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19화
NL은 날 향해 대놓고 협박을 가했다.
만약 자신들 쪽으로 붙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내가 다른 기업에 들어가는 걸 보느니 죽이겠다는 의미였다.
{수호령: 얼스터의 왕 페르구스 막 로크(전설)}
{수호령: 슬픔의 기사 트리스탄(전설)}
두 명의 전설급 각성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하나는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볼코프였고, 다른 하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팔짱을 끼고 있는, 활을 메고 있는 남자였다.
‘살벌하네.’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엔 족히 수십은 되어 보이는 각성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 중 역사 수호령의 소유자만 무려 10명은 되었다.
나머지는 모두 다 희귀 수호령.
이 엄청난 규모의 전력이, 내 입술 하나만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혹여 거절이라도 하면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릴 기세로 말이다.
당연히 나 혼자서 이들 전부를 상대로 싸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렇게까지 대량으로 몰려와서 강요하면, 어쩔 도리가 있나.”
물론 도망치는 것도 무리.
이미 이 자들은 나에게 접근할 때부터 사방에 자기 사람들을 깔아 놓고 포위망을 펼쳐 놓았다.
이들은 애초부터 제1 목표가 나를 포섭하는 것보다는 내가 다른 집단의 손에 들어가지 않길 바라는 것이었다.
즉, 잠재적 위험요소인 나를 제거하는 게 본 목적인데, 그 이전에 한 번 떠본 것이다.
자기들 편이 될 수 있는지 어떤지.
만약 내가 흔쾌히 수락하면 덤이고, 아니면 죽이면 그만.
이놈들은 처음부터 그런 생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긴말은 필요 없습니다. 대답은 이걸로 듣도록 하죠.”
볼코프는 불쑥 팔을 내밀어 내 손을 붙잡았다.
{<거신병(1급)>님으로부터 <베히모스 토벌>퀘스트 보상 이전 계약 요청을 받았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저 거신병이란 칭호는 아마 이들의 보스에 해당하는 자의 칭호일 터.
이걸 나에게 내미는 이유는, 나를 속박할 수단으로 쓰기 위함이다.
퀘스트 보상 이전 계약을 맺게 되면, 그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까지 보상을 이전받는 쪽이 이전하는 쪽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퀘스트를 이전하는 쪽은 계약을 한 번 수락해버리면 상대방이 취소하기 전까진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것.
만약 그 퀘스트의 난이도가 엄청나게 높아서 깰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영원히 제거 불가능한 위치 추적기를 붙이고 다니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저 ‘베히모스’라는 건, 적어도 주 스탯 7천 이상의 하이 랭커급 각성자들만 상대 가능한 마물이다.
덧붙여 그 NL이 내가 그 정도 능력을 가지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거고.
‘이런 식으로 가능성을 차단하겠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
만약 내가 저 계약을 수락하게 되면, 난 평생 NL의 감시망 속에 살아야 한다.
반대로 이 계약 요청을 거절한다면, 이 자리에서 곧장 이들에게 공격받게 된다.
여기서 적당히 ‘알겠다’고 말한 뒤 레이드가 끝난 후 잠수를 타는 행위 같은 건 원천적으로 막겠단 소리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볼코프가 나를 더욱 압박해 온다.
그의 여유 가득하던 눈빛은 점점 날카롭게 변하고 있었다.
“흠…….”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꽤나 작정하고 온 것 같지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네.’
이런 상황에서도 난 전혀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았다.
애초에 이 상황도 다 예상범위 내였기 때문이다.
이런 수상하고 위험한 사람들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징후를 내가 깨닫지 못했을까?
아니, 그럴 리가.
난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이렇게 대규모의 인원들이 나에게 정면으로 다가와서 무슨 소릴 하려는지 말이다.
“얘기는 잘 들었고.”
그리고 들어보니, 나한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차라리 협박이 아니라 오히려 간곡하게 부탁했다면 들어줬을지도 모르는 건데.’
놈들이 NL이라는 사실 자체는 아무래도 좋다.
