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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01화 (301/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01화

헬은 따뜻한 날씨에도 털이 수북한 망토와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그를 수행하고 있는 키 큰 기사 역시 털 코트를 입은 건 마찬가지.

그건 아마도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차갑고 싸늘한 냉기 때문인 것 같았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헬이 근처로 다가올 때마다 추위에 떠는 모습을 보였다.

‘저 기사…… 인간이 아니군.’

한편, 인파 속에 숨어서 헬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나는 그녀를 수행하고 있는 기사를 주시했다.

그는 키가 2미터 정도의 거구였는데, 털 코트의 후드 밑으로 보이는 얼굴이 아인종이 아니라, 짐승, 그것도 늑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그 ‘가름’인가?’

삭풍의 여신 헬에게는 그녀를 지키는 강력한 마수가 한 마리 있었다.

이름은 가름으로, 니플헤임의 가운데에 있는 헬의 성역을 지키는 일종의 문지기나 마찬가지인데.

주인의 격이 격이다 보니, 그 마수가 가진 힘은 일반적인 마물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저렇게 늑대인간으로 변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네 발로 뛰어다니는 늑대 마수일 뿐이었던 것이다.

“헬라 님, 밤이 되기 전에 돌아가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랬던 게 지금은 마치 격식을 갖춘 귀족인 양 말을 하고 있다.

이 또한 마물과 악마들의 ‘인간화’와 관련된 것일까.

그 인페르노의 대악마들이 완전한 인간 형태로 변하고, 마인병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혼종 병사를 만들어 무기를 다루게 했던 일.

늑대인간 기사가 된 저 ‘가름’을 보며,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조금만 더.”

“너무 어두워질 때까지 여기 계시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분께서 별로 좋아하지 않으실 겁니다.”

“하, 짜증 나.”

저들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시선을 쫓아 보니, 헬은 어떤 사람을 찾는 모양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남자.

“어째 제대로 된 놈들이 하나도 없지? 너무 심하잖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선 모든 아인종들이 더 이상 밖에 나가서 싸울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앞으로는 더더욱 전투 능력을 갖춘 자들이 줄어들 겁니다.”

“그래서 더 짜증 난다는 거야.”

이곳 거리에는 유독 곳곳에 수준 높은 능력을 갖춘 각성자나 금제 해방된 비각성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 구역은 힘쓰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 것 같았다.

헬과 가름의 대화를 들어보니, 헬은 그중에서도 ‘강한 힘을 갖춘 남자’를 찾고 있고 말이다.

하지만 가름의 말대로, 이곳 예루살렘은 아후라 마즈다에 의해 개조된 마병들이 전투를 전담하고 있다.

그 덕분에 그들의 능력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고, 그 결과 다수의 각성자들이 지금은 전투력 측면의 성장과는 무관한 일들을 하게 되었다.

그러니 헬이 원하는 ‘강한 남자’의 절대적 숫자도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이 없는데……. 그놈에게서 벗어나려면…….”

그 탓인지 헬은 굉장히 초조해 보였다.

모종의 이유로 필요한 인력의 수가 계속 줄어든다는 게 그녀에겐 압박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잠깐만.”

그러던 와중, 그녀는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잔뜩 찌푸리고 있던 인상이 펴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또 뭐야?”

방금 전까지 한껏 짜증 섞인 푸념을 늘어놓던 그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입가에 미소를 띤다.

아주 좋은 걸 발견했다는 표정을 짓고서,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너, 이리 와봐.”

바로 나.

헬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내게 오라는 손짓을 한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저벅저벅 걸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신우 씨!’

‘마스터!’

머릿속에서 아델과 유메미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적의 리더 격 인물에 해당하는 자에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는 게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난 이게 절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아니야. 이건 기회다.’

왜냐하면 헬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르셨습니까.”

“흐음…….”

나는 그녀에게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 그녀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헬이 내뿜는 차가운 마력이 내 전신을 더듬는 게 느껴졌다.

추위 같은 건 내게 위협이 되지 않은 지 오래지만, 그런 나조차도 그녀의 시선이 직접 몸에 닿자 오한을 느껴야만 했다.

과연 삭풍의 여신이라는 이명을 가질 법하다.

“쓸 만한데. 후후.”

대뜸 날더러 오라고 하고는, 몸을 훑어보더니 묘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고는 어딘가 상기된 듯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너, 이따가 내 침실로 와.”

헬이 내뱉은 문장이 내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그녀의 말에는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

{당신에게 복종의 저주가 가해집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행동은 술자에 의해 제어됩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멋대로 데리고 갔던 모양.

특히나 신격을 가진 존재인 데다, 마술에 특화된 권능을 구사하기에 제아무리 대단한 각성자라 할지라도 함부로 거기에 대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헬의 눈에 드는 남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녀의 노예가 되어 침실로 갔겠지.

{신월검 정신무장 발동}

하지만 내게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수작이었다.

찬드라하스의 주인인 시바는 헬보다 훨씬 더 격이 높은 신이었으니 말이다.

최초의 신인 혼돈마저 쫓아낸 신 중의 신의 검을 가진 내가 한낱 지옥의 악마 따위에게 굴복할 리가 없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헬의 마수에 걸려든 인간인 것처럼 행동했다.

이걸로 헬이라는 마녀가 가장 취약한 타이밍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낸 것이다.

침실에서 단둘이.

그건 신을 암살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와 장소임에 틀림없었다.

‘신우 씨. ……당하면 안 돼요.’

