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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121화 (121/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21화

솔로몬은 원한다면 문자의 권능으로 그 자신이 스스로 지옥의 문을 열고 밖으로 탈출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악마를 내보내는 것도 가능하다는 뜻.

난 그 부분을 이용해 지상계에 혼란을 불러올 생각이었다.

“악마들을 지상으로 내보낸다고?”

물론 처음 그 말을 들은 그는 내 생각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건 지상의 신들과 대놓고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닌가?”

자신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옥 내부’로 규정해 놓고 그 경계를 결코 넘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솔로몬을 대놓고 그 경계 밖으로 밀어내려는 생각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즐거움’을 위한 일입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심각한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의 규모로만 내보내야 할 겁니다.”

“심각한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규모라면…….”

“예컨대, 솔로몬 님이 즐기시는 원형 경기장 대결. 거기에 출전하는 수준의 하급 악마들을 대신 지상으로 내보내는 겁니다.”

“하급 악마들을?”

“그렇습니다. 여기 있는 필멸의 악마들은 그저 피와 살육밖에 모르는 바보들이지만, 지상의 필멸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 풍부한 감정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악마의 출현은 그런 그들의 삶을 뒤바꿔 놓는 일이 될 테고, 솔로몬 님은 거기서 나타나는 격렬한 감정의 파동을 음미하면 되는 겁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솔로몬의 눈에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 제안에 확실히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

난 여기에 확신의 쐐기를 박아 넣었다.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지면 또 어떻습니까? 어차피 솔로몬 님은 이 지옥 안에 있는데 말입니다. 저 신이란 놈들이 가장 들어오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이곳 지옥 아닙니까? 그건 즉, 무슨 수를 써도 절대 여기까지 영향을 끼칠 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설령 잘못된다 하더라도 원점회귀일 뿐, 손해 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노 리스크 하이 리턴.

잃는 것은 없고 오직 얻는 것만이 존재하는 모험.

그 그럴싸한 설득을 들은 솔로몬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듣고 보니 그 말도 맞군! 좋아. 그럼 네 말대로 하도록 하지.”

그렇게 지옥의 악마들이 지상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가장 위험도가 낮은 하급 악마부터.

솔로몬이 문자의 권능으로 지옥에 존재하는 아무 악마 하나를 오크들이 사는 마을에 내보냈다.

그것은 민간인 오크들 몇을 죽인 후에 무장한 병사들에 의해 퇴치당했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가 다수 나타나며 마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솔로몬은 그 장면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며 내 계획에 대해 더욱 신뢰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거로군! 그래! 저 지상의 신들이 어째서 필멸자들의 운명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건지, 나도 알 것 같구나!”

지옥에서는 거의 벌어지지 않는, 진귀하다면 진귀한 광경.

목숨이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들이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러다 죽게 되면, 그의 주변인들이 깊은 슬픔에 빠지고 악에 대한 증오심이 북받친다.

이와 같은 비극이 여러 번 발생함으로써, 사회는 곧 공포와 혼란에 휩싸이고.

이윽고 우리 쪽에서 굳이 악마를 내보내지 않아도 스스로 악마적 행동을 하는 자들이 생겨난다.

종국에는 불신과 악의가 전염병처럼 퍼지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저 쓰레기 같은 신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가 되었구나.’

같은 인간도 아니고, 나를 그리도 무자비하게 괴롭히던 적인 오크 종족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나는 스스로에게 신들처럼 하찮은 즐거움 따위가 아니라 복수라는 장대한 목적 달성을 위함이라는 핑계도 대봤지만.

무슨 이유가 되었건 나를 위해 그들의 목숨을 간편하게 소모한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나 또한 결국 필멸자의 목숨을 물건처럼 이용한 불멸자일 뿐인 것이다.

‘야드가르……. 야드가르의 복수를 위해.’

그런 모순을 견디기 위한 명쾌한 해답은 없다.

그저 죄책감을 마비시키기 위한, 마약 같은 합리화를 계속해서 혈관에 꽂아 넣을 뿐.

