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60화
이번 던전 탐사 퀘스트에 투입되기 전, 잭슨은 우리에게 던전의 모든 공략법을 가르쳐 줬다.
어느 루트로 이동해서 어떤 장치를 어느 순서로 작동시키면 되는지.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변형 마물 개체들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리고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소한 이벤트들까지 전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정보들을 전해준 것이다.
당연히 난 그게 이들이 패치노트로 얻었을 매우 신뢰성 높은 정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기존 벨그레이브 구성원들은 그 공략을 이용해 직접 클리어를 경험했을 테고, 그러니 이건 실제로도 완벽성이 증명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나처럼 패치노트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
잭슨에게 질문을 던졌던 하비처럼 말이다.
-만약에 이 공략법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죠?
이런 꼼꼼한 계획을 전달받으면 충분히 가질 수 있을 법한 당연한 의문.
그에 대해 잭슨은 솔직하게 답변했다.
-모릅니다. 벨그레이브 내에서 이 공략법의 범주를 벗어나 클리어한 인원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공략법대로 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어떻게 조직원 중 단 한 명도 예측 밖의 행동을 한 사람이 없을 수가 있을까?
그에 대해 추측하자면, 이전까지 벨그레이브는 세상의 음지에서 암약하는 소규모 비밀 결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고위 관계자가 조직원들을 직접 통제하기 매우 쉬운 환경이었을 터.
반면 지금처럼 갑자기 세상의 표면으로 떠올라 급격한 규모 확장을 꾀한 시점에서는, 예전과 같은 방식의 직접 통제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사람이 많아지면 시키는 것과 다르게 행동하는 조직원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떨어지도록 내버려 둬도, 벨그레이브 입장에선 손해가 아니지만.
문제는 그게 지금 내 파티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왼쪽으로 가자.”
하비가 한껏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씩 웃으면서 말했다.
일부러 정석을 말한 나보고 들으라는 듯한 태도였다.
“지금까지 이쪽으로 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잖아. 우리가 개척자가 되는 거야.”
대체 왜?
“하…….”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왜 하필 저런 놈과 같은 팀에 배정을 받아서…….
아니, 그전에, 대체 벨그레이브는 저런 등신의 뭘 보고 그 많은 다이아를 투자했다는 것인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판단력도 좋지 않고, 클랜에 대한 존중이나 충성심도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낙하산으로 들어온 천방지축 회장님 아들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 결사라고 하더니…… 이놈들도 막상 내부사정은 썩어 빠진 건가?’
온갖 생각이 다 들면서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때, 내 반응을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하비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왜? 넌 마음에 안 들어?”
그가 오히려 날 비웃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마음에 안 들면 너 혼자 오른쪽으로 가든가. 우린 왼쪽으로 갈 테니까.”
아직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방향으로 가겠다고 한 적 없는데, 의사도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정해버렸다.
물론 그만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거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그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최윤아가 저 녀석의 수호령에 대해 알고 있을 정도면, 이미 사람들에겐 자기 배경에 대해 상당히 떠벌리고 다녔다는 뜻이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난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자기 스스로 멍청한 짓을 하겠다는데, 굳이 내가 그걸 말릴 필요는 없다.
저걸 따라가는 추종자들도 똑같은 놈들이고.
어차피 공략 상 이다음에 나올 마물들도, 지금 내가 가진 무구들만으로 충분하다.
‘그냥 죽지만 말라고.’
다만 하비 녀석이 내가 없는 데서 죽는 일만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그러면 수호령 흡수를 못 해서 곤란해지니까.
물론 위험하면 언제든 퀘스트를 포기하고 나가면 되므로, 그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풉. 겁쟁이 새끼. 그래, 너 혼자 그쪽으로 가든가.”
그 녀석은 끝까지 자신만만했다.
저 정도로 객기를 부리니, 나조차 뭔가 해내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러다 진짜 저 길로 가서 나보다 빠르게 클리어하는 거 아냐?’
뭐, 나야 손해 볼 건 없다.
어느 쪽이든 스킬만 얻으면 그만.
* * *
{액티브 스킬 <가벼운 발걸음>을 습득했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비 일행은 내가 보스를 물리치고서도 30분이 넘는 시간이 지날 동안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많이 늦네요.”
최윤아가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나를 따라온 파티원은 그녀를 포함해 총 3명.
워낙 인원수가 적다 보니 처음에는 나를 선택하고도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 표정을 짓던 이들은.
“하아암.”
이제 지루함에 못 이겨 하품을 하고 있었다.
던전 안에선 통신도 되지 않으니, 휴대폰도 못 쓴다.
그 처지는 나도 똑같아서, 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아까 전에 얻은 스킬을 계속 사용하며 던전 안을 누볐다.
───
<가벼운 발걸음>
-(액티브) 짧은 거리를 빠르게 미끄러지듯 이동합니다.
-소모 마나: 100
───
상당히 심플하면서도 별것 아닌 듯한 효과의 이동 기술.
속도 자체는 마음만 먹으면 기본 다리 근력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별로 빠르지 않은 이동기였다.
그렇다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을 만큼 유지력이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그래서 처음에는 벨그레이브가 왜 굳이 이런 걸 배우게 만든 건가 싶었는데.
스스슥.
{<가벼운 발걸음>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27 / 100}
스슥.
{<가벼운 발걸음>의 숙련도가 향상되었습니다. 28 / 100}
계속 쓰다 보니 알 것 같다.
이건 장거리를 이동하는 데 쓰는 이동 스킬이라기보다, 전투 중에 사용하는 풋워크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몸이 가볍다.’
