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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61화 (61/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61화

에테르 큐브.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회색의 정육면체 금속 덩어리.

이걸 처음 얻었을 때는, 대체 뭘 어쩌라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악의의 전당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이전의 주먹으로 싸우던 전투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클라렌트.’

반역자의 검, 클라렌트를 소환했다.

에테르 큐브가 파란 입자로 분해되어 사라지는가 싶더니, 금세 내 머리 위에 마나로 이뤄진 검 한 자루가 나타났다.

츄악!

그것은 그대로 날아가 내 뒤에서 접근하던 마수 도마뱀의 머리를 관통했다.

츠츠츳.

클라렌트는 그 직후에 사라졌고, 어느 새 손 안엔 에테르 큐브가 돌아와 있었다.

이곳은 마수 도마뱀 던전.

딱히 퀘스트가 따로 있는 것도, 뭔가 얻을 만한 대단한 물건이 숨겨진 곳도 아니다.

이런 곳에 내가 온 이유는 단 하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저벅. 저벅.

‘왔군.’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 쓰레기 새끼…….”

하비.

초대한 적은 없지만,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잘도 알고 찾아왔다.

자신을 모욕한 원수 같은 자가, 죽여도 아무도 모를 던전에 혼자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은 것이다.

“너…….”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인다.

이미 목소리부터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

“감히……. 날 모욕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스킬까지 빼앗아?”

난 대꾸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정신이 돈 거냐? 아니면 원래 성격이 무모한 거냐?”

스릉.

그러자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칼집에서 칼을 빼 들었다.

검이 파랗게 빛나며 그 위에 엑스칼리버의 형상이 덧씌워졌다.

“나한테 덤벼 놓고도 편히 세상을 활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면 오산이야.”

쉬익.

아니나 다를까, 그는 살의를 잔뜩 내뿜으며 나에게 검기를 날렸다.

스슷.

난 그걸 슬쩍, 옆으로 미끄러지듯 간단하게 피했다.

가벼운 발걸음을 사용하는 건 이미 익숙해진 상태.

그리고 그대로 뒤돌며 갈라틴을 소환함과 동시에 길이 10미터의 화염 칼날을 횡으로 휘둘렀다.

화륵. 카앙!

“큭.”

하비는 자신의 엑스칼리버로 갈라틴을 간신히 막아냈다.

그 순간 이미 내 손에는 다음 무구가 소환되어 있었다.

피를 갈망하는 창, 혈마창 루인.

그 첨단(尖端)에 참격파동을 담아 내질렀다.

창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핏방울들이 악귀의 팔들로 변해 하비를 난도질했다.

츄카카카칵!

“크아아악!”

갈라틴과는 달리 변칙적인 궤도로 몰아치는 연속 베기. 다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는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러 공격을 저지해 보려 하지만, 애초에 방법이 틀렸다.

‘회피를 했어야지.’

가벼운 발걸음 스킬을 쓴다면 저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겐 그런 선택지 따윈 없다.

한 번 궁지에 몰리면 계속해서 얻어맞을 뿐.

“이…… 죽어!”

하비는 끝까지 날 한 번이라도 공격하기 위해 손에 쥔 검을 마구 휘둘렀다.

빛의 칼날이 연달아 날아들었지만, 제대로 가다듬어지지 않은 막무가내의 공격이 내게 닿을 리가 없다.

더더욱, 바닥을 자유롭게 미끄러져 다닐 회피 기술이 있는 나에겐 너무나도 그렇다.

스스슥.

‘재귀참격파동발산기, 참룡마검 아론다이트.’

난 그 녀석의 모든 공격을 피한 후, 뒤에서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혈마창은 어느새 바람의 마검으로 바뀌어 있었다.

쉬익!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장검으로 큰 원을 그리자, 적룡을 베어 죽인 마나 회오리가 그 원으로부터 사방에 뻗어 나간다.

콰아아아!

닿는 모든 것들을 가차없이 베어버리는 소용돌이가 나를 중심으로 몰아쳤고, 그것은 마수 도마뱀들과 함께 하비를 집어삼켰다.

츄카가가가각!

“으…… 으아아아!”

거기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는 날카로운 폭풍에 전신이 난도질당한 채 사지가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털썩.

“컥…… 흐억…….”

그 와중에도 몸뚱이 하나는 단단했는지, 완전히 피떡이 된 채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 만큼 중상을 입고서도 숨을 헐떡이며 명줄을 붙잡고 있다.

난 손에 쥐고 있던 아론다이트를 큐브로 되돌린 후, 그에게 다가갔다.

