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43화
부유섬 내부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장막의 표면을 부수기 위해 파리 떼처럼 달라붙어 타신편을 두들기는 태공망들.
그리고 그렇게 생긴 균열로 내부에 침입한 소형 괴이체들.
그로 인해 수많은 건물과 구조물들이 파괴되고 있었다.
게다가 그뿐만 아니라 고대신과 괴이체들에 의해 오염되어 유독 가스처럼 변해버린 지구 대기가 안쪽으로 흘러들어 왔다.
조금만 더 지나면 이 안쪽마저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인지대로 변할 지경이다.
‘우선 방어부터!’
그런 상황에서 난 악의의 대전당에 포함된 무구 몇 자루를 움직여 장막 바깥쪽에 들러붙어 있는 가짜 태공망들을 모조리 참수시켰다.
그러고는 레아의 피를 뿜어내 장막 뚫린 구멍을 막았다.
조금 있으면 아직 상공에서 여기까지 도달하지 않은 가짜 태공망들이 또 달라붙어 이걸 깨뜨리려 할 테지만, 이로써 당분간은 내부와 외부가 확실하게 차단될 것이다.
‘다음은 괴이체들.’
나는 흑검을 들고서 내부로 침입한 괴이체들을 베어냈다.
이 안에서는 악의의 대전당으로 사용하는 거대 무구들을 쓸 수 없다.
그것들은 움직이기만 해도 살인적인 후폭풍을 일으켜 사람들을 몰살시킬 테니 말이다.
대신 나는 달 그림자 검식의 예리한 일점타격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아군과 적을 철저히 구분하며 참격을 날렸다.
‘만월청영.’
피잉!
일섬 백연참.
100번의 참격이 한순간의 호흡에 욱여넣어져 적을 가른다.
장막 내부의 온 사방에 퍼진 괴이체들은 단번에 두 동강이 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개중에는 일전에 만났던 인간 지네처럼 평범한 공격으로는 죽지 않는 특수 개체들도 있었지만, 흑검에 발라놓은 레아의 피로 인해 참살에 예외는 없었다.
‘유메미는…….’
그렇게 현재 가장 위험해 보이는 것들을 모두 제거한 후, 유메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땅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한 민간인에게 업혀 정박되어 있는 블러드 코팅된 함선 안쪽으로 실려 가고 있다.
장막 내부에 적이 침입했으니 함선 안으로 대피해 최대한 방어 성능을 누리려는 것이다.
최윤아는 그렇게 대피하는 이들을 지켜주고 있다.
타타타탕!
“피난이 거의 끝났습니다! 저희만 탑승하면 됩니다!”
“함선을 띄워요!”
“지, 지금 말씀입니까?”
“내가 막고 있을 테니까, 얼른!”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신은…….”
“저 위를 봐요!”
그녀가 날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 왔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최윤아는 나를 보며 웃었다.
정말로 안심했다는 표정.
그 옆에서 그녀를 재촉하던 남자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이잉!
곧 민간인들을 태운 함선은 엔진을 가동해 하늘로 떠올랐고, 저고도 비행을 유지하며 섬 중앙의 협곡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적 공격에 대한 노출을 최대한 줄이며 농성을 하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그 광경을 확인한 난 곧바로 최윤아가 있는 곁으로 날아갔다.
“어떻게 된 거야?”
“뭐가요?”
콰드드득!
그녀가 손을 휘두르자, 이번엔 바닥에서 대량의 나뭇가지들이 솟아올라 괴이체들을 붙잡았다.
“네가 저런 마법을 쓸 수 있는 줄은 몰랐는데.”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다.
최윤아가 권능을 사용해 괴이체를 상대하다니.
그녀가 사용하는 권능이 그렇게 강할 리가 없다.
어디까지나 총기라는 도구의 힘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격술이 그녀의 본질.
하지만 지금 최윤아는 순수한 자신의 힘만으로 유메미조차 전면전으로는 상대 불가능한 괴이체와 싸우고 있다.
기존의 자신을 뛰어넘는 초월에 다다랐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갑자기 이렇게 됐어요. 뭔가 이상한 기억이 제 안으로 들어오면서.”
“이상한 기억?”
그러고 보니, 그녀의 주변에 접근하자 호흡이 상당히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태껏 우주 공간이나 독성 오염 대기로 가득 차 있던 외부에서만 활동한 덕에 그 체감은 더욱 컸다.
애초에 붉은 장막 내부의 공기가 맑은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은 그 장막이 깨진 상태.
