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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55화 (255/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55화

결국 내가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동 대륙으로 돌아가야 해.’

그곳에 남아 있는 내 동료인 인간들의 안위를 확인하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옹구스가 가르쳐 준 야드가르가 갇힌 아티팩트를 찾아내기 위해서.

어떤 이유가 됐건 난 결국 프리드웬을 타고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그곳에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드워프들은…… 결국 버릴 수밖에 없는 건가.’

하지만 레아에게 말했듯이, 그렇게 하면 이곳에 남겨지는 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꼴이 된다.

가능하다면 이들을 지켜내면서 동시에 내 목적을 이루는 것은 너무 과한 욕심일까?

‘……당장은 프리드웬을 가동시키는 데에 집중하자.’

어쨌든, 그런 모든 딜레마를 차치하고서라도, 엔진이 정지되어 버린 프리드웬을 다시 살리는 건 나에게 있어서 필연적인 과제였다.

지금 당장이 되었건, 이곳에서 모든 일을 처리한 후가 되었건. 난 언젠가 동 대륙에 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로마노프, 상태는 어때?”

그래서 난 우리 중에서 이쪽 분야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기술자인 로마노프에게 프리드웬의 상태를 보게 했다.

그는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나보다 이 배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엘프들의 기술과 서 대륙의 신문물들을 접하면서 그의 지식은 더 이상 내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분명 겉보기에는 완벽하게 정상인 상태인데 말이지.”

“정상 상태라고?”

“여러 가지 자잘한 부분들은 내가 고쳐 뒀거든.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애초에 이 배 자체가 워낙 단순한 구조로 이뤄져 있던 곳이라.”

“그럼 뭐가 문제인데?”

“마나 생성이 되질 않아.”

지금 프리드웬의 동력부에 장착된 엔진은 테세우스의 배다.

이전처럼 에테르를 수동 공급할 필요 없이, 대량의 마나를 자체적으로 생산해 에너지를 무한 공급하는 신물.

그 핵심 기능인 마나 생성이 고장 났으니, 당연히 프리드웬이 움직일 리가 없다.

“고칠 방법은 없나?”

“온갖 방법을 다 써봤거든. 내부를 뜯어보기도 했고.”

“그걸 뜯어봤다고?”

“죽을 뻔했지.”

참고로 이런 신물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운명을 가진 수호령과 같은 존재다.

그걸 분해하려 시도한다는 건, 쉽게 말해 세계의 법칙을 역행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지금 나와 얘기하고 있는 걸 보니 죽지는 않았나 보군.”

“그래. 아무튼 그렇게 목숨까지 걸고서 안을 들여다봤는데, 거기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어.”

“그럼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거잖아?”

난 실망한 눈으로 로마노프를 쳐다봤다.

물론 그렇게 쉽게 원인을 알아낼 거란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하는 나는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니야. 방법을 찾기는 찾았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지만.”

“말해봐.”

“이 엔진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초기 동력만 어떻게든 공급될 수 있으면 움직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초기 동력?”

“말하자면 지구에서 차에 시동을 거는 것과 같은 얘기지. 엔진이 퍼지면 연료가 충분해도 시동이 안 걸리잖아? 외부에서 전기를 끌어와서 배터리를 가동시키지 않는 한. 그거랑 같은 원리야.”

로마노프의 말대로라면 지금 프리드웬을 움직이기 위해 동력부에 충분한 마나를 공급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생각보다 꽤 쉬운 해결책처럼 들렸지만.

그건 의외로 보통 일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네 몸에 있는 에너지를 직접 프리드웬에 공급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발상은 버리는 게 좋아.”

그는 내 생각을 이미 읽고 있었던 모양이다.

“왜?”

“네가 아무리 대단해도 이걸 움직일 정도의 마나를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실제로 이 테세우스의 배의 엔진은 생산해 내는 마나의 양 자체가 엄청나게 많았다.

제아무리 요르문간드의 격을 얻은 나라고 하더라도 그 많은 양의 에너지를 뽑아낼 수는 없고.

애초에 프리드웬이 순수한 에테르 그 자체를 흡수해 쓰는 배였다는 걸 생각해 보면, 무리도 아닌 얘기였다.

“거기다 이 배에 마나 저장 장치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안 된다는 얘길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 아닐 거고.”

로마노프는 내 다그침에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내 생각엔, 아예 엄청난 양의 마나 발전기를 대량으로 구해 와서 여기에 공급하면 될 것 같거든.”

“하?”

