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35화
“5층까지 올려보내 달라? 이유가 뭐지?”
“거기서부터 1급 강화 마력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거든.”
바벨탑에서 얻을 수 있는 이권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강화 마력석을 첫 번째로 꼽을 것이다.
투영무구를 영구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재료.
그 재료를 얻는 게 대체 왜 그렇게나 중요한 이권이 되는가를 이해하려면 먼저, 마력석 강화의 특징에 대해 알아야 한다.
{강화 마력석은 1~4등급으로 나뉩니다.}
{등급이 1등급에 가까워질수록 성능이 증가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강화 성공확률이 떨어집니다.}
우선 마력석은 성능 증가율과 성공 확률이 반비례한다.
즉, 고등급 마력석일수록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강화가 된다는 뜻이다.
물론 실패한다고 해서 강화 등급이 낮아지거나 무구가 깨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실패는 그냥 실패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실패는 상당히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그건 바로 두 번째 특징 때문이다.
{마력석 강화로 강화할 수 있는 횟수는 투영무구당 최대 10회입니다.}
강화 횟수가 정해져 있다는 점.
만약 확률이 낮은 1등급 강화 마력석으로 강화를 10번 했는데 10번을 다 실패해 버리면.
그 무구는 아무런 성능 향상도 얻지 못한 채 더 이상 강화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오히려 확률이 높은 4등급 강화를 돌린 것만 못한 결과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셈이다.
{강화 횟수는 3000다이아를 소모해 초기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사람들을 위한 구제책이 존재한다.
바로 다이아를 사용한 강화 횟수 초기화.
정상급 각성자라면 누구든 구할 수 있는, 그리 많지 않은 양의 다이아를 소모해 강화 횟수를 0회로 되돌릴 수 있다.
‘주어진 횟수 10회 내에서 얼마나 많이 강화를 성공한 투영무구를 얻어내느냐?’
바로 이 점 때문에, 각성자들은 엄청난 양의 강화 마력석을 대량으로 ‘채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
<1등급 강화 마력석>
-투영무구를 강화하기 위한 재료.
-성공 확률: 30%
-성능 향상치: 12%
───
나 같은 정상급 각성자들은 물론 베스트 케이스인 10회 연속 1등급 강화를 노려야 할 터이니.
그 확률은 30%의 10제곱인 0.0000059%가 된다.
단순 기댓값으로만 따지면 1급 강화 마력석이 최소 17만여 개가 필요하고, 다이아는 5억여 개가 드는 작업.
심지어 확률이란 건 당연히 기댓값에 딱 들어맞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재수 없으면 저걸로도 모자랄 수 있다.
{성능 향상치: 12%}
하지만 중요한 건 그렇게까지 많은 자원을 들여서 얻는 결과물이다.
성능 향상치 12%는 합연산이 아니라 곱연산 수치.
즉, 10번을 전부 성공시키면 210% 증가, 그러니까 무려 3배에 달하는 투영무구의 강화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누구보다도 남들보다 강해지길 원하는 각성자 입장에서.
이 마력석 강화는 건드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매력적인 시스템인 것이다.
그러려면 저 엄청난 양의 강화 마력석을 어떻게든 확보해야만 하고.
지속적인 마물 사냥을 위한 ‘자리 점유’ 행위가 반드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자리’가 이 탑에서 각 세력 간 갈등을 유발하는 이권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1급 강화 마력석? 너도 그게 필요한가?”
“물론이지.”
“그런 거라면 우리와 협정을 맺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식을 초월하는 문명을 가진 엘프들이 바벨탑의 층계 중앙 구역을 독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역시 그 ‘자리’에서 강화 마력석을 채취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곳 2층뿐만 아니라 그 위층도 마찬가지일 터.
“그렇게 해준다면야 나야 고맙지만, 이건 내 필요 때문이 아니야.”
“그럼 뭐지?”
“인류를 협정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당신이 5층에 가는 걸로 말인가?”
