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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00화 (300/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00화

제도 예루살렘은 넓게 펼쳐진 평원 위에 세워진 거대한 성이었다.

이 시대의 발전된 기술과는 조금 동떨어진 형태의, 그러나 그런 기술력조차 초월했다고 보일 규모의 대도시.

성벽은 마치 자로 잰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일자로 세워져 있다.

그렇게, 지평선 너머 저 먼 곳, 나와 유메미의 초월적인 감각 능력으로도 닿지 않을 만큼 먼 거리까지 뻗어 있다.

이 자체로 가히 하나의 국가라고 해도 될 만큼 거대한 크기의 위용을 자랑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드넓은 성벽의 둘레로, 무수히 많은 수의 마병과 악마들이 순찰을 돌며 접근하는 모든 마물들을 무찔렀다.

그로 인해 허가되지 않은 적성 세력의 접근은 원천차단되었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한참 동안 마력 감각에 집중하며 경계의 빈틈을 찾아내던 유메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광범위한 영역내에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감지해 내는 그녀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물샐틈없는 수비가 갖춰져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대로 정말 마병들은 마치 하나의 세포 조직처럼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들키지 않고 들어갈 수 없다면 한 지점을 무력 돌파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델이 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그러자 유메미는 더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안 돼요. 그렇게 했다간 우리 위치가 모든 마병들에게 발각될 거예요.”

“다른 쪽이 알아채기 전에 빠르게 처치하면 되잖습니까.”

“그게 안 된다는 거예요. 저 녀석들, 의식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전투에 돌입하는 순간 상황이 발생했다는 걸 다른 그룹에서도 다 알 게 돼요. 빠르게 상황을 종료한다고 하더라도 주의가 끌린 상황에서 내부에 잠입하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거죠.”

“음…….”

아델은 침음을 흘리며 침묵했다.

유메미 역시 그렇게 말했지만 별다른 대안은 없어 보였다.

그 둘 사이에서, 나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아델의 말대로 고속 돌파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네? 어째서죠?”

유메미는 자기 말을 듣고도 이런 결정을 내린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올려다 보았다.

“들키지 않고 들어갈 방법이 있어.”

나는 그런 그녀에게 내 방법을 이야기해 주었다.

* * *

“9시 방향에 적이 나타났다.”

“거긴 아군이 있는 곳인데.”

“전력이 조금 밀리는 모양이야. 도와줘야 할 것 같군.”

마병들은 아군이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느끼고 적이 나타난 곳으로 이동했다.

인원은 총 다섯 명.

그들은 각자 검과 창, 방패로 무장한 근접전 중시의 마병과 쇠뇌를 든 원거리전 중시의 마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크르르…….”

도착한 곳에는 잔뜩 흥분한 채 눈에서 안광을 뿜으며 피를 흘리고 있는 마병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발밑에는 인간과 마병들의 시체가 뒤엉켜 있었다.

“괜찮은 건가?”

“크아아!”

쾅!

그것은 구원하러 온 아군을 보자마자 그쪽으로 달려들더니, 들고 있던 대검을 휘둘러 내리찍었다.

대검 마병은 신체를 뒤덮은 뒤틀린 살점 덩어리가 크게 부풀어 오른 상태.

오른팔과 검이 매우 비대해져 강한 공격력을 발휘했다.

“쯧, 이놈도 불량품이 됐군.”

“처리할까?”

“그게 낫겠지.”

구원하러 온 마병들은 결국 자신들을 공격하는 아군을 죽이기로 마음 먹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무기를 움켜쥐고서 공격 태세를 갖췄다.

“크아아악!”

“카아아!”

마치 마수의 울음소리를 연상케 하는 기괴한 비명이 초원에 울려 퍼진다.

연이어 같은 장소에서 전투가 발생하면서, 근방에서 경계를 돌던 마병 그룹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리지만.

-불량 개체를 처리하고 있다. 도와주러 올 필요는 없다.

주변 아군들에게 괜찮다는 의미의 신호를 보내 시선을 돌렸다.

다섯이서 하나 정도는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카앙!

방패를 든 마병이 이성을 잃은 개체의 대검을 정면으로 막아냈다.

그와 동시에 양쪽에 있는 근접 마병들이 각각 검과 창을 휘두르며 한번에 몰아붙였다.

콰웅! 콰웅!

무기가 휘둘러질 때마다 무거운 파동이 사방으로 요동친다.

하나하나가 상급 각성자의 전투력을 가진 마병 개체들인 터라, 소수 간의 충돌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일으키는 후폭풍은 매우 컸다.

