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04화
듀엔데가 말한 프리드웬의 위치는 리타네스포스 협곡 가운데에 흐르는 용암 아래의 공동.
‘이러니 그런 거대한 게 지금까지 발견이 안 된 거겠지.’
원래는 이곳도 지구에서 포탈을 통해 접근이 가능한 던전이었다.
아무래도 던전 포탈이 존재하는 장소가 곧 돈이 되던 시절이 있다 보니, 이곳 역시 각성자들에 의해 충분히 탐사가 이뤄졌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드웬이라는 ‘거대한 아이템’이 여태껏 발견되지 않은 것은, 저런 말도 안 되는 위치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용암 속에 들어갈 생각을 하겠어.’
보통 비밀 장소라고 하면 폭포 뒤나 절벽 가운데 같은, 접근이 ‘어려운’ 곳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저곳은 접근이 ‘어려운’ 곳이 아니라 ‘불가능’한 곳이다.
제아무리 온갖 탈리스만과 스킬 등을 사용해 화염 저항력을 최대로 끌어올린다 하더라도, 던전의 자연환경에 배치된 용암 속으로 들어갈 수준은 될 수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와이번들이 서식하는 지역의 용암은 지구의 것과도 그 온도와 압력이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처음 듀엔데의 말을 들었을 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고?
-나도 믿기 어렵지만, 그건 사실이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도움을 구하고자 한 거다. 지금 우리들이 가진 장비로는 그 밑으로 내려갈 방도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 식으로 나를 속여서 위험한 곳에 뛰어들게 만드는 거라면?
-젠장. 믿지 못하겠다면 믿지 마.
듀엔데는 그렇게 말하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더 이상 나를 속이려거나 하는 시도는 없었다.
그래서 난 속는 셈치고 탐사나 하러 와보자는 뜻으로 온 거였는데.
{<악의의 오른쪽 눈>이 숨겨진 신비를 발견했다.}
거기엔 정말 듀엔데가 했던 말 그대로의 물건이 들어가 있었다.
───
<비밀 장소>
-협곡 용암을 꿰뚫고 지하로 들어가면 비밀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
-비밀 장소에는 신계 진입용 강철선 <프리드웬>이 숨겨져 있다.
───
‘정확하군. 프리드웬의 이명이 ‘강철선’이라는 것까지.’
단순히 여기에 저런 배가 숨겨져 있다는 걸 넘어서, 꽤나 디테일한 부분까지 정확히 예측한 엘프들의 정보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쯤 되니 난 정말로 궁금해졌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수로 이런 정보들을 얻게 된 것인가.
‘패치노트에서도 언급이 없던 걸 자력으로 알아낸다? 게다가 인간의 함선인 프리드웬이라면 더더욱 엘프들과는 연이 없을 텐데.’
나조차도 직접 이곳에 와서 특성을 발동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런데 그걸 직접 보지도 않고서 알게 되었다면…….
‘엘프 종족에 나보다 훨씬 뛰어난 정보 습득 능력을 가진 능력자가 있을지도 몰라.’
결론은 그 역시 평범한 각성자가 아닌, 특수 능력자라는 것이다.
골드와 다이아를 무한히 수급할 수 있는 나.
거의 불멸자에 필적할 정도의 자유로운 부활 능력을 가진 하비.
수호령 없이 육체만을 형성해 움직였던 아후라 마즈다.
이와 같이 시스템의 제약에서 벗어난 존재가 다른 종족에도 있다면.
이 역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그리고 ‘정보 획득’이라는 측면에 특화되어 있다면, 엘프가 이만큼이나 높은 기술력을 지닌 것 또한 그 자 덕분일 수도 있겠지.
‘조심해야겠는데.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능력자라면.’
엘프는 단순히 높은 기술력 덕에 뛰어난 군사력을 지닌 종족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 무력이 그걸 넘어서기만 한다면 별로 무서워할 것이 없다고 여겨왔다.
지금까지는.
하지만 이젠 그리 단순히 봐서는 안 될 것 같다.
엘프들은 내게 있어서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아주 든든한 아군이 되거나.’
