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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44화 (344/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44화

쏴아아아.

괴이체들이 짓밟고 간 대지 위에 비가 내린다.

그러자 황폐화되어 사막처럼 변해버린 땅에서 녹음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법처럼 새 생명들이 급속하게 자라갔다.

죽음밖에 남지 않았던 세상에, 새 생명이 잉태된 것이다.

“이것 봐! 밭에 다시 새싹이 자라고 있어!”

“살았다. 이대로 꼼짝없이 말라 죽는 줄 알았는데…….”

전투가 끝난 후, 부유섬의 영지 관리 시스템은 거짓말처럼 정지하고 말았다.

게다가 파괴된 환경 때문에 농사는 고사하고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워진 상황.

그러나 보다시피, 최윤아가 각성한 자신의 신격의 권능을 사용해 붕괴한 섬의 자연환경을 되살려냈다.

그 빗줄기 아래에서 사람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환경을 살리다 보면, ……하아. 언젠가 이 섬 안뿐만이 아니라…… 바깥도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오게 만들 수 있겠죠? ……헥.”

권능 사용 후 지친 최윤아가 숨을 헐떡이며 아델에게 물었다.

“……아마도.”

“아델 씨의 몸도 곧 좋아질 거예요. 섬 바깥으로 같이 놀러 가요. 라이진 씨가 말하기로는 밖에도 위협요소가 없다고 했으니까, 환경 정화만 한다면 괜찮을 거예요.”

아델은 목발을 짚고 있었다.

모든 힘을 소진하면서 싸운 탓에, 전투 중에 입었던 부상도 치유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몸이 되고 말았다.

“그러죠.”

“……헤헷.”

최윤아는 아델의 무뚝뚝한 단답에 괜스레 무안해하며 다시 숨을 가다듬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부유섬의 또 다른 영역에도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권능을 사용하려 했다.

턱.

아델은 그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조금만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무리했어요.”

“……하지만…….”

“이 정도면 지금 살아남은 인원들이 자급자족하기에 충분한 면적이에요. 아직 비축해 둔 식량도 꽤 남아 있고.”

살아남은 인류의 숫자는 아몬 휘하의 함대 병력까지 합쳐 채 천 명에 못 미치는 정도.

그게 지상에 남은 필멸자의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사실 사람이 살기에는 부유섬 부지 정도의 면적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니까 이젠 들어가서 쉬어요.”

“하지만 아델 씨도…….”

그러나 최윤아는 여전히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레아 씨도…… 유메미 씨도……. 다 자기 자신을 그렇게 희생해 가며 싸웠잖아요. 저만 안에서 편하게, 안전하게 보호받았고…….”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윤아 씨도 충분히 고생했어요.”

“그래도요. 저도 제가 가진 걸 사용해서라도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제 몸을 깎아내서라도. 유메미 씨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젠 신우 오빠도 없는데…….”

그녀의 입에서 유신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아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죄송해요.”

“그러니까 더 조심하라고요.”

“네?”

“대장님도 없고, 저도, 유메미 씨도 다 힘을 잃었어요. 심지어 각성자들이 가지고 있던 수호령마저 사라졌죠.”

유신우가 모습을 감췄던 날, 영지 관리 시스템과 함께 각성자들의 수호령도 함께 사라졌다.

이제는 이 세상에서 최윤아만이, 거의 유일무이한 ‘권능’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까지 힘을 잃거나 죽기라도 하면…… 우린 가망이 없는 거라고요.”

“……아.”

“그러니 더더욱 자신을 아끼세요. 희생은…… 살아서도 할 수 있는 거니까. 평생을 걸쳐서라도.”

“……미안해요. 괜히 심란하게 만들어서.”

“그냥 걱정돼서 그랬던 것뿐입니다. 들어가시죠.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까.”

“네.”

두 사람은 함께 새싹이 자라난 풀밭 위로 나란히 서서 걸었다.

