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36화
바벨탑 5층 내부, 어느 외진 구역에 조성된 길고 높은 절벽 한가운데.
그곳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 찾을 수 없는 아주 작은 틈이 있다.
난 그 틈 안으로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파사삭.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돌조각들이 바스러지며 벽을 타고 흘렀다.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게 확연하게 느껴진다.
‘엘프들도 여기에 들어오지 않았나 보군.’
그들의 기술력이라면 이런 숨겨진 구역을 찾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형을 탐색하는 도구도 있었고, 얼마든지 이 작은 틈을 발견할 수 있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엔 아무도 들어온 흔적이 없다.
‘그렇겠지. 이 안엔 아무것도 없으니까.’
왜냐하면 이 통로 끝은 그냥 막힌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공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그냥 점점 좁아지다 어느 순간 턱 막히는 지점이 나온다.
엘프들이 보기에도 여긴 그저 절벽에 나 있는 흔한 균열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하지만 내겐 아주 중요한 게 들어있는 곳.’
바로 이곳에, 내가 찾는 게 숨겨져 있다.
‘아지다하카…… 변형.’
나는 그 좁은 통로 안에 선 채로 체내에 있는 모든 용혈을 폭주시켰다.
에테르 메탈로 만들어진 심장은 급격하게 요동치고.
피는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빠르게 흘렀다.
“크윽…….”
나도 모르게 신음이 튀어나왔다.
예전 마르코시아스와 싸웠을 때에도 아지다하카로 변신한 적이 있는데, 그땐 이 정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동화율이 낮아서 힘이 완전하지 않았던 덕분이고.
{아지다하카와의 동화율: 99.9%}
오히려 동화율이 최대치에 이른 지금에 와서는, 넘치는 힘 때문에 나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통제를…… 벗어난다.’
그 탓에 지금까지는 신체를 아지다하카로 변형시키는 ‘완전개방’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젠 그걸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콰드드드득.
내 몸 전체를 생체 조직이 둘러싼다.
콰직. 콰지직.
그 위로 뼈와 장기, 근육, 혈관이 구성되고.
마지막으로 검은 비늘이 덮여 세 개의 머리가 달린 거대한 용의 형상을 완성했다.
콰콰쾅!
물론 그 좁은 틈 안에서 거대한 드래곤으로 변신했으니 절벽이 무너지는 건 당연하다.
바위가 쪼개지며 돌들이 바깥으로 밀려났고, 순식간에 내가 서 있던 자리엔 거대한 구멍이 파내어졌다.
쿠오오오!
곧이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지다하카가 난폭하게 소리를 질렀다.
이 상태에서 난,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본능에 따라 정해진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우웅. 우우웅.
그때, 벽 안에 흩어져 있던 무형의 에테르 덩어리가 하나로 뭉쳐져 구슬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것은 아지다하카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화악!
아니나 다를까, 세 개의 머리 중 가운데 머리가 그것을 물었다.
놈은 그대로 그 구슬을 목구멍으로 삼켜버렸고.
앙그라 마이뉴의 영혼 수복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수호령 아지다하카의 사용자를 인식한다…… 검증 완료}
{아지다하카를 앙그라 마이뉴에 복속시킨다}
{수호령 병합}
{스테이터스 승계}
{스킬 승계}
{특성 승계}
{권능 승계}
{현재 동화율 99.9%}
{육체 적합성 검토…… 완벽}
{앙그라마이뉴와의 동화율이 0.01% 상승한다: 100%}
{신화 수호령의 동화율이 최대치에 이르렀음에 따라, 신격이 육체를 지배합…….}
{정정}
{수호령 상태를 유지한 채 영혼 수복을 실시한다}
{신화 수호령 <앙그라 마이뉴> 획득}
{칭호 <지옥의 군주(1급)> 획득}
───
<스테이터스>
이름: 유신우
칭호: 지옥의 군주(1급)
수호령: 앙그라 마이뉴(신화)
───
이로써 나는, 무수한 시간을 뛰어넘어, 환생을 거치고 기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본래의 나를 되찾게 되었다.
* * *
영혼을 수복한 후에 생긴 변화는 단 하나의 특성을 새롭게 얻은 것뿐이었다.
그 하나의 존재감이 엄청나긴 하지만 말이다.