저 균열로 흘러들어 온 건 비단 괴이체들뿐만이 아니라 바로 그 유독성 대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이 주변은 무수히 많은 고대신들이 아델 및 함선들과 싸우던 전장이었다.
당연히 부유섬 내부의 인원들은, 그들이 내뿜는 공포 에너지에 노출되어 진작 모두 미쳐버렸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까 전엔 어느 누구도 그렇게 되는 일 없이, 모두 멀쩡히 함선 안으로 대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아야, 너 설마…….”
“아마도 맞을 거예요. 생각하시는 거.”
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내 머릿속으로 그녀의 기억들이 흘러들어 온다.
동시에 영혼이 공명했다.
아델, 레아, 유메미 때와 같이.
그리고 그와 동시에 ‘흘러들어왔다던 기억’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부바네슈바리.’
그것이 최윤아의 전생의 신격의 이름.
시바의 아내인 마하비드야의 다섯 번째 화신이자.
대지와 생명의 여신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이 외부의 모든 유해한 기운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그녀의 정화 능력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결국 너도…….’
피잉!
나는 그 자리에서 검을 휘둘러 무수한 만월청영의 참격을 뱉어냈다.
그로써 그녀가 나뭇가지로 엮어낸 괴이체 잔당들을 한꺼번에 베었다.
“어쨌든 이걸로…… 장막 내부의 적들은 대강 마무리한 것 같네요.”
그걸 본 최윤아가 이마에 고인 땀을 닦아내며 숨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코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너무 무리한 거 아니야?”
“아……. 좀 어지럽긴 한데.”
“그렇게 권능을 펑펑 써대니 몸이 축날 법도 하지.”
“어차피 그렇게 안 했으면 모두 죽었을 거예요.”
자세히 보니, 그녀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몸이 망가져 있었다.
갓 신격을 각성한 터라 힘 조절을 제대로 못 했던 모양.
하지만 그 말대로,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깎아냈기에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난 그런 최윤아의 팔을 붙잡아 부축해 주었다.
“……고마워요.”
“지금은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안에 숨어 있어. 내가 전부 끝내고 올 테니까.”
그러고는 그 상태로 함선이 숨기 위해 이동했던 섬 중앙의 협곡으로 날아갔다.
영지 관리 시스템을 조작하는 중앙의 내성.
그 옆에 아까 전에 대피한 함선 한 척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전부 끝……. 이제 정말 다 끝난 건가요? 이 전쟁이?”
날아가던 도중,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도.”
난 거기에 명확한 답을 줄 수 없었다.
최윤아는 그 모호한 대답을 듣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 남은 적이 무엇인지는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터였다.
그래서 난 다른 내용으로 화제를 돌렸다.
“유메미는…… 괴이체에게 당한 건가?”
“네.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녀석에게…… 등을 찔렸어요.”
아까 전 내가 보았던 유메미의 기억.
그건 최윤아가 그녀를 총으로 쏜 게 아니라, 그녀의 뒤에서 나타난 괴이체를 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그 순간에 자신도 괴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부바네슈바리로 각성해서 권능을 사용했던 것이고 말이다.
“상태…… 많이 심각해?”
“……당한 곳이 좋지 않아요. 마력 원천이 파괴되어 버려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군.”
언뜻 보기에도 유메미의 상처는 매우 깊어 보였다.
물론 그녀 역시 아델이나 레아보다는 미약하지만 나로부터 별 불꽃을 이어받았기에 초재생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괴이체는 단순한 물리공격 이상의 공격을 구사하는 개체들.
최윤아의 말에 따르면, 그 공격이 재수 없게도 마력원천을 파괴해 버리고 만 모양이었다.
덕분에 그 안에 들어 있을 별 불꽃도 함께 유출되었을 터였고.
애초에 마력 원천이 심장 부근이니만큼, 상처 자체가 치명상일 것이다.
설령 치료를 받는다고 한들 유메미가 살아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태공망…… 죽어서도…… 개자식.”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놈은 나에게 죽었는데도, 놈의 망령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게다가 이다음에 남아 있는 건…….
“……후.”
나는 그쯤에서 생각을 멈췄다.
미리 앞으로의 일을 걱정해 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그저 상황을 정리하고 최대한 빨리 아군의 피해를 수습해야 할 뿐.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난 최윤아를 내성에 내려주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부유섬 바깥에 있는 잔존 고대신들 사이로, 힘껏 뛰어들었다.
* * *
“아델! 아델!”
“으아아아!”
아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치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아…… 하아…….”
쏴아아아.