저 멀리 섬 안의 생존자들이 남아 있는 물자들로 간신히 세운 임시 천막들이 보인다.

“누나! 여기예요!”

그때, 그 둘을 향해 저쪽에서 한 남자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천막 사이에서 자기 몸집만 한 물자를 낑낑거리며 옮기고 있는 그 소년은 야드가르였다.

겁에 잔뜩 질려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던 처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환하게 웃으며 종이 다른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대장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저 아이가 잘 크도록 지키는 거겠죠.”

아델은 그런 야드가르를 보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모나 누나!”

“이리 줘. 누나가 들어줄게.”

소년은 아델을 전생의 이름으로 불렀다.

아델은 소년을 예전처럼 대했다.

긴 시간을 건너 다시 서로가 소중한 사람을 잃고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된 지금.

아델도, 야드가르도, 기댈 수 있는 건 주변 사람들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평생을 바쳐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면.’

최윤아는 그 두 사람을 보며 아델이 했던 말을 다시금 곱씹었다.

자신의 손에서 피어오르는 생명의 기운을 쳐다보았다.

* * *

그는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채로, 심연 속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혼돈.

마침내 그의 실체와 직접 대면하게 된 것이다.

“기다렸다. 네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를.”

모든 전투가 끝난 직후, 혼돈은 곧바로 나와 대면하기 위해 나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끌어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거의 강제로 끌려오다시피 한 상태였다.

태공망이 모종의 방법으로 그를 우주와 끊어냈다고 한 건 그만의 착각이었을 뿐.

실은 처음부터 자신이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었음에도 그저 그가 나와 전투하는 걸 지켜본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젠 뭘 할 생각이지?”

“이미 들었지 않나? 태공망에게.”

“날 이 우주의 질서로 세운다는 얘기?”

“그래.”

난 태연하게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아니, 혼돈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의문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내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왜 난 그 많은 사람들을 잃어야 했던 거지? 어차피 그럴 거면 처음부터, 싸움 같은 건 할 필요도 없이 나를 네놈이 원하는 대로 만들었으면 되는 거 아니었나?”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답이었다.”

“뭐?”

“네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잃고,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 그게 다 필요해서 일어났다는 뜻이다.”

혼돈은 그런 내 질문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대체 왜…….”

“말해줄까? 왜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건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나 희생되었어야 하는지.

“내 손을 잡아라.”

그러자 혼돈은 내게 손을 뻗었다.

그 손에 어떤 악의가 담겨 있지는 않았다.

이제 와서 나를 속이진 않을 것이다.

애초에 이 녀석에겐 그럴 이유도 없고 말이다.

덥석.

“모든 것을 보여주마.”

그 순간,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부터 나는 이미 이 발판 없는 심연 속에서 허공에 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였지만, 그 느낌은 단순히 날아오르는 것 이상.

나라는 존재의 질량이 사라지고, 거대한 정신체의 일부로 스며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게 뭐지?”

“나의 의식과 기억이 너에게로 전해지는 것이다.”

“의식과 기억……? 큭.”

화아악.

잠시 후 내 눈앞엔 우주가 펼쳐졌다.

새까만 무의 공간에서 하얀 별들이 반짝이는 광활한 세상으로.

그 가운데, 별 사이를 오가는 무수히 많은 우주선들이 보였다.

“이건…….”

“나의, 아니, 우리의 예전 모습이다.”

“인간?”

“그래. 우리도 너희와 같았지. 아니, 명확히 말하자면 너희가 바로 우리를 본 따 만들어진 존재야.”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지적 생명체.

혼돈의 기억 속에 들어 있는 그의 과거 모습은, 기술의 수준이 훨씬 더 발달해 성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우리와 그리 다를 바가 없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맞아. 이건 너희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 기억은 우리 문명의 극히 초반부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니 말이다.”

혼돈은 거기서 시간을 빠르게 돌렸다.

그러자 인류의 생활반경이 커지며 시야의 범위도 넓어졌다.

