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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62화 (62/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62화

사흘 동안 아예 잊고 있었던 이름이 다시 튀어나온 순간, 내 얼굴은 당혹감에 물들었다.

“그게 무슨……?”

“물론 원래도 같이 뛰었는데 그게 무슨 부탁이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게…… 하.”

그가 한숨을 내쉬더니 이어서 말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하비 씨가 원인 모를 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아무튼 신우 씨가 그분의 뒤를 좀 봐주셨으면 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잭슨은 전혀 모르는 눈치다.

하비가 죽었다는 사실을.

“잠시만, 그게 무슨…….”

“저도 알고 있습니다. 두 분 사이에 여러모로 갈등이 많다는 것. 하지만 신우 씨가 넓은 아량으로 그 사람을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클랜 차원의…….”

난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 잭슨의 구구절절한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 필요 없고, 내겐 확인이 필요할 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하비 어디 있습니까?”

놈의 생사 여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혹시나 드잡이라도 하실 생각이시라면…….”

“아뇨. 그러지 않을 테니까 당장 말씀해 주십시오. 그 사람 상태가 어떤지 직접 눈으로 봐야 할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잭슨은 나에게 하비가 요양하고 있는 의무실의 위치를 알려줬다.

* * *

하비가 치료받고 있는 입원실은 지부 내 의료 구역의 가장 최상층에 있는 1인실이었다.

다른 클랜원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보안 구역.

역시, 벨그레이브 자체에서 뒤를 봐주는 낙하산다운 대우였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아무튼 난 두 눈으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가 있는 병실문을 열었다.

덜컥.

내가 무슨 해코지라도 할까, 주변 관계자들의 삼엄한 감시 하에 열린 문.

그 너머엔.

“안녕.”

환자복을 입은 남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사지가 모두 잘려 나가고 피죽이 된 상태에서 목까지 베어진 시신.

눈앞에서 환자복을 입고 멀쩡한 손을 흔들며 비열하게 웃는 하비.

그 두 모습이 연달아 교차하며 내 기억이 혼탁하게 뒤섞인다.

‘내가 본 건…… 뭐지?’

환영이라도 본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

<성검 엑스칼리버>

-선택받은 기사왕의 검. 신성 속성의 고속 검격을 발현한다.

-강격파동발산기

───

내겐 저 녀석으로부터 빼앗은 아서 왕의 무구가 있다.

죽은 각성자로부터 전설 수호령을 흡수하는 ‘악의의 오른쪽 눈’ 특성상, 이 무구가 나에게 있다는 건 그때 하비는 분명 죽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수호령: 로델레로(하급)}

놈의 머리 위엔 더 이상 아서 왕의 수호령이 없다.

마치 아무 수호령이나 소환된 초보 각성자와 같은 상태인 것이다.

‘죽었다가 부활이라도 했다는 건가?’

지금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하비는 죽었다.

그 순간 수호령 아서 왕은 내게 흡수되었고, 놈은 부활하면서 수호령이 없어졌으니 하급 수호령을 재소환받은 것이다.

“왜, 무섭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네 눈앞에 나타나니까.”

그리고 그는 자기 입으로 직접 그걸 나에게 확인시켜 줬다.

“……아니, 무섭진 않아.”

물론 내가 그 허세에 겁먹을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 넌 죽기 전보다 더 X밥이거든.’

“큭큭. 기분이 어땠어? 내가 살아 있다는 소릴 들으니까.”

“아리송했지. 죽은 사람 얘길 왜 하나……. 하긴, 네가 죽고서 3일 동안이나 아무도 너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동안 클랜 내의 중요 인물이 사라졌음에도 클랜이 별 이상 없이 돌아갔다는 점이 의아하긴 했다.

워낙 등신같은 인간이라 벨그레이브에서도 그냥 손절한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 하지만 보다시피 난 이렇게 살아 있어. 왜냐면 난 축복받은 인간이거든.”

“축복받은 인간?”

“난 몇 번이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자야.”

그 말을 듣고 나니 이제 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무모한 짓을 일삼았던 건지.

그리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벨그레이브가 이런 한심한 인간에게 그런 투자를 한 건지.

그게 다 저 녀석의 극히 특수한 부활 능력 때문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었다.

“하. 그랬군.”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그걸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건 나니 믿을 수밖에.

