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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20화 (20/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0화

그것은 겉보기엔 매우 평범해 보이는 외양을 가지고 있었다.

워로드처럼 거대한 키와 덩치를 가진 것도, 샤먼처럼 특별한 마법 장신구를 두르고 있는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한 체구의 오크였다.

물론 평범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에 비하면 훨씬 큰 편이긴 하지만.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지?’

난 바로 그 평범한 오크의 머리 위에 나타나 있는 수호령 표시를 보고서, 몇 번이나 눈을 비볐다.

뭔가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서.

{수호령: 용살자 시구르드(전설)}

하지만 그 글자는 여전히 머리 위에 떠 오른 채로 그 오크를 따라다녔다.

‘이런 것도 레이드 보스의 기믹인 건가?’

그렇게도 생각해 봤다.

이세계도 창조해 낸 시스템인데, 저런 설정 하나 붙이는 것쯤이야.

그러나 문제는,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은 타인의 수호령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능력은 ‘악의’란 존재에 의해 시스템에 위배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얻은 것.

즉, 시스템은 애초에 아무도 알아보지도 못할 설정을 레이드 보스에게 가져다 붙여놓았다는 말이 된다.

‘도무지 알 수가 없군.’

저게 단순히 보이는 것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 아니면 진짜 인간 각성자와 똑같은 시스템에 종속된 존재인 건지.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어떤 것도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니 이 미스터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

‘죽여서 알아내는 수밖에.’

수호령을 흡수해 보면 된다.

꽈악.

난 주먹을 단단하게 말아 쥐었다.

손을 감은 세스터스가 팽팽하게 조여지는 게 느껴졌다.

단숨에 접근해서 기습 공격으로 한 번에 죽인다.

그런 생각을 하며 발을 구를 준비를 했다.

쾅!

그런데, 그렇게 내가 기회를 보는 사이, 숲속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음?’

그러자 부락에 있던 오크들이 폭발이 일어난 방향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것들이 웅성거리며 서로 무언가 이야기를 하더니.

“칵! 바그룽 도 그락!”

가장 덩치가 커 보이는 오크 하나가 농기구를 가지고 나왔다.

그 녀석은 남자 오크들을 이끌고 폭발이 일어난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엔 예의 각성자 오크도 끼어 있었다.

난 그 무리의 뒤를 멀찍이 떨어져서 쫓아갔다.

쾅! 콰쾅!

이윽고, 오크 무리는 폭발이 일어난 장소에 가까이 접근했다.

“타아압!”

파캉!

아니나 다를까, 그 장소에선 인간 각성자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우려했던 대로, 싸움의 규모가 굉장히 커져 있었다.

‘인간의 탐욕이란 게 저렇게까지 눈을 멀게 할 수 있는 거구나.’

이 스테이지에 들어온 본 목적인 보스전은 잊고, 경쟁자를 제거하는 데에 전념하느라 다들 극도로 흥분해 있다.

게다가 이젠 단순한 분쟁을 넘어 집단 간의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개입해서 중단시키지 않으면, 모두가 스테이지 포기를 해버려서 보스를 잡을 인원이 부족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다른 것보다도, 내가 최종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얼른 말려야…… 응?’

“오크다!”

“뭐?”

“보스! 레이드 보스를 끌어들여!”

갑자기 누군가가 농기구를 들고 온 오크 무리를 발견하더니 그렇게 소리 질렀다.

그러곤 곧장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오크 무리를 향해 누군가가 화살을 쐈다.

“칵!”

“보스의 공격을 저놈들에게 유도해!”

‘미친…….’

저기서 싸우는 각성자들은 접근해 온 오크를 레이드 보스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걸 보고서 한다는 게, 인간끼리 힘을 합쳐 물리치자는 게 아니라 그 보스를 이용해서 상대편 인간을 공격하자는 판단이다.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 막장 같은 발상이 따로 없다.

쉬이익!

“꺽!”

“카학!”

말이 나옴과 동시에 한쪽 진영의 궁수가 오크 무리를 향해 화살을 날려대기 시작했다.

