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37화
“매튜 씨. 아니, 신우 씨라고 불러야겠죠?”
나는 유메미와 먼저 만남을 가졌다.
“그래. 이미 백선율에게 얘긴 다 들었겠지?”
“네. 그쪽이 우리 벨그레이브를 파탄 낸 주범이라면서요?”
그녀는 매우 담담하게 그런 말을 내뱉었다.
“브랜든이 노발대발하면서 날뛰고 있어요. 기회만 오면 당신을 찾아내 죽이겠다고.”
“그래? 유감이군.”
나와 하비, 브랜든 사이에 있었던 일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그 둘을 이간질해 폭로전을 벌이게 한 후 잠적했다는 내용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된 브랜든은, 어떻게든 날 찾아내 죽이려고 할 것이다.
“당연하죠. 형제 사이를 그렇게 만들어버렸는데.”
“미안하지만 그 둘은 애초부터 그렇게 될 운명이었어. 정상적인 가족 관계가 아니었다고.”
“뭐……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도 신우 씨가 벨그레이브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는 건 인정하시죠?”
“그래. 다른 변명은 하지 않을게. 뭐가 됐든 내 이익을 위해 음모를 꾸민 건 사실이니까.”
사실 그게 어쨌건 상관은 없다.
내 행실을 그녀가 나쁘게 보고 조금 좋지 않은 인상을 가졌다고 한들, 지금 이 계획상에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따로 있기 때문이다.
“후훗.”
그런데 한참 심각한 이야기를 하던 그녀가 갑자기 실소를 흘렸다.
“솔직하시네요. 자기 이익 때문에 그랬다는 말을 그렇게 당당하게 하시다니.”
그러더니 표정이 밝아지며 말했다.
“사실 저도 좀 싫었거든요. 염왕 그 녀석. 갑자기 동생한테 당했을 리는 없고, 누구한테 한 방 먹은 거란 건 알았는데, 그게 누군가 했더니 매튜…… 아니, 신우 씨였네요.”
진심이 한껏 묻어나는 이야기.
그녀가 저렇게 말을 하는 걸 보니, 난 그런 확신이 들었다.
벨그레이브는 내가 아니었어도 분명히 찢어졌을 것이란 확신이 말이다.
“그래서, 저한테 무슨 제안을 하러 오신 거죠?”
아무튼 유메미는 나와의 거래에 관심이 있는 걸로 보였다.
백선율에게 모든 진실을 다 들었을 텐데, 그럼에도 내 말을 들으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그녀가 신의 인격에 잡아먹혔을 가능성은 낮다.
물론 반대로 지금 저게 내 뒤통수를 치려는 교묘한 연기일 수도 있다.
그걸 판별해 내는 방법은 하나.
“그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뭐죠?”
“영멸이 두렵나?”
신들이 가장 질색하는 그 말이었다.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내 오른쪽 눈에서 강한 악의를 방출했다.
그 안에 봉인되어 있는 신들의 고통, 공포, 절망이 일시에 드러났고, 또한 끝없는 심연이 눈동자 너머로 비쳤다.
서천꽃밭 신계의 바리공주.
야드가르를 잃었던 날, 나를 지옥에 떨어뜨리기 위해 모인 수많은 신들 중 하나.
유메미의 몸 안에 정말로 바리공주가 들어 있다면.
이 갑작스러운 질문을 절대로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뭐, 뭐죠?”
순간, 유메미의 손끝에 마나가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내게 어떤 대응을 하려고 했던 모양.
하지만 직접적 위해를 가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았는지,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방금 그건…… 무슨 마법이죠?”
다행히, 유메미는 바리공주가 아니었다.
진짜 신이라면 저 정도의 반응을 보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알기 쉽게 예를 들자면, 눈앞에서 자기 친구들을 죽였던 살인마가, 감옥에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는.
‘너도 죽여줄까?’
라고 묻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된다.
지금 상대가 신 중 한 명이라면, 방금 내가 한 짓은 딱 그것과 동격인 셈이다.
