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05화
환란의 빙정을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을 때 즈음, 난 어느새 용암 계곡의 밑바닥에 도달해 있었다.
그 바닥은 특이하게도, 암석 등의 물리적인 물질이 아니라,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투명한 역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즉, 위에서 용암을 뚫고 아래로 내려오니 또 다른 거대한 공간이 나타난 것이다.
‘지하 공동……. 듀엔데가 말했던 대로군.’
머리 위를 가득 뒤덮은 시뻘건 용암이 비춘 아래쪽의 세계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고 깊은 동굴.
아마도 프리드웬은 저 가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밑이 잘 안 보이는데. 빛을 쏘아 보내야겠어.’
위쪽의 용암 불꽃 덕분에 동굴 내부가 붉은 빛으로 어렴풋이 비춰지고 있긴 하지만, 그걸론 지하 깊은 곳까지 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난 인위적인 빛을 만들어 내어 아래를 비출 작정이었다.
‘때마침 잘됐다.’
환란의 빙정을 완성하면서 정립하게 된 ‘빙정술식’에, 이런 상황에서 딱 쓰기 좋은 마법을 담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난 그걸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통제력을 얻은 상태.
{공명기 <빙정술식> 파생형 ‘등불 구축’ 전개}
기술을 사용하자, 내 손바닥 위에 얼음으로 이뤄진 커다란 원형진이 형성되었고, 그걸 동굴 벽면 한쪽을 향해 겨눈 순간.
촤르륵. 파앗.
팔뚝 굵기의 새하얀 얼음 기둥이 솟아나면서 밝은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파생기술의 명칭 그대로 벽면에 인위적인 등불을 만들어낸 것이다.
창조와 변화의 힘인 환란의 빙정.
일시적인 폭발력 방출로 목표를 파괴하거나 공격하는 데에 치중한 격멸의 업화와는 달리, 환란의 빙정은 무언가를 구현해내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파슈파타에 고정된 형태를 부여하거나 그것을 장병기인 트리슈라로 변형시켰듯이.
이 힘을 사용한 기술인 ‘빙정술식’ 역시 유용한 물건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촤르륵. 파앗. 파앗.
아무튼 난 얼음 등불을 동굴 벽면을 따라 아래로 죽 늘어서게 만들어 지하 깊은 곳까지 밝혔다.
그렇게 빛무리가 최하층까지 도달하려던 찰나.
‘적이다.’
쐐애애액!
빠르고 날카로운 참격이 동굴 벽 전체를 긁으면서 바람을 가르고 날아왔다.
난 가볍게 몸을 뒤로 젖혀 가로로 베어 들어오는 그 공격을 순식간에 피했다.
‘역시. 방해꾼이 있군.’
아마도 저 아래에 프리드웬을 지키는 무언가가 나를 공격한 모양이다.
사실 이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왜냐하면 듀엔데가 이 아래에 숨어 있는 적에 대해 미리 귀띔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그 적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
‘참격……. 전사 형태의 적인가?’
구전으로 내려오는 전설대로라면 프리드웬은 아서 왕이 타고 다녔던 배다.
물론 실제로는 아서 왕이 독점했다기보단 동 대륙에 거주하는 인간들이 신계에 접근하기 위해 사용한 공공물에 더 가까웠지만.
누아다 아르게틀람의 화신인 아서 왕과 프리드웬의 연관성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역시 아서 펜드래곤?’
물론 진짜 그의 영혼은 내가 먹어버렸기 때문에 이곳에 존재할 리가 없다.
만약 있다면 바벨탑 6층 시나리오의 요르문간드처럼 시스템이 만들어 낸 가상의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쉬쉬익!
다시 한번 참격이 날아든다.
이번엔 두 개의 참격이 교차하며 날아와 피할 공간이 조금 더 줄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번 것은 참격 그 자체가 너무 빠르고 날카로웠다.
{포켓 메모라이즈 발동}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역장 보호막’ 전개}
{포켓 메모라이즈 발동}
{공명기 <악룡마술> 파생형 ‘격류 뇌전’ 전개}
난 곧장 현자의 코트 양쪽 주머니에서 미리 저장해 두었던 마법을 꺼내 동시에 시전했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을 대비해 미리 축적해 두었던, 빠른 공격과 방어 마법.