“그래.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5층에 강화 마력석 채취 거점 하나를 갖는 거지.”
그렇다면 이 탑 안에서 ‘자리’를 얻는 것은 반드시 엘프들과 엮이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난 그들을 통해 내게 온전히 소유 권한이 보장된 ‘자리’ 하나를 가져올 생각이다.
“흠……. 어째서 그게 우리의 평화 협정과 관련이 있다는 건지 이해가 잘 안 되는군.”
듀엔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내 진의를 의심했다.
이곳에 온 후 처음으로 드러낸 비우호적 태도였다.
그래 봐야 신과 악마들조차 간파하지 못했던 내 속내를 읽는 건 불가능했지만 말이다.
“그럴 수 있지. 이건 전적으로 인간적인 사고방식이니까.”
난 그가 했던 말을 되짚으며 거기에 그럴듯한 이유를 대었다.
“맞아. 아까 당신이 말했듯, 인간은 모든 걸 이해타산으로 받아들인다. 당신들의 그 거창한 이상론 같은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자신들에게 어떤 이익이 되느냐를 따진다는 거지.”
물론 실제로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기에 내 말은 엄밀히 따지면 틀린 말이다.
하지만 엘프들이, 지금 내 앞에 마주한 듀엔데가 인간에 대해 그런 편견을 갖고 있다면, 난 그 편견을 적당히 이용해 줄 뿐이다.
“그러니 나 외의 다른 인간들을 이 협정에 끌어들이려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매력적인 미끼가 있어야 해. 그게 바로 바벨탑 5층의 거점이라는 거지.”
“그 거점의 강화 마력석 채취 권한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겠다는 건가?”
“그래.”
“흠……. 그건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로군. 인류를 설득할 방법이 그런 것만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럼에도 여전히 그는 내 말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난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봐, 왜 이래? 당신이 선택했잖아. 나보고 인류를 대표하라며?”
손가락으로 그와 나를 한 번씩 번갈아 가리키며, ‘당신’과 ‘나’라는 단어를 강하게 어필했다.
“……크흠.”
“설마, 이 정도 권한도 없이 그런 말을 한 건 아니겠지?”
대개 이런 관리자 지위에 위치한 사람들은 ‘권한’이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난 그 지점을 공략했다.
“그, 그럴 리가.”
그리고 그 공략은 너무나도 정직하게 먹혀들어 갔다.
‘역시.’
난 아무리 대단한 마법 문명을 지닌 엘프라고 한들, 감정과 사고방식은 인간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여기에도 리더와 부하가 있는 걸 보면, 사회 체계 역시 인간과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는 뜻.
“……좋아. 그렇다면 당신을 곧장 5층으로 올려주지. 그곳에서 원하는 대로 거점을 마련하게 해주겠다.”
결국 듀엔데는 내 페이스에 완벽하게 휘말리고 말았다.
마치 자기가 뭐라도 되는 듯 우월감에 휩싸여 고압적인 태도로 내게 했던 말이 도리어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계획대로.’
난 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일이 완벽히 생각한 대로 풀리고 있다.
엘프들을 이용해 내 목적을 달성한다는 계획은, 이걸로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 * *
위이잉.
지상에서 몇 미터 정도 떨어져서 부유하는 소형 비행정이 다가왔다.
엘프 한 명이 탑승해 조작하고 있는 그 비행정은, 일정한 지점에 멈춰서 평평한 땅 위에 짙푸른 빛을 투사했다.
우우웅.
그러자 낮은 진동음과 함께 투사된 빛의 유도를 따라 작은 입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것들은 어떤 형체를 이뤘다.
높이 3미터 정도의 외벽.
가운데에 위치한 돔 형태의 건물.
그 건물 내부에 비치된 각종 가구들.
그리고 상자들이 가득한 창고까지.
단 몇십 분 사이에 엘프 종족이 구축한 것과 똑같이 생긴 거점 하나가 3D프린터로 뽑아내듯 건설된 것이다.
