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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94화 (94/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94화

나는 루의 인도에 따라, 마치 죄인처럼 신들의 조롱을 받으며 광장 한가운데로 끌려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이곳 아발론의 주신인 누아다 아르게틀람이 모든 신들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는 동료인 아르테미스를 죽인 죄인을 벌하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 자리에서 반박했다.

“아르테미스를 죽인 죄? 그럼, 모나를 죽인 아르테미스의 죄는? 수많은 생명들을 죽게 만든 당신들의 죄는?”

그러자 이곳에 있는 다른 모든 신들이 더욱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소를 흘리거나, 개중에는 아예 대놓고 폭소를 터뜨리는 자도 있었다.

“저놈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것이냐?”

“정신이 어떻게 된 모양이군.”

이런 반응에 대해, 누아다는 아주 차분하게 내 주장에 답했다.

“네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은데, 필멸자가 죽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필멸(必滅)’인 것이다. 하지만 아르테미스를 비롯한 우리는 불멸자다. 우리가 죽는 것은 곧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너는 그 이치를 거슬러 세계에 죄를 저지른 것이고.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그러니까 자신들이 하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생물을 죽이는 건 당연한 거고, 하계에 살던 내가 자신들을 죽이는 건 부당하다는 소리.

따라서 나는 죄인이고,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되지만 너는 안 돼.

신이란 존재들은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결정체나 다름없는 자들이었다.

“내 아내가…… 모나가……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게…… 당연한 이치라고?”

“그래. 그러니 넌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무고한 아르테미스에게 해를 가한 것이다.”

“미친놈들.”

난 참지 않고 욕설을 내뱉었다.

“저런 파렴치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있군!”

“그놈을 당장 지옥에 떨어뜨려라!”

그 욕설을 들은 이곳에 있는 모든 신들이 일제히 소리치기 시작했다.

쿠궁. 쿠구궁.

함성만으로도 천지가 흔들리고 세상이 휘청거린다.

이곳이 신들이 사는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이 많은 신들의 아우성은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

한데 모인 것만으로도 이 정도인데, 그때 말했던 것처럼 이런 자들과 정말 전쟁이라도 벌인다면 멀쩡히 남아나는 세상이 없을 것 같았다.

“조용!”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누아다가 그들을 제지시켰다.

“여러분의 의지는 알겠으니, 제발 조용히 하시오. 이러다 아발론이 산산 조각나겠소!”

“그게 싫으면 당장 의식을 진행하시지!”

금발의 남자 엘프 신이 흉흉한 살기를 내비치며 말했다.

그는 아까 전 ‘아폴론’이라고 불렸던 자였다.

“알겠소. 그럼 지금 당장 그를 지옥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누아다는 곧장 자신의 품에서 손바닥만 한 돌 같은 것을 꺼냈다.

그 돌에는 생전 처음 보는 복잡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각 계의 주신들은 지옥문 열쇠를 꺼내주시길 바라오!”

그와 함께 각기 다른 종족들의 무리 가운데서 가장 권위가 높아 보이는 자들이 그처럼 품에서 누아다가 꺼내 든 것과 비슷한 돌들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을 보고 있던 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지옥에 떨어뜨린다고? 누구 마음대로?’

하지만 이내 내가 움직일 낌새를 감지한 루 라바다가 내 옆으로 다가와 야드가르가 갇힌 손거울을 보여줬다.

“허튼짓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말했는데. 네 아들은 아직 살아 있어.”

“내놔!”

탁!

난 그걸 보자마자 낚아챘다.

루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나에게 거울을 빼앗겼다. 하지만.

“큭큭.”

그는 나를 비웃을 뿐이었다.

“잘 봐.”

그러고는 저 멀리에 위치해 있는 전신 거울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그 거울 안에 야드가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건 그냥 아공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창일 뿐이야. 아공간에서 네 아들을 꺼낼 수 있는 건, 저걸 만든 사람뿐이라고.”

“이…… 개자식…….”