기술명 그대로 발걸음이 상당히 가벼워져서, 마치 관성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움직임을 구사할 수 있다.
급격한 방향 전환과 정지로 회피와 거리 조절에 용이할 것 같다.
‘확실히 기본기가 탄탄하게 다져지는 느낌이야.’
역시 벨그레이브다.
처음부터 계속 생각한 거긴 하지만, 이 육성 프로그램은 절대 놓쳐선 안 될 기회다.
이런 강력한 기초 스킬들을 배우지 못하면, 앞으로 내가 계속 패치노트를 가져간다 하더라도 절대 검제나 성황 같은 사람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물론 러시아의 ‘거신병’처럼 벨그레이브 밖에서도 1급 각성자가 나오는 걸 보면 어떻게든 하면 할 수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자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생각하면 답은 뻔하다.
결국 최강이 되려면 최강의 뒤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스슥.
그렇게 새로 얻은 스킬의 성능에 감탄하며 숙련도 향상에 전념하고 있을 무렵.
터벅. 터벅.
보스 영역 입구 쪽에서 발소리들이 다가오는 게 들렸다.
하비 일행이었다.
“끝난…… 건가?”
그들은 굉장히 지쳐 보였다.
상처는 회복 마법으로 치유한 듯 보이지만, 다들 군데군데 옷이 찢어져 있는 걸로 보아 굉장히 많이 다쳤던 모양이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지루해서 죽는 줄 알았네.”
난 여유롭게 그를 비웃어줬다.
그런데 아까 전까진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하비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개척자가 된다더니, 개척한 길은 어땠지? 해볼 만했나?”
“……닥쳐.”
“그러게 객기 부리지 말고 클랜이 떠먹여 주는 거나 잘 받아먹지 그랬어?”
저 녀석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진다.
“신우 씨…….”
험상궂은 분위기에, 최윤아가 말을 꺼낸다.
여기서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말리려는 듯한 태도.
그러나 사실 그녀는 오히려 하비의 분노를 더 돋우는 휘발유나 다름없었다.
저놈의 성격상 자기 말을 안 따르는 나와는 무조건 부딪힐 수밖에 없었겠지만-
최윤아로 인해 이 갈등은 더욱 빠르게, 더 깊게 심화되는 것이다.
물론 그녀는 그저 자기 입장에서 득이 되는, 옳은 선택을 했을 뿐이기에, 그 행동에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다.
“괜찮아요. 별일 없을 거니까. 보는 눈도 많고.”
“개X끼…….”
최윤아가 나를 걱정하고 내가 그녀를 안심시킨다.
이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하비는 분노가 치미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난 거기에 더욱 교활하게 대응했다.
양손검인 갈라틴을 손가락으로 집은 채 까딱거리며 말했다.
“이게 다 뭐 하는 짓이야? 사람들 고생시키고,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고.”
그를 따랐던 파티원들의 표정이 어둡다.
“안전하게 정석대로 왔으면 얼마나 좋아? 그럼 진작…… 엇.”
그런데 그 순간, 손가락으로 쥐고 있던 갈라틴이 휙, 하고 미끄러졌다.
그리고 때마침 내 앞에는 ‘희생자의 영혼이 담긴 항아리’가 있었으며.
때마침 갈라틴이 그 항아리를 깨뜨렸고.
때마침 그 항아리는 퀘스트를 종료하는 오브젝트였다.
{갇혀 있던 희생자의 영혼이 해방됩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감사를 느끼며 성불합니다.}
{히든 퀘스트 <희생자의 비명이 들리는 동굴 탐사>가 종료됩니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등 뒤의 벽 너머에 있는 룬문자를 쳐다보았다.
“이거 어쩌지? 아직 다들 보상 못 받았을 텐데.”
방금 이곳에 도착한 인원들은, 이번 퀘스트 최종 보상인 <가벼운 발걸음> 스킬을 습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자, 잠깐!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파아앗.
모든 파티원들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 * *
그대로 복귀한 나는 잭슨의 질책을 들어야 했다.
“뭐 하는 짓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상을 얻지도 않았는데 퀘스트를 종료하다니!”
내 ‘실수(고의)’로 인해 퀘스트에 참여한 무려 20명이나 되는 파티원들이 스킬을 얻지 못했다.
“퀘스트를 완료한 사람은 다시 같은 퀘스트를 발동하지 못한다는 건 아십니까?”
그것도 영원히.
하비와 그를 따라갔던 사람들은 다시는 가벼운 발걸음 스킬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이다.
“죄송합니다.”
난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물론 진심은 없었다.
“하…….”
첫 만남 때부터 단 한 번도 동요하지 않던 잭슨이, 처음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프로그램을 못 따라오는 각성자들은 가차 없이 내쳐버렸던 그가 말이다.
아무래도 벨그레이브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하비 때문일까.
“도대체 왜 그런 인간을…….”
그런데 나를 질책하는 그도 사실 내막은 다 알고 있었다.
이번 일이 하비의 괜한 짓 때문에 일어났다는 걸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상적으로 진행을 했다면 일부가 보상을 못 받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은 모두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퀘스트 종료 오브젝트가 나타난다.
방금 그 퀘스트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그 보상을 못 받았다는 건, 다른 사람이 보스를 잡을 때까지 헛짓거리를 하다가 한참 뒤늦게 나타났다는 의미다.
즉, 무임승차를 했다는 증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다음부터는 주의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걸 아는 잭슨 입장에서는 나에게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저건 반대로 말해, 내가 파티원 24명 중 20명을 무임승차자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실력을 가졌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