───
<악룡 제어>
-당신은 아지다하카의 주인이다.
───
아주 짧고 간결하지만, 엄청나게 무서운 특성.
‘나와라. 아지다하카.’
마음속으로 그것에게 명령을 내리자, 하늘에 막대한 양의 마나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콰드드득.
이윽고 거대한 생체물질이 만들어지는가 싶더니, 그건 곧 드래곤의 형상을 이뤘다.
내 육체 바깥에서 만들어진, 완전한 독립적 소환물.
아지다하카를 불러낸 것이다.
쿠궁.
크르르르.
녀석은 내 앞으로 날아와 천천히 착지한 다음, 몸을 잔뜩 낮춰 나에게 복종의 의사를 내비쳤다.
‘그래. 그래야지.’
힘과 육체가 실체화된 상태에서의 통제.
이건 심상세계에서 이 녀석을 제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왜냐하면 그건 아지다하카의 힘을 일정 수준으로 빌려오는 데 그치는 행위일 뿐이지만, 이건 그 녀석이 가진 힘 그 자체를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래는 내 육체를 코어 삼아 실체화하는 탓에 통제가 안 되면 그땐 나조차도 어쩔 도리가 없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지금은 독립적 개체로서 불러낼 수 있으므로, 설령 아지다하카가 폭주한다고 한들 어느 정도는 대처가 가능해진 것이다.
‘악의의 전당.’
아무튼 이제 이 녀석의 힘을 시험해 볼 차례.
난 곧바로 악의의 전당 무구를 전부 소환했다.
흡수한 신과 영웅들로부터 빼앗아 낸 22자루의 무구들.
그것들이 소환된 아지다하카의 힘과 연동되어 크기를 거대화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파괴력은…… 아직 한참 떨어지는 건가.’
아쉽게도 그때처럼 하나의 세계를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위력을 머금고 있지는 않았다.
쐐애액! 콰앙!
쿠구궁.
검 하나를 땅 위로 날려 보냈다.
착탄지점에서 엄청난 후폭풍이 발생해 주변을 휩쓸었다.
동시에 지축이 울리면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공격의 위력은 딱 그 정도가 끝.
단순히 때려 박는 공성병기 용도로서는 아주 적합하지만, 예전처럼 세상 하나를 붕괴시킬 수준은 아닌 것이다.
‘게다가 무구의 제어도 어려워졌어.’
또한 크기와 무게가 커져서 그런지, 기존의 악의의 전당 무구를 날릴 때보다 확실히 컨트롤이 어려워진 느낌이다.
방향전환은 물론이고 가속과 감속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정말로 커다란 공성병기를 다루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작은 적들을 상대하기엔 적합하지 않겠군.’
결국 이건 공성전에서 적 요새의 실드를 깨거나 거대한 적을 상대할 때에 유용한 기술 정도로 정리해 둬야 할 것 같다.
* * *
사실 아지다하카를 독립 개체로 직접 소환해 놓고 조종하는 건, 현재의 내 힘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과거의 그 파괴적 기술을 재현하기엔, 아직까지 이 몸으로는 그런 큰 능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엔 멀었다는 느낌.
그래서 난 이걸 좀 더 타이트하게 활용할 방법을 고안해 냈다.
‘와라.’
화아악!
아지다하카에게 손을 내밀자, 그것이 내게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영체로 변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영체는 다시 내 몸 안의 심장으로 모여들어 하나의 거대한 힘의 원천을 형성했다.
두근. 두근.
주체할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어둠의 기운.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려서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은 에너지.
그것은 보랏빛이었다.
차르륵.
제자리에서 참격 자세를 취한다.
내 오른손엔 에테르 큐브가 만들어 낸 장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다.
‘자색파동발산.’
보랏빛은 바로 파동.
검날에 저주의 힘이 가득히 덧씌워졌다.
‘악룡 제1격 미스텔테인.’
촤아악!
암흑 속성의 대표 격 투영무구.
신살검 미스텔테인이 허공을 가르자, 기분 나쁜 마력이 파도처럼 쏟아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그것은 곧 하나의 거대한 드래곤 형상을 자아내며 앞으로 뻗어 나갔고.
경로상에 있는 모든 물질들을 입자 단위로 분해하며 전방 직선거리를 완벽한 무(無)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주작의 화염으로 불태워 황무지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기린이 짓밟아 물질들을 압축해 버리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소멸시켰다.