퍼엉!

“카아악!”

“뭐지?”

그런데 완벽한 협공이라 여겼던 세 마병의 공격을, 광분한 개체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히 받아넘겼다.

거대한 대검을 단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둘이 한꺼번에 튕겨 나간 것이다.

“뭔가 다르다!”

“우리 중에 이렇게 강한 놈이 있었나?”

분명 같은 마병이면 전투력 차이가 그렇게까지 나지 않는 게 정상이다.

당연히 수적 우세도 유의미할 수밖에 없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들은 셋이 한꺼번에 덤볐는데도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광분한 녀석이라 일시적으로 힘이 좀 세진 모양이군. 저런 건 절대 오래 못 가.”

파앙!

그런 와중에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쇠뇌를 든 자가 방아쇠를 당기며 말했다.

그는 세 마병이 당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 조준과 발사를 반복했다.

철컥. 파앙! 철컥. 파앙!

동시에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쇠뇌 개체도 말없이 그의 장전 타이밍에 맞춰 연달아 사격을 행했다.

마병이 든 쇠뇌에서 발사된 볼트는 두꺼운 파쇄 풍압 기둥을 형성하며 맹렬한 기세로 날아들었다.

쿵! 쿠쿵!

광분한 대검 개체는 공세 일변도에서 태세를 바꿔 볼트를 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광분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 정도 차이가 날 정도라고?”

그런 와중에 처음 검을 맞댔던 마병 하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화살을 피해대는 개체를 쳐다보았다.

그는 크게 흥분한 듯이 보였다.

“이봐. 성급하게 움직일 생각하지 마. 저러다 지치면 때가 올 거야.”

“그딴 식으로 이기고 싶진 않아!”

“그만둬!”

어떤 개체는 상황을 보며 침착하게 타이밍을 기다린다.

어떤 개체는 넘치는 호승심으로 무리하게 뛰어든다.

그들은 다 같은 마병이긴 했지만, 제각기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사용하는 무기의 다양성만큼이나 상이한 성격을 보이는 것이다.

마치 그들을 탄생시키기 위한 재료였던 인간처럼 말이다.

“그라아악!”

콰웅!

검을 든 개체가 괴성을 지르면서 대검 개체의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뒤쪽에서 날아드는 볼트를 피하는 데에 열중하던 대검 개체는, 다가오는 그것을 향해 황급히 들고 있던 대검을 앞으로 내밀어 찌르기를 시도했다.

카아앙!

금속이 서로 부딪혀 쓸리는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손검을 든 마병이, 대검 개체의 찌르기를 완벽하게 흘려낸 것이다.

“카하! 무식하게 힘만 센…….”

그 순간.

오싹.

광분으로 인해 앞뒤 구분할 줄 모르는 것 같아 보였던 대검 마병의 붉은 안광 너머에서, 지독할 정도로 차가운 냉정함이 느껴졌다.

마주한 자 이외에는 알 수 없는 감정.

무식하게 무겁고 거대하기만 하던 그 대검이, 어째선지 그 순간엔 얇디 얇은 초승달처럼 보였다.

온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예리함이, 어느 샌가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오싹함처럼 목젖까지 파고들어와 있다.

‘이놈은……!’

서걱.

콰웅!

극히 짧은 순간.

이곳에 있는 어느 하나도 그 순간의 장면을 정확하게 포착한 개체는 없었다.

그저 무턱대고 광분 개체에게 달려들었던 마병 하나가 바보같이 상대의 검에 자기 목을 들이미는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보였을 뿐이다.

“저 멍청한!”

슈하악!

그리고 곧 그 목이 잘려나간 개체의 몸뚱이를 방패 삼아, 날아오는 화살을 막으며 대검 개체가 다가왔다.

쾅!

“카아악!”

시체를 반으로 가르며 날아든 대검이 방심하고 있던 마병 하나의 오른팔을 잘랐다.

무기를 쥔 손을 잃었으니, 또 하나의 전력을 상실한 셈.

“돌아가자! 이대로는 저걸 이길 수 없어!”

결국 시종일관 냉정함을 보이던 쇠뇌 마병이 후퇴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죽은 아군의 시체를 바닥에 내버려 두고서, 그들은 부상당한 마병을 데리고 전투 지역을 이탈했다.

흥분해 날뛰는 대검 개체는 더 이상 그들을 쫓지 않았다.

* * *

스르륵.

대검을 쥔 채 그르릉거리던 마병의 몸이 녹아내렸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나.