“알고 있었어. 네가 여기로 올 거란 걸.”

“끄…….”

“자존심 하나로 똘똘 뭉친 너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당장에라도 날 죽이고 싶었겠지. 심지어 혼자 던전에 간 걸 알고선 죽이고 증거까지 인멸할 기회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렇지?”

사실 함정이랄 것도 없었다.

난 처음부터 이 녀석을 살살 긁으면, 내가 원하는 때에 제 발로 찾아와 나에게 죽어줄 거라는 게 눈에 보였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딱 시비 걸리기 좋은 성격.

거기에 자기 실력도 모르고 무모한 짓을 일삼는다.

결국 기사왕 아서의 수호령을 내게 가져다 바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네 인성을 욕할 생각은 없어. 애초에 널 보자마자 죽일 생각부터 떠올린 건 나니까.”

“흐으…… 흐으…….”

“넌 그냥 재수 없게 악마의 함정에 걸려든 것뿐이야.”

피범벅이 된 얼굴 사이에서, 증오에 가득찬 눈길이 나를 또렷이 응시한다.

“지옥에서 또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나도 언젠간 그리로 갈 테니까.”

마치 각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잘 가라.”

투콱.

손안에 소환된 클라렌트로 그의 목을 베었다.

-크하하하하! 그래! 그거다!

아흐리만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리고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서 펜드래건의 영혼을 흡수했다.}

{아지다하카와의 동화율이 상승했습니다. 24.89%}

{악룡의 피가 더욱 진해진다.}

이제, 아발론의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 * *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내 휴대폰에는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하나가 날아와 있었다.

내용은 광고 문자였는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다 문자에 포함된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다.

보드카, 쥐, 나이프, 와이파이 문양.

니콜라이 패밀리를 상징하는 표식들이 난잡한 광고 이미지 곳곳에 삽입되어 있었다.

‘다리우스구나.’

그가 나에게 연락했음을 직감한 난, 문자 끝에 적혀 있는 링크를 터치했다.

그러자 마치 휴대폰이 해킹이라도 된 것처럼 인터페이스가 저절로 바뀌더니, 텍스트 없이 이상한 그림들로 가득한 화면이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여기서 당황하겠지만, 이미 이걸 해본 경험이 있는 난 익숙하게 그림들을 터치하며 다리우스와의 연락 지점을 찾아냈다.

[신우, 오랜만이야.]

그리고 마침내, 그로부터 메시지를 받는 데 성공했다. 난 그에게 답장했다.

[그동안 어떻게 됐던 거야? 왜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된 거지?]

연락이 끊어졌던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벨그레이브가 자신들의 무력을 과시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러시아를 제물삼는 과정에서, 백선율에 의해 모스크바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당연히 모스크바 근방의 판자촌에서 살고 있던 다리우스는 거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을 터.

하지만 파괴된 것은 도시 하나일 뿐이고, 나머지 러시아 지역은 큰 피해를 받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했다면 다른 지역에서 통신하는 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난 그가 죽은 줄 알고 있었으나, 긴 시간이 지나 지금에서야 접촉해 온 것이다.

[사정이 있었어. 근데 너 지금 주변에 아무도 없지?]

[당연하지.]

[그럼 얘기해 줄게. 그날 공격받았어. 아마도 벨그레이브쪽 사람들인 것 같은데.]

[그날? 모스크바가 파괴되던?]

[맞아. 염왕이 거신병이랑 피터지게 싸울 때, 동시에 우리한테도 사람을 보냈어.]

벨그레이브가 칼리닌스카야를 박살내면서 숨어 있던 니콜라이 패밀리도 건드렸다.

즉, 미하일로프의 네세 계정으로 패치노트 정보를 업로드한 다리우스의 근거지를 파악했다는 뜻이다.

‘설마…… 뭔가 알아냈던 건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냅다 도망쳤지 뭐. 우리가 도망치는 거 하나는 기가 막히잖냐. 괜히 조직 표식에 쥐 심벌이 있는 게 아니라고.]

[자랑이다.]

[자랑이지.]

[아무튼 그래서 지금까지 벨그레이브한테서 도망다녔던 거야?]

[어. 그놈들 진짜 지독하게 추적하더라. 현실이고 사이버 공간이고 감시가 장난 아니야.]

그동안 내가 내 할 일을 하면서 편히 지내는 동안, 다리우스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어지간히 고생했던 모양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벨그레이브와 하등 관계가 없는 그들이 쫓기는 건 다 나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보그단은?]

