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56화
라르스.
뇌신 토르의 수호령을 가지고, 종족 내에서 마지막까지 나에게 대항했던 신화급 오크 각성자.
그는 비프로스트를 여는 시나리오 세계에서 나에게 수호령을 빼앗긴 채 갇히고 말았다.
그랬던 그가, 지금 내 눈앞에서 양손 도끼를 휘두르며 마물과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저자가 어떻게?’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난번 타라 때와 똑같다.
동 대륙에 있어야 할 자가 이곳 서 대륙에 와 있는 것.
그것도 나보다도 먼저 와서 이곳 주민들과 교류해온 듯한 익숙함을 보이면서 말이다.
‘혹시나 잘못 본 건가?’
라는 생각이 또다시 떠올랐지만, 이번만큼은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확신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에게서 느껴지는 마력 때문이었다.
‘타라는 원래 몸에 마력을 지니지 않아서 기운의 성질을 가지고 판단하는 게 불가능했지만…… 라르스는 다르다. 몇 번이고 나와 부딪혔던 그 과거의 힘의 색깔이 그대로 느껴지고 있어.’
쾅! 콰쾅!
나조차도 긴장하게 만들 정도의 강적 앞에서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그는 그때완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
하지만 마력의 크기가 커진 것과는 별개로, 내재되어 있는 힘의 결은 그대로인 것이다.
“저 사람…… 혹시 그 오크 종족의?”
유메미도 그를 알아본 모양이다.
난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떻게? 동 대륙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기에 와 있는 거죠?”
“나도 잘 모르겠어.”
그녀도 혼란스러운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린 동 대륙에서 여기까지, 온갖 역경을 겪고 정말로 운 좋게 간신히 넘어 왔는데.
우리보다도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을 오크 종족의 각성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에 와 있었으니 말이다.
“두 분이 아는 사람이오?”
그때, 라이진이 우리 둘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다’라……. 참으로 애매한 대답이로군.”
“지금 당장은 확신할 수 없으니까.”
“물론 나도 이해하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게 사실이라면, 참으로 그럴 듯한 우연이 아닐 수가 없는 것 같소만.”
그는 상당히 묘한 말을 내뱉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저자는 당신들과 같은 이방인이오. 당신들보다 이 세계에 먼저 온.”
“이방인……이라고?”
처음 이곳으로 와서 드워프들과 조우했을 때, 난 한 가지 궁금했던 점이 있었다.
이쪽 세상에 살고 있는 드워프들이, 모두 나를 가리켜 당연하게 ‘이방인’이라 부르며 전혀 위화감 없이 받아들였던 것.
마치 이전에도 나 같은 케이스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나 같은 케이스가 처음이라면 ‘당신은 어디에서 왔지?’, 내지는 ‘어떻게 이쪽 세계로 넘어온 거지?’라는 질문이 쏟아지는 게 정상일 텐데.
이곳 사람들은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우릴 받아들였다.
그래서 난 막연히 우리 외에도 또 ‘이방인’이라 불릴 만한 존재가 더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었으나.
이제 와서 들어보니, 바로 그 이전의 ‘이방인’이 저 오크, 라르스였던 것이다.
“잠깐, 그러면…… 저자는 언제 이쪽으로 온 거지?”
그래서 난 곧바로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물었다.
라이진의 말대로라면, 내가 프리드웬을 타고 온 것보다 라르스가 이곳에 온 게 더 일찍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글쎄…….”
라르스를 시나리오 세계에 가둬놓고, 내가 프리드웬을 찾아내기까지의 시간 차는 그리 길지 않다.
그사이에 그곳에서 탈출을 해내고, 차원 이동의 방법을 찾아내 이곳에 온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것도 그만큼이나 크게 세상에 영향을 주는 일을, 어떠한 징조도 없이?
그런 수많은 궁금증들이 덩달아 떠오르기 시작했으나, 그 뒤에 나온 라이진의 대답은 이 모든 의문들을 더 심하게 꼬아버렸다.
“적어도 15년은 됐을 거요.”
“……뭐?”
생각이 저 멀리 아득한 어딘가로 날아가는 기분이다.
15년이라니.
15년 전에는 동 대륙에 각성자라는 개념이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그건 인간계와 동일한 스케줄로 시스템 흐름이 진행되는 오크계도 마찬가지다.