현자의 코트를 사용하면 집중시간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전 속도가 평소보다 훨씬 빠르면서도 동시에 두 개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쩌저정!
왼손에서 시전된 역장 보호막에 의해 교차 참격이 가로막힌다.
콰릉!
그리고 오른손에 시전된 격류 뇌전이 아래쪽의 적을 향해 쇄도한다.
번쩍거리는 번갯불이 깊은 동굴 아래쪽까지 내달리며 이 장소 전체를 한 순간 밝게 비췄다.
밑바닥의 큰 호수 위에 떠 있는 범선 한 척.
그리고 갑판에 서 있는 한 인간.
프리드웬과 그것의 수호자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여자?’
다만, 수호자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엑스칼리버를 든 전설의 기사가 아니라,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침입자로부터 프리드웬을 지켜라!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콰드드드득.
다음 순간, 이 넓은 동굴 벽들이 무너져 내리더니 그 안에서 돌로 된 마물들이 튀어나왔다.
대략 3미터 정도 크기의 인간형 암석.
둘러싼 마력에 의해 공중을 부양하는 골렘 수백 마리가,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 * *
‘이거 생각보다 스케일이 조금 큰데……?’
듀엔데는 프리드웬을 지키는 수호자가 ‘하나’ 있다고만 했다.
물론 그 수호자는 한 명이긴 하다.
그게 저 골렘이라는 무지막지한 소환수를 수백 마리나 거느린다는 특이 사항이 있을 뿐.
‘그것도 단순한 소환수가 아니야. 마력량이 심상치 않다.’
사실 이건 유메미가 더 잘 알겠지만, 골렘은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숫자를 통제하는 데 유리한 소환수가 아니다.
좀비나 해골 같은 하급 소환수를 다루는 강령술과 달리, 골렘은 굳이 따지자면 거의 정령술에 필적할 정도의 고급 소환 마법인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적이 저렇게 나온다면, 나도 필살기로 맞서는 수밖에.’
콰드드득.
골렘들이 일제히 내 쪽을 향해 주먹을 내민다.
그리곤 그 주먹에서 푸른 빛을 뿜으며 마나를 발산한다.
저것들은 심지어 육중한 몸집으로 찍어 누르는 단순한 종류가 아니라, 마력탄을 쏘아 대며 화력전을 펼치는 최상급 골렘이었다.
{마검 <파슈파타> 소환}
하지만 난 아랑곳 않고 그에 더 강한 기술로 맞선다.
높은 방어력을 지닌 다수의 적들.
여기엔 고화력, 광범위의 일격 필살기를 쏟아붓는 게 답이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용격 금강염사’ 전개}
생명력을 깎아 펼쳐내는 최강의 기술, 용격.
현재로선 완전한 자폭기인 멸절 파슈파타 이외에,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이었다.
원래는 이걸 사용하면 나 자신이 소모되기 때문에 다음 수를 펼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지만.
지금은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지금 내겐, 환란의 빙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콰우우우!
간결하게 휘두른 검끝에서, 검은 화염으로 얽어진 거대한 사자가 뻗어 나왔다.
본래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파괴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는 화염의 검기.
{생명력이 급격히 소진됩니다!}
체내의 기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대가로 위력의 증가는 확실했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탓에 하마터면 공격 이후의 상황에서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뻔했다.
‘……안 돼. 정신차리자.’
난 억지로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붙잡고서 방금 얻었던 능력을 사용했다.
{진원진기를 <환란의 빙정>으로 대체한다.}
가슴에 위치한 두 개의 에너지 원천.
그중 빙결의 기운을 내뿜는 덩어리를 나의 마력 코어와 연결했다.
그러자 혈관을 가득 메웠던 검은 화염이 전부 사그라지고 그 대신 극도로 차가운 물길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넘나드는 급격한 변화에 순간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내 몸에는 생생한 기운이 차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용암을 통과하면서 화산에 의해 결손되었던 신체가 다시 복구되는 기적이, 또 한 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좋아. 이걸로 용격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회복 마법의 근본적인 한계로 인해, 제아무리 강력한 마력을 지닌 자의 치료를 받는다 하더라도 용격으로 소진된 생명력을 재생시키는 데에는 최소한 하루 이상이 걸린다.