“후우.”
나는 무언가에 의해 깔끔하게 잘려나간 듯 기묘한 단면을 드러낸 눈앞의 땅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슴에서 힘의 원천을 구성했던 아지다하카의 영체는 금세 흩어져 다시 내 영혼에 흡수된 채였다.
‘신수 아지다하카……. 다른 것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군.’
미스텔테인에서 내뿜어졌던 거대한 드래곤 형상은 다름 아닌 아지다하카였다.
무구에 파동을 덧씌워 오방신수의 힘을 방출했던 다른 색깔의 파동기와 같이.
자색파동기는 아지다하카를 발산의 주체로 만드는 기술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렇게 발산하는 신수의 격 자체도 다르거니와.
애초에 나의 주속성인 암흑 속성을 다루는 것이기에 파괴력이 다른 색깔의 파동기보다 월등히 높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이거라면 주력 기술로 쓸 수 있겠어. ……다시 예전처럼 아지다하카를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사실 이것도 과거의 나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것이긴 하다.
지옥에서, 무수히 긴 시간 동안 셀 수 없는 죽음을 거치며 모든 대악마들과 싸워 이기면서 쌓은 무의 업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다시 지옥 밖으로 나갔을 때 세상이 바뀌고 세대가 교체되었던 걸 떠올리면.
그때의 힘을 되찾기 위해서는 적어도 100년 동안은 수련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 신들을 모두 봉인할 수 있다면…… 뭐든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난 이제 겨우 다시 출발 선상에 선 셈이다.
과거 신화시대, 지옥의 군주 앙그라 마이뉴.
세상을 파괴한 바로 그 존재로서 말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 길이 얼마나 고달프든, 내 모든 걸 빼앗은 그놈들을 봉인시킬 수만 있다면. 그깟 시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난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리라 다짐했다.
* * *
영혼 수복을 해결한 나는 바벨탑 5층 거점에 귀환 포탈을 설치하고 알포드 성으로 되돌아 왔다.
‘이제부터는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야 한다.’
엘프를 이용하는 계획의 두 번째 단계는 인간계의 다른 세력을 포섭하는 것.
어찌 됐든 나는 엘프들에게 ‘인간 대표’로 선택받았고, 그 포지션으로서 신뢰를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영향력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굴 선택하느냐 하는 건데…….’
다만 지금의 나는 여러모로 생각해야 할 게 많은 상황이다.
첫째로 현재 지구상의 세력 구도는 거의 구 벨그레이브 수뇌부 중심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
검제, 염왕, 성황, 마존.
그중 염왕과 성황은 말할 것도 없이 탈락이고.
그나마 가능성 있는 게 검제와 마존.
‘백선율……. 아니, 아후라 마즈다 그놈이 내 정체에 대해 다 까발렸을 텐데.’
하지만 나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그 두 사람도 내 정체를 알게 된다면 마냥 좋게 나오지만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벨그레이브 분열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나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고려할 건 그뿐만이 아니다.
‘동화율이 100%가 되어 수호령에게 육체가 지배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현재 인격이 신의 인격일 경우.
만약 그렇다면 절대 나와 협력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무한한 의리를 지킬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돌변했던 백선율처럼 말이다.
‘검제와 마존. 그 둘도 속에는 그 음흉하기 짝이 없는 신이 들어 있을까?’
사실 동화율 100%를 달성한 각성자는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왜냐면 대부분은 99.9%에서 멈추기 때문이다.
내 아지다하카 수호령도 그랬고, 다른 각성자들도 다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동화율은 99.9%가 최대치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거기서 100%로 올라가는 조건이 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수호령이 앙그라 마이뉴로 바뀌자마자 100%가 되었지만, 그건 내가 일반적인 각성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
그러니 검제와 마존 또한 동화율이 100%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레아와 유메미. 그 둘을 만나봐야겠어.’
결국 난 정면돌파를 해야만 한다.
아후라 마즈다에 의해 내 정체가 드러난 이상, 변신으로 신분을 숨기는 것도 통하지 않는다.
‘그 둘을 포섭하지 못한다면…… 플랜 B로 가야겠지.’
나는 최선책이 들어맞길 기도하며, 검제와 마존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