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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78화 (278/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78화

“여전히 그들을 증오하고 있는 건가?”

“……죄송합니다. 아직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미숙한 모습을 보여드려서…….”

“아니다. 감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아후라 마즈다는 펜리르에게 드넓은 관대함을 보였다.

“다만 그 감정의 방향을 조금 틀 필요성이 있을 뿐. 너 역시 긴 세월을 살았으니 알 것이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의 말에 펜리르는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렸다.

발할라의 전사들과 힘을 합쳐 구세대 신들을 아스가르드로부터 쫓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

결국 또 한 번의 전쟁으로 인해 차갑고 척박한 땅, 니플헤임에 떨어진 일을 말이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저는 주인님만큼은 영원히 모시겠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곳에서 저를 꺼내준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펜리르는 아후라 마즈다를 향해 깊은 충성심을 드러냈다.

돌아온 것은 냉소적인 답변뿐이었지만 말이다.

“그 말은 믿기 어렵구나. 너도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돌변할 수 있지 않느냐.”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미래엔 네게 등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

펜리르는 아후라 마즈다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지금 시점에서 이 정도의 권능을 가진, 전지전능에 가까운 존재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하하, 농담이다. 네가 지금처럼 나를 잘 따라와 주기만 한다면, 내가 그렇게 할 이유는 없겠지.”

“절대 그렇게 되도록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기에 펜리르는 도리어 그런 아후라 마즈다에게 더더욱 큰 충성을 보였다.

그건 아득한 세월 동안 니플헤임에 갇혀 있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아무튼 중요한 건, 적어도 당분간은 그 거인 신들이 너희의 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펜리르는 아후라 마즈다의 말에 머리를 숙였다.

“아무튼 혼돈에게서 직접 응답을 듣지 못했으니……. 이젠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전쟁은 타이밍이다.”

파아앗.

나체 상태로 피를 뒤집어쓰고 있던 아후라 마즈다의 몸에서 하얀 빛이 빛났다.

그러자 곧, 그의 몸을 뒤덮고 있던 검붉은 혈흔이 사라지고, 새하얀 갑옷이 입혀졌다.

마치 갓 샤워를 하고 나온 사람처럼 깨끗한 모습이었다.

“단기결전으로 끝장낼 수 없다면, 적을 조금씩 지치게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혼돈의 도움 없이…… 그 인간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펜리르는 유신우를 떠올리며 말했다.

얼마 전, 아후라 마즈다가 갑자기 사라져서는 그와 일전을 벌이고 돌아온 것을 생각한 것이다.

그때 아후라 마즈다는 결국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유신우가 불멸자가 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마음만 먹었다면 계속 그 자리에서 대기하며 유신우가 부활할 때마다 죽일 수 있었겠지만, 그것도 포기하고서 말이다.

“내가 왜 그놈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돌아왔는지 아나?”

“그건…… 결국 놈을 붙잡아두기만 하는 게 무의미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더 중요한 목적이 있다.”

“중요한 목적이라면?”

“놈을 정신적으로 굴복시키는 것. 그 녀석을 타락시킬 거다.”

아후라 마즈다는 주먹을 쥐었다.

그 손목에는 특이한 형태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건 우라노스와의 계약으로 얻어낸 표식이었다.

* * *

인간을 베이스로 한, 뒤틀린 골격과 외형을 가진 마인병들이 병장기로 무장하고서 평원에 도열했다.

규모는 전투병만 대략 30만여 명.

그 숫자만으로도 드넓은 평원 전체를 꽉 채울 만큼 거대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각 병사 하나하나가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어, 규모와 맞물린 총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실제로 마인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다크엘프와 트롤들로 구성된 보급부대가 대규모로 뒤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의 마물들은 한 발자국도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거대한 군세에 전의가 꺾여버린 탓이었다.

“바알은 아직도 찾지 못했나?”

“예. 추측하기로는 도가 산 던전에 형성해 놓은 마인병 생산지가 통째로 사라졌다고 하는데, 거기서 함께 행방불명된 것 같습니다.”

“행방불명이라…….”

아후라 마즈다는 펜리르의 보고를 듣고 미간을 좁혔다.

“역시 앙그라 마이뉴의 소행인 건가.”

“전투가 끝난 후에 다시 인페르노에서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불가능해.”

“……예?”

“바알은 앙그라 마이뉴에게 살해당했다. 놈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해.”

“그게 무슨……. 놈이 바알을 영멸시키기라도 했을 거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하지만 그자는 제가 알기로 과거에도 지옥에 쫓겨난 악마들을 대상으로는 힘을 쓰지 못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랬지. 지금은 아니다. 이제 놈은 죽지 않지만, 우린 놈의 손에 죽는다.”

“그럴 수가…….”

여태껏 펜리르는 유신우에 대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불멸의 육신을 얻었다고 한들, 상대하기가 귀찮아졌을 뿐 심각한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여기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아후라 마즈다의 말은 달랐다.

한쪽은 몇 번이고 죽어도 살아나지만 다른 한쪽은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싸움.

펜리르는 ‘그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리겠다’던 아후라 마즈다의 의도를 그제야 이해했다.

“놈이 가진 도끼를 조심해라. 그게 너의 존재를 영원히 지워버릴 거다.”

“……알겠습니다.”

펜리르는 그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폐하. 공격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명령을 내리시면 곧바로 병력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그때, 마인병 부대를 지휘하던 지휘관 중 한 명이 다가와 그에게 보고를 했다.

지휘관은 아후라 마즈다처럼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몸 안에는 인페르노의 대악마 중 하나인 아스타로트의 영혼이 들어간 상태였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당장 공격을 시작해라. 도시를 남김없이 파괴하도록.”