[지금 옆에 있어.]

[와썹, 맨.]

[텍스트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

다행히 둘 다 다친 곳 없이 멀쩡한 것 같다.

[아무튼 지금은 좀 여유가 생겨서 연락하는 거긴 한데, 그래도 감시가 워낙 살벌해서 자유롭지는 않아. 당분간 너랑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다리우스는 여전히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인 것 같았다.

[하고 있는 일은 잘되고 있지?]

그럼에도 그는 걱정해 줬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나에 대해서 말이다.

[넌 그렇게 쫓기고 있는데, 뭔지도 모르는 일을 한다면서 돌아다니는 내가 의심스럽지도 않아?]

[가족끼리는 믿는 거랬잖아. 넌 우리 패밀리라고.]

난 잠시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다.

[짜식. 답장 없는 거 보니까 감동 받아서 우는 모양이네.]

[울긴 누가 울어.]

[킥킥. 아무튼 다음에 다시 연락할게. 여기서 너무 오랫동안 네트워크 썼다.]

[그래. 몸조심해라.]

[너도.]

그렇게 다리우스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검은 바탕의 해킹 인터페이스가 사라지고 휴대폰은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어이.

아흐리만이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왜?’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말해봐.’

-네가 패치노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걸 밝혀내기 위한 이 세상 유일한 연결고리가 방금 그 자 아닌가?

‘……그렇지.’

-그럼 그 사람만 없으면 벨그레이브는 영원히 네가 패치노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겠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알아들었으면서 모른 척 하지 마시지.

‘나보고 다리우스를 제거하라고?’

-그래. 그게 제일 빠르고 안전한 방법이잖아, 안 그래?

아흐리만은 지극히 이성적인 결론을 내렸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만큼 안전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되지. 넌 네 이득을 위해 누구든지 죽일 수 있는 냉혹한 악마잖아.

‘…….’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 * *

그 이후, 사흘간 육성 프로그램은 중단되었다.

잭슨의 말로는 부상자의 치료와 참가자들의 재정비를 위한 휴식 기간이라고 했다.

물론 그건 표면적인 이유고, 아마 여러 가지 실질적인 이유들이 따로 있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나 때문에 가벼운 발걸음을 얻지 못한 각성자들을 위한 대책.

보아하니 벨그레이브는 다음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스킬들을 단계적으로 배워나가는 것 같았다.

가벼운 발걸음을 얻기 위해 잠재속성 개방이 선행되어야 했듯, 다음 던전에선 꼭 가벼운 발걸음이 필요한 식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수의 각성자들이 그걸 얻지 못했으니,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 대책 중 하나가 바로 스킬이 달린 탈리스만을 지급하는 것이다.

───

<신속의 무색 탈리스만>

방어장 충전량: 2,377

가벼운 발걸음 +1단계

요구 각성자 칭호: 7급 이상

───

이걸 대량으로 조달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

그런데 주문을 꽤나 넉넉하게 했는지, 이미 스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도 지급이 되었다.

덕분에 때마침 탈리스만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 참에 괜찮은 걸 얻었다.

어차피 스탯 증폭 효과를 누릴 수 없는 몸이 된 지금은 그냥 높은 방어장량과 스탯 외의 부가 기능만으로 충분.

남들에겐 없던 가벼운 발걸음을 새로 얻게 해주는 기능이고, 나에겐 기존의 스킬을 강화시켜 주니, 모두가 이득이다.

참고로, 지난번 히든 퀘스트 클리어 후 나를 포함한 각성자들은 7급 칭호인 ‘히든피스 콜렉터’를 얻었다.

───

<칭호: 히든피스 콜렉터>

-7급 각성자 칭호

-히든피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칭호.

-활성화 시 클리어 한 히든 피스의 수에 비례해 스탯 성장 속도가 약간 증가합니다.

───

이 걸출한 성능의 칭호 덕분에 저 탈리스만을 착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성장을 위한 최고 효율의 루트……. 칭호까지 감안한 거였군.’

아무튼 그렇게 재정비를 한 후, 다시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할 시간이 되었다.

“……공략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번처럼 잭슨의 퀘스트 공략 브리핑이 끝나고, 각자 장비를 챙겨 출발 준비를 하던 그때.

“유신우 씨.”

잭슨이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죠?”

“신우 씨에게는 따로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이요?”

“아무래도 지금 참가자들 중에서 가장 실력자인 신우 씨가 적합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난 뭐든지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나온 잭슨의 말에, 난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신우 씨의 파티에 하비 씨가 들어갈 겁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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