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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95화 (95/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95화

-제발 부탁이다. 그놈들에게 복수하도록 도와다오.

아흐리만은 내게 자신의 복수를 대신 완성해달라고 부탁했다.

솔직히 기억을 들여다봤을 때, 그 신이라는 족속들이 하는 짓은 제삼자인 내가 봐도 역겹긴 했다.

정말 찢어 죽여도 모자랄 놈들.

‘근데 내가 왜 그래야 되지?’

문제는 나한테 그럴 동기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난 아흐리만이 지옥에 떨어지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수호령 상태로 내 몸에 기생하고 있다.

신이란 자들은 그 대단한 과거의 아흐리만을 지옥에 떨어뜨릴 만큼 위험한 존재다.

아무리 그 신들이 역겹다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동참하기엔 너무 위험한 복수인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너에게 주지. 네가 바라던 건 힘 아니었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게 만들 압도적으로 우월한 힘. 그걸 얻게 만들어주겠다.

아흐리만은 그런 나에게 딜을 걸었다.

내가 원하는 걸 주고, 자신의 목적을 대신 달성해 달라.

물론 저 말이 허풍이나 거짓은 아닐 것이다.

왜냐면 그 신이라는 존재들과 맞서려면 당연히 그 정도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게 허풍이나 거짓말이면, 애초에 그의 복수조차도 성립할 수가 없겠지.

특히 그의 특성이나 권능을 내 몸에 맞게 변형시키는 능력은 꼭 필요하기도 하고.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래, 좋아. 내가 힘을 얻게 도와주는 대가로 널 돕는다고 치자. 더 중요한 건, 그 신들에게 어떻게 복수하느냐는 거야.’

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이 신화시대의 기억이라는 명목으로 전개되는 ‘과거 역사’는 절대 내가 살고 있는 이쪽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거기엔 오크나 엘프 같은 종족들이 버젓이 국가를 건설하고 서로 전쟁이나 외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거대한 문명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당연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도 남아 있어야 한다.

어느 순간 그 모든 종족의 문명이 깡그리 파괴되고 남길만한 역사적 유물들이 모조리 불타 없어졌다 하더라도, 최소한 화석만은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고고학적 사료에서도, 오크 같은 종족이 지구에 살았다는 흔적은 없었다.

하물며 마물, 마수를 비롯한 수많은 아인종들은?

그런 건 다, 6년 전 시스템의 발생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것들일 뿐이었다.

‘난 이제 솔직히 그 기억이라는 게 진짜인지도 모르겠다. 신화시대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기는 했던 걸까? 아흐리만이라는 자도 시스템이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일 뿐인 게 아닐까?’

그런 내 의구심에 아흐리만이 버럭 화를 냈다.

-난 분명히 존재한다! 너와 같은 인간으로서 삶을 살았고, 모종의 이유로 긴 시간이 흘러 여기에 다시 돌아왔다! 그 모든 일들은 전부 다 사실이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모든 것들이 다 진짜라고 말했다.

하긴, 자기 존재의 부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 그래. 알겠어. 그러니 너무 노여워하지 말라고.’

물론 내 생각도 다 가설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시스템은 이 모든 상상의 산물들을 다 실제로 구현해 냈다.

그러니 설령 아흐리만이 가상의 존재라 하더라도 시스템에 의해 현실로 나타난 이상, 그 순간부터 진짜가 되는 것이다.

다만 그 시점이 언제인지가 문제일 뿐이지.

‘아무튼, 그래서 신들을 어떻게 찾아내서 어떻게 복수하겠다는 거지?’

-그건…….

결국 돌고 돌아 원점.

아흐리만도 신들에게 어떻게 복수해야 할지 방법을 모른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다.

‘하아. 그럼 또 수호령들을 흡수해서 기억들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건가?’

-그래. 더 많은 수호령을 흡수해라. ……특히, 신화 수호령들을.

‘신화 수호령들을?’

-……아, 맞다!

갑자기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뭔가 잊고 있었던 걸 기억해 내기라도 한 듯한 목소리였다.

-그게 있었지! 정령 소환!