어느 쪽이든 만만히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난 그렇게 그들에 대한 판단을 마무리하고, 다시 내가 진입해야 할 저 붉은 강을 내려다보았다.
* * *
등 뒤에 아지다하카의 날개를 펼치고서 용암 위로 날아가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딘다.
{고열의 불꽃이 신체를 뒤덮어 옵니다.}
{<화상> 1단계가 부여됩니다.}
곧장 시스템 메시지가 내게 위험을 경고했다.
하지만 1단계 화상 정도는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직은 끄떡없었다.
‘저 아래로 내려가면 이것보다 훨씬 심하겠지.’
문제는 용암 속으로 들어간 이후.
저 안쪽은 단순히 열기뿐만 아니라 압력 또한 매우 강하다.
속성 피해는 물론이고 물리적인 피해에 대한 대처까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방어막을 전개해서 어떻게든 버티자.’
이것저것 방법을 고려해 본 결과, 첫 번째로 내가 해야 할 것은 방어막을 활용해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었다.
난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방어 대책을 세운 후 용암 속으로 뛰어들었다.
콰드득.
전신을 뒤덮은 용비늘 갑주가 더 두터워지며 움직임에 제한이 걸릴 정도의 고중량 판금갑옷 형태로 변화했다.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역장 보호막’ 전개}
그리고 그 위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을 둘러쳤다.
이걸로 이중 방어가 완성.
‘간다.’
그리고 곧장 용암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치이익!
역장 보호막이 뜨거운 불길과 맞닿으며 강렬한 저항 반응을 일으켰다.
물론 이 역시 내 몸 안에 흐르는 화염인, 격멸의 업화로 이루어진 역장이기에 화염에 더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하면 돼. 불이라면 나야말로 환영할 힘이니까.’
내가 이곳에 이렇게 과감하게 뛰어들 생각을 한 것은, 물론 내가 가진 힘에 대한 신뢰도 있었겠지만, 이곳의 위협이 다름 아닌 화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난 불이라면 지겨울 정도로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다뤄왔다.
이 뜨거운 용암에 의해 보호막이 깨지고 갑옷이 녹아내린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전신에 불길이 흐르는 나를 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 방금 전에 부여된 1단계 화상 상태이상마저 그 열기가 내게로 흡수되어 에너지의 일부가 된 상황이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이 용암의 화기(火氣)를 받아들이기로.
{고열의 불꽃이 신체를 뒤덮어 옵니다.}
{<화상> 2단계가 부여됩니다.}
{상태이상으로 유발된 화기를 흡수한다.}
{화기가 격멸의 업화와 뒤섞인다.}
그러자 내가 생각했던 대로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몸속에 흐르는 화염, 격멸의 업화가 용암의 불꽃과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좋아. 이대로 협곡의 화염을 내 힘의 일부로 만든다.’
그래서 나는 용암 속에 빠져든 채, 아래로 내려가는 와중에 이 불꽃을 잡아먹었다.
물론 몸을 감싼 역장 보호막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방어 수단은 갖춘 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고서 역장 표면을 두드리는 뜨거운 기운만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격멸의 업화가 더 맹렬하게 타오른다.}
곧, 체내의 불꽃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처럼 강하게 피어올랐다.
몸이 보호막과 용비늘 갑주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웠다.
그건 격멸의 업화가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이제 이걸 내 통제하에 두기만 하면…….’
그런데, 그때.
{위험.}
시스템 메시지가 내 예상에서 어긋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진입한 이질적인 기운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지역에 흐르는 화염은 용혈과 상극의 성질을 가진 화염이다.}
‘……뭐라고?’
그저 화염이니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틀렸다.
같은 불이지만 내 몸에 흐르는 용의 피와 상극인 불꽃.
이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로 인해, 격멸의 업화와 뒤섞인 화염이 내부에서 폭주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끄아악!”
파캉!
아니나 다를까, 폭주하는 화염이 힘의 흐름을 제멋대로 흐트러놓는 바람에 악룡마술로 전개한 보호막이 깨져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그 안에 얼굴까지 꽁꽁 싸맨 두꺼운 용비늘 갑주가 들어 있었지만.
쩌저적.
그 방어력 역시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표면이 갈라지며 녹아내리는 것도 아니고 깨진 것이다.
