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03화
아몬과의 일을 끝낸 후, 나는 다시 알포드 성으로 돌아가 엘프들을 만났다.
“이제 당신들은 어쩔 거지?”
테세우스의 배를 잃어버린 이차원의 조난자들.
저들이 가진 거라곤 몇 가지 장비들과 조그만 공중부양 포함(砲艦) 한 척뿐이다.
물론 그 배도 꽤나 강력한 마력을 내부에 지니고 있긴 하지만, 그래봐야 테세우스의 배가 가졌던 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다.
게다가 환란의 빙정과 격멸의 업화까지 가지게 된 내게는 더더욱 위협이 될 수가 없다.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지.”
“무슨 수로?”
“그건…….”
듀엔데가 뭐라 말을 하려다 말았다.
질호른이 침묵 속에서 보낸 눈빛을 보고서 꼬리를 내린 것이다.
난 곧바로 이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면 좋겠군.”
지금 이들은 테세우스의 배가 없는 상태에서 차원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데 지금 뭔가를 숨긴다는 뜻은, 당연히 차원이동에 관한 밝히지 못할 어떤 해법이 있다는 뜻.
지금은 나 역시 그 방법을 알고자 하는 상태이고, 그렇기에 이들에게 넌지시 미끼를 던져 낚아 올리려는 것이다.
‘옹구스……. 놈을 찾으려면 서 대륙으로 가야 한다.’
얼마 전에 유메미를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야드가르의 행방에 대해 찾아낼 수 있는 단서인 ‘드루이드 옹구스’의 위치가 서 대륙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이곳은 동 대륙.
서 대륙으로 가려면 대양을 건너야 하는데, 그건 지구에서와는 달리 단순히 물리적으로 물을 건너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왜냐하면 두 대륙은 마치 신계와 하계가 나뉘어 있듯, 서로 다른 차원으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난 엘프들의 차원 이동 기술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
만약 테세우스의 배가 없이 그걸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놈들에게서 정당하게 도움을 얻든지, 아니면 힘으로 빼앗든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내야 한다.
특히나 지금처럼 내 쪽이 무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이 위치를 이용할 수 있고 말이다.
“집정관님.”
듀엔데가 내 말을 듣고 질호른에게 ‘이건 말해야 한다’는 식의 눈빛을 보냈다.
집정관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던 원래의 그라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이겠지만, 지금은 처지가 처지이다 보니 절박함이 두려움을 이긴 모양이다.
“……후우. 알았다.”
결국 질호른도 그가 보채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상을 장악하는 테세우스의 배를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며 시종일관 자신만만해 하던 그의 태도는 이제 온데간데없다.
자신이 가진 최강의 힘을 잃게 된 순간, 그 역시 평범한 한 명의 엘프에 불과한 신세인 것이다.
“인간. 우린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번엔 또 어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난 그에게 ‘또’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지난번 바벨탑 6층의 문제에 이어 두 번째로 내게 도움을 받는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였다.
“새로운 테세우스의 배를 만들기 위한 재료 수급.”
“그런 배를 아무런 인프라도 없는 여기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씀이십니까?”
“자세한 걸 말할 수는 없다.”
“자세한 사항을 말해주지 않으면 저도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목적을 모른 채 시키는 대로만 일해서는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내 말은 공손했지만 안에 든 내용은 고압적이었다.
지금 뒤바뀐 그와 나 사이의 위상을 질호른 역시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네놈.”
순간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간간히 보여주던 사람을 오싹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눈.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그가 ‘테세우스의 배’의 주인일 때나 오싹했지, 지금은 나를 움츠러들게 하기는커녕 도발조차 할 수 없는 눈이었다.
“싫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빠지겠습니다.”
난 그대로 그와의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강수를 뒀다.
실은 나 역시 그에게 얻어야 하는 것이 있는 처지이긴 하지만, 당장 스스로의 거취가 불분명한 엘프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차원을 뛰어넘어서 대륙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시일이 오래 걸릴지언정 그들의 도움 없이 불가능한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거 참! 이봐, 그런 게 아니라……. 집정관님, 제가 대신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때, 불안감을 느낀 듀엔데가 대신 끼어들었다.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집정관을 배제하고 자신이 직접 대화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면서 말이다.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는 그의 수완이 더 뛰어나다는 게 느껴졌다.
“…….”
집정관은 말없이 물러섰다.
지금은 엘프들이 나에게 자세를 낮춰야 할 때.
차라리 자신의 아랫사람이 그렇게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일 것이다.
‘이러면 나야 더 좋지.’
물론 내 입장에서도 듀엔데가 더 구워삶기 좋았으니,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 * *
“……그래서, 그 테세우스의 배를 새로 건조하기 위한 재료라는 게 뭐지?”
질호른이 빠지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물린 다음 나와 듀엔데는 독대를 했다.
“새로운 배 한 척.”
“음?”
“테세우스의 배로 교체될 완성된 선박이 필요하다.”
듀엔데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었다.
재료라기에 각종 금속이나 자재 같은 걸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구해야 할 줄 알았더니, 아예 완성된 배를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로 뭘 어떻게 테세우스의 배가 만들어진다는 거지?”
“지금 우리는 차원 엔진의 코어를 가지고 있다. 파괴된 테세우스의 배의 잔해 속에서 간신히 가지고 나온 핵심 부품이지.”
“차원 엔진 코어라…….”
그 단어에 귀가 솔깃했다.
그게 바로 내가 찾던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완성된 함선의 동력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 순간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가 된다.”
“말 그대로, 배의 정체성이 뒤바뀌게 된다는 거군.”
“그래.”
존재의 정체성에 관한 역설.
