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20화
그 이후로 나는 모든 악마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 지옥을 샅샅이 뒤지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형편없는 실력이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마르코시아스를 이겼다더니.”
처음엔 끊임없는 패배의 연속이었다.
마르코시아스 하나조차도 무수한 도전 끝에 겨우 한 번을 이길 수 있었는데, 그보다 더 서열이 높은 대악마와 싸워 이긴다는 건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
심지어는 더 아래 서열의 악마들까지 내게 도전을 해왔고, 그들에게조차 줄줄이 패배하며 곧장 내 순위는 바닥까지 수직추락했다.
솔로몬의 명령에 따라 ‘금제’가 해제된 악마들은 그야말로 내가 넘볼 수조차 없을 만큼 강했던 것이다.
{당신의 서열: 109위}
하지만 바닥에 닿는 것은, 다시 위로 올라가기 위한 추진력을 얻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난 그곳에서부터 차근차근 힘을 쌓으며 단계를 밟아나갔다.
흘러넘치는 마력을 그저 손톱으로 무작정 방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정밀하게 가공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노력을 통해 가장 첫 번째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내 안에 잠든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
‘게 아살.’
내가 잡아먹었던 신의 무구를 꺼내 사용하는 능력이었다.
아르테미스의 활과 루 라바다의 창.
그 두 무구의 힘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존 한계를 벗어난 수준의 공격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인간 시절에 얻었던 무기 사용에 관한 깨달음이, 불멸자가 되어 오히려 더욱 성숙하게 꽃피운 것이다.
“큭! 앙그라 마이뉴……! 어떻게 이런……!”
투앙! 콰콰콱!
내 손에 쥐어진 창에서 번갯불 같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거대한 뱀 거인 형상을 한 악마 하나를 정수리에서부터 통째로 관통했다.
놈은 마치 꼬챙이에 꿰인 도마뱀 구이처럼 몸 전체가 창날에 헤집어져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이건 내 거다.”
그리고 난 그놈이 휘두르던 대형 삼지창을 통째로 집어 들고 다음 적수를 찾아갔다.
쐐애애액! 퍽!
박쥐 형상의 악마에게 그 삼지창을 던져 날개를 맞혔고, 놈은 곧 바닥으로 추락했다.
“무, 무슨……!”
상황을 인지하고 입을 나불거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문답무용으로 무기를 휘두를 뿐.
멀리서부터 아르테미스의 화살을 쏘며 접근해 나가다, 루의 창을 내지르고.
다시, 상대가 들고 있던 무기를 빼앗아 그걸로 재차 공격을 가한다.
쾅! 투콱! 쐐애액!
“끄아아악!”
그 전투 패턴은 더욱 정밀하게, 더욱 효율적으로 진화해 갔다.
여러 가지 무기들을 바꿔가며 싸우는 게 아니라, 한 번에 전부를 휘두를 수 있게 만들었다.
루의 창을 휘두름과 동시에 빼앗은 모든 칼과 창들이 악마를 베어내고.
아르테미스의 활을 쏘는 즉시 다른 무구들이 화살과 함께 적을 향해 날아든다.
마력의 섬세한 조정이 가능해진 후에 얻게 된, 두 번째 기술.
“네가 앙그라 마이뉴인가? 악마들을 죽이고 얻은 전리품들을 이렇게나 모아놓다니……. 그야말로 ‘악의의 전당’이 따로 없군.”
바로 악의의 전당이었다.
“부러운가? 그렇다면 너에게도 자리 하나를 내어주도록 하지.”
“영광이지만, 거절한다.”
“거절할지 말지는 내가 정하는 거야. 네가 아니라.”
난 살육을 반복하며 리스트에 무기들을 쌓아 올렸다.
“끄악!”
무기가 없으면 그것들의 이빨과 손톱을 뽑아내서 수집했다.
그것조차 없으면 허벅지 뼈라도 몽둥이 삼아 휘둘렀다.
내 ‘악의의 전당’에는 무수히 많은 악마들의 무기와 신체 부위들이 모였고, 그 모든 무기들은 마치 원혼처럼 둥둥 떠다니며 나를 따라왔다.