그녀가 창문을 통해 굵은 비가 내리는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꿈? 전부…….”
“꿈 아니야. 그거 다 현실이야.”
“네에!?”
아델이 새삼스럽게 화들짝 놀란다.
칼리의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행한 일들을 꿈처럼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용케 정신줄을 붙잡고 아군은 보호하며 적만 공격했던 것이다.
그게 아델의 정신력이 대단한 덕분인 건지, 아니면 칼리의 신격이 이젠 피아를 구분할 정도가 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다 끝났어. 그 끔찍한 괴물 신들은 전부 죽었으니까.”
“아…….”
난 그녀에게 다시금 이 전쟁의 승자가 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건 새삼 나 자신이 실감하기 위한 말이기도 했다.
그래.
우리가 달성해 낸 업적에 대한 실감을 말이다.
“산하사직도로 만들어진 가짜 태공망들의 분신들은 물론이고, 하늘을 뒤덮은 고대신들, 그리고 땅에서 기어 올라온 괴이체들까지. 전부 해치웠어. 네가 끝까지 버티면서 고대신들을 베어준 덕에 부유섬 균열로 파고든 괴이체는 소수로 그칠 수 있었지. 덕분에 윤아가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었고. 정말 수고했어.”
아델의 검은 불멸의 존재인 고대신들을 완전히 죽일 수 없었다.
그녀를 지원하는 블러드 코팅 함선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올 때까지, 가망 없는 싸움에서 버티고 또 버텼다.
달려들면 받아치고, 재생하면 다시 베고, 접근하는 것들은 끝까지 저지했다.
스스로를 칼리의 광기에 몰아넣어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위험마저 무릅쓰며.
그 덕에 뒤늦게 도착한 나는 부유섬 내부의 사람들을 모두 구하고 바깥에 있는 적들까지 전부 물리칠 수 있었다.
아델도, 최윤아도.
모두가 필사적으로 분투해 준 덕분이었다.
“그, 그럼…… 우린 정말 살아남은 건가요? 다시는…… 그것들과 싸우지 않아도 되나요?”
“응.”
나는 그녀에게 확신에 찬 대답을 건넸다.
물론 아직 지상에는 수많은 괴이체들과 마물들이 여전히 기어 다니고 있다.
전투로 인해 지상은 거의 산산조각 났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부서졌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오직 부유섬, 이 좁은 영역뿐이다.
그럼에도 난 아델에게 전부 끝났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다.
“아델.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
“나 같은 사람 만나서. 괜히 따라오겠답시고 프리드웬에 타서 동생과 생이별을 하고.”
“네. 진짜…… 많이 힘들었어요.”
와락.
침대에 몸을 일으켜 앉은 그녀는 나를 껴안았다.
그동안 보여준 적 없는, 어리광을 부리는 듯한 모습.
한결같이 단단하기만 하던, 무사로서의 모습만 보여주던 그녀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내면엔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연약한 속마음이 있었음에도 그걸 단단한 껍질로 꽁꽁 감싸 여태껏 숨겨온 것이다.
“죽도록…… 힘들었어요.”
피부를 통해 아델의 몸 상태가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져 온다.
불꽃은 식어 있었다.
칼리의 광기에 휩싸여 싸우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소진했다.
이제 더 이상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는 그럴 필요도 없을 테지만.
“미안해. 너는 내가 아니었으면 그 많은 수모를 겪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
“대장님이 아니면…… 어차피 제 삶은 없었던걸요.”
어깨 위로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호칭으로 나를 불렀다.
“이전의 삶에서…… 그때 대장님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전 오크들에게 둘러싸여 죽었을 거예요. ……그리고 두 번째의 삶에선 알포드 성 안에서 평생 하층민으로 살았을 거고요.”
“기억이…… 돌아왔구나.”
모나의 기억.
이 모든 일들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던.
내가 최초로 신살의 힘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던 그녀의 전생이.
다시 돌고 돌아 아델의 몸으로 되돌아왔다.
“고마워요. 대장.”
그 후로 난 말없이 그녀가 한동안 나를 안고 있게끔 했다.
내 옷깃을 움켜쥐고서 놓지 않는 그녀를 위해, 난 잠시 동안 기다려 주었다.
꽤 오랫동안.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아델이 그렇게 보여준 적 없는 약한 모습까지 보이며 나를 붙잡은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이제 우린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침내.
그렇게 모든 정리를 마친 후.
-우리가 동등한 높이에서 마주볼 수 있게 되었군.
난 혼돈과 대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