‘조심하십시오, 마스터.’

아델과 유메미는 걱정이 큰 모양이지만 말이다.

* * *

헬의 정신 조작이 가해지는 순간,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 건 그녀의 저주만이 아니었다.

동시에 내게 주입된 그녀의 거처이자 침실의 위치 정보에 관한 암시 또한 함께였다.

그건 자신과 잠자리를 함께 할 희생자 남성에게만 주어지는 극비였기 때문에,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도, 누군가를 통해 전달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난 정신 지배 저주는 막아내면서도, 그렇게 주입되는 정보는 착실하게 받아냈기에, 길을 찾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이런 곳에?’

그렇게 도착한 곳은, 제도 예루살렘 내부의 아주 구석진 곳에 위치한 작은 주택가.

니플헤임 삼 남매 중 펜리르가 아후라 마즈다의 최측근이었으니, 헬 역시 화려한 궁전이나 저택 같은 곳에 머물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녀가 나를 불러낸 곳은 매우 평범하면서도 조용한 동네였다.

물론 여긴 실제 헬이 거주하는 곳은 아니었고,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한 그녀만의 비밀 장소인 듯하지만.

그 ‘특별한 일’을 굳이 이렇게 숨어서 할 이유가 무엇일까.

지옥의 여신인 헬에게 정조 관념이나 도덕 관념 같은 걸 강요할 자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이유가 있겠지.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아야 할 이유가.’

뭐가 되었든 간에 내가 할 일은 아무도 모르게 헬을 잡아내는 것.

나는 홀로 그녀가 있을 어느 주택 쪽으로 접근했다.

그곳은 수많은 집들 사이에 껴 있는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똑똑.

달칵.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어느 중년의 다크엘프 여성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여느 평범한 가정주부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누구시죠?”

“여신의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난 대뜸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

암호 같은 걸 따로 가르쳐 주지는 않았으니, 이렇게 얼버무리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

그런데 돌아온 건 도대체 무슨 소릴 하냐는 투의 반응.

“그러니까…… 여신의…….”

당황한 나는 다시 한번 ‘여신’이라는 말을 내뱉었지만.

“저기요. 저 그런 거 안 합니다. 그냥 가세요.”

중년의 여인은 계속해서 일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내 말이 조금도 통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보는 이곳이 확실히 맞다고 말하고 있다.

이 집 안으로 들어가면 헬을 만날 수 있다.

내게 걸려온 암시는 그것뿐이고 말이다.

“뭐야, 진짜.”

쿵.

결국 문은 닫혔다.

혹시 찬드라하스에 의해 정신조작이 풀린 순간, 같이 들어온 암시가 왜곡된 걸까.

그때.

저벅.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심상치 않은 수준의 기운.

난 거기서 무기를 빼 들까 잠시 고민했지만.

‘가름…… 헬의 부하다.’

곧 그가 그때 봤던 늑대인간 기사라는 걸 눈치채고서 참았다.

여기서 적대적 행위를 했다간 계획한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된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상하군.”

가름이 내 뒤통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난 그제야 그가 다가왔다는 걸 눈치챈 척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왜 저주의 상호작용이 발동되지 않은 거지?”

‘아차.’

그 말을 듣자마자 왜 그 다크 엘프가 그렇게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바로 내게 걸린 저주가 무효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집에 사는 저 다크 엘프에게도 동일한 종류의 마술이 적용되어 있는데, 이 집을 찾아오는 희생자의 저주에 반응해서 정해진 상호작용을 내놓는 모양.

하지만 난 헬의 저주가 풀려 있으니, 그 상호작용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그 때문에 가름은 내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너. 정체가 뭐냐?”

그러곤 곧 마치 허리춤의 검으로 금방이라도 나를 참살할 것처럼 적의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잘못 반응하면 주택가 한가운데서 싸움이 벌어진다.

그렇게 했다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죽는 건 물론이고, 레아 역시 휘말리겠지.

애써 잠입해 들어온 수고가 모두 헛되이 사라지는 셈이다.

꿀꺽.

“저는…….”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긴장감에 침을 삼키며, 적절한 대답이 무엇인지 찾아내려는 그 순간.

덜컥.

다시 집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아까 그 중년 다크 엘프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말했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몰라도, 발동하지 않던 저주가 발동한 모양이었다.

“……음.”

나를 노려보던 가름에게서 적의가 사라졌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는 그대로였지만, 다행히 여기서 싸움이 나지는 않을 것 같다.

“들어가라.”

꾸벅.

난 명령하는 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숙인 후, 집주인의 안내에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주택 안의 창고를 지나, 비밀 문을 거쳐 지하로 내려갔고.

그렇게 숨겨진 공간을 지나친 끝에, 헬에 의해 ‘은밀한 행위’가 행해지는 공간에 도착했다.

“왔구나.”

그녀는 침대 위에 걸터앉은 채 나를 맞이했다.

원하는 것을 얻을 생각에 조금 상기된 듯한 얼굴.

하지만 난 이 공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세 눈치챘다.

‘시간(屍姦)…….’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죽어 차갑게 굳어가는 채로 누워 있는 무수히 많은 희생자 남성들의 모습과, 그 위에 올라탄 채 신음하는 헬의 모습이 선연히 보인다.

이 지저분한 의식의 행위로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유결부 파라슈 소환}

이제 나는 이곳에서 그 더러운 악행을 끊어내려 한다.

등 뒤에 감춘 오른손에 신을 죽이는 손도끼가 쥐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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