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22화
문자의 권능은 그야말로 금단의 지식이라 할 만한 힘이었다.
솔로몬으로부터 그 권한을 양도받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보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게…… 가능한 건가?’
그건 인간의 언어나 지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비유도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인지 능력을 벗어난 개념이었으므로.
정 억지로라도 끼워 맞춘 비유를 하자면, 그건 마치 축이 네 개 이상인, 4차원 이상 공간에 속하는 도형을 수식이 아닌 직관으로 인지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전후좌우상하의 범주를 넘어서는 제4, 제5의 방위.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저 너머 세계의 진리를 들여다보는…….
‘……그만.’
……그런 지식이었다.
너무 깊게 파고들고자 한다면 나 자신의 정신이 붕괴될 것만 같아 더 이상의 접근은 스스로 자제해야 할 정도.
이게 단순히 솔로몬으로부터 문자의 권능에 대한 ‘제한적 사용 권한’을 얻었을 뿐인 수준에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 힘을 전부 다 가진 솔로몬은 도대체…….’
이쯤 되자 용케도 피와 살육 같은 자극에 빠지는 정도에서 그친 그가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튼 이제부터 이걸 사용하는 데에 익숙해져야겠어.’
어찌 됐든 결국, 문자의 권능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나에게도 생겼다.
더 큰 규모의 악마 군단을 다수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운영하려면 문자의 권능 사용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명목을 대자, 솔로몬이 흔쾌히 허락한 것이다.
이미 내가 제시하는 즐거움에 극단적으로 중독되어 버린 그는, 결국 이런 강한 권한까지 내게 넘겨주고 말았다.
{지정 그룹 1의 범위를 설정합니다.}
{설정된 지정 그룹 1의 내부 편제를 ‘자율 수행’으로 설정하시겠습니까?}
{지정 그룹 1의 전 인원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래서 우선은 솔로몬의 눈을 속이기 위해 내가 말한 계획대로 악마 군단을 착실히 운영했다.
그들은 차츰차츰 세력을 넓히며 두 지역, 세 지역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기 시작.
이제 정말 지상은 국가와 종족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가 전화에 휩싸이는, ‘종말 직전의 세계’ 분위기를 연출하게 되었다.
* * *
“앙그라 마이뉴, 드디어 우리 군단이 제대로 승리하고 있네!”
솔로몬은 매우 즐거워했다.
그동안은 모든 게 자신의 통제 하에 있는 지옥 안에서, 결과를 뻔히 아는 연극 같은 전쟁만을 감상하던 그였다.
그건 마치 대결 상대 없이 혼자서 체스 게임을 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
하지만 지상에 있는 다른 신의 종족들과 군단을 맞붙게 하는 건 그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솔로몬은 수천 년 만에 드디어 통제 밖에 있는 존재들과 게임다운 게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아닐세. 역시 너는 나와 같은 인간 출신이라 그런가, 그저 싸움 밖에 할 줄 모르는 무식한 악마들과는 확실히 다르군!”
“과찬이십니다.”
그는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아낌없이 갖게 해주는 존재.
이제 나는 솔로몬에게 있어 그런 존재가 되었다.
“솔로몬 님.”
“그래, 뭐든 말하거라.”
“저는 사실, 여전히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군단을 지휘하는 것보다는, 일선에 나가 직접 몸을 움직이며 싸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 안정감이 극에 달해 허점을 드러냈을 때.
“전투와 살육의 흥분을 경험하기엔, 현장에 몸소 뛰어드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없기 때문입니다.”
방심한 지배자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하하, 몸이 근질근질한가 보구나. 너도 직접…….”
“그런데 그런 격렬함을 누구보다도 즐기는 당신은, 왜 단 한 번도 스스로 싸움에 나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음?”
“대답은 물론, 본신의 전투 능력이 전혀 없다는 뜻이겠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피와 살육이 그렇게나 좋았다면 자기 스스로 몸을 움직이면 될 텐데, 그것조차도 능력이 부족해 권능으로 남에게 시킬 줄만 아는 극도로 의존적이고 무능한 인간.”
“앙그라 마이뉴, 너 지금…….”