그저 시간이 흘러 언젠가 나의 악행에 무감각해지길 기대하며.

나는 진짜 악마가 되는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갔다.

* * *

“이젠 이것도 더 이상 먹히지가 않는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솔로몬은 어두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필멸자들이 신의 권능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악마의 발생을 원천부터 차단하고 있으니…….”

하급 악마들은 투입 초창기에는 큰 혼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오크족 신들의 개입이 시작되었고, 이 안에서도 약해 빠진 축에 드는 하급 악마들은 곧 순식간에 퇴치당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오히려 서로 간의 불신은커녕 더욱 그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는 효과만을 가져왔을 뿐인 결과가 오게 된 것이다.

“앙그라 마이뉴, 여기서 난 뭘 더 해야 하나? 더 강한 악마를 내보내야 하는 건가?”

물론 그 현상은 전부 내 예측범위 내였다.

아니, 혹시라도 이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아닙니다. 더 강한 악마를 보내봤자, 더 강한 신들의 개입이 이뤄질 것이고, 그래 봐야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겁니다.”

“그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한 놈을 보내는 건? 이를테면 지금 바로 대악마를 내보낸다거나……. 그래, 그러면 그놈들도 막대한 힘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절망을 마주하겠지?”

솔로몬은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이 녀석은 단순히 무료함에 지쳐 정신이 이상해져 버린 불멸자가 아니라, 진짜 손색없는 완벽한 악마구나.’

지금 그의 얼굴은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얼굴이었다.

“솔로몬 님.”

나는 그런 그를 붙잡고 아이를 가르치듯 친절하게 어르고 달랬다.

이런 악마를 대하려면 더 지독한 악의를 가져야 한다.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을 벌써부터 부숴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응?”

“그렇게 하시면 그 순간에는 좋을지도 모르나, 솔로몬 님의 유흥은 그걸로 끝날 겁니다. 지상에 출현하는 악마들에 대한 신들의 경계심이 급격하게 높아질 테니 말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전에 그가 했던 말을 상기시켰다.

“그때 솔로몬 님은 문자의 권능이 지상에선 이곳만큼이나 제약 없이 작동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랬지.”

“그렇다면 신들 또한 세계의 법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인데, 만약 저들이 무슨 수작을 부려 지옥과 지상 사이에 통하는 길을 완전히 막아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린 영원히 고립되겠지.”

“그렇습니다. 그럼 솔로몬 님은 영원히 이 너절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지옥 세계에 갇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건……. 절대 안 돼.”

“그러니 우리는 조금 더 영리한 방법으로 지상 세계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신들이 지옥에서 지상으로 통하는 길을 막을 수 있는지도 확실히는 모른다.

그저 내 마음대로 가능성을 추측했을 뿐.

하지만 난 그럴듯한 공포감 조성과 그럴듯한 해결책 제시로 솔로몬을 구워삶았다.

“그럼 그 영리한 방법이란 걸 말해다오. 얼른.”

그는 점점 더 나에게 의존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더 강한 자극, 더 지속적인 흥분.

긴 세월 단지 지배자가 되는 것만으론 충족할 수 없었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천천히 스스로를 파멸시켜 가는 중독자의 모습이 이 늙은이에게서 보이기 시작한다.

“이번엔 규모를 늘려서 악마 군대를 파견하는 겁니다.”

“악마 군대……?”

“너무 크지는 않지만, 한 지역을 장악해 필멸자들의 제국과 대립할 수 있을 만한 규모의 거대 세력. 그걸 보내는 겁니다.”

“……그걸 신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겠는가? 네 말대로 경계심이 높아질 텐데.”

“그러니 적정선을 지키는 겁니다. 저들과 대등한 전쟁을 치를 만한 정도의 규모로만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상의 신들이야말로 오히려 환영하는 일이 될 겁니다. 이런 해프닝으로 필멸자들의 신에 대한 신앙심도 더욱 굳건해질 테니 말입니다.”

“과연, 듣고 보니…….”