쓰레기 기업이라도, 나한테 도움만 된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의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놈들은 머릿수에서 나오는 힘에 취해 그른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
접근부터 이런 식으로 사람을 깔아뭉개려고 하는데, 제대로 된 대우를 기대할 수 있을 리가.
“거절하시는 겁니까?”
바스락.
난 인벤토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걸 본 볼코프는 고개를 저었다.
“계약서는 저희 쪽에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미스터 유께선 퀘스트 계약 요청만 수락하시면 됩니다.”
“이거 계약서 아닌데.”
부욱.
난 그것을 반으로 찢어버렸다.
“귀환 스크롤인데.”
파앗.
곧장 내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살벌한 러시아인들이 가득한 뒷골목에서, 도시 중앙 광장으로 바뀌었다.
* * *
광장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금세라도 레이드 보스 공략을 나설 것처럼 단단한 무장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사람들과.
아직 5 스테이지는커녕 2, 3 스테이지도 완료하지 못해 동료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
혹시라도 보스전 공략에 참여하지 못할까, 안절부절못하며 4 스테이지 랜덤 매칭을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이곳엔 제각기 다 다른 진행도를 가진 수많은 각성자들이 활약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우 형님!”
최윤아와 이진윤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난 이 둘에게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해 놓았었다.
상황을 보고 레이드 보스전을 시작할 만한 타이밍이 되면 그 즉시 출발하기 위해서였다.
“진윤아, 윤아 씨. 둘 다 준비됐죠?”
“예?”
“레이드 보스전.”
“아, 물론입니다! 형님께서 말만 하시면 언제든지 갈 수 있습니다!”
“저도 따로 더 할 일은 없어요.”
“잘됐네.”
그 둘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듣자마자, 곧바로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포탈 존으로 향했다.
지름 3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원형 발판.
모든 각성자들은 이 통로를 통해서만 스테이지 진입 및 레이드 포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광장이 항상 붐빌 수밖에 없다.
“지금 바로 최종 스테이지 진입한다. 따라와.”
“네, 넵!”
이진윤이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반면 최윤아는 내 소매를 붙잡고 물었다.
“잠시만요, 근데 지금 이렇게 그냥 우리끼리만 가도 되는 거예요?”
“네. 돼요.”
난 되레 소매를 붙잡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그녀도 포탈 존 위로 올라오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레이드 보스전을 시작하면 그 순간에 여기 있는 모두가 알게 될 겁니다.”
“그, 그래요?”
{최종 스테이지에 진입하시겠습니까?}
{*레이드 보스는 매우 강합니다! 반드시 준비를 갖추고 도전하십시오!}
“진입.”
{최종 스테이지에 진입합니다.}
{알림! 최종 스테이지의 입장이 시작됩니다. 남은 입장 가능 시간은 5분입니다.}
던전 내의 모든 참가자들에게 알림 메시지가 나타났다.
광장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쳐다보는 모습이 보인다.
그 광경을 끝으로, 난 다시 차원을 뛰어넘어 또 다른 이세계로 날아갔다.
* * *
파앗. 파앗. 파앗.
최종 스테이지에 진입하자마자, 주변에서 다른 각성자들이 따라 들어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최윤아와 이진윤은 없었다.
분명 나와 같이 진입하는 걸 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디로 간 거지?’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나무가 우거진 숲속.
팟. 팟.
그 사이사이로 빛과 함께 포탈을 타고 넘어오는 각성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래도 이 스테이지의 입장 방식은, 드넓은 반경의 랜덤한 위치에 각성자들을 흩뿌려 놓는 방식인 것 같다.
제2 스테이지와 비슷한 형태.
그 때문에 최윤아, 이진윤과는 멀리 떨어져 버린 모양이다.
‘일단 자리를 피하자.’
난 여기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장소를 찾아 이동했다.
어차피 그 둘 다 은신, 보호막이라는 빵빵한 생존기를 가지고 있으니, 나 없어도 알아서 잘 살아남을 것이다.
게다가 결국엔 모든 사람들이 보스 쪽으로 몰려들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그 둘을 찾으러 가지 않아도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스럭. 스스슥.
난 빠른 속도로 숲속을 헤쳐 나갔다.
‘그런데 여긴…… 스테이지가 상당히 넓은 편이군.’