“그게 바로 너다. 솔로몬.”
{<바알>의 <솔로몬>에 대한 불가침 조항이 삭제된다.}
푸확!
“커헉!”
거미 발톱이 그의 목을 꿰뚫었다.
바알은 어느 샌가 그의 뒤에 나타나 있었다.
“이제 지옥은 다시, 우리 악마들의 것이다. 솔로몬.”
“어헉……. 떠…… 헤…….”
솔로몬의 한없이 연약한 필멸자의 육신이, 그의 발톱에 관통된 채 축 늘어진다.
문자의 권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그는, 그저 약해 빠진 한 명의 인간에 불과할 뿐.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고? 네가 허락한 권능을 조금 손봤어. 네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우회 방법을 고안해 냈지.”
내가 솔로몬의 몸에 손을 대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장막이 그와 나 사이를 막아섰다.
나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에게 물리적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도록, ‘세계의 법칙’이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 대신 바알이 너를 죽일 수 있게 수작을 좀 부린 거야. 이 권능, 알면 알수록 재밌는 권능이더라고.”
난 이걸 깨기 위해 지난 시간동안 밤낮없이 권능에 대해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컥……. 커허……. 헉…….”
스르륵.
그 결과가 바로 이것.
권능이 만든 법칙에 의해 보호받고, 법칙에 의해 영생하며 불멸자 행세를 하던, 실제로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솔로몬은.
이런 시시한 일격 하나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화아아악.
내 오른쪽 눈으로, 그의 영혼이 빨려 들어왔다.
* * *
“이렇게 손쉽게 끝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바알은 자기 손으로 죽여 놓고도 현실 감각이 없는 듯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수 천 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을 포함해 이 거대한 지옥이라는 세계를 지배해 온 지배자가, 이렇게도 허무한 최후를 맞이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녀석은 처음부터 제 수준에 맞지도 않은 힘을 가지고 억지로 위치를 유지했을 뿐이야.”
“그럼 이제……. 앙그라 마이뉴. 당신이 우리의 군주가 되는 것인가?”
“그래.”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써 지옥의 규율이 바로잡혔다.
나는 솔로몬이 가지고 있던 세계 조작능력, ‘문자의 권능’을 완전한 형태로 얻었고, 이제 모든 악마들이 원하던 걸 줄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바알.
누구보다도 그야말로 바라마지 않던.
지옥의 대성전이 이제 곧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너의 군주로서 명령하겠다. 지금, 지옥의 모든 대악마와 군단을 이끌고, 지상으로 올라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들을 파멸시켜라.”
“……모든 신들을……. 알겠다. 명령에 따르도록 하지.”
바알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나를 쳐다보고서 이내 안광을 내뿜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을 지옥에 가둬버린 신들과 싸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쁨을 느꼈고,
동시에 불멸자인 그들을 말 그대로 ‘파멸’시키는 게 가능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으나,
곧 원혼들의 악의로 가득 찬 내 오른쪽 눈을 보자마자 그 명령을 납득한 것이다.
{문을 개방한다.}
{지옥에 존재하는 모든 악마들은 지상계로 이동된다.}
이윽고 나는 권능을 발동해, 이 지하 세계의 악마들 모두를 한꺼번에 지상으로 올려 보냈다.
그와 함께 나 또한 지상에 강림했다.
파아앗.
지옥에 떨어진 이후.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이 흘러,
강산이 변하고 세대가 교체되는 일들이 벌어진 끝에.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지옥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돌아올 수 없을 거라던 신들의 조롱 따위는 가볍게 짓밟아 버린 채.
* * *
“싫어어엇!”
“끄악!”
무수히 많은 필멸자들이 죽어나간다.
마을은 불타오르고 성채는 무너진다.
지옥 밖으로 벗어난 무수한 악마들이 온 세상을 비극과 악의로 뒤덮었다.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고도, 이제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건 이미 합리화의 마약에 중독되어 내 안의 선의가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옥에서의 시간을 보내면서, 진정한 악마 ‘앙그라 마이뉴’로 거듭나게 되었다.