‘아무리 나를 속이려 마음먹었더라도 이 정도 찌르기에 아무렇지 않은 반응을 보일 수는 없겠지.’
그러니 지금 유메미는 바리공주에게 잠식당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마법?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지금 오리발 내미시는 건가요?”
“미안하지만 난 마법사가 아니라서 말이지. 진짜로 뭔가 느껴졌다면, 오히려 그쪽이 더 잘 알지 않을까?”
“…….”
그래서 난 이 상황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곧장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 * *
“엄청난 문명을 가진 엘프, 평화 협정, 바벨탑……. 무슨 판타지 소설 같은 이야기네요.”
“모든 마법의 통달자라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별로 공감은 안 가는군.”
“하핫, 그런가요?”
유메미가 멋쩍은 듯 웃었다.
난 그녀에게 내가 겪었던 일들을 전반적으로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저 말은 바로 그 이야기에 대한 반응.
“아무튼 결론은, 아리사카 클랜과 동맹을 맺고 싶다는 거잖아요?”
“그래.”
“좋아요.”
그러더니 의외로 선뜻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실은 그게 아니더라도, 전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우리 클랜은 어느 쪽에 붙어야 할지.”
“처신을 고민하고 있었나 보군.”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선율 씨가 신우 씨에 대해 얘기했을 땐, 그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꼈어요. 아, 이제 한 쪽을 고를 수밖에 없겠구나, 라고.”
“그 결론이 내 쪽에 붙는 거였나?”
“네, 맞아요. 신우 씨는 패치노트도 있고, 무력도 강하니까요. 간단한 논리에요. 더 센 쪽에 붙는 거죠.”
유메미의 그 빠른 승낙은 나름대로 실리에 기반을 둔 결정이었다.
확실히 그 말대로 지금에 와서는 나와 아후라 마즈다 사이의 우열은 내 쪽으로 기울어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인데…….”
“검제를 말하는 건가?”
“네, 맞아요. 검제가 겉보기엔 대의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굉장히 냉정한 사람이거든요.”
레아와 검제.
두 얼굴의 여자.
유메미가 말한 대로, 그녀는 확실히 쉽게 간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위장 신분과 실제 신분 사이의 성격적 갭을 넘어서, 행보만을 따져봐도 상당히 이질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인류를 위한다는 목적으로 모스크바를 파괴……. 그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서슴지 않았지.’
레아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따지면 옳은 것 이상의 대업적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벨그레이브가 미국마저 뛰어넘는 초국가적 무력집단이라는 인식이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각인되었고.
그 덕에 전 세계 사람들의 클랜 가입을 끌어내면서 11월 대규모 마물 침공 상황에서도 굉장히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국민국가 체제를 완전히 해체하고 클랜 중심의 신규 사회체제 형성을 단 몇 달 이내에 해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건.
모스크바 사건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어지간한 냉혈한이 아니고서야 힘든 발상이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
말은 쉽지만, 과연 인류를 위해 도시 하나를 파괴한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심지어 그것이 정말로 예상대로의 결과를 가져올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말이다.
레아는 그걸 해낸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글쎄. 그건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겠지.”
솔직히 나도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단순히 실리주의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라면 설득할 유인이 차고도 넘치지만.
또 정의와 대의를 중시하는 성격상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네?”
“나와 같이 가줄 수 있나?”
어찌 됐든 유메미는 레아의 과거 동료다.
그러니 그녀가 있다면 조금이나마 포섭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훗. 좋아요. 같이 가요.”
유메미는 흔쾌히 나와 동행을 결정했다.
* * *
전 세계 모든 포탈이 양방향으로 바뀐 이후,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물론 다행히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위협을 피해 각 클랜 소유의 영지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데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기회가 전부에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지구가 멸망의 길에 접어든 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어느 세력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 근근이 연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보게! 진정해!”
“살고 싶으면 그 상자를 내놔!”
미국 남부의 어느 시골 마을.