“물량으로 승부를 보자는 거지. 때마침 넌 돈도 많으니까 직접 사 올 수도 있을 거고 말이야.”

그러더니 자신이 생각해 뒀던 계획을 술술 풀어놓았다.

“내가 알기로 마나 생성 장치를 대량 생산하는 건 ‘곤륜공사’가 최고인 걸로 알고 있거든? 거길 한번 갔다 와보는 게 어때?”

트롤들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곳.

로마노프는 나도 모르는 그곳의 생산 품목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구 최강의 대장장이이면서 동시에 사업가이기도 했다 보니, 서 대륙에 와서도 여러 가지 재료들의 공급 루트를 꿰뚫고 있었던 모양이다.

“곤륜공사라…….”

난 그의 제안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된 상황.

그러니 물건을 사려면 직접 가서 받아 오는 수밖에 없다.

바깥엔 위험한 마물들이 우글거리는 만큼 꽤나 험난한 여정이 될 테고.

하지만 지금은 그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무작정 이곳에 눌러앉아 상황이 저절로 해결되길 기다리는 건 내 방식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했다간 오히려 모두가 자멸하는 꼴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알겠어. 직접 가보도록 하지.”

결국 난 로마노프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 * *

나와 동행하기로 한 것은 라이진과 유메미 단둘뿐.

너무 많은 인원을 데려가면 타카마 시티의 방어가 불안해지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두고 왔다.

“여기가 한계예요.”

텔레포테이션 마법의 시전을 끝낸 유메미가 그렇게 말했다.

공간이동 마법을 통해 도착한 곳은 황량한 산 중턱.

곤륜공사가 위치한 도시와는 꽤나 거리가 먼 곳이었다.

“이 이상부터는 제가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 마나의 흐름 파악이 안 되거든요.”

이런 애매한 위치에 온 것은 텔레포테이션 마법의 한계 때문이었다.

술자가 모르는 지역으로는 이동하지 못한다는 제약.

억지로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그렇게 했다간 어떤 끔찍한 일을 당할지 모르는 너무 큰 리스크가 있어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자칫하다간 몸은 아공간에 빠지고 목만 현실 세계로 튀어나오는 등의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충분해. 여기서부턴 직접 걸어가면 되니까.”

아무튼 우린 거기서부터 곤륜공사가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워낙 위협 수준이 높아진 마물들의 시선을 덜 끌고 전투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행은 자제했다.

“잠깐.”

그렇게 한참 동안 지상으로 이동하던 도중, 나는 일행을 멈춰 세우고 맨땅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뭔가 발견한 것이오?”

“조용히 해. 움직이지 말고.”

나는 주변을 최대한 조용하게 만든 다음, 몸을 바짝 낮추고 바닥에 귀를 갖다 대었다.

그리고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특성 <신화 사냥꾼의 본능> 발동}

청각과 촉각이 극도로 발달되며 땅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들이 내 귀를 자극했다.

원래도 이 특성을 사용하면 맨 귀로도 꽤 먼 거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렇게 땅의 울림을 들으면 그보다 훨씬 더 먼 거리까지 듣는 게 가능하다.

심지어 그 울림이 들어오는 방향과 진원지에서 발생하는 대략적인 세부사항까지 말이다.

쿠구구궁.

-……2선……후퇴…….

-마……하지 못……아!

-……방어막…….

그리고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시끄러운 대화 소리를 비롯한 산발적인 충격음이 들려왔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규모가 아주 큰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저 앞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거긴 곤륜공사가 위치한 도시 방향이오.”

“그럼 도시를 공격하는 마물 무리와 트롤들 사이의 전투겠군.”

“그렇소.”

여기서 내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저 전장을 피해서 돌아가느냐, 아니면 정면으로 다가가 전투에 합류하느냐.

“전투는 가능하면 피하기로 했지만, 저긴 피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라이진은 내게 후자를 권했다.

“왜지?”

“곤륜공사는 굉장히 배타적인 집단이오. 그들의 마음을 열고 거래를 틀려면 돈만으로는 안 될 거요.”

“트롤들은 그다지 배타적인 종족이 아닌 것 같던데?”

“종족은 그렇지 않지만, 저 집단은 그렇소.”

“그래도 입이 떡 벌어지는 돈 앞에서는 저 녀석들도 물건을 내놓지 않을까?”

내게는 사실상 무한에 가까운 골드가 있으니, 저 녀석들이 아무리 뻗댄다고 해도 내 지갑 앞에서는 설설 기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라이진이 우려하는 건 그런 점이 아니었다.