‘정말 말이 안 나오는군.’
엘프들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과학을 초월해 버린 마법 문명의 소유자들이었다.
“이 정도면 됐나?”
“완벽해.”
듀엔데가 어깨를 으쓱하며 내게 물었고, 나는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렇게까지 할 것까진 없었는데 말이지.”
“이왕 약속한 거라면 확실하게 해야 하지 않겠나?”
그는 내가 말한 ‘권한’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던 것인지, 손수 자원을 동원해 진지까지 구축해 줬다.
난 그저 5층 어느 한 곳의 자리 하나만 내달라는 뜻이었는데 말이다.
뭐가 됐든 내게는 이득이니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긴 하다.
“네 병력이 주둔하기에도 문제는 없을 거야.”
듀엔데가 내 기사들을 보면서 말했다.
그는 내가 몰래 숨겨 두었던 병력을 보고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럼 그렇지’라는 반응.
덕분에 난 5층까지 내 병력들을 아무런 탈 없이 모두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엘프 녀석들…….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놈들일지도.’
이런 모든 것들이 다 그들의 순수한 호의였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계도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
만난 지는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듀엔데와 나눈 대화에서 그들의 그런 성향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심지어 공성전마저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니, 말 다 했지.’
듀엔데는 지금까지 엘프 종족이 그 어떤 공성전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불쌍해서’란다.
자신들에겐 포탈에서 마물들이 튀어나오는 게 아무런 위협도 아닌데.
이종족들은 그걸 피해 억지로 영지로 기어들어 간 게 불쌍해서.
그래서 그 이종족들이 겨우 마련한 보금자리를 빼앗지 말자는 의미에서 종족 전체가 공성전에 완전히 불참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들에겐 영지 같은 게 아예 필요 없으니 말이다.
그 대신 우리와 접촉하기 위해 바벨탑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고.
이 정도면 시스템의 의도를 그냥 대놓고 무시하는 수준이다.
그러니 이들이 나에게 보이는 호의가 어떤 의미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미개인에게 선심 쓰듯 던져 주는 초콜릿……. 뭐 그런 거겠지.’
그렇다면 난 그런 성향을 충분히 이용해 주면 된다.
그걸로 챙길 걸 챙겨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면 되는 거다.
“고마워. 그럼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그래. 좋은 소식 가져오길 기대하마.”
아무튼 난 그렇게 듀엔데를 보내놓고서 마저 해야 할 마무리 작업들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아델.”
“네.”
“주변의 마물들을 처치하고 그들에게서 나온 부속물들을 종류별로 모아둬라. 여기 쓰여 있는 만큼만 모으면 돼.”
나는 아델에게 종이 하나를 건넸다.
거기에는 이곳 5층에서 마물들을 사냥해 얻을 수 있는 부속물이 적혀 있었다.
그것들은 다름 아닌 귀환 포탈 제작 재료.
그걸 만들어서 설치한 후 클랜 각인을 하면, 아래층에서부터 일일이 열쇠를 찾아가며 올라올 필요 없이 포탈 스크롤로 즉각 거점으로의 복귀가 가능하다.
이걸 설치해야 비로소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건 엘프들의 마법 기술로 해결 불가능한, 시스템에 종속된 요소이므로,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했다.
“알겠습니다.”
아델은 내가 건네준 종이를 받아들고 기사들을 인솔해 재료를 구하러 갔다.
물론 난 함께 가지 않았다.
그동안 내겐 따로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가볼까.’
사실 지금까지 해 온 밑 작업은 모두 이 일을 하기 위한 과정에서 파생된 부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제 와서는 단순히 그렇게 치부할 수만도 없긴 하지만.
아무튼 이제 슬슬 내가 바벨탑에 들어온 당초의 목적을 달성할 때가 온 것 같다.
나 자신, 앙그라 마이뉴의 영혼을 수복하겠다는 목적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