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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57화 (257/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57화

“당신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도와줘서 고맙군. 나는 라르스라고 한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내게 투박한 손을 내밀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그는 역시 내가 알고 있는 그 오크, 라르스가 맞았다.

그런데 그는 나를 알아보는 듯하면서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어째선지 꽤나 익숙한 얼굴이군.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인간인데 말이야.”

여기서 나는 머릿속으로 이후에 벌어질 상황들을 계산했다.

‘타라에 관한 일에 대해 알아내려면 동 대륙에서 여기까지 건너온 경위를 들어야 하는데……. 그 얘길 꺼내면 분명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겠지. 그러면 내가 자신의 수호령을 빼앗고 시나리오 차원에 가둬놓은 것도 생각 날 테고.’

그와 내가 아는 사이임을 드러내려면 과거에 있었던 원한을 들춰내야만 한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지금 내가 하려는 일들에 지장이 갈 수밖에 없을 터.

이 자가 나를 적대하는 상태에서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순순히 해줄 리도 없을뿐더러, 지금 난 곤륜공사와 거래를 하러 왔다.

라이진의 말대로 트롤들에게서 제대로 된 물건을 사려면 호감을 얻어야 하는데.

언뜻 봐도 이 전장의 책임자급의 직위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라르스와 적대해 버리면 그게 다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일단은 모른 척을 해볼까.’

그래서 난 당장은 모르쇠로 나갈 작정이었다.

“저자가 바로 그 칠지도를 손에 쥐고 타카마 시티를 장악했다던 이방인 인간입니다. 이름은 유신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의 안경을 쓰고 있는 트롤 하나가 내 신상에 대해 전부 까발렸다.

양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뒤로 넘긴 것이, 트롤이라는 종족에 어울리지 않게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남자.

{수호령: 나타(신화)}

그는 라르스와는 달리 수호령을 가지고 있는 신화급 각성자였다.

“……아! 그랬었군. 그래서 내 눈에 익숙했던 거였나.”

난 그가 내 신상에 대해 언급하는 순간 혹시 라르스가 눈치를 채지 않을까 우려했으나,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라르스는 내 이름을 듣고도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정말 많이 늙었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라르스의 얼굴에선 정말 오랜 세월이 흐른 티가 났다.

라이진의 말대로라면 이곳 서 대륙에 도착한 지만 최소 15년이 흐른 셈이고, 그 이전에 시나리오 세계에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를 만난 지 불과 몇 달밖에 지나지 않은 내 입장에선 라르스라는 존재가 아주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으나.

벌써 그때로부터 수십 년은 흐른 듯한 그에게 있어서 나는 까마득한 과거에 잠깐 마주쳤던 존재일 뿐인 셈이다.

덥석.

그래서 난 아무런 내색도 없이 내밀고 있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들은 대로, 나는 칠지도의 주인이다.”

“그 대단한 인간을 눈앞에서 직접 만나는 걸로도 모자라 함께 싸우게 되다니, 참으로 영광이군.”

라르스는 정중한 태도로 나를 맞이했다.

그의 얼굴에는 온화함이 가득했다.

원래부터 아군이라 인식한 자에게는 저랬는지, 아니면 시간이 흐르면서 성격이 많이 유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선 강한 신뢰감이 느껴졌다.

같은 편이라면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을 거라는 인망.

‘계속 같은 편이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그가 보여준 무위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비하면 차원이 다른, 오히려 토르의 힘으로 번개를 쏘아대던 그때에 비해 훨씬 더 강해진 무력을 말이다.

‘역시 언젠가는 등을 돌려야 하겠지.’

그러나 나는 진실을 밝혀야 하고, 그때가 되면 그는 나를 증오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그와 나는 서로 무기를 겨눌 운명이었다.

“지금 같은 시국에 어쩌다 이 먼 곳까지 찾아온 건가?”

한편, 그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먼저 물었다.

보다시피 마물들의 개체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위험성이 늘어난 지금, 한 세력의 리더인 내가 소수 인원을 데리고 나타난 게 이상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거래를 하기 위해서다.”