무장이라곤 들고 있는 농기구밖에 없는 오크들이, 여기까지 올라온 전투의 프로들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오크들은 쇄도해 오는 화살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다.

“그라라락!”

무리는 결국 겁에 질려 농기구를 버린 채 도망치기 시작했다.

“악 퉁! 하가악!”

하지만 한 녀석만은 그러지 못했다.

땅에 쓰러져 있는 다른 오크를 안아 들고 오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가족을 잃은 인간의 모습과도 같았다.

‘저놈은…….’

그 오크가 바로 전설 수호령을 가지고 있는 각성자 오크였다.

“그라아아아아아악!”

놈은 숲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큰 소리로 포효했다.

눈에선 푸른빛이 뿜어 나오고 있었다.

이어서 메시지가 나타났다.

{레이드 보스가 최종 스테이지에 강림합니다.}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 * *

젊은 오크 청년, 오드바르는 부락 밖에서 들려온 이상한 소리를 조사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가려고 했다.

“형! 나도 같이 가!”

그의 동생인 브욘이 거기에 함께 가고 싶다고 떼를 썼지만.

“안 돼. 넌 그냥 여기 있어.”

“싫어. 나도 이제 열세 살이란 말이야. 어엿한 어른이라고.”

“안 된다니까.”

오드바르는 그걸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런데 옆에서 듣고 있던 다그 삼촌이 오히려 브욘을 부추겼다.

“괜찮아! 위험한 일이 있으면 아저씨가 지켜줄 테니까! 열세 살이나 됐는데 마을을 지키는 일도 해봐야지, 안 그래?”

“맞아요!”

“휴…… 그럼 내 뒤에 꼭 붙어서 따라와.”

그래서 오드바르는 결국 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건 결국 동생의 죽음을 초래한, 최악의 실수가 되고 말았다.

“끄악!”

“브욘!”

어디선가 나타난 이상한 차림의 인간들이 활을 쏴 댔다.

브욘을 지켜주겠다던 다그 삼촌은 일찌감치 화살에 맞아 죽었다.

다른 부락민들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다.

오드바르 역시 살기 위해 도망치려 했지만.

동생이 쓰러지는 걸 보고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

“혀, 형…….”

“브욘! 괜찮아?”

“숨이…… 안…….”

“정신 차려! 브욘!”

동생은 결국 그의 품 안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브요오오오온!”

오드바르는 목 놓아 동생을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영원히 자신의 곁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밀려오는 슬픔과 절망도 잠시.

격렬한 감정은 분노가 되어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눈앞의 인간들에게 쏟아졌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 악마들은 다짜고짜 활부터 쐈다.

저런 놈들은 반드시 천벌을 받아야 한다.

오드바르는 그렇게 되길 간절하게 빌었다. 그러자.

쿠구구구구.

땅이 울리고, 숲이 울부짖었다.

하늘로부터 주체할 수 없는 강렬한 힘이 벼락처럼 쏟아져 내렸다.

-내가 너의 몸을 빌려 저 사악한 인간들을 처단하노라.

곧이어 알 수 없는 음성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건 오드바르를 지켜주던 수호령.

전설적인 오크 족 영웅, 용살자 시구르드의 목소리였다.

* * *

“그람.”

그때부터 오드바르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던 식칼에 힘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그러자 길이는 자신의 키만큼 길고 폭도 한 뼘이나 되는 날을 가진, 거대한 검이 그 위에 투영되었다.

용살검 그람.

마룡 파프니르를 베어낸 전설의 무구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저놈이 보스다! 이쪽으로 공격을 유도해!”

그 모습을 본 인간들이 오드바르에게 공격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쐐애애액!

붉게 빛나는 화살 한 발이 맹렬한 기세로 날아왔다.

오드바르는 마치 단검 휘두르듯 가볍게, 손에 쥔 대검을 한 손으로 휘둘러 화살을 쳐냈다.

쾅!

화살은 그람의 칼날에 닿자마자 폭발했고, 사방으로 뿜어 나오는 맹렬한 에너지가 그를 덮쳤다.