이곳 서 대륙의 모습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라르스라는 오크에게 15년 전이란 이능력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얘기란 말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시간선이 꼬이기라도 한 건가?’
그러고 보니 니플헤임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요르문간드가, 잠깐 사이에 사라진 지 200년이나 지났다고 했다.
그때는 적당히 ‘시간 흐름이 다른가 보다‘라며 넘어가려 했으나.
이렇게 되니 단순히 니플헤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투쾅!
그때, 거대 마수의 오른손이 라르스의 도낏자루를 정면으로 두드리며 그를 땅에 처박아버렸다.
마치 맹수가 모기를 잡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로 보일 정도의 덩치 차이.
크허어엉!
쿵! 쿵!
거대 마수는 그대로 흙먼지 속 바닥에 틀어박혀 있는 라르스를 끝장내기 위해 달려들었다.
‘죽게 내버려 둬선 안 돼!’
그 순간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라르스를 살려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서 자신이 어떤 경위로, 어떤 방법으로 이쪽 세계에 넘어왔는지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타라에 관한 일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
그 일념하에 난 그 거대 괴수의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 * *
{<달 사냥개 야차>로 변형}
콰콰콱!
큰 덩치로 인해 둔한 움직임을 보이던 야차들이, 사냥개 형상으로 변화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눈앞의 거대 마수에게 달라붙었다.
고릴라와 범을 섞어놓은 듯한 형상의 마수.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빠른 움직임을 보이던 그것은, 달 사냥개들이 피부를 물어뜯기 시작하자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빙결 상태이상으로 인해 몸이 굳어가는 것이다.
‘나찰. 포격.’
그 상태에서 이미 마술포격 태세를 취하고 있던 나찰들에게 명령을 내려 원거리에서 지원 포격을 하라고 명령했다.
이 거대한 몸집의 마수에게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가까이 다가올 필요도 없었다.
대충 방향만 맞춰도 웬만하면 맞을 테니 말이다.
펑! 퍼펑! 펑!
마력탄들이 하늘에서 날아와 지면 곳곳을 타격하며 폭발했다.
동시에 비산하는 파편들이 마수의 몸에 박힌다.
물론 그보다는 마나 폭발로 인한 충격파가 더 큰 피해를 입혔겠지만, 겉에 두르고 있는 두꺼운 가죽 때문에 그런 파동 피해로는 불충분한 게 사실.
그렇기에 그 안에 파고들 틈을 만들어준 거나 다름없는 파편의 역할이 더욱 중요했다.
‘석궁과 피뢰침을 쓰자.’
지난번 바벨탑에서 요르문간드의 영토 시나리오를 클리어할 때 얻었던 석궁과 해당 영역 내의 마물을 잡아 얻은 재료로 만든 피뢰침.
두꺼운 외피나 가죽을 두른 적의 체내에 뇌격을 직접 꽂아넣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다.
그건 모두 그 안에서만 얻고 쓰는 게 가능한 시나리오 전용 도구였기에, 바깥에 들고 나오진 못했지만.
그때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비슷하지만 더욱 업그레이드 된 것을 직접 만들어 쓸 수는 있었다.
{인벤토리에서 <로마노프 P1 자동 볼트 발사기>를 꺼냈습니다.}
강화된 기술력으로 훨씬 더 강력해졌고, 크기는 한 손으로 들 만큼 작아졌으며, 연사가 가능한 석궁.
철컥.
그 상부에 30발들이 피뢰침 탄창을 끼워, 사격을 준비했다.
쿠오오오!
그사이, 마수가 공격의 대상을 바꿔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 녀석은 영리하게도 자신을 직접 공격한 야차와 나찰들을 쫓는 데에 힘을 빼지 않고, 곧장 소환의 주체인 나부터 공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 와라.’
물론 지금 그건 내게 있어서 기회다.
화아악!
나는 날개를 펼쳐 뒤로 빠르게 날면서, 석궁을 들어 놈의 몸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파편들을 조준했다.
{특성 <신화 사냥꾼의 본능> 발동}
{특성 <승리자의 사고체계> 발동}
그러고는 감각을 극대화하는 특성과 사고 속도를 증가시키는 특성을 동시에 발동했다.
석궁 가늠자 너머로 보이는 마수의 몸이 마치 스코프를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확대되어 보인다.