하지만 이 환란의 빙정은 그 정도의 소모를 단순히 진원진기의 전환으로 순식간에 채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육체적인 면에서 용격을 사용하는 데 대한 부담이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셈이다.
방금 얻은 능력이라 조금 긴가민가했는데, 직접 실전에서 사용해 보니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쿠르르릉.
한편, 금강염사가 휩쓸고 지나간 궤도 상의 골렘들은 모조리 돌가루로 변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이제 이 공간에 남은 것은 오직 나와 프리드웬의 수호자로 보이는 여인뿐이다.
{공명기 <빙정술식> 파생형 ‘추진 도약판’ 전개}
난 빙정술식을 사용해 머리 위해 납작한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거꾸로 돌아 머리를 아래로 향한 다음, 추진 도약판을 딛고 밑으로 뛰어들 자세를 취했다.
{<파슈파타> 변형 <격룡창 트리슈라> 소환}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창으로 변화시키고서는.
{<격룡창 트리슈라> 고유기능 ‘청류 폭발’ 발동}
투쾅!
추진 도약판을 딛음과 동시에 창의 돌진 분출 기능을 사용했다.
빙정술식과 트리슈라.
둘 다 지금 내 몸에 흐르는 빙정유수와 속성이 맞아 떨어지는 마법과 무구였기에 그 폭발력은 더욱 가중되어 전진 속도가 극에 달했다.
심지어 사용자인 나조차 감각이 반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다음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바꿔야…….’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고, 가속력이 온몸을 짓누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연계 공격이 끊어지지 않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건 잊지 않았다.
{진원진기를 <격멸의 업화>로 대체한다.}
공격 기술을 사용할 때에는 격멸의 업화를.
아몬 덕분에 한층 더 강력해진 화염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하다.
용격을 시전하기 전에, 들고 있는 트리슈라로 프리드웬의 수호자를 향해 격창술을 펼쳤다.
{<익스플로시브 필럼> 17자루를 소환합니다.}
{<슈팅>을 시전합니다.}
파앙!
콰콰콰콰콰쾅!
위쪽에서 아래로 돌진하던 추진력을 그대로 담아, 갑판 위의 여인에게 창을 내질렀다.
등 뒤에 형성되어 있던 붉은 단창들이 한꺼번에 날아들어 대폭발과 함께 자욱한 먼지를 일으켰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목표한 적은 이 한 번의 공격에 쓰러질 리가 없다.
창날이 명중하기 직전, 여인은 자신의 몸을 보호막으로 감쌌기 때문이다.
‘진짜는 이다음.’
나 역시 이건 상대의 주의를 끌기 위한 중간 연결 공격일 뿐이었다.
{<격룡창 트리슈라> 변형 <파슈파타> 소환}
다시 한번 창을 검으로 변화시킨 다음, 자루를 움켜쥐고서 용격을 펼친다.
{공명기 <적사자 검식> 파생형 ‘용격 신기일섬’ 전개}
스륵.
신형(身形)을 감추고서 적의 시야로부터 멀어진 다음, 어떠한 소음도 내지 않으며 베어내는 날카로운 일격.
그 위엔 용혈이 덧씌워져 마치 신기루와도 같은 검은 화염이 피어오른다.
쩌렁!
후폭풍은 모든 공격이 끝난 후에 벌어지기에, 저 요란한 파공음을 들었을 때에는 이미 자신이 당했음을 깨달은 후다.
프리드웬의 갑판에 서 있던 여인은 허리가 잘려 나간 채 허공을 날고 있었고,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안심하고서 몸을 회복시키려 했다.
그런데.
“……허억!”
갑자기 몸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고속으로 움직이는 동안 좁아진 시야 역시 돌아오지 않았다.
감각이 엉망으로 뒤틀리는 느낌.
사고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마치 밀려오는 폭풍에 휘말리는 것처럼, 정신이 사방으로 튀는 것 같았다.
그 탓에 환란의 빙정으로 몸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야만 했다.
‘대체…… 왜…….’
이제 비어 있는 배를 움직여 바깥으로 꺼내기만 하면 되는데.
난 이 심연과도 같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 홀로 남겨진 채 의식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