사실 따지고 보면 골드와 다이아를 무한정 수급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도 이상한 존재인 건 마찬가지다.

그걸로 비정상 수호령 개체인 아지다하카도 뽑고, 패치노트도 얻어서 여기까지 왔으니 부활하는 능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큭큭큭.”

하비는 순순히 인정하는 내 모습을 보고 비웃음을 날렸다.

“목 잘 닦고 기다려. 내 몸이 다 회복되는 순간…… 넌 죽은 목숨이니까.”

“이미 져 놓고?”

“그건 한 번뿐이지. 넌 날 몇백, 몇천 번 죽여도 끝낼 수 없겠지만, 난 널 한 번만 죽이면 되거든.”

난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하급 수호령을 응시하며 대꾸했다.

“글쎄. 넌 영원히 단 한 번도 날 못 이길 것 같은데. 차라리 내가 널 죽였다고 상부에 가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게 어때? 아, 부활자를 죽이는 게 살인이 성립되기는 하는 건가?”

“닥쳐. 내가 몸만 회복하면…….”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는 걸까.

이미 건강해 보이는데 몸을 회복한다는 건 또 무슨 뜻이고.

곰곰이 생각하던 난 그가 내뱉은 다음 문장에서 그 의미를 간파했다.

“……훗, 그래. 그렇게 많이 비웃어둬라. 넌 내가 어떤 수호령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뒤집어질 거니까.”

‘어떤 수호령? 그거야 하급…… 아.’

생각해 보니, 저 녀석은 모르고 있다.

내가 자기 수호령을 흡수했다는 것과 지금 자신이 어떤 수호령을 가지고 있는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런 건가.’

그렇다면 하비가 뭘 말하는 건지 이해할 수 있다.

저 녀석이 말하는 ‘몸을 회복한다’는 말은, 다시 다이아를 들여 수호령 재소환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돈과 시간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뽑기를 해서 아서 왕을 복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예전과 같은 힘을 가지는 것.

그가 말하는 ‘회복’은 바로 그걸 의미하는 것이었다.

‘……안타깝군.’

하지만 그런 일은 다신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서 펜드래건은 지금 내 오른쪽 눈 안에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비가 다시 그걸 가지는 일은 없을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얼른 낫길 바란다.”

난 측은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어깨를 토닥였다.

하비는 애써 여유로운 척을 하고 있지만,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쯧쯧. 하필 자기 능력의 하드카운터 능력자를 만나다니.’

죽으면 부활하는 능력자 앞에 나타난, 죽으면 힘을 흡수하는 능력자.

행운은 놈에게 절반만 돌아갔던 모양이다.

* * *

그 후로 나는 하비를 데리고 다음 히든 퀘스트를 클리어하러 갔다.

그는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앞에 서지 않고 뒤에 빠져서 다른 각성자들이 싸우는 걸 구경만 했다.

아니, 구경만 했다면 나았을 것이다.

“왼쪽이 비었잖아! 저러다 후위가 공격받으면 어떡할 거야!”

직접 검을 들고 무모하게 달려들던 전과는 달리, 이젠 입만 살아서 남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나마 전에는 좀 멍청해도 신성 속성의 엑스칼리버라는 걸출한 무구로 싸울 때는 잘 싸우는, 나름의 카리스마를 가진 인간이었는데.

이젠 자기를 따르던 추종자들에게마저 비호감이 되어버렸다.

“칫……. 그렇게 답답하면 지가 싸우든가.”

다들 표정이 일그러져 있다.

사실 엉뚱한 루트를 따라가다 스킬을 못 얻는 손해를 본 추종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젠 하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뢰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뭐야? 방금 누구야?”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자신은 끝까지 본인이 남들보다 위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지가 싸우든가’? 어떤 새끼야?”

쾅! 키에엑!

앞에선 마물들과 치열한 전투가 한창.

그 와중에 자기 뒷담화 한 게 누군지 찾으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보다 못한 나는 그의 입을 막기 위해 산 채로 펄떡거리는 마수 독거미의 머리통을 날려 그 앞에 떨어뜨렸다.

“으악!”

힘이 없어지니 겁도 더 많아진 모양이었다.

하비가 화들짝 놀라며 바닥에 쓰러졌다.

독거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독액이 순간 그의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갔다.

타앙!