총을 든 남자 셋이 아이와 노인들만 살고 있는 집에 들이닥쳐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이 아이들을 봐서라도 한 번만 봐줄 수 없겠나? 이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식량일세.”
“죽고 싶어? 엉?”
남자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은 채 노인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더욱 완고하게 식량 상자를 지켰다.
“그냥 내놓으라고!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이건 안 되네! 가져갈 거면 차라리 우릴 다 죽여!”
이들에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이런 곳에서까지 식량을 빼앗으려는 강도들도 같은 처지였다.
“……에잇!”
탕!
결국 그들 중 하나가 망설임 끝에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사방으로 피가 흩뿌려지고, 상자를 안아 들고 있던 노인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안 돼!”
“으아아앙!”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다른 노인의 절규가 동시에 섞여 터져 나왔다.
그사이 강도들은 방금 죽은 노인이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식량 상자를 빼앗아 재빨리 도망…….
“자, 잠깐만…….”
……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저거…… 좀비 아냐?”
그들이 뛰어가던 경로의 전방에서, 전신이 썩어 문드러진 시체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망쳐!”
투두두두두.
그것들의 질주 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을 가진, 괴물 좀비들.
상자를 훔친 강도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전력으로 도주했지만.
그 비현실적으로 움직이는 괴물들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었다.
“으악!”
얼마 지나지 않아 좀비들은 도망치는 남자들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세 사람은 그대로 사정없이 뜯겨나가 처참한 몰골의 고깃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케에에엑!
좀비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노인과 아이들이 모여 있는 집까지 침입하려 했다.
건장한 남자들도 순식간에 두부처럼 짓이겨 버린 좀비들은 그들마저 잔혹하게 잡아먹을 게 확실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서걱.
뼈와 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터텅.
그리고 그다음 순간, 그 많은 괴물 좀비 무리가 한꺼번에 바닥에 고꾸라졌다.
전부 하나같이 상하체가 분리된 채였다.
“괜찮으세요?”
살아남은 노인과 아이들 앞에 나타난 건, 하얀 가면을 쓴 검객.
검제였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그녀는 자신이 구한 사람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당부를 한 후, 곧장 하늘로 뛰어올라 어딘가를 향해 날아갔다.
‘이 근방에 있다.’
목적은 이 주변에서 출몰하는 좀비들의 원천을 찾아내는 것.
쐐애애액!
그걸 방해하기 위해서인지, 지상의 마물들이 산성 점액질을 대공포처럼 발사해 활공하고 있는 그녀를 격추시키려 했다.
물론 검제에게 그 정도의 공격이 통할 리는 없지만 말이다.
도리어 저공비행하며 그녀를 쫓는 프라가라흐의 목표물이 될 뿐.
투콰콰콱!
‘찾았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지상을 스캔하며 날아가던 그녀의 눈에, 목표물이 들어왔다.
최근 몇 주 동안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녔던 바로 그 목표물이 말이다.
쉬이익!
검제는 대상을 포착하자마자 양손에 쥐고 있던 두 자루의 검, 모랄타크와 바갈타크를 교차시키며 휘둘러 검기를 흩뿌렸다.
콰콰콰콰쾅!
마치 융단 폭격을 연상케 하는 대규모 연쇄 폭발이 X자를 그리며 지상을 뒤덮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래를 향해 회전하며 연속적으로 검기를 발산하면서 급강하.
그 위에 얹어지는 프라가라흐의 추격 공격은 덤이다.
츄쾅! 파아아앙!
고막이 아플 정도의 굉음과 함께 무차별 공격이 퍼부어진다.
웬만한 적들은 모두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특기인 검제가, 그 정도로 무자비한 참격을 휘몰아치는 건 그만큼, 상대가 강하기도 하지만 또한 용서받을 수 없는 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뭉쳐서 함께 살아나가도 모자랄 판에…….”
그녀가 그렇게까지 분개하는 대상은 바로.
“같은 인간끼리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강신술을 사용하는 신화급 각성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