그러나 오드바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되레 폭발이 일으킨 연기가 그의 몸을 은폐시키는 역할을 해 줬다.

덕분에 그 안에서, 큰 기술을 사용할 힘을 모을 수 있었다.

두근. 두근.

드래곤 하트가 피를 뿜어낸다.

전신을 휘감는 용혈이 그의 마나를 극대화시켰다.

철컥.

오드바르는 하늘 높이 치켜든 그람을.

콰아아아아아!

적을 향해 내려쳤다.

대검으로부터 파도처럼 뿜어져 나오는 마나가 전방을 휩쓸었다.

“으아악!”

그 공격 범위 안에 들어가 있던 인간은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간신히 피했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몸이 닿은 부분이 있다면 신체의 절반이 찢겨나갔다.

심지어 마나 파도엔 닿지도 않았는데,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탈리스만 방어장이 깨져나간 각성자들도 있었다.

“무, 무슨……?”

이 압도적인 공격을 목격한 인간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저 오크 앞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전부…… 죽인다.”

쿵!

이어서 오드바르가 땅을 박차고 인간 무리 안으로 뛰어들었다.

방금 전의 공격은 그저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효시에 불과했다.

수호령 시구르드의 진가는 다름 아닌 근접전.

투콰콱!

그는 그람을 휘둘러 단번에 인간 세 명의 몸통을 갈라버렸다.

“떠, 떨어져! 저 오크와 붙으면 안 돼!”

누군가가 그의 극도로 빠른 움직임을 보고서 경고했다.

하지만 그 경고가 무색하게, 오드바르는 인간들이 물러나는 즉시 그보다 더 빠르게 접근했다.

그리고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할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그런 괴물 같은 실력에, 인간 각성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일단 무조건 쏴! 아무 권능이나 쓰라고!”

이쯤 되자 서로 치고받고 싸우던 인간 각성자들은 어느샌가 한마음이 되어 오드바르를 집중 공격 하기 시작했다.

그런 인명피해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레이드 보스전’다운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쐐애애액! 펑! 파팡!

화살, 마법, 검기, 탄환.

수많은 원거리 공격기가 오크 한 마리를 향해 쏟아졌다.

오드바르는 이 자리의 어느 누구도 근접전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강하므로, 원거리 공격기의 화력을 집중시켜 잡으려는 속셈이었다.

쿵!

“으아아아아!”

사방에서 온갖 공격이 날아오던 그때, 그가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파앙!

그러자 그의 몸에서 사방으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오드바르를 노리고 날아들던 모든 투사체는 그 충격파에 막혀 공중폭파하거나 바닥에 떨어졌다.

“마, 말도 안 돼…….”

“저걸 어떻게 잡으라고……?”

각성자들은 이제 점점 상황이 파악되기 시작했다.

매년 수많은 세계구급 각성자가 각자 최상의 스탯과 장비를 갖추고서 도전하는데도.

몇몇 스탯 구간에선 최종보스 공략에 실패했다는 소리가 빠짐없이 들려오곤 했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레이드 보스는 지금까지 봐오던 4 스테이지까지의 보스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포기하고 돌아갈까……?”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그들은 천천히 걸어오는 오드바르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처음엔 그저 덩치 작은, 평범한 오크들보다도 더 약한 약골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지금은 산처럼 거대한 괴물로 보였다.

저벅. 저벅.

“죽인다.”

오드바르는 나직하게 읊조렸다.

인간들의 귀에는 그것이 오크 특유의 가래 끓는 괴물 소리처럼 들려서, 더 흉포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그가 다시 대검을 들어 올려 남아 있는 각성자들까지 모두 베어버리려던 찰나.

촤아악!

챙!

뒤에서 기습 공격이 들어왔다.

오드바르는 검으로 그 공격을 막아냈다.

후웅!

그러곤 곧바로 뒤돌며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지금 기습 공격을 해온 인간은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으로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자는 유신우였다.

화르륵.

곧이어 대검에 옮겨붙은 흑색의 불꽃이, 칼날을 타고 오드바르의 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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