다행히 후위에서 엄폐하고 저격을 하던 최윤아가 그걸 발견하고 처리해, 이어지는 공격에 또다시 사망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헉…….”

퍼억!

그사이 전방에서의 치열한 전투는 끝났다.

녀석이 조용히 입을 다물어준 덕에, 파티원들의 집중도가 높아져 마물 무리를 빠르게 처치할 수 있었다.

“아까 도와줘서 고마워, 신우.”

“네 덕분에 쉽게 가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이제 파티원들은 더 이상 나를 경계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적극적으로 의지하고, 감사 표시를 했다.

그들도 진작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비가 아니라 내 쪽에 붙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

바닥에 쓰러져 있던 하비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쓸모 없어진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좌절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윤아…….”

“신우 씨!”

그러다 최윤아가 그를 지나쳐 내게 달려왔다.

하비는 자신을 구해준 그녀에게 뭐라 말하려 했지만,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죄송해요. 웬만하면 제가 안 그러는데, 정신이 흐트러져서 놓쳤어요.”

그녀는 아까 전 싸움 도중에 했던 실수에 대해 사과했다.

“아,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지. 매번 그런 것 가지고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제가 좀 더 신경 썼어야 하는 건데.”

“다음에 더 잘하면 되죠.”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곳에 하비라는 인간의 존재감은 없다.

클랜 관계자들도 그를 골칫덩이 취급한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고-

추종자들은 곧 있으면 잘려 나갈 썩은 동아줄임을 파악하고 다 떨어져 나갔다.

아무리 벨그레이브라도 무한정 다이아를 지원해 줄 순 없을 테니.

그가 버려지는 건 조만간이다.

“개자식…….”

하비는 나에게 강한 원한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 * *

한편, 우리가 공략하고 있는 던전은 마수 개미굴이었다.

말 그대로 개미굴처럼 지하에 미로처럼 복잡하게 통로가 나 있는 거대한 던전.

물론 그건 던전의 구조 때문에 붙은 명칭이고, 실제로는 거미와 박쥐, 늑대, 식인식물 등 기묘한 식생이 뒤섞여 있는 곳이었다.

“여긴 정말…… 구조가 엿 같군.”

불평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그 생각은 나도 마찬가지.

이곳은 미리 잭슨에게서 얻은 지도를 보면서 와도 어디가 어딘지 도통 알기가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이다.

“우리 지금 제대로 온 것 맞지?”

“나도 모르겠어. 위인지 아래인지는 둘째 치고 되돌아가는 건지 나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이래서야 공략법을 알아도 의미가 없다.

조금이라도 길을 잘못 들면 루트가 완전히 꼬여서 예측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망할 놈의 페로몬 때문에 신화 사냥꾼의 본능도 무력하고. 젠장.’

처음에 난 이런 형식의 미로 던전 탐사에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생각한 것과 너무나도 달랐다.

오히려 밀폐된 공간이라는 점 때문에 모든 흔적들이 너무 어지럽게 가득 차서 구분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하, 이러다 이거 날 새겠네.”

“그냥 포기하고 바로 재도전하는 게 어때? 입구에서부터 시작하면…….”

“퀘스트 발동 재료들은 네가 구해 올래?”

“아, 맞다.”

앞길이 막막한 지금, 파티원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잡담이 오가던 그때.

스윽.

저쪽 통로 모서리에서 사람의 얼굴 같은 게 쏙 튀어나왔다가 사라졌다.

‘……저건?’

바깥에서 들어온 파티원은 여기 있는 24명이 전부.

하지만 그건 분명히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찾았다.’

그리고 그건 지금 길을 잃은 우리가 꼭 찾아내야 하는 존재였다.

“신우 씨?”

최윤아의 부름을 뒤로한 채, 난 그 얼굴이 빼꼼 나타난 곳으로 홀린 듯 걸어갔다.

스스슷.

“이봐.”

“으앗!”

난 가벼운 발걸음으로 빠르고 신속하게 모서리를 넘어 그 변칙적 개체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 얼굴의 정체는 긴 은발을 늘어뜨린 앳된 소년.

그런데 얼굴은 소년이지만, 팔다리가 굉장히 길다.

아니, 그냥 긴 수준을 넘어 웬만한 장신 모델 수준으로 길쭉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언뜻 봐도 거의 190센티미터는 될 듯한, 엄청난 장신.

그 소년의 귀는 길고 뾰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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