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은영단(隱映團)(5)
콰앙!
한 차례 폭음이 일었다.
남량이 검기를 바닥에 내려찍어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그로 인해 흙먼지가 자욱이 퍼졌고, 자연히 적들의 시야를 가렸다.
‘다수를 상대할 때는 적들의 시야를 혼동하게 하라.’
남량의 풍부한 전투 경험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푹, 촤아악!
남량은 흙먼지를 뚫고 당황하는 적들 서넛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퍼억!
등 뒤에서 달려드는 적은 검집으로 막아 시간을 벌고.
촤악!
그사이에 앞에 선 적의 목을 베어 죽인 다음.
휘릭- 서걱!
몸을 빙글 돌리며 등 뒤의 적을 마저 처리했다.
그 과정이 마치 경극의 한 장면처럼 자연스러웠다.
“포위하라!”
자객들은 남량을 둘러싸고 동시에 칼을 찔러 왔다.
그 순간, 남량이 바닥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았다.
그는 건물 지붕에 앉아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촤라락-! 콰득!
자객들이 날린 사슬낫이 지붕을 부수었다.
바닥에 떨어진 남량에게 자객들이 달려들었다.
휘릭, 파파팟!
남량은 적들의 사이로 파고들며 현란하게 칼을 휘둘렀다.
“크윽!”
“크아악!”
자객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붉은 핏물이 꽃잎처럼 흩날렸다.
“낙영용섬(落英龍閃). 옥녀유영(玉女遊泳). 매농낙화(賣弄落花)…….”
푹, 푸슉! 파아앗!
매화천수검의 초식이 끊임없이 흐르며 쉴 틈 없이 적들을 베고 또 베었다.
어느새 남량의 검에 쓰러진 자객들의 숫자가 이십 명을 넘어섰다.
‘3보 앞, 목을 노리는 검 하나.’
‘4보 뒤. 다리를 노리는 창 하나.’
‘5보 옆. 각각 좌우에서 허리를 노리는 도(刀).’
눈으로 보기 전 기척과 소리만으로 어디서 공격이 들어올지 예측하고-.
‘반 호흡 먼저 검을 찌르고.’
‘공중으로 회피하여 공격을 피하며.’
‘회전하며 착지와 동시에 나머지를…….’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최적의 판단을 머릿속으로 계산하여 실행에 옮겼다.
촤아악-!
남량의 검이 번득이고 자객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야말로 전신(戰神).
평생을 죽음의 경계 속에서 살아온 남자의 싸움이었다.
퍽, 퍼퍼퍽! 촤악!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자객들은 격정으로 몸을 떨었다.
‘강하다. 저 젊은 나이에 어떻게 저런…….’
‘흉신악살(凶神惡煞)이 따로 없구나!’
‘저걸 어떻게 당해 내?’
실로 100 대 1이라는 압도적인 전력 차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자객들은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작전을 달리했다.
파파팟!
그들이 근접전을 포기하고 떨어지자 남량의 주변은 금세 텅텅 비어 버렸다.
그리고 멀리서 남량을 향해 암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휘릭- 쇄애액!
‘암기인가.’
남량은 구르듯 바닥에 몸을 날려 암기를 피해 냈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벽 뒤로 몸을 숨겼다.
그 와중에 미처 피하지 못한 암기가 몸에 박혀 있었다.
남량은 몸에 박힌 암기를 뽑아내며 거칠게 숨을 쉬었다.
“후욱. 후욱…….”
얼마나 움직였다고 벌써 숨이 찬단 말인가.
그동안 쉬지 않고 체력을 갈고닦았건만.
역시 타고난 신체의 부족함은 어쩔 수 없는 걸까.
남량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전부 쓸데없는 변명일 뿐이야.’
‘전장에서는 아무도 사정을 봐주지 않아.’
‘너도 알고 있잖아. 죽음 앞에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그래.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자.
싸움에만, 오직 싸움에만 집중하는 거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경험도 오랜만이지 않은가.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싸움을 하는 것이.
실로 피가 끓어오르는 싸움이다.
남량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두두두두두!
바로 그때, 건물 입구로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남량은 몸을 웅크리며 화살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쉴 틈도 없이 이번에는 폭탄이 굴러 들어왔다.
콰아앙!
남량이 있던 건물이 폭발하며 매캐한 먼지가 피어올랐다.
후욱-.
남량은 연기를 뚫고 자객들에게 달려들었다.
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허공을 갈랐다.
푹, 푸화악!
또다시 남량의 무자비한 칼춤이 시작되었다.
몇 명이 남량을 가까이서 막는 동안, 멀리 있던 자객들이 암기를 날렸다.
동료를 공격하더라도 남량을 붙잡고 말겠다는 의지였다.
채채챙!
남량은 날아드는 남기를 피하거나 쳐 냈다.
그사이, 지척으로 접근한 자객들이 검을 내질렀다.
점차 손발이 다급해졌다. 몸에 베이는 상처가 늘었다.
심지어 급한 대로 입으로 검을 물어 막기까지 했다.
‘전투에서 밀리고 있을 땐 전황을 뒤집을 한 수(手)가 필요하다.’
채채채챙!