“물건을 내놓기야 하겠지. 그것도 엉터리로.”

“음.”

“저들이 당신을 지속적인 거래 상대로 보지 않는 한, 온갖 방법으로 사기를 치려고 들 것이오. 특히나 지금 같이 서로 단절된 시기엔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겠지.”

거기까지 듣고 나자, 라이진이 하는 말의 의도를 알아챘다.

“그러니까 이참에 전투를 도와서 호감을 얻을 겸, 이렇게 마물들이 우글거리는 와중에도 얼마든지 오가면서 거래를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건가?”

“바로 그거요.”

“결국 싸우는 수밖에 없겠군.”

{마검 <파슈파타> 소환}

{<빙벽의 회색곰 야차> 소환}

{<마술포격 나찰> 소환}

나는 검을 뽑아 들고서 야차와 나찰들을 불러냈다.

라이진과 유메미 역시 각각 영체를 투영하고 무기를 꺼내 싸울 준비를 했다.

“가자.”

트롤들에게 깊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 나는 정면으로 나아갔다.

* * *

{공명기 <달 그림자 검식> 파생형 ‘현월’ 전개}

쐐애액!

초승달 검기가 횡으로 휘두른 참격을 따라 전면에 뭉쳐 있는 마물들 한 무리를 한꺼번에 두 동강 냈다.

빠르고 간결한 동작이지만, 빙결의 기운을 머금은 그 검기는 극에 달한 예리함으로 마물들을 없애버렸다.

“이, 인간……?”

마물들에 의해 궤멸 위기에 놓였던 트롤 군인 한 부대가 나를 보더니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덩치에 걸맞은 근력으로 중화기와 대형 망치 등의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개체 수가 극단적으로 늘어난 마물들 앞에서는 별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부대원들을 추슬러서 본대로 합류해라. 이 주변은 우리가 처리하겠다.”

트롤들은 갑자기 나타난 인간이 자신들을 도와주는 것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쨌든 마물 앞에서 아인종은 한 편이었기 때문에 금방 수긍하고 내 말을 따랐다.

파지직!

“멋지게 나타나서 위기에 빠진 병사들을 구출한다. 아주 좋은 이미지 메이킹이었소.”

라이진이 고속 참격으로 마물들을 베며 다가와서는 그렇게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는 이런 식으로 전장에 퍼져 있는 수많은 트롤 병사들을 구출해 냈다.

그들이 돌아가 나에 관한 이야기를 퍼뜨리기 시작하면, 곤륜 공사 내에서 나를 보는 시선은 확실히 우호적이 될 수밖에 없겠지.

그 이후엔 돈을 주고 마력 발생 장치들을 사서 돌아가기만 하면 끝이다.

“저쪽이 최대 격전지인 것 같군. 가자.”

나는 마지막으로 이 전장 내에서 가장 큰 싸움이 벌어지는 지역으로 향했다.

거기서 대형 마물과 일전을 벌이는 자의 강한 무위가 느껴진다.

아무래도 그자가 이곳의 책임자이거나 그에 준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쿵! 쿵!

묵직한 진동이 땅을 타고 내 발로 전해져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지금까지 봤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마물이 내는 소리였다.

“저기다.”

지난번 안개의 융합체와 거의 비슷한 크기.

거대한 상체와 엉거주춤한 포즈가 마치 고릴라를 연상케 하는 몸뚱이인데, 얼굴과 앞발은 흉포한 호랑이의 것이 붙어 있었다.

쩌억!

그런데 그런 괴물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싸우는 트롤 전사가 있었다.

망토를 휘날리며 거대한 양손 도끼로 하늘 높이 뛰어올라 괴물의 머리통을 찍어 내리는, 엄청난 박력의 소유자.

‘뭐지?’

그는 다른 트롤들에 비해 키가 조금 작았으나, 몸이 훨씬 더 탄탄했고 특유의 튀어나온 배도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왜…… 익숙한 거지?’

그자의 얼굴이 왜인지 나에게 익숙했던 것이다.

과거 신화시대라면 모를까, 현재에선 트롤들과 어떠한 접점도 없는 나다.

그런 내가 저자를 익숙하게 느낄 이유가 없었다.

흘끗.

전투 중이던 그자가 마물의 공격을 피하며 내 쪽을 쳐다봤다.

난 그자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 아니, 트롤이 아니야.’

그 순간, 난 그 익숙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오크.’

저자는 트롤들과 같은 초록 피부지만, 명백히 다른 종족인 오크였다.

그것도 내가 아는 오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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