입에서 날카로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딛고 있던 바닥이 움푹 파이며 무릎이 덜컥 꺾였다.

‘이 위력은 대체…….’

운휘는 힘겨워하는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너희들, 정말 강해졌구나. 정말 강해졌어.’

그렇다면, 나 역시 뒤처질 수는 없다.

그는 유라의 봉을 잡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겨우 이거야? 팽자엽의 도가 훨씬 더 강했다!”

“……!”

눈을 부릅뜬 유라가 봉을 휘둘러 운휘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커억-!”

운휘는 고통으로 표정을 찌푸리면서도 악착같이 버텼다.

그러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위지혁의 봉끝이 여러 갈래로 나뉘며 전신을 두들겼다.

퍼퍼퍼퍼퍽!

운휘는 몸을 숙이고 방어에 집중했다.

그때, 찬야가 휘두른 봉이 운휘의 안면에 적중했다.

빠악!

운휘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이마가 찢어지며 피가 흘러나왔다.

“허억. 허억…….”

운휘는 거친 숨을 토해 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피가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해야 금강불괴의 경지에 들 수 있는 걸까.

그 순간의 느낌을 떠올리며 발현을 시도해 봤지만, 힘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포기하지 말자. 머리로 떠올리지 못하면 몸으로라도 부딪치는 거다. 그게 훨씬 나다워.’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버틴다.

그게 무식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운휘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크아아아!”

쩌억!

유라의 봉에 얻어맞아 코피가 터져 나왔다.

찬야의 봉이 다리를 노려 바닥에 엎어졌다.

위지혁의 봉이 등을 찔러 고통이 느껴졌다.

“후욱. 후욱…….”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할지언정, 계속해서 일어났다.

운휘의 두 눈은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남량은 굳은 표정으로 망신창이가 된 운휘를 응시했다.

‘여기서 더 공격하면 정말 목숨이 위험할지 모른다. 하지만…….’

남량은 운휘의 저 눈빛을 알고 있었다.

종남산에서 유라가 보여 주었던 눈빛이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포기하지 않는 기백.

목숨을 걸고서라도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

저 눈빛을 한 이상,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마지막이다.”

남량이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격돌에서 승부를 걸자.”

찬야는 눈살을 찡그리며 운휘를 향해 물었다.

“운휘……. 할 수 있겠어?”

“물론이야.”

운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대충 들었어. 너희들이 무슨 각오를 하고 강해졌는지……. 그걸 아는데 나만 어떻게 목숨을 걸지 않을 수 있겠어…….”

운휘는 크게 휘청거렸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았다.

“부탁할게. 진심으로 공격해.”

“네 뜻은 잘 알겠다.”

유라는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반드시 경지를 뛰어넘어라.”

운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운휘 너……. 죽으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위지혁의 외침에 운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웅-. 콰앙!

찬야와 유라, 위지혁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내력이 가득 실린 봉이 한 번에 날아들었다.

운휘는 눈을 부릅뜬 채 다리에 힘을 주며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아-!”

세 자루의 봉이 운휘의 가슴팍에 적중했다.

직후, 엄청난 충격파가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드드드-.

동시에 바닥이 무너지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성공인가?”

찬야는 봉을 내리며 크게 소리쳤다.

운휘가 무너지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때, 흙먼지가 걷히며 운휘의 모습이 드러났다.

운휘는 조금의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일행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바로 그 순간!

우우웅.

운휘의 전신에서 황금빛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찬야는 그제야 자신의 봉이 부러져 있음을 깨달았다.

스윽. 천천히 눈을 뜬 운휘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이 바로…….”

“금강불괴의 경지.”

운휘에게 다가온 남량이 웃으며 말했다.

“너라면 해낼 줄 알았다. 운휘.”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운휘가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일행은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문득 남량이 주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연무장은 어떻게 하지?”

팽가의 연무장은 온통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

“죄송합니다.”

다음 날 아침, 남량 일행은 팽자엽과 일 장로 팽윤에게 고개 숙여 사죄했다.

‘대체 어젯밤에 무슨 수련을 했길래…….’

팽자엽은 아주 박살이 난 연무장을 바라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팽윤은 허허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네. 이 정도는 이틀이면 금방 수리할 수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게나.”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이 일은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자, 이제 낙양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지.”

“그래.”

일행은 짐을 싸기 위해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그때 운휘가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형님.”

“응?”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어요.”

남량은 운휘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운휘를 향해 물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곧 무림대회에서 만나게 될 거야.”

“상대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남량은 멀어지는 팽자엽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길 수 있겠어?”

“언젠가는 넘어야 할 산이에요.”

“좋아.”

운휘는 팽자엽에게 마지막으로 비무를 제안했고, 팽자엽은 흔쾌히 수락했다.

두 사람은 곧장 비무대로 이동했다.

남량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는 궁금했다.

경지를 뛰어넘은 운휘가 팽자엽을 상대로 어떤 광경을 보여 줄 것인지 말이다.

찬야와 유라는 이미 자신들의 실력이 남북 십성의 후계자에게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과연 운휘 또한 증명할 수 있을까?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