{지정 좌표로 이동한다.}
그런 와중에 나는 원래 내가 살던 곳인 예루살렘 왕국으로 돌아갔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 이곳의 인간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서였다.
“모두 기도하시오! 아후라 마즈다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고 저 악마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기도를……!”
그리 달라진 건 없었다.
이미 세대교체가 완전히 이뤄진 후라 이제 더 이상 내가 아는 얼굴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사람만 바뀌었을 뿐 풍경은 그대로였다.
“어어……? 저건?”
“히이이익!”
“악마다! 악마가 나타났다!”
길거리에 빼곡하게 모여 기도하던 사람들이 하늘에 떠 있는 나를 보며 기겁했다.
“모두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후라 마즈다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겁니다!”
“기도합시다! 기도로 저 악마를 물리칩시다!”
신관들은 끝까지 신앙 하나만으로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려 한다.
아무리 간절히 애원해도 어떠한 응답도 내놓지 않는 신만을 애처롭게 믿으면서 말이다.
심지어 전사들조차도 자신들의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두 손을 부여잡은 채 기도만 하고 있다.
내가 만들어 놓았던, ‘스스로 쌓아올린 인간의 힘으로 적에게 대적한다’는 풍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양이다.
타악.
나는 조심스럽게 날갯짓하며 천천히 바닥에 착륙했다.
“으아아아!”
“도망쳐!”
“안 됩니다! 끝까지 믿음을 저버려서는……!”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나를 보자마자, 사람들은 잔뜩 겁먹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개중에는 용감하게 끝까지 남아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반대로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 그들 중 가장 우두머리인, 대신관으로 보이는 노인을 찾아갔다.
“파드만! 자네가 어떻게 좀 해보게!”
“대신관님, 저도 이런 건…….”
“자넨 신성력이 가장 높은 자이지 않은가!”
노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나를 보고 어떤 젊은 남자 신관 뒤에 숨었다.
대신관이라는 직책이 무색하게도, 악마 앞에선 자기보다 더 젊고 어린 신관을 방패로 내세우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다가오지 마라! 더 이상 다가온다면 너에게 천벌을 내리겠다!”
화아악.
젊은 신관이 날개 모양의 십자가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하얀 빛과 함께 기분 나쁜 바람이 내 뺨을 스쳤다.
물론 그것이 나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게……. 신성력인가?”
“그렇다! 아후라 마즈다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능이다!”
신성력.
그런 능력이 과거의 신관들에게도 있었다면, 예루살렘의 백성들이 이종족과의 전쟁에서 더 많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이제 와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이 들었다.
“파드만. 파드만이라고 했나.”
“으아아…….”
“악마에게 이름을 불렸다! 그는 이제 곧……!”
난 내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문자의 권능을 사용했다.
“나를 믿어라. 나를 받든다면 너희는 앞으로의 대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대상에게 악마 계약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사실 내가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은, 그저 변화된 왕국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완전한 악마화가 진행되고서도 남아 있는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기억.
그걸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곳 사람들을 악마 군단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말이다.
“아……. 안 돼……. 날 유혹할 수는…….”
물론 신실한 신앙심을 가진 신관, 파드만은 당연히 거기에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그에게 합류의 조건으로 제시한 대가는 매우 컸기 때문이다.
“알량한 신성력 따위가 아니라 진짜 마력을 너에게 주마.”
“악마의 제안 같은 걸…….”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지 않나?”
그 한마디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런 상황에도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하는 신앙 따위보다, 지금 당장 눈앞에서 자신에게 손을 내미는 초월자의 직접적인 힘.
이걸 거절할 수 있는 필멸자가 과연 몇이나 존재할까.
“난……. 나는…….”
그런데 그 순간.
파앗.
“으아아아!”
파드만의 비명과 함께 눈과 입에서 눈부실 정도로 새하얀 빛이 새어나왔다.
그 새하얀 빛에서는 극도로 기분 나쁜 기운이 방출되었다.
묵혀두었던 증오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저 더러운 냄새.
그리고 분노를 돋우는 신경질적인 목소리.
“아흐리만!”
“……아후라 마즈다.”
그놈이 신관의 몸을 빌려 이곳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