배의 모든 부분을 조금씩 바꿔서 결국 전체가 다른 부품으로 뒤바뀌면, 그것이 처음의 배와 같다고 할 수 있느냐는 난제를 만들어낸 장본인인 테세우스의 배.
정작 그 자신은 ‘코어’라는 물건으로 손쉽게 역설을 해결하고 말았다.
코어가 마치 인간의 영혼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방식인지는 이해하겠는데, 그래서 왜 그걸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거지?”
문제는 이들이 내게 도움 요청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너희는 이미 배를 가지고 있지 않나? 여기까지 오는 데 타고 온 그 배 말이야.”
엘프들에게는 선박이 한 척 남아 있다.
듀엔데의 말대로라면, 차원 엔진 코어를 거기에 사용하면 그 배가 테세우스의 배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 질호른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일 터다.
“그게…… 다른 선박이 테세우스의 배로 변화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다.”
“어떤 제약?”
“배의 위상에 관한 제약.”
듀엔데는 미간을 좁히고는 본격적인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테세우스의 배가 될 대상 선박은, 본체가 가지고 있던 것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전설이나 신화를 보유한 배여야 한다.”
“말하자면, 시스템에 등록될 정도로 유명한 배여야 한다는 거군.”
“그렇다.”
테세우스의 배 역시 시스템 메시지로 내 눈에 보였다.
그건 단순히 엘프들이 타고 온 황금 포함과는 다른 종류의, 그러니까 시스템상으로도 존재가 인정이 될 정도의 전설적인 물건이라는 뜻이겠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자, 난 그들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건지 알 것 같았다.
“그럼…… 당신들이 내게 원하는 건 우리 종족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선박이라는 건가?”
“그래. 그리고 지금까지 위상이 올라온 테세우스의 배에 필적할 만한 배가, 한 척 존재한다.”
“심지어 아예 목표로 하는 배까지 이미 알아왔군. 그래, 그 배가 뭐지?”
“강철선 프리드웬.”
그 이름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과거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후라 마즈다의 속임수에 넘어가 야드가르와 함께 신계 아발론으로 가기 위해 탔던 배.
동 대륙의 서쪽에 위치한 차원문을 통과하는 게 가능한 유일무이한 인간의 선박.
그 배의 이름이 바로 프리드웬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엘프들이 어떻게 알고 있지?”
“그야 물론, 우리 세계에도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신화가 있으니까. 타 종족의 신화도 마찬가지지.”
지구 문명에 오크와 엘프들의 신화인 발할라, 올림포스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듯.
엘프 문명에도 마찬가지로 인간 신화인 아발론에 관한 이야기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실존하는 프리드웬에 대한 정보를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실제 신화시대의 모습과 구전으로 전해지는 신화는 꽤 많은 부분에서 달랐으니 말이다.
“그것만으로 테세우스의 배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춘 선박인지 어떻게 알지? 심지어 그런 물건에 대해서는 패치노트에서조차 언급된 적이 없었는데.”
“우리는 패치노트에서 알려지지 않은 내용에 관한 정보도 일부 가지고 있다. 그러니 프리드웬의 실존 여부와 적합성은 물론이고, 얻는 방법까지 알고 있지.”
“그런…….”
“노파심에 미리 말해두지만, 어떻게 그 정보를 얻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어. 그건 정말로 원로원의 소수 인원 정도만 알고 있는 부분이니까.”
듀엔데는 내가 물을 질문을 예상하고 딱 잘라 말했다.
정보라면 뭐든지 다 가져와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미를 그 역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좋아. 그래서 그 프리드웬은 어떻게 얻을 수 있지?”
그래서 난 곧바로 그에 대한 관심을 끄고 더 시급한 사안에 관해 다루기로 했다.
어찌 됐든, 테세우스의 배의 복구는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 * *
난 듀엔데가 이야기해 준 장소로 곧장 이동해 왔다.
위치는 동 대륙 서쪽 끝에 위치한 리타네스포스 협곡.
끼이익!
이곳은 와이번과 드레이크 같은 용종 마수들이 서식하는 위험한 지역이었지만, 지금의 난 필드에서 자연 발생하는 마수들을 두려워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
퍼엉! 퍼펑!
굳이 내가 움직일 것도 없이, 레아 혼자서 다가오는 것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을 정도.
‘이젠 완전히 창술로 돌아왔군.’
그녀는 오히려 탑승 상태에서는 검보다 창이 더 쓰기 좋다는 점을 깨닫고서 아예 창술로 전향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와이번에 탑승한 채 두 손에 쥔 쌍창으로 내게 보여줬던 격창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검보다 창을 사용하는 모습이 ‘용기사’로서는 훨씬 더 자연스러워 보이긴 했다.
“신우, 주변은 거의 정리된 것 같아.”
상공을 크게 한 번 선회하고서 돌아온 그녀가 바닥에 내려 와이번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고마워.”
“이제 우린 어디로 가는 거야?”
“여기서 기다리면 돼. 진입하는 건 나 혼자니까.”
“여기서 기다리라고? 왜 같이 안 가고…….”
“내가 들어가 있는 동안 마수들이 뒤따라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게 너희들 역할이야.”
“뒤따라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런 거라면, 알았어.”
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용비늘 갑주를 입고 서 있는 아델 역시 마찬가지.
그 뒤로 여섯 명의 용기사들도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저나 입구가 어디지? 뒤따라 들어오지 못하려면 입구 쪽을 지켜야 할 텐데.”
레아의 물음에 난 손가락을 펼쳐 아래쪽을 가리켰다.
“저기.”
“……응? ……에엑?”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협곡 밑바닥에 흐르는 용암 속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