“알겠습니다. 지체 없이 명령을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후라 마즈다의 명령을 들은 아스타로트가 검을 빼 들고 마수 헬하운드의 고삐를 잡아당겨 도열한 마인병들의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도시 말소 개시!”

그의 마력이 담긴 목소리가 거대한 규모의 병력 전원의 귓가에 전달되었다.

이윽고 마인병들은 각자의 무장을 앞세워 목표를 향해 전진했다.

목표는 다름 아닌 인드라닉스.

다크엘프들의 도시였다.

쿠구구궁.

마인병들의 발걸음만으로도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진동이 울리기에 충분했다.

동시에 그들이 내뿜는 귀기는 창궐한 마물조차도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 정도이니, 마물이 아닌 평범한 아인종들은 더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적이 온다! 대응 사격 실시!”

물론 그에 마주하는 다크엘프들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들은 최근의 마물 창궐을 겪으면서 더욱 단단해진 도시 방어 시스템을 작동해, 이 대규모 병력에 대응했다.

외곽에 대량으로 설치된 고정 포대들이 다가오는 마인병 무리를 향해 포구에서 불을 뿜었다.

퍼퍼퍼펑!

트롤들이 들고 쏘는 중화기들보다 훨씬 더 높은 화력의 마나건.

그것들이 쏘아낸 폭발형 마탄들이 헬하운드를 타고 접근하는 마인병 무리 사이로 떨어지고.

콰쾅!

착탄 지점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한꺼번에 다수의 마인병들을 휩쓸었다.

고정 포대는 효과가 꽤나 뛰어났다.

단번에 눈에 보일 정도로 많은 숫자의 마인병들을 무력화시켰으니 말이다.

“적이 중거리 교전 영역에 진입한다! 화력 전환!”

게다가 다크엘프들이 준비한 방어 체계는 원거리 포격이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는 총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거리별, 상황별 방어 체계가 기다리고 있다.

상황에 알맞게 전력을 집중함으로써 방어 효율과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시스템.

이거라면 아무리 적의 규모가 크고 강대하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침공을 막을 수 있었다.

그들에겐 아후라 마즈다의 마인병들을 단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게 할 자신이 있었다.

“화력 전환 완…… 엇?”

그렇게 두 번째 방어 단계로 진입하려던 그때, 손잡이를 잡고 방아쇠를 당기려던 병사들이 갑자기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이, 이게 무슨?”

“어…….”

한두 명도 아닌 수백 명이 넘는 이들 전부가 동시에 어리둥절해하는 반응.

그들을 지휘하던 지휘관은 갑자기 지시를 따르지 않는 병사들을 향해 윽박질렀다.

“뭐 하는 거야? 빨리 움직이지 않고!”

“…….”

그 소리를 들은 병사들 몇몇은 다시 엉거주춤하게 방아쇠를 당길 자세를 잡았지만, 거의 대부분은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서로 눈치를 보며 묘한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왜 이러는 거야?”

현장의 지휘관은 병사들이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것도 잠시.

병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것’이 그의 눈앞에도 나타나면서, 지휘관은 금세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일반 퀘스트 <벼락 출세> 발동}

{목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군 1명 살해}

{보상: 임의의 신화 수호령}

{내용: 당신은 아주 간단한 일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행하시겠습니까?}

그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관의 머리 위에 붉은 타깃 표시가 나타났다.

부관 역시 그의 머리 위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 *

도시가 무너져 내린다.

무수히 많은 다크엘프들이 마치 불길이 쏟아지는 개미굴 속 개미처럼 죽어간다.

인드라는 자신이 번영시킨 도시가 기형의 인간들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게 결국 운명이라는 건가……? 장난 같군.”

인드라는 자신의 발 앞에 쓰러져 있는 여러 시신들을 내려다보았다.

불길을 일으키는 고압의 전류로 인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린 이들의 시신.

모두 불과 얼마 전, 아니, 몇 분 전까지 자신을 조건 없이 따르겠다던 다크엘프들의 시신이었다.

“욕심 앞에 마음이 이토록 쉽게 꺾인다니.”

그는 무미건조한 태도로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는 시스템 메시지들을 바라보았다.

{당신을 타깃으로 하는 모든 아군을 살해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드래곤 나이트(영구 기간)>이 당신의 클래스에 추가됩니다.}

매일 1억 다이아를 소모해야 하는, 사실상 사용 불가능한 거나 다름없는 클래스가 영구적으로 그의 손에 들어왔다.

각성자의 무력의 격 자체를 압도적으로 향상시켜 주는 달콤하기 짝이 없는 보상.

“……젠장.”

그러나 인드라는 그런 것을 얻었음에도 어떠한 감흥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건 자신이 원해서 얻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갑자기 자신을 배신하고 덤벼드는 이들을 어쩔 수 없이 처치하고 얻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보상.

그렇다고 해서 그런 희생을 대가로 드래곤 나이트 클래스를 이용해 침공해 온 적을 물리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용기사를 써먹으려면 용종 마수들을 포획하고, 드래곤 나이트 클래스에 걸맞은 인재들을 선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이미 도시가 불타고 있는 와중에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이제 와서는 너무 늦어버리기도 했고.

결국 이는 돼지의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꼴이었다.

“신화시대…….”

인드라는 건물 위에서 아래쪽을 내려보았다.

진군하는 마인병들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백색의 갑옷을 입은 남자를 응시했다.

“새 시대의 주인은 저자의 것이었군.”

인드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의대로 바꿀 수 없는, 세계의 법칙이라 생각했던 시스템마저도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는 아후라 마즈다에게는, 누구도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철컥.

그리고 그는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집어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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