덕분에 지옥에서는 ‘수많은 무기들을 이끌고 다니는 악마’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쿨럭! 어째서…… 이런 놈한테…….”
투콱.
{당신의 순위가 상승합니다.}
{당신의 서열: 7위}
그렇게 시체의 산을 쌓으며 최상위층까지 올라왔다.
이제 난 더 이상 금제에서 해방된 악마들의 손쉬운 사냥감이 아니다.
패배와 죽음, 승리를 거듭하며 축적한 ‘무의 업’은 내 영혼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으리만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악의의 전당에 들어간 무기의 개수가 늘어날 때마다 힘은 더욱 증폭되었다.
{당신의 서열: 6위}
{당신의 서열: 5위}
{당신의 서열: 2위}
나는 내 위에 존재하는 모든 악마들을 쓰러뜨리고.
“큭……. 너는…… 우리가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구나.”
“경의를 표하지. 악마들의 수장인 바알이여.”
“이제 난…… 수장이 아니다.”
{당신의 서열: 1위}
솔로몬을 제외한 이 지옥 모든 존재 위에 군림하는 자가 되었다.
* * *
“축하한다! 앙그라 마이뉴! 결국 해내고 말았구나!”
“감사합니다.”
나는 솔로몬에게 공손한 태도로 머리를 숙였다.
“일단 자리에 앉게! 곧 음식이 들어올 테니 말일세.”
그는 나를 자신의 거주지 안으로 불러들여 호화로운 축하연을 열었다.
고급스러운 대형 식탁.
황금으로 칠해진 의자와 은 식기.
수많은 시종들.
그들이 가져와 대령하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
마치 인간 귀족들이 행하던 것과 같은 사치가 그의 집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황량한 사막 위에서 전투와 살육을 반복하던 나에게는 복에 겨운 대접이었다.
심지어 너무 이질적이어서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어떤가? 그동안 오랫동안 인간다운 음식을 먹지 못했을 텐데.”
“상당히 반가운 느낌이 듭니다. 이런 호사를 누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난 솔로몬 앞에서 그 어떤 불편함도 드러내지 않았다.
인간이었던 시절에도 아르테미스에게 생각을 감췄던 것처럼, 속내를 철저히 가면 속에 가린 채 그를 진심으로 상관처럼 대우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전에 나에게 대들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상당히 고분고분해졌군. 이상할 정도로 말일세.”
물론 그 역시 나를 끝까지 의심했다.
이곳에 초대를 한 것도 나의 태도에 대해 확신을 갖기 위함이었다.
그 대단한 ‘문자의 권능’으로도 나를 물리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지언정, 내 진짜 의지를 확인하거나 조작할 수는 없는 모양.
“그거야 당연한 일입니다. 솔로몬 님에게만 충성하면, 저는 이 세계의 2인자가 됩니다. 지금처럼 이런 호화도 마음껏 누릴 수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제가 반기를 들고 반항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봐야 아무런 이익도 기대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흐음.”
그래서 난 그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려 했다.
확실히 이 지옥 안으로 들어온 존재는 솔로몬과 척을 질 이유도, 가능성도 전혀 없다.
그가 가진 ‘문자의 권능’은 절대적인 법칙이었기 때문이다.
이 법칙 안에 종속된 존재는 누구든 그것의 창조자에게 해를 입히지 못한다.
“하지만 자네가 악마들을 죽일 때 발산하던 그 감정은 분명…… 복수심이었는데 말일세.”
그럼에도 솔로몬은 계속해서 나를 의심했다.
그만큼 무수한 세월 동안 그에게 도전했던 악마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또 그가 얼마나 자기 자신의 보호에 만전을 기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내 밑에서 2인자 노릇을 하는 것보다 지옥 밖으로 나가서 신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클 텐데……. 혹시, 무언가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닐 테지?”
그가 양미간을 좁히며 나에게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물음을 받아쳤다.