“거래? 이 상황에?”

라르스는 내 말을 듣고 더욱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는 딱히 더 캐묻지는 않았다.

“꼭 필요한 게 있어서 말이야.”

“나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를 도와줬으니 은혜는 당연히 갚아야겠지.”

“그렇게 나와준다니 고맙군.”

“고마운 건 나다. 당신 덕에 생존한 우리 쪽 병사들이 당신을 정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더군. 그들을 대신해서 감사를 전하겠다.”

그가 내게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보답으로 내가 당신의 신원을 보증하도록 하지.”

내가 생각했던 대로 일이 풀리고 있다.

이곳의 책임자가 라르스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어떻게든 트롤들의 호감을 사는 덴 성공한 모양이다.

이젠 그들에게서 마력 발생 장치를 구입하기만 하면 된다.

라르스에게서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듣는 것은 그다음.

난 그와 함께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 * *

곤륜공사는 도시 전체가 철저한 상부의 계획과 지시하에 경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물론 타카마 시티도 그 안의 모든 자산들은 A&A의 소유이고, 거기서 경제활동을 하는 드워프들은 사원으로 취급되지만, 그래도 개개인의 사소한 행동까지 제약하지는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어지간한 지구의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더 자유롭게 내버려 두는 경우가 있을 정도.

말하자면 A&A는 거대한 건물주 노릇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곤륜공사는 그와는 달리 철저하게 도시 내의 모든 요소들을 상부에서 직접 관리·감독했다.

그 덕분인지 화려함과 퇴폐적인 분위기가 뒤섞여 있던 타카마 시티와는 달리, 이곳은 매우 칙칙하고 경직된 분위기를 보였다.

건물들도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 똑같은 형태였고, 길도 완벽하게 짜 맞춘 블록 같은 느낌이다.

‘여긴 정말 숨이 막히는군.’

이런 곳에선 조금만 지내도 미쳐버릴 것 같았으나, 그럼에도 트롤들은 잘 적응해서 살고 있었다.

솔직히 다른 도시에서 그들이 받는 취급을 생각해 보면, 그나마 동족이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이곳이 나을지도 모른다.

“난 잠시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워야겠군.”

정부 청사 같은 형태의 건물에 나를 데려온 라르스가 그렇게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경제위원회 위원이 올 거다. 거래하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얘기하면 돼. 전후 사정에 대해서는 내가 다 말을 해놓았으니, 별로 걸릴 것은 없을 거다.”

“고맙군.”

“나야말로. 내 부하들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는 턱없이 부족하지. 필요한 게 있다면 이쪽으로…… 아. 아니지.”

그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려다 말았다.

아마도 홀로그램 PC로 연락처를 주려 했던 모양이나, 마나링크가 먹통이 된 지금은 그게 무용지물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는 그 대신 자신의 수행원을 내게 붙여줬다.

그 수행원은 아까 전의 나타라는 수호령의 트롤은 아니었고, 하급 수호령을 가진 비전투원으로 보이는 자였다.

“이 친구에게 대신 말하면 되겠군. 잘 모셔라. 알겠나?”

“넵!”

그러고는 우릴 훌쩍 떠났다.

“여긴 정말 숨 막히는 곳이네요.”

유메미가 의자에 앉아 몸을 뒤로 젖히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이곳은 왠지 사람을 경직되게 만드는 곳이었다.

“트롤들의 문화가 그렇소. 사람이 많다 보니 이들을 통제하기엔 이만한 체제가 따로 없지.”

“그만큼 대중을 호도하는 힘도 훨씬 더 강할 거고.”

“응?”

“그런 게 있어.”

난 왜인지 예전 지구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덜컥.

그때,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이 조용한 공간에서 무례하다는 말을 듣기 딱 좋을 만큼 시끄럽게 문을 열어젖힌 트롤.

그 남자는 이곳의 전투원들이 입고 다니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아, 최고위원 각하!”

내 옆에 앉아 있던 라르스의 수행원이 화들짝 놀라더니, 벌떡 일어서서 그에게 머리를 숙였다.