‘설마…… 용의 힘과 상극이라서……?’
이제야 깨달았다.
애초에 이 지대의 화염은 나에게 있어서 극히 위험한, 역상성의 불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엘프도 알지 못했고, 내 오른쪽 눈 특성으로도 알 수가 없었다.
직접 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정보인 것이다.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역장 보호막’ 전개}
어쨌거나 난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보호막을 재차 펼쳐냈다.
몸 안에서 날뛰는 힘의 제어는 뒤로 미루더라도, 육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이 용암만큼은 막아내야만 했다.
쩌저적. 파캉!
그러나 보호막은 금세 깨졌다.
이번엔 내부에서 날뛰는 불꽃 때문이 아니다.
지금 내 주변으로 몰려드는 더 강한 압력의 용암 때문이었다.
{고열의 불꽃이 신체를 뒤덮어 옵니다.}
{<화상> 4단계가 부여됩니다.}
{생명력이 급격하게 소진됩니다.}
‘젠장!’
그리고 몸에 닿은 용암은 곧바로 3단계를 뛰어넘어 4단계 화상 상태이상을 일으켰다.
이쯤 되자 이게 애초에 화기를 받아들이는 시도를 하지 않았어도, 처음부터 접근하는 것조차 위험한 짓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용과 상극인 불꽃이라니……! 어째서 용종 마수들의 서식지에 이런 게 있는 거지?’
의문은 뜨거움과 고통의 감각에 의해 저편으로.
여기서 빠져나간다는 선택지도 떠올려 보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계속해서 나를 붙잡고 아래로 가라앉히는 고압의 용융물이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행위조차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위험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습니다.}
{즉시 회복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죽는다!’
시스템 메시지도, 내 본능도, 임박한 죽음을 처절할 정도로 선명하게 알리고 있다.
나는 어떻게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화상의 통증이 온몸을 강타하는 와중에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냉각.’
그러자 생각보다 훨씬 직관적인 방법이 떠올랐다.
열기가 너무 강하다면 냉기로 식히면 된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
인류가 만든 수많은 열기에 기반한 동력장치에도 냉각 과정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포함되어 있게 마련이다.
불은 불로써 다스리는 게 아니라, 냉각으로 다스리는 것이었다.
{<환란의 빙정>으로부터 유수를 방출한다.}
난 곧바로 심장에 위치한 얼음 덩어리에서 요르문간드의 물길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환란의 빙정은 여전히 불안정한 힘이기에 내 마음대로 조절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어찌 됐든 뜨거움을 식히기만 하면 그만이었기에 일단 내보낸 것이다.
{빙정유수(氷晶流水)가 격멸의 업화에 뒤엉켜 있는 반룡화염(反龍火炎)을 축출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물길은 몸 안을 장악하고 있는 날뛰는 불꽃을 둘로 나눈 다음 내게 위협적인 외부의 화염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잡아먹을 듯이 부딪히던 극상성의 기운이, 체내에서 공통의 적을 만나자 서로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환란의 빙정이…… 스스로 내 의지를 따르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던 빙결의 기운이 제 스스로 나를 위해 움직여 주고 있었다.
위기 앞에서 제 주인을 보호하는 맹수처럼, 이질적인 화기를 쫓아내고 있는 것이다.
치이이익!
게다가 그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나를 짓누르는 고온고압의 용암으로부터 내 몸을 보호하는 효과도 나타났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이, 화기를 식혀 피해를 줄였다.
{생명력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이 냉기에는 결손된 신체를 수복하는 기능도 있었다.
용암으로 인해 타들어 갔던 피부와 신체 말단을 재구축하고, 그 위에 용비늘 갑주를 덧씌워 화상으로 엉망진창이 된 나를 다시금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변화와 창조의 힘.
환란의 빙정의 진가가 바로 이 순간, 절명의 위기에 몰려 있던 나를 구원하기 위해 발휘된 것이다.
{<환란의 빙정>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을 습득했다.}
{이제 <격멸의 업화>와 <환란의 빙정>, 두 가지 진원진기(眞元眞氣)를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다.}
이로써 이 제멋대로인 기운은 완전히 내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