남량은 이를 악물고 날아드는 검과 암기를 모두 튕겨 내고, 검에 내력을 일시에 집중시켰다.
“매화천수검 8초식-.”
본래 매화천수검의 초식들은 1대1의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7초식부터 9초식까지의 초식들은 검격이 닿는 범위가 넓어 한 사람보다 다수를 상대할 때 유용했다.
‘그만큼 내력의 소모가 커서 사용하기 꺼려지지만, 지금 당장은 한 수가 필요하니까…….’
『매화천수검의 8초식, 단천열화(斷天熱火)는 폭렬하는 참격. 한 번 검을 휘두르면 섬광과 충격파를 동반하며 주변은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하게 된다. 말 그대로 일검백살(一劍百殺)의 초식.』
콰콰콰콰콱-!
남량이 검을 크게 휘두르자 날카로운 검기가 전방위로 터져 나오며 주변에 있는 자객들을 수십 조각으로 도륙 냈다.
“크아악!”
남량은 자객들의 핏물을 한껏 뒤집어쓰며 무릎을 꿇고 거친 숨을 토해 냈다.
‘빌어먹을…….’
촤라락!
바로 그때, 뒤에서 날아든 사슬이 남량의 목을 휘감았다.
지쳐 있던 남량은 차마 피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남량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이다!”
파파파팟!
자객들이 이를 악물고 남량을 향해 짓쳐 들었다.
남량은 한 손으로 사슬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를 자세를 취했다.
“매화천수검 7초식-.”
“막아! 저 악랄한 검술을-.”
자객들은 재빨리 몸을 날렸으나 남량의 무시무시한 검속(劍速)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매화천수검의 7초식, 유성추월(流星追月)은 몰아치는 참격의 폭풍. 솟구치는 바람은 곧 칼날이 되어 휘말린 적들을 갈가리 찢어 버린다.』
남량은 왼발을 축으로 몸을 빙글 돌리며 원심력을 이용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남량을 중심으로 한 차례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휘오오오-!
소용돌이에 휘말린 자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잘려 나간 육신의 절단면에서 흘러내린 피가 혈우(血雨)가 되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후두두둑-.
어느새 남량의 주변에는 자객들의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지독한 혈향(血香)이 후각을 마비시키고, 오직 희미한 비명 소리만이 들려왔다.
남은 자객은 이제 대략 스무 명.
남량은 일다경도 안 된 시간 동안, 홀로 팔십 명에 달하는 자객을 도륙 낸 것이다.
“으으으…….”
“저 괴물 같은 놈…….”
“저놈은 악마다, 악마야!”
오랜만에 듣는 소리였다. 괴물, 그리고 악마.
피부를 덮은 진득한 핏물도, 비릿한 혈향도.
살과 근육을 베는 감촉도, 적들의 비명 소리도.
모든 게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 같은 놈이 어떻게 도사란 말이냐!”
한 자객의 외침에, 남량이 대답했다.
“네 눈에는 내가 지금, 도사로 보이느냐?”
“……!”
남량은 손등으로 눈가의 피를 닦아 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두려움에 가득 찬 자객들을 향해 말했다.
“무엇이 두려운가. 목숨을 빼앗긴다는 것이 두려우냐?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는 너희들이? 대단히 모순적이로군.”
“…….”
“이 무정강호에서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참으로 단순해서 좋지 않은가?”
“으, 으아아-!”
한 자객이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촤악!
그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린 남량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허나, 과연 아침이 오기 전까지 몇이나 살아남아 있을까?”
남량은 검을 고쳐 잡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오라.”
***
남량이 허창 근처의 마을에서 가면의 암살 집단과 격돌했다는 소식은, 뒤늦게 맹에 알려졌다.
보고를 받은 무림맹의 총대주 고위영(高委英)은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부대로 하여금 남량을 구원하게 했다.
두두두두-!
한밤중에 관도를 가로지르는 일단의 무리.
그들은 무림맹의 7대 무력 부대 중 한 곳인, 풍운검대(風雲劍隊)였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자는 무림맹의 고수 중 한 명인 풍운검대의 대주, 양악(梁岳)이었다.
“양 대주. 상황이 어떨까요?”
부장의 물음에, 양악이 침음을 삼켰다.
“겨우 일대제자 한 명일세. 적들은 최소 수십 명에 달할 테고.”
“그럼…….”
“안타깝지만 희망은 없어.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가서 놈들의 흔적을 조사해야만 해.”
“네…….”
부장은 씁쓸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마을에 도착한 부대원들은 코를 찌르는 혈향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마을 거리로 들어서자, 눈앞에 펼쳐진 참상(慘狀)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다니.”
수십 명이 넘는 자객들이 처참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전투의 흔적으로 보아 다수의 인원이 소수의 적을 상대로 싸운 듯한데……. 거기다 온전치 못한, 팔다리만 남아 있는 시체들도 즐비하다……. 이들은 대체 누구와 싸운 것이란 말인가?’
“마치 수라도(修羅島)를 보는 것 같군요.”
부장 역시 충격을 금치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어두운 골목 속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을 핏물로 뒤덮은, 검 한 자루를 든 젊은 도사였다.
풍운검대 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대는……?”
양악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남량.”
남량이 말했다.
“화산의 도사, 남량이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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