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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21화 (21/164)

<21화>

은영단(隱映團)(6)

“화산의 도사, 남량이오.”

화산의 도사라는 말에 풍운검대 대원들이 웅성거렸다. 일부는 남량의 처참한 몰골에 눈살을 찌푸렸다.

하얀 머리카락이 붉게 물들고 찢겨 나간 옷자락 사이로 흘러나온 피가 옷을 적시고 있었다.

자객들의 검에 베이고 암기에 찔린 상처가 흉측했다.

남량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바닥을 구르며 괴성을 질러도 이상하지 않을 중상이었다.

“화산의 도사라고?”

“그래 봐야 앳된 아이 같은데. 약관도 채 안 된…….”

“매화가 그려진 도복을 보면 맞는 것 같긴 하지만…….”

“정말 혼자서 이 자객들을 전부 쓰러뜨렸단 말인가?”

‘보고 있지만 말고 좀 도와줘. 이것들아.’

남량은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격렬한 전투로 인해 진기를 상당히 소모했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입에 단내가 진동했다.

‘으윽.’

전투가 끝나자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남량은 휘청거리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 풍운검대 대주 양악이 달려가 남량을 부축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대원들에게 버럭 소리쳤다.

“뭘 구경하고 있느냐! 서둘러 뒤처리를 하지 않고!”

“네, 넵!”

멍하니 남량을 응시하던 대원들이 부랴부랴 움직였다.

양악은 남량의 안색을 살피고 그의 맥을 짚었다.

급한 대로 옷을 찢어 상처를 지혈한 다음, 남량의 몸을 안아 들어 올렸다.

“부장. 이곳의 지휘를 부탁한다.”

“허면 대주님께서는…….”

“이 젊은 도사를 의원에게 데려가야지.”

“알겠습니다.”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장으로 달려갔다.

양악은 남량을 말 등에 태우고 자신도 올라탔다.

허리를 묶어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시킨 뒤, 말에 박차를 가했다.

어두운 관도를 가르며, 양악이 남량에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금방 의원에게 보일 터이니.”

“…….”

남량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등을 통해 느껴지는 무게가 한없이 가벼웠다.

검 한 자루로 백 명의 자객을 벤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무게였다.

‘정말로 혼자서 백 명을 벤 것이라면, 이 얼마나 대단한 사내인가.’

‘서안 지부장의 목숨을 지킨 화산의 도사들’에 대해서는 양악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단순히 훌륭한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시체의 산 위에 홀로 서 있는 남량의 모습을 눈에 담는 순간, 몸에 전율이 흘렀다.

상대에게 유리한 지형에서, 그것도 기습과 합격에 능통한 자객들을 상대로 100 대 1의 혈투를 이겨 냈다.

절정과 일류의 격차를 감안하더라도 풍부한 전투 경험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 냉정함, 전장의 흐름을 꿰뚫는 지략이 없으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타고난 무재(武才)를 배제하고서라도 이 사내는 특별한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허무하게 죽어서는 안 된다.

강호에 다시금 혼란이 도래하는 이때.

훌륭한 젊은이들이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죽는다는 것은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살아라. 살아서 강해져라. 그래서 그 재능을 천하를 위해, 백성들을 위해 써 다오.’

“이랴!”

양악은 말의 속도를 높였다.

***

“으음…….”

남량은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코끝을 스치는 쓴 냄새를 보면, 의실인가.

아무래도 정신을 잃고 실려 온 모양이었다.

‘매화검투 때도 그렇고……. 꼴이 말이 아니군.’

명색이 천마인데 한심하기 짝이 없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와 가슴을 눌렀다.

고개를 돌리자, 젊은 의원이 있었다.

“일어나셨군요. 무리하지 마시고 일단 누워 있으시지요.”

“여긴 어디오?”

“무림맹 내에 위치한 미령전(靡寧殿)입니다. 기절한 채 풍운검대 양 대주님의 품에 안겨 오셨습니다.”

“……품에 안겨 왔다고?”

“일단, 맥을 좀 짚겠습니다.”

남량은 의원이 맥을 짚는 동안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 맥이 안정되었습니다. 외상도 심각한 편은 아니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

“밖에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들어오라 할까요?”

“아니. 돌려보내…….”

쾅-!

남량이 말을 채 내뱉기도 전에, 운휘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형님!”

운휘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남량을 덮칠 듯 달려왔다.

“형님, 내가 소식을 듣고 얼마나 걱정한 줄 압니까? 밤새 돌아가신 줄 알고- 컥!”

운휘는 머리에 화분을 얻어맞고 그대로 나뒹굴었다.

남량은 화분을 던진 손을 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재수 없으니까 그만 닥치렴.”

“하하!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쓰러진 운휘의 가슴팍을 사뿐히 지르밟으며 찬야가 들어왔다.

“몸은 좀 어때, 남 사제?”

“멀쩡해. 그쪽은 어땠어?”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무 일도 없었어. 아, 유라랑 위지혁은 죽어도 오기 싫다고 해서…….”

찬야는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그 대신에 다른 사람이 오셨네.”

남량이 고개를 돌리자 키가 크고 남자다운 인상의 사내가 들어오고 있었다.

검은 경장 차림에 장포를 입은 사내는 한눈에 봐도 초절정에 달하는 경지, 고수였다.

사내는 남량을 발견하고 머쓱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일어났군. 몸은 좀 괜찮은가?”