“하지만 너무 억울해하지는 마. 지옥에서 네 죄를 다 치르고 나오면 다시 꺼내줄 테니까. 그러니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여.”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냐?”

“안 믿으면 어쩔 건데?”

루의 너무도 뻔뻔한 태도에 난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아쉬운 건 나였다.

야드가르를 잃는 것만은 절대로 원치 않았으니까.

“좋아. 지옥에서 돌아오면…… 약속 꼭 지켜라.”

루는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래. 꼭 그렇게 할게. 지옥에서 돌아오는 게 가능하다면 말이지.”

화아악!

그 순간, 바닥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손들이 솟아나 나를 붙잡았다.

사방에서 각 계의 주신들이 치켜든 돌들이 내뿜은 빛이 나를 포박하고 있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이곳에 왜 이렇게 많은 신들이 모였는지 아나? 지옥의 문은 이 세상 모든 계의 주신들이 한꺼번에 동의해야만 열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이 중에 너를 다시 빼내는 데 찬성할 신이 존재하기나 할까? 한다고 하더라도 만장일치를 끌어낼 수 있을까? 결국 넌 영원히 거기서 못 빠져나온단 소리야. 하하.”

“이…… 개 같은!”

난 손을 내밀어 놈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막이 바깥 공간과 나를 완전히 분리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 세상에 너 같은 놈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어딜 감히 필멸자가 우리의 허락도 없이 불멸자가 되려고! 넌 그냥 영원히 지옥에서 그 더러운 악마들과 구르면서 죽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게 어울린다!”

루는 지하로 이끌려 가는 나를 마지막까지 조롱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곳에 모인 이 세상의 모든 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인간 주제에.

감히 하찮은 필멸자 주제에.

그들의 눈빛에는 하나같이 그런 생각과 감정이 담겨 있었다.

바로 그 오만한 자존심으로 인해서.

야드가르를 내게서 빼앗고, 나를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하 세계로 가두려는 것이다.

“쯧쯧. 그러게 왜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 신이 사람을 죽였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복종했어야지.”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아후라 마즈다의 모습이 보였다.

놈도 이들과 한패였다.

저놈은 처음부터 나를 속일 작정으로 이곳 아발론에 데려온 것이었다.

“쓰레기 같은 놈들……!”

나는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땅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 힘은 아무리 나라도 저항할 수 없었다.

이 자리에 존재하는 모든 주신들이 한꺼번에 쏟아낸 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 혼자는 못 간다!”

적어도 마지막 가는 길에 길동무 하나 정도는 끌고 들어갈 수 있다.

난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저 재수 없는 낯짝의 루 라바다에게 온 힘을 다해 손을 뻗었다.

쩌저적!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한순간 나를 감싼 막에 균열이 생겼다.

난 재빨리 그 균열 너머로 손을 뻗었다.

턱!

“어, 어엇!”

그리고 동시에 루의 멱살을 붙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놈은 생각지도 못한 습격에 당황한 듯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이, 이거 놔!”

콰앙!

놈이 들고 있던 창으로 내 팔을 찔렀다.

쾅! 콰쾅!

첫 공격은 극도로 단단한 비늘 피부가 막아줬지만, 두 번째 공격부터는 창날이 표피를 찢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절대…… 놓지 않는다!”

으드득!

“끄아아악!”

균열 안으로 끌고 들어온 놈의 얼굴을 내 날카로운 이빨로 덥석 물었다.

아르테미스를 잡아먹었을 때처럼, 단단한 송곳니가 놈의 얼굴에 틀어박혔다.

“루, 안 돼!”

“저런 미친!”

“어떻게 막을 뚫은 거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자, 신들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이내 나를 루에게서 떼어놓으려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루를 붙잡아라! 저 안으로 끌려 들어가면 끝이다!”

“젠장!”

“큭…… 큭큭큭큭.”

놈들의 모습은 꼴사납기 그지없었다.

저 고고한 세상의 신이란 것들이 나 하나 때문에 한꺼번에 달려들어서 끙끙거리는 모습이라니.