‘최고위원?’

난 처음에 그자가 라르스가 말했던 ‘경제위원’인 줄 알았으나, 수행원의 호칭을 듣고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냥 위원이 아닌 최고위원.

내가 한 세력의 수장이니 그만큼 급이 높은 사람이 온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넌 뭐야?”

그자가 대뜸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는 말을 듣고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이것들은 뭔데 나를 보고도 인사를 안 해?”

“저기…… 이분들은 손님…… 으악!”

콰당!

최고위원이라는 자가 손가락을 까딱하더니, 라르스의 수행원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하급 각성자에게 권능을 사용한 것이다.

{수호령: 뇌진자(신화)}

그것도 신화 수호령을 가진 사람이 말이다.

“이분? 내 앞에서 누굴 높이는 거냐? 그리고 손님이면 예의를 안 지켜도 되는 건가?”

“으으…… 으…….”

라르스의 수행원은 거기에 대답할 상태가 아니었다.

하급 각성자가 신화급 각성자의 권능을 얻어맞았으니 그가 얼마나 큰 부상을 입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터.

난 저 과격한 트롤이 더 큰 사고를 치기 전에 개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나는 타카마 시티에서 왔다.”

이 정도면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지.

한 세력의 수장인 내 앞에서 더는 ‘예의’ 운운하는 소리를 내뱉진 못할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타카마 시티? 아아, 그 이방인 인간인 모양이군. 그래서?”

“……음?”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는 곤륜의 군사위원회 최고위원인 잉굴다이다. 이제 네가 아랫사람이고 내가 윗사람이라는 걸 알겠나?”

“아랫사람?”

난 그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저런 소리를 하는 건가?

“말조심하시오. 이분은 칠지도의 주인이오.”

그러자 라이진이 발끈하며 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당연하게도 나를 무시하는 건 모든 드워프들을 무시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처사였기 때문이다.

“감히 이분께 그런 망언을 한다면…….”

“건방진 드워프 놈들. 아랫것들이 말이 많군. 칠지도? 기껏 해봐야 난쟁이들의 지휘권이라는 알량한 능력에 불과한 아티팩트를 가졌다는 사실로 감히 이 몸에게 대드는 것인가?”

“뭐라고!”

“그동안은 넓은 아량으로 조용히 넘어가 줬는데, 이젠 그냥 봐줄 수가 없겠군. 위아래가 뭔지 확실히 각인시켜 줘야겠어.”

그러더니 등 뒤에서 날개를 펼쳤다.

그곳에서 퍼져 나오는 강렬한 마력을 보아, 날개가 바로 이 잉굴다이라는 자가 가진 힘의 원동력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걸 꺼냈다는 말은, 당연히 여기서 나에게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이었다.

“하.”

난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최고위원이라는 직급은 물론 이곳에서도 꽤나 높은 위치일 것이다.

하지만 곤륜공사에는 주석이라는 최상위 직급이 따로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잉굴다이라는 자는, 아무리 높다고 해봐야 곤륜공사의 2인자밖에 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런 자가 5대 세력 중 하나의 수장인 나에게 저렇게 나온다는 건.

외교적인 결례도 이만한 게 없을 정도의 심각한 결례라는 것.

아예 한 세력 전체를 낮잡아본, 어이없는 행동인 것이다.

어쩌면 소수 인원만으로 자기들 본진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나를 얕본 걸지도 모른다.

‘곤란하군.’

한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여기서 이자와 한 판 붙게 되었을 때 발생할 후폭풍이다.

난 이들과 거래를 하기 위해 최대한 우호적인 행동을 취하려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되면 그게 다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먼저 시비를 건 게 저쪽이니 명분은 있지만…….

‘적당히 받아쳐 줘서 힘의 차이를 각인시켜줄까.’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일이 최대한 커지지 않도록, 놈을 무릎 꿇게 만들 생각이었다.

맞붙어서 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

관건은 얼마나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느냐라는 것.

{퀘스트가 발동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 시스템이 또다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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