정보 노트엔 그저 모습을 드러낸 레이드 보스를 공략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쓰여 있다.
그래서 난 좁은 구역에서 보스를 처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은 보스 하나만 상대하기엔 쓸데없을 정도로 드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대놓고 서로 싸우라는 건가.’
난 왜인지 그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레이드 보스전은 입장 전부터 참가자들끼리 서로 온갖 권모술수를 쓰도록 유도하는 규칙을 갖고 있다.
이 광활한 전장은, 그런 갈등 분위기를 보스전이 진행되는 스테이지 내부에서도 이어가라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게 레이드 보스가 아닌 보상을 나눠야 할 경쟁자라면…… 그리고 이게 최종 보상이 걸린 마지막 전투라는 걸 알고 있다면. 분명 눈이 돌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레이드 던전은 마지막까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시험하는, 그야말로 악랄한 시스템의 장난이었다.
파캉!
“으앗! 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누군가가 다른 각성자의 탈리스만 방어장을 깨뜨리는 모습이 보인다.
“죽기 싫으면 도망치는 게 나을걸?”
“이런, 개 같은……!”
“핫!”
파앗!
방어능력을 상실한 쪽이,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이 날아오자 갑자기 빛과 함께 사라졌다.
마음속으로 ‘스테이지 포기’를 선언하고 도시로 되돌아간 것이다.
저러면 앞으로 24시간 동안은 이곳에 돌아오지 못한다.
‘벌써부터 보스를 찾기는커녕 서로 싸우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군.’
지금은 참가자들이 숲속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저런 싸움이 소규모로 벌어지고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전력을 추스른 대규모 그룹들이 서로 격돌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개중에는 사람들을 이끌어 원활하게 진행하려는 집단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지금 이곳에 나를 쫓는 NL도 들어와 있을 거라는 사실.
그놈들은 완전히 통제가 불가능한 변수.
날 방해하기 위해 무슨 문제를 일으킬지 알 수 없다.
그럼 이곳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정작 진짜 필요할 때 사람들이 힘을 집중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도록 두면 안 돼. 모두가 보스에 집중하도록 만들어야 해.’
그 최악의 상황을 막아내려면 방법은 하나뿐.
‘보스를 사람들의 눈앞에 가져다 놓는 수밖에.’
적의 적은 아군.
압도적으로 강력한 적을 마주하면 서로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걸 깨달을 것이다.
레이드 보스라는 것은 그 정도로 강한 마물이기 때문이다.
난 곧장 보스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 * *
“그록. 사그 훙.”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산중에 위치한 어느 오크 부락 하나를 발견했다.
오크들이 나오는 던전이면 어디서든지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거주 구역.
‘이번 레이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크군.’
난 그 부락의 주변을 배회하며 멀리서부터 안쪽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레이드 보스를 색적해 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렇게 정찰을 하던 도중,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뭐지?’
언뜻 보기엔 첫 스테이지와 상당히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원시적인 부락과 그 안에 머물고 있는 오크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을 보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전투원이 없지?’
그 부락엔 무기가 될 만한 도구를 든 자가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그런데 그 순간.
“큭!”
두근. 두근.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심장마비라도 오는 줄 알았을 정도로, 가슴에 큰 통증이 느껴졌다.
‘왜, 왜 이러는 거지?’
갑작스레 들이닥친 몸의 이상증세에 당황한 사이, 내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악의가 강한 적개심을 드러낸다.}
{당장 저 안에 있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라 요구한다.}
그러고는 오른쪽 시야가 빨갛게 물들었다.
세상이 마치 열화상 카메라로 보는 것처럼, 주변 사물은 붉은색 바탕에 집어 삼켜졌고, 그 대신 살아 있는 생명체만이 노랗게 강조되어 보였다.
그것이 일반적인 열화상 카메라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그렇게 강조되어 보이는 생명체가, 단 하나뿐이라는 것.
‘저건……?’
부락 안에 있는 그 많은 오크들 중, 이 붉은 시야가 지목한 대상.
그것의 머리 위에는 내게 아주 익숙한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수호령: 용살자 시구르드(전설)}
그건 오크 각성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