또한 주변의 시간이 거의 멈춘 것처럼 느려진다.
움직임이 느려지는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생각은 그대로이기에 인지력이 극대화된 효과를 얻었다.
‘맞아라.’
핏! 핏! 핏! 핏! 핏!
그 상태로 한 손에 든 석궁의 방아쇠를 꾹 당겨 피뢰침을 연사로 쏟아내기 시작.
실제로는 분당 200발 수준의 꽤나 빠른 연사 속도지만, <승리자의 사고체계> 특성 덕에 내 눈엔 마치 한 발 한 발 끊어 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말인즉, 나는 그 연속 사격을 끊어 쏘는 것과 같은 정확도로, 전신의 파편에 정확히 꽂아 넣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특성 <승리자의 사고체계> 해제}
퍼퍼퍼퍼퍽!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되었던 특성이 해제되고, 느려진 시간이 되돌아오자 날아가던 피뢰침들이 한꺼번에 마수의 몸에 박히는 게 보였다.
파편이 박힌 곳의 미세한 틈으로 들어간 피뢰침들은 완벽하게 놈의 몸에 고정되었으며, 그렇지 않은 것들은 두꺼운 가죽에 의해 힘없이 튕겨 나갔다.
크와아아악!
콰우웅!
“흡!”
그때, 놈이 휘두른 손이 돌풍을 일으켜 나를 덮쳤다.
마나가 실린 건 아니고 단순한 바람과 충격파였기에 유의미한 피해를 주지는 못하는 공격.
그러나 그 바람만으로도 뒤쪽의 언덕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용 날개를 펼치며 날아가던 내가 휘청거릴 정도였으니 그럴 만했다.
그 괴수가 휘두르는 손톱 공격은 그만큼 강력했다.
‘저기에 직접 맞으면 곤죽이 되어버리겠군. 그걸 도낏자루로 받아낸 라르스는…… 맷집 하나는 인정해 줘야겠는걸.’
원래 토르의 수호령을 가지고 있었을 때에도 라르스는 근접전에 강한 편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정말 그동안 뭔가 있기는 했던 모양이다.
‘설마…… 진짜로 발할라에 닿기라도 한 건가?’
일순, 마지막 만남에서 그에게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 짧은 시간 내에? 타라도 그렇고……. 저 녀석은 반드시 살려서 얘길 들어봐야겠어.’
난 전의를 더욱 강하게 불태우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석궁을 쥐지 않은 왼손 검지를 앞으로 뻗어, 다가오는 마수를 조준했다.
놈의 반대쪽 손이 날아드는 게 보였지만, 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과감하게 공격을 펼쳤다.
{<파성퇴 카트반가> 소환}
{파성추 전개}
내 어깨 위로 코어를 드러낸 파성퇴가 띄워지고.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격류뇌전’ 전개}
그로부터 초고압의 대형 뇌격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지점을 향해 뿜어졌다.
뻗어 나간다고 할 수도 없이, 본 순간 목표를 타격하는 말 그대로 뇌속의 공격마법.
쩌렁!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전류가 마수의 몸에 틀어박힌 피뢰침을 통해 놈의 체내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다.
퉁, 터어엉!
거대 마수는 그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달리던 속도 그대로 넘어져 앞으로 몇 바퀴나 굴렀다.
‘마무리.’
물론 이걸로 끝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난 파성퇴를 전개한 그 상태에서 환영마검을 쏘아보낼 준비를 했다.
당장 흑염으로 그것의 몸뚱이를 통째로 불태워 버릴 생각이었다.
후우웅!
그런데 그 순간, 나보다 먼저 뒤에서 누군가가 투사체를 쏘아 보냈다.
‘운석 마법?’
……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사실 투사체가 아니라 도끼를 든 전사였다.
쩌어어엉!
대기를 가르며 고공에서 날아든 그가 거대한 양손 도끼를 마수의 머리통에 꽂아 넣었다.
마수는 가죽이 찢겨 나가고 두개골이 깨지며 안에 있던 뇌수를 쏟아냈다.
놈의 생명은 그걸로 끝.
“고맙다.”
거대 마수를 처리한 후,
피를 잔뜩 뒤집어쓴 라르스가 어깨에 도끼를 짊어지고 나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만난 적이 있었던가?”
그는 타라와는 달리 나를 어느 정도 알아보는 듯한 눈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