그렇게 끊임없이 넓어져 가다, 다시 시간이 원래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한 시점의 인류 생활반경 최대 영역은 은하.

별 하나를 광석 한 조각처럼 간단히 옮기며 재료와 에너지를 뽑아내고, 인간은 육체의 수명에 구애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몸을 옮겨 다니며 사는 세상이었다.

“문명의 발전은 우리에게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었지. 한계라 여겨졌던 장애물들은 보란 듯이 격파되었고, 사람들이 걱정하던 기술 발전으로 인한 폐해 따위는 더 높은 차원의 기술력으로 해결되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의 흐름이 빨라진다.

이젠 인류의 생활반경이 하나의 은하를 넘어 다른 은하로, 그리고 은하단으로, 초은하단으로 커져간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우주선을 타고 다니지 않았다.

더 이상 별을 분해해 재료와 에너지를 얻지도 않았다.

육신을 벗어나 순수한 정신체로서, 시공간의 제약을 마음대로 뛰어넘어 우주 전역을 자유롭게 누볐다.

이때의 인류는 지식을 쌓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었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현실을 변동시키는, 초과학을 넘어 초마법을 구현한 존재가 되었다.

이미 이들에게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절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단 하나의 난제가 있었다.”

“그게 뭐지?”

“엔트로피의 역전.”

곧 정신체로 존재하던 모든 인류는 하나로 합쳐져 군체 의식이 되었다.

그로써 각 개인이 긴 시간 동안 자유롭게 우주를 떠돌며 발견하고 획득한 지식들은, 단순히 서로 교류하는 것을 넘어서 완벽한 하나의 정신 속에 합쳐졌다.

문명의 수준은 그 안에서 다시 한번 더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제 이들은 신이라는 개념으로 형용하는 것조차 한참 모자란 수준의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 무렵, 무수한 별들로 반짝이던 우주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검은 공간이 되어 있었다.

혼돈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 심연과 별다른 바 없는 세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발전을 거듭해 한계를 뛰어넘는다 하더라도, 우주의 영원한 소멸은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구분은 희미해지고, 세상은 끊임없이 밖으로, 밖으로 발산해 나가기만 한다.

“너희는 시간조차 뛰어넘을 수 있지 않나? 시간을 되돌린다면…….”

“엔트로피의 증가는 시간을 되돌리는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행위 그 자체도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예 바깥 세계로 눈을 돌린 건가.”

“바로 그거다.”

이윽고 인류는 자신들의 고향 우주가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우주를 찾기 시작했다.

물론 외부 세계에 닿기 위한 지식은 군체 의식으로 합쳐지기 이전부터 있었다.

다만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곳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게 불가능할 뿐.

이들의 고향 우주가 그런 꼴이 될 때까지 벗어나지 못한 건, 그런 불가항력 때문이었다.

“우린 고향을 벗어날 수 없는 몸이기에, 우리의 고향을 바꿔야만 했다. 엔트로피가 역전될 수 있는 세계가 되도록. 그래서 다른 우주에 손을 뻗어 그곳에서 답을 찾아내려 했다.”

곧 혼돈은 답을 찾기 위한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모든 것이 사라져 심연이 된 원래 세계가 아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수한 지식들을 얻을 수 있는 초창기의 우주를 대상으로.

어떤 곳에선 우주 전체를 양자 수준으로 분해해 버리는 거대한 규모의 실험을 하기도 했고.

어떤 곳에선 극한의 미시세계 내부에서 물질의 구조와 에너지를 파헤치고 뒤바꿔 놓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몇몇 곳에는 자신과 닮은 존재인, 인류의 씨앗을 뿌리기도 했다.

“그게 아후라 마즈다……. 그 역시 당신들이 만든 거였군.”

“그래. 무수히 많은 우주로 퍼뜨린 초기 인류의 씨앗들. 그중 하나가 바로 너다.”

“우린 그야말로 먼지보다도 못할 만큼 미미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군.”

“그리고 우리가 찾던 해답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존재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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