“그럼 그다음부터는 현상유지입니다. 솔로몬 님은 그 균형 속에서 여기에 앉아 직접 악마 군대를 지휘하며 오랫동안, 천천히 지상의 혼란을 즐기시면 되는 겁니다.”

“오오, 그건 정말 재미있겠군.”

결국 솔로몬은 내 말에 따라 지상 침공의 규모를 더욱 크게 늘리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지상으로 내보낼 악마 군대를 꾸린다!”

그로 인해 필멸자들의 세계는 전화에 휩싸이게 되었다.

* * *

그렇게 내 계획이 차츰 진행되어가던 어느 날.

“앙그라 마이뉴.”

서열 2위, 내 바로 아래 순위의 대악마인 군단장 바알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하반신은 거미이고 상반신은 고양잇과 수인 남성 모습을 하고 있는 외형의 악마로,

솔로몬이 나타나기 전까지 자신의 힘과 군세로 지옥을 평정한, 모든 악마들의 수장과 다름없는 존재였었다.

지금은 솔로몬에게 지배당하고, 나에게 1위 자리를 빼앗겨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지만 말이다.

“내게 할 얘기가 있나?”

“그렇다.”

“말해 봐.”

그는 극히 호전적인 다른 악마들과는 달리 상당히 점잖은 말투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지금껏 힘의 서열을 인정하고 고분고분하게 굴던 그가 나에게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악마 군대를 지상으로 내보내는 것 때문인 모양이다.

“요즘 허튼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 같던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솔로몬에게 바람을 넣는 거냐?”

“바람을 넣는다니? 난 그저 솔로몬 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보좌하고 있을 뿐이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자가 아무리 광기와 살육에 미쳤다 하더라도, 이 긴 세월 동안 절대 지상까지 손을 뻗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네가 나타난 후로, 그것도 서열 1위가 된 후로 갑자기 악마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게 네 수작이 아니면 누구의 수작이란 말이냐?”

바알은 나를 마치 평화를 깨뜨린 간신이라도 되는 것마냥 몰아세웠다.

지옥의 대악마라는 놈에게 이런 취급을 받게 되었다니,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면서 뭔가 뒤집힌 듯한 이 상황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훗.”

“내 말이 우습나?”

내 멱살을 부여잡으며 달려드는 바알에게 나는 조소를 섞으며 물었다.

“지상의 신들이 그렇게 무서운가?”

“아니, 증오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너의 행동이 우리에겐 더욱 용납할 수 없다!”

“왜지?”

“지금 너는 즐거움이라는 명목하에 우리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있을 신계와의 대전쟁에 대비해 끝없이 비축하고 있어도 모자랄 그 전력을 계속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진심으로 악마가 세상을 뒤집게 될 ‘성전’의 날이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솔로몬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있었던 것이다.

그 얘길 듣고 보니 수직서열체계가 도입된 후에도 분쟁이 길게 이어지지 않고 금방 사그라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게 다 이 악마들의 본래 수장인, 바알이 중재를 하고 다닌 것이었다.

“그렇군. 네 뜻은 잘 알고 있겠다.”

스윽.

난 내 멱살을 잡은 그의 손을 풀고서 내 옷을 툭툭 털었다.

“앙그라 마이뉴…….”

바알은 자신의 설득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분한 얼굴로 주먹 쥔 손을 부들거렸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간, 너도 언젠가 큰 반발에 직면하게 될 거다.”

“걱정하지 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개자식……!”

“네가 생각하는 ‘그날’이 곧 올 거거든. ……아주 빠른 시일 내에.”

“……뭐?”

금방이라도 싸움을 걸 것 같던 바알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일 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멍하니 서 있는 그를 내버려 두고 가던 길을 걸어갔다.

때마침 저 앞에서 솔로몬이 좋지 않은 소식을 가지고 다가왔다.

“이보게, 앙그라 마이뉴! 지금 우리 악마 군대가 연패를 거듭하고 있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난 그런 그에게, 바알더러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대놓고 이런 요구를 했다.

“솔로몬 님.”

“그래, 말하게!”

“제게 문자의 권능을 사용할 권한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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