“그 복수심으로 제 상대들을 꺾은 건 사실입니다. 그 덕분에 제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죠. 하나 그 감정은 어디까지나 승리를 위한 힘으로의 승화 매개에 불과했을 뿐, 절대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솔로몬은 내 대답을 듣고도 한참동안 나의 표정과 행동을 주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나를 시중드는 하인들도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불쾌하기 짝이 없는 눈빛들이 나에게 꽂힌다.
누구든 이 자리에 앉는다면 진실을 말하는 것조차 긴장되고 떨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자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 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든 속내를 꿰뚫어 보려는 시도는 내 철옹성 같은 의지에 가로막혀 실패로 끝났다.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하인 하나가 로브를 입은 시체 형상으로 변화하며 저렇게 말한 것이다.
“그래? 수고했다, 나베리우스.”
로브를 뒤집어쓴 시체 형상의 악마는 거짓을 담당하는 대악마, 나베리우스.
서열을 높이는 싸움에서 한 번 붙은 적이 있는 녀석이었다.
“미안하게 됐군. 솔직히 자네의 속마음을 의심했네. 갑자기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자네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말일세.”
솔로몬은 진심과 거짓을 판단하기 위해 그의 능력을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정신세계를 들추는 데에는 실패했다.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 속으로 그에 대한 작지만 큰, 첫 승리를 음미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 * *
내가 지옥의 2인자가 된 뒤로부터 또다시 무수한 시간이 흘렀다.
솔로몬이 구상한 악마 간 서열 체계와 계급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착화되었고.
지속되는 싸움에 지친 대악마들은 의미 없는 소모를 피하기 위해 그 수직적인 상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솔로몬이 당초에 원했던 ‘격렬한 자존심 대결’이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된 것이다.
또한 나 역시 이곳의 생활에 적응해 평정심을 되찾은 탓에 그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애초에 서열 1위인 나에게 도전하는 악마들은 진작 사라진 상황이었고 말이다.
결국 솔로몬은 원점으로 되돌아 온 지옥의 평화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뀐 게 아무것도 없군. 쓸모없는 악마 놈들. 위로 올라가려는 목적의식도 없고, 스스로의 위치에 안주하려는 버러지 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난 그 말을 듣고 참으로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지옥 밖으로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권력에 만족하며 신들과의 싸움을 피해 이곳에서 안주하고 있는 것은 누구보다도 바로 자기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일관된 모습이로군. 나는 괜찮지만 남들은 그러면 안 된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내로남불의 화신과도 같은 그의 모습은 내가 오래전 아발론에서 봤던 그 신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이런 게 바로 불멸자들의 본성이라는 걸까.
‘……이걸로 나한테 기회가 왔으니 된 거겠지.’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저건 내가 움직일 때가 되었다는 징조라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경계심은 한껏 누그러졌고, 욕망의 결핍에 의해 판단력이 마비된 지금.
나는 이때를 위해 준비해 뒀던 칼을 꺼낸다.
“솔로몬 님.”
“아, 앙그라 마이뉴! 마침 잘 왔군.”
그가 나를 기다렸다는 듯 속에 품고 있던 불평불만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 한심한 대악마들을 보고 있자니 열불이 터진 참이었네. 자네처럼 목표와 욕구가 확실한 녀석이 어찌 이렇게 단 하나도 없는 건지!”
그는 과거 이야기까지 꺼내며 나에게 무료함을 호소했다.
“자네가 보여줬던 복수심과 서열 상승 욕구를 가진 악마는 이제 없단 말일세. 그때가 정말 그리울 정도야.”
솔로몬은 내게 이런 말을 할 정도로 나를 신뢰하게 되었다.
난 그런 그의 기대에 부응하는 답변을 해줬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몇 번이고 그와 같은 열의 넘치는 전투를 반복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다시?”
그 ‘다시’라는 말에 솔로몬의 눈이 반짝였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아. 그래봤자 똑같은 과정을 재현할 뿐이겠지.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결과를 반복한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아무리 나라도 대결 상대가 똑같은 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새로운 즐거움을 찾으셔야지요.”
“새로운 즐거움?”
그런 그에게 내미는, 의외성의 집약과도 같은, 극히 자극적인 제안.
“……만약, 지상에 악마를 풀어놓는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