머리통을 물어뜯고 있는 와중에도 웃음이 흘러나왔다.

물론 그럼에도 난 끝까지 루를 잡아당겼다.

절대 놓치지 않았다.

영혼의 조각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가져오려고 했다.

“제, 제발…… 이거 놔…….”

놈은 공포에 질린 듯 나에게 애원했다.

지옥이 정말 무섭긴 무서운 곳인 모양이다.

“널 다시 꺼내줄 테니까…….”

“이미 늦었어. 등신아.”

쿠구구궁.

나는 그놈과 함께 끝도 없는 심연 속으로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루의 영혼은 나에게 갈기갈기 찢겨 걸레짝처럼 분열했고.

난 그 혼의 파편들을 단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집어삼켰다.

루는 아르테미스와 같이, 내 영혼 속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난, 붉은 하늘로 뒤덮인 지옥에 떨어졌다.

{신화시대의 기억이 끝난다.}

{기억을 되찾음으로써 잠들어 있던 루 라바다의 힘을 개방한다.}

{악의의 전당 소환 무구 목록에 숨겨져 있던 무구 <전창 게 아살>이 활성화된다.}

{악의의 전당 소환 무구 목록에 숨겨져 있던 무구 <광전포 타흘룸>이 활성화된다.}

{아지다하카와의 동화율이 증가했다. 55.80%}

* * *

모든 신들에 대한 명백한 증오심을 가진 날.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놈들은 나를 기만해서 지옥에 떨어뜨렸지.’

루 라바다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서 그토록 통쾌한 기분을 느꼈던 것도, 바로 그 일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어떻게 됐지?

‘모든 신들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이 인질로 붙잡혀 있는데도?

‘그때부터는 더 이상 인질 같은 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지. 왜냐하면 그놈들이 날 영원히 추방하려 했다는 걸 알았으니까.’

-뭔 짓을 해도 아들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게 불가능하단 걸 깨달은 거군.

‘그렇지. 너무 늦어버렸지만.’

-신들에 대한 복수라……. 그래서, 그건 성공했나?

‘아니. 그건 그 뒤의 기억을 더 들춰봐야 알 수 있겠지만, 그놈들의 수호령이 버젓이 다른 각성자들에게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잠깐.’

한참 동안 대화를 하던 난 그제야 눈치챘다.

‘……넌 누구냐?’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긴 누구야. 이 몸의 주인이지.

‘주인……? 설마.’

-그래, 나다. 유신우.

말도 안 돼.

그때 난 분명 그의 영혼을 몸 밖으로 내쫓았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온 거지? 아니, 언제 돌아온 거냐?’

설마 아무리 영혼을 쫓아내도 자기 몸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건가?

그 의문에, 유신우는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아니. 미안하지만 내가 쫓겨난 적은 없어.

‘……뭐라고?’

-난 그때부터 줄곧, 단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여기 있었거든.

‘그럴 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순간적인 충격 때문에 너한테 몸의 주도권을 빼앗기긴 했는데,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그대로더라고.

그는 지금까지의 내 행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튼 네 활약, 잘 봤어. 아지다하카를 어떻게 복종시키는지, 악의의 전당을 어떻게 에테르 증폭 없이 구사할 수 있는지 네 덕분에 깨달았어.

심지어 그뿐만 아니라 나를 보고 힘의 사용법마저 알아냈다고 한다.

그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나 대신 시나리오 깨준 건 고마웠고, 이제 내 몸은 다시 돌려받도록 하지.

‘자, 잠깐!’

곧이어 그는 내게서 몸의 주도권을 다시 빼앗아 가기 시작했다.

‘안 돼. 이렇게 허무하게 빼앗길 수는…….’

난 저항하려 했지만, 이길 수 없었다.

용혈의 힘을 완전히 각성한 그의 정신은 나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제야 떠오른 과거 기억으로 내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가 싶었는데.

또다시 난 눈 뜬 채로 유신우가 자기 몸을 되찾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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