* * *

한편, 이진윤과 다리우스, 보그단은 레이드를 진행 중이다.

그 안에서도 마지막 스테이지에 진입한 상황.

기초스탯 총합 1,500 미만 구간 레이드인 이곳에는, 작년에 이진윤이 참여했던 초급 각성자용 레이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서로 싸울 기미가 안 보여……. 다행이다.’

다들 보스 스테이지에서 어쩔 줄을 몰라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대규모 유혈 사태가 터졌던 작년의 개판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기에 온 사람들 자체가 다들 산전수전 다 겪은 나름의 베테랑들이기도 했고.

또 이쯤 되는 수준의 레이드 보스라면 그렇게 서로 싸워서는 절대 못 잡는다는 걸 다들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하지?’

이진윤은 수풀 속에 숨은 채 다시 자신이 상대해야 할 레이드 보스를 쳐다봤다.

키가 5미터쯤 될 듯한 거대한 덩치에 초록 피부를 가진 인간형의 근육질 마물.

언뜻 보면 오크와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지만, 그와는 조금 다르다.

저건 오크들보다 덩치가 더 크고, 머리에 머리카락 대신 뿔이 자라는, ‘트롤’이라는 종족이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하자, 브로.”

“진윤이 앞에 서고 내가 서포트하는 동안, 네가 뒤에서 급습하는 전술?”

“예압.”

보그단이 보스를 잡을 방법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거기에 부정적이었다.

“근데 저건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해 온 거랑 완전 다를걸? 신우가 준 정보에도 미친 듯이 세다고 나와 있는데.”

“지레 겁부터 먹지 마라, 맨.”

“겁먹은 게 아니고, 생각을 하라는 거지 인마.”

둘은 티격태격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레이드에 참여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유신우가 준 패치노트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게 얼마나 강한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진윤은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있다.

레이드 보스가 이전 스테이지에서 상대하던 것들과 얼마나 격의 차이가 큰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일단 다른 사람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요.”

“왓? 그러다가 다른 놈들에게 보상을 빼앗기면 어쩌려고 그러냐, 브로?”

“난 진윤 친구랑 동감이야.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본다.”

“왓 더…….”

세 사람은 결국 다수결에 의해 대기하기로 했다.

다른 누군가가 선공을 걸 때까지.

바로 그때.

타앙!

숲속의 고요를 깨뜨리는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퍽!

그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 순간, 탄환은 이미 트롤의 미간에 틀어박혀 있었다.

물론 아쉽게도 탄환은 그 두껍고 단단한 피부와 두개골을 꿰뚫지는 못했다.

“크허어어엉!”

불의의 기습을 당한 신장 5미터의 거인 트롤이 크게 울부짖었다.

그와 동시에 양손에 들고 있던 두 개의 방망이 위에, 각각 마나가 덧씌워져 두 자루의 철퇴 형상을 이뤘다.

전설 수호령, ‘곤륜신선 황천화’의 힘이 이곳에 강림했다.

‘무구 투영? 작년 오크도 저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진윤은 그 모습에 의문이 들었다.

그가 유신우처럼 수호령을 볼 수는 없었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무구 투영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슈팟! 투쾅!

하지만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격노한 트롤이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두 자루의 철퇴가 사방을 초토화시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콰쾅! 쾅! 쾅!

“으아! 저게 뭐냐, 브로!”

“내가 뭐랬냐!”

다리우스와 보그단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줄행랑을 쳤다.

그 와중에 보호막을 전개하려는 이진윤을 끌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런 건 브로도 못 막는다! 그냥 튀어라!”

보그단은 아까 보여줬던 것과는 순식간에 180도 달라진 태세를 보이며, 이진윤을 들쳐 메고선 다리우스와 함께 도주했다.

그러던 와중.

파지직.

“크그그그극!”

갑자기 트롤의 전신에 전류가 휘감기더니, 공격하다 말고 몸에 마비라도 온 것처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 아닌 아까 전 이마에 꽂힌 탄환이 일으킨 마비 효과였다.

“우옷? 괴물이 멈췄다!”

타타탕!