“누구?”

“이거 좀 억울한데? 밤새 자네를 안고 먼 길을 달려왔거늘.”

“아, 그럼…….”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풍운검대 대주 양악일세. 반갑네.”

남량은 자신의 앞에 앉은 양악을 향해 말했다.

“실례지만 제 검은 어디 있습니까?”

“자네 검이라면 내 집무실에 있네. 의실에는 무기를 들고 올 수가 없거든. 하하.”

양악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잠깐 보았는데도 아주 훌륭한 검이더군. 피를 잔뜩 먹어 녹이 슬지는 않을까 했는데 말이야. 지금은 잘 닦아 놨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그리고 검은 수하를 시켜서 가져오도록 이미 지시를 해 두었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남량이 물었다.

“놈들에 대한 단서는 찾았습니까?”

“자네 덕분에.”

고개를 끄덕인 양악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의문의 살수 집단……. 이제는 은영단이라 불러야겠군. 아무튼 그들의 목적은 예상대로 정파 내 주요 인물들의 암살이었네. 그리고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움직인 것도 확실해졌어.”

“누구의?”

“거기까지 알아냈다면 참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알 수 없었네. 그 대신, 놈들의 본거지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네. 총대주께서는 보고를 받은 즉시 동원 가능한 칠검대원들을 집결시켜 토벌 명령을 내리셨지. 이제 놈들을 일망타진할 일만 남았어.”

양악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이참에 은영단을 조종한 흑막까지 찾아 뿌리를 뽑아야 하겠지만 단서라고는 자객들의 손목에 있는 편익(片翼)의 문신뿐이니……. 답답하군.”

그 순간, 남량의 표정이 급변했다.

날카로운 살기를 느낀 양악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왜, 왜 그러나?”

“방금, 편익의 문신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네만.”

으득. 남량은 이를 부득 갈며 주먹을 쥐었다.

극렬한 분노로 머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편익(片翼). 한쪽 날개.

매화가 화산을, 월계화가 종남을 상징하듯 특정한 문양이 곧 집단이나 개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편익을 상징으로 삼는 자. 그자의 정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남량이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이 문양을.’

효초아(曉椒雅).

마교의 삼천위 중 하나이자 남량의 원수 중 한 명.

편익은 그의 등에 새겨진 문장이자, 그를 상징하는 문장이었다.

‘그렇다면 은영단에게 암살을 사주한 것이, 효초아란 말인가?’

남량은 이것이 우연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죽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놈들은 분명 마교를 손에 넣고 전쟁을 준비할 터. 그 전에 중원에 숨어들어 혼란을 일으키고자 하는 계획이라면…….’

남량의 머릿속에 한 가지 계책이 떠올랐다.

혼전계(混戰計). 혼수탁어(混水濁魚)의 계(計).

물을 흐리게 만든 다음, 물고기를 잡는다.

말 그대로 적진을 혼란에 빠트린 뒤, 공격하는 계책이다.

암살 등으로 무림이 혼란에 빠지면 그만큼 중원을 침공할 때 유리할 터.

‘모략(謀略)에 능한 효초아라면 충분히 할 법한 발상이다.’

허나 지금은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두 눈으로 직접 듣고 확인하는 수밖에.

‘그 답은 은영단에게서 얻어 내야겠지.’

마음을 정한 남량이 눈을 빛냈다.

“자네, 괜찮은가?”

양악이 걱정스레 묻자, 남량이 말했다.

“토벌은 언제 시작됩니까?”

“굳이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지. 바로 오늘 밤일세.”

“오늘 밤이라…….”

양악은 남량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자네는 이제 걱정 말고 치료에 집중하게. 나머지는 우리가 할 것이니.”

“…….”

“그럼, 다녀와서 보세.”

“잠깐만, 대주님.”

남량은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일세.”

양악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량이 말했다.

“은영단의 본거지, 그곳이 어딥니까?”

“그럼 쉬고 있게.”

드륵.

양악이 의실을 나서자, 남량은 의원을 불렀다.

“퇴실하겠소.”

“네. 하지만 당분간 조심하셔야 합니다.”

남량은 의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도복을 걸치고 의실을 나왔다.

마침 그곳에 도착한 맹의 대원이 남량을 불렀다.

“남량 도사? 마침 잘되었군요. 대주님께서 검을 가져다 드리라고 하셔서…….”

“고맙소.”

빼앗듯 화양검을 넘겨받은 남량은 어디론가 달려갔다.

멀뚱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대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많이 바쁘신가?’

***

밤이 깊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을 듯 깊숙한 심산유곡에 검은 복면을 쓴 무리들이 집결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무림맹의 전투 조직, 칠검대.

풍운검대를 필두로 한 3개 분대의 대원들이 은영단의 본거지를 치기 위해 도착한 것이다.

대원들은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숲에 몸을 감추고 성곽으로 접근했다.

성곽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은영단의 단원은 수상한 기척을 느끼고 중얼거렸다.

“짐승이라도 지나가나?”

그가 성곽 아래로 고개를 내민 순간.

스걱-.

머리가 잘린 보초가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성벽을 타고 올라온 대원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추풍(秋風)검대는 보초와 궁수를 처리하고 동풍(凍風)검대는 퇴로를 차단, 풍운검대는 그대로 진입한다.”

“존명.”

파파팟!

양악의 명령에 대원들이 빠르게 산개하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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