오거 종족으로부터 얻어냈던 변신 특성을 사용해 마병으로 모습을 변화시킨 것이었다.

“됐다. 이제 일어나.”

내 한마디에, 끈적한 피와 살점 덩어리로 뒤덮인 시체 더미에서 두 개의 사람의 형체가 솟아올랐다.

그들은 죽은 척을 하고 있던 유메미와 아델이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면 될 거야. 지금 저놈들은 인간이 아니라 마병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할 테니까.”

이걸로 저들의 시선을 돌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만약 우리가 그냥 적을 처치하면서 안으로 잠입했다면, 마병들은 외부인이 내부로 침입했음을 인지하고 성내의 경계를 강화했을 것이다.

그러면 레아에게 접촉하기도 전에 발각되었겠지.

게다가 의심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고한 희생자들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마병 개체가 발생했다’는 문제 의식을 심어주면, 저들은 바깥쪽의 경계만을 강화하게 된다.

이로써 내부의 혼란과 발각 위험을 최소로 줄인 채 잠입을 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신우 씨, 근데 그 변신 특성…….”

“응?”

“그걸로 아예 다른 대악마들까지 속일 수는 없나요? 그러면 손쉽게 모두 암살할 수도 있을 텐데.”

“그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거야.”

“왜죠?”

“격이 높은 존재들은 정체를 금세 알아차릴 테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신계도 모두 흡혈귀들이 장악했겠지.”

“아…….”

“하지만 좋은 생각이야.”

“……네?”

“암살. 이것 하나로 모든 걸 다 끝낼 수는 없겠지만, 응용할 수는 있겠지.”

나는 내 손에 들린 파라슈를 쳐다 보았다.

에너지를 담아 파동을 쏘아내거나 하는 기술을 구사할 순 없으나.

어떻게든 무방비인 적에게 접근하기만 하면 확실하게 끝장낼 수 있는 무기.

유메미의 말대로, 암살 용도로 쓰기엔 이만큼 적합한 무기가 따로 없을 것이다.

* * *

마치 고층 빌딩을 방불케 할 정도로 높은 성벽.

예루살렘의 성벽은 높이가 대략 50미터는 되어 보일 정도로 높았다.

게다가 그 성벽 자체가 특수한 마법 처리가 되어 있어 쉽게 무너지지도 않게 되어 있고.

그야말로 지상에선 어느 누구도 함부로 넘을 수 없는 최강의 방벽인 셈이다.

{라이트웨이팅 -카트반가 강화}

화악.

사뿐.

물론 우리에겐 큰 장애물이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유메미의 마법을 활용해, 성벽 위의 감시병을 통과하는 데서부터 아무런 주목도 받지 않은 채 바닥에 착지하는 것까지.

외부의 마병 경계망을 벗어난 후로부터는 모두 일사천리였다.

“안쪽은 생각보다 허술하네요. 평범한 아인종들밖에 없어서 그런지.”

“아무래도 마병들을 도시 안에 배치하면 사기가 떨어지기 때문이겠지. 어차피 저 녀석들은 먹거나 잘 필요도 없으니 그냥 바깥에 두는 거고.”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것들이 뭔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그게 이 도시가 굴러가는 방식이니까.”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금세 번화한 도심 구역으로 진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도시에는 인간과 트롤, 다크 엘프, 심지어 드워프들까지, 다양한 인종이 한 곳에 뒤섞여 살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활기찬 모습으로.

“와……. 요즘 같은 시기에 이렇게나 평화로운 곳이 있을 수 있다니.”

유메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근래의 타카마 시티는 물론이고, 곤륜공사를 비롯해 모든 세력들의 도시는 어두침침한 분위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침공해 오는 마물들에, 물류가 제한되어 문명의 이기조차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뿐이라 전체적으로 침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이처럼 활기찬 도시는 이제 여기 한 곳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다 겉보기에 불과할 뿐이겠지만 말이다.

“정신 차려. 이 이면엔 끔찍한 것들이 숨어 있을 테니까.”

“아…… 넵!”

나는 유메미에게 외견에 속지 말라고 당부한 다음, 계속해서 목표물을 찾는 데에 집중했다.

이곳에 와서 내가 가장 먼저 찾고자 한 목표물은 둘.

‘찾았다.’

그 목표물 중 하나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쉿.”

나는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아델과 유메미를 골목 안쪽으로 숨겼다.

그러고는 대상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시체처럼 창백한 푸른 피부의 여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릴 만큼 차가운 기운을 잔뜩 뿜어대는 여자.

니플헤임 삼 남매 중 한 명인, 삭풍의 헬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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