곧이어 다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단발이 아닌 연달아 날아드는 연사.

각각의 총알들은 그냥 평범한 탄환이 아니라, 속성이 부가된 탄들이었다.

화륵!

방금 전 트롤에게 마비를 일으킨 전기 탄환과 같이, 흩뿌려진 탄들은 트롤의 피부에 착탄한 후 불꽃을 내뿜었다.

“크헝! 크허어엉!”

하지만 그 불은 되레 대상을 더욱 광분하게 만들었을 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게다가 사격 방향까지 발각된 것인지, 총알이 날아온 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스스슥.

그러자 방금 총기를 연사했던 장본인은 자신의 사격 위치를 버리고 도주했다.

이후 다시 또 다른 위치에서 사격 개시.

타타타탕!

쨍그랑!

이번엔 화염이 아닌, 빙결 속성을 내는 탄환이 레이드 보스의 몸에 꽂혔다.

“끄어억!”

그러자 레이드 보스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빙결 속성이 약점 속성이라는 것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타앙! 쾅! 투타타타타!

그 후부터 트롤의 몸에는 온갖 종류의 냉기 계열 탄환과 유탄들이 꽂히기 시작하더니.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그 보스 트롤은, 그때부터 단 한 사람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했다.

“워…….”

“저건 누구야? 너무 센데?”

웬만한 실력자들이 다 모인 이 안에서도 압도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실력을 과시한 그 사람은.

“윤아야?”

이진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 * *

“정령 소환으로 복수를 하겠다고?”

처음엔 그 뜬금없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물론 정령마술이 상당히 좋은 스킬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 누아다의 수호령을 얻기 위한 시련에서도 봤듯, 강력한 정령을 불러낼 수 있다면 상당히 유용하게 쓸 수도 있고.

또한 지금 나에겐 ‘고등 정령마술 각인서’가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높은 수준의 정령마술을 구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악의의 전당을 놔두고 그걸 사용할 이유는…….

-있지.

‘있다고?’

-그래. 지금, 악의의 오른쪽 눈으로 네 안에 봉인되어 있는 영혼들을 꺼내봐.

악의의 오른쪽 눈.

아흐리만에게 속은 거긴 하지만, 발로르의 마안을 먹은 뒤 얻은 특성으로 그 세 번째 경지를 개화했다.

개화한 능력은 다름 아닌 내 안에 봉인된 수호령들을 자유롭게 제어하는 것.

‘영혼을 꺼내라니? 그래도 되는 거야?’

-그래. 그렇게 해도 그것들은 절대 너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말을 듣고 특성을 발동하자, 지금까지 나에게 흡수당한 영혼들이 내 눈에서 흘러나왔다.

반투명한 구체 형태의 덩어리들.

아흐리만의 말대로 그것들은 내 주변을 떠돌 뿐, 일정 거리 밖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거기서 정령 소환을 사용해 봐.

‘정령 소환……. 설마, 이 수호령들을?’

-그래, 바로 그거야.

정령 소환으로 수호령을 불러낸다니.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난 시스템상 수호령이 정령 소환 같은 일반 마법으로 불러낼 수 있을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런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 그게 당연한 이치겠지. 원래 수호령은 ‘부리는 것’으로 설계되지 않았으니까.

아흐리만의 말대로, 수호령은 부리는 게 아니라 각성자 자신에게 힘을 부여하는 원천 그 자체였다.

그 원천을 불러낸다는 건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예외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

나는 수호령 아지다하카라는 힘의 원천이 따로 존재하면서도, 다른 수호령들을 흡수한 상태다.

그리고 이젠 그 영혼들을 내가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특성까지 얻었다.

정령 소환을 사용하기 위해 얻어야 하는 소환대상의 동의를, 강제로 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거……. 지금…….’

-그래! 그러니 빨리해라! 루! 누아다! 아르테미스! 그 쓰레기 같은 것들을 불러내란 말이다! 지금 당장!

아흐리만은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외쳤다.

복수 대상들을 모조리 잡아들여서 전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노예로 만들어버릴 생각에, 잔뜩 흥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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