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81화 (181/197)

181 제2바벨탑 공사(1)

이른 아침, 몰먼족의 중장비들이 건설자재를 가득 싣고 포털을 지나고 있었다.

공사장의 기술자와 인부들은 서로 합을 맞춰 건설자재를 적재하고 설계도를 따라서 자재를 배분하기 시작했다.

태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음! 이게 바로 생기라는 것인가? 아주 보기 좋은데? 마정석 수급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일단 몰먼시티에 쌓여 있는 물량 중에 일부를 가져왔다요! 그런데…….”

총총은 태하에게 마정석 수급 상황을 설명하다가 돌연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이내 거무튀튀한 돌멩이를 꺼내어 보여 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태하.

“어라? 이게 뭔데?”

“강력한 마이너스 에너지를 방출하는 돌이다요! 이게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마이너스 코어와 비슷한 종류로 추측된다요!”

“허! 마이너스 코어?”

“마이너스 코어랑 비슷하긴 한데, 그 에너지가 거의 10~20배 정도 강력한 것으로 보인다요!”

마이너스 코어 하나만 가지고도 소도시가 일주일 넘게 전력 수급에 차질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 코어 하나면 인구 1,500~2,000명 규모의 지하도시는 몇 년이고 버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거 어디서 났지?”

“땅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했다요! 뱀파이어 중에 에너지 과학자가 2명 있는데, 그 사람들이 이건 새로운 발견이면서도 세상 밖으로는 나가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요!”

“세상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니?”

“총총도 자세한 건 모른다요! 학자들을 불러올까나요?!”

“아, 그래! 직접 좀 들어 보자고.”

공사장에서 한창 삽질을 하고 있던 뱀파이어 2명이 태하의 부름을 받고 잠시 공사장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태하가 건넨 따뜻한 커피 잔을 받았다.

최근에 뱀파이어들은 서서히 인간이던 시절의 음식을 먹으면서 소화기관을 적응시키고 있었는데, 뱀파이어 나이트는 이들에게 조금 특별한 방법을 고안하여 소개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약간의 마정석 가루를 하루에 두 번씩 먹는 것이었다.

“어때? 마정석 가루를 좀 먹으니.”

“정말 좋습니다! 커피라니, 정말 살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술도 한잔 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빵이나 미트볼을 먹을 수 있으니 정말 좋습니다!”

“하하, 그것참 다행이로군.”

“그나저나 저희들은 어쩐 일로 찾으신 겁니까?”

“아아, 그게 말이지…….”

태하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돌을 꺼내어 보여 주었다.

그러자 학자들은 벌써부터 인상을 확 찡그리고 있었다.

“이건…….”

“아까 총총이 알려 주더군. 새로운 물질을 발견했다고.”

“맞습니다. 이를테면 초전도체, 혹은 극음체, 뭐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 물질이죠. 저희들은 극암석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극암석이라. 듣자 하니 이게 그렇게 위험하다면서?”

학자들은 태하에게 잠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러곤 마을 어귀에 보이는 돌무덤 앞에 멈추어 섰다.

그들은 돌무덤을 손가락으로 살짝 쑤셔 보았는데,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말았다.

“얼마 전까지 이곳에는 극지대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이계의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두꺼운 얼음덩어리 밑에서 어떻게 해서든 영양분을 섭취해서 살아남았던 겁니다.”

“오호, 놀라운 사실인데?”

“그런데 얼마 전, 지하마을 공사를 위한 발파를 하다가 우연히 극암석에 스파크가 튄 적이 있었습니다. 손가락 크기보다도 더 작은 극암석에 스파크가 튀었고, 그곳에서는 정체 모를 암흑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그 물결에 닿자마자 저렇게 식물들이 가루가 되어 버리더군요.”

“……식물이?”

“다른 암석이라든지, 모래라든지 그런 건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생명체만 골라서 그 생명력을 앗아 가 버리더군요. 만약 우리가 정상적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인간들이었다면 그대로 가루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뭐야, 결국 생명만 앗아 가는 파장을 만들어 낸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뱀파이어들이야 어차피 파장이 일어나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도 아니고 죽어 봤자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게 세상에 나갔다가 행여나 테러리스트나 정치인들 손에 들어간다면 문제가 커질 겁니다.”

“전쟁에 동원될 수도 있다는……?”

“반드시 무기로 만들 겁니다. 인간의 욕심에는 끝이 없고, 특히나 정치와 관련된 인간들의 경우엔 더더욱 그런 성향이 커지고 있죠.”

이들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수였고 나사와 미국 국방부 산하에서도 일했을 정도로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비록 장기를 적출당하고 이곳에 버려졌으나, 아직도 인간에 대한 애착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것들은 이곳에서 절대로 반출되어선 안 됩니다. 지하마을을 만들고 저희들이 목숨을 다해서라도 이것들을 지켜 내고 싶습니다.”

“흠……. 정말 그렇긴 하군. 그렇다면 이렇게 하지.”

뱀파이어 학자들은 태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뱀파이어 마을을 공사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제 2,000명 남짓의 뱀파이어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정도로 아늑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허나 공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제2바벨탑의 뱀파이어들은 극암석이라는 것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것을 방어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극마석 발전’이었다.

윤철은 에너지 공학박사를 포함한 뱀파이어의 석학들은 물론이고 이곳에 있는 모든 시민들에게 극마석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알려 주었다.

“우리는 얼마 전, 마이너스 코어라는 것을 상용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어. 그리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이제는 얼마든지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게 되었지. 게다가 발열을 극한으로 줄여 주고 전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도 상당히 높아졌고 말이지. 허나 이게 단순히 에너지 수급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어. 이 에너지를 바탕으로 무기 체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게 된 거지.”

“무기 체계라……?”

윤정은 마이너스 코어 발전을 모티브로 삼아서 만든 극마석 발전기에 극마석으로 만든 전선을 연결했다.

그러자 무식하게 큰 에너지 송출 장치에 전원이 켜졌다.

위이이이잉……!

“이건 마이너스 에너지를 극대화시켜서 입자를 분쇄시켜 버리는 장치야. 언데드에게도 당연히 통용이 되지.”

“이걸 가지면 우리가 적들의 침입을 얼마든지 막아 낼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바로 그거야!”

“흐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 너희 뱀파이어들은 이걸 다룰 수 있는 힘이 없다는 점이겠지.”

“……장비를 다룰 수 없다?”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뱀파이어 중에 1명이 손을 들었다.

그는 전직 방위산업체 연구원으로서 유명 전차를 만들어 낸 장인 중에 장인이었다.

“장비를 다룰 힘이 없다면 발전기를 통해서 우리의 힘을 높여 줄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장치를 만든다?”

“이를테면 전투용 슈트를 만든다든지, 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오호……?”

“그리고 슈트가 완성되기 전까지는 전용 발사대를 만들어서 적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게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그걸 사용하는 힘이 모자란 거지, 무기 자체는 상당히 안정적이지 않습니까?”

윤정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뭐, 그건 그렇지.”

“우리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자주 방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곳에 모인 뱀파이어들은 원래 사회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사람들이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본성은 거의 다 사라졌고, 이제는 오로지 평화만 추구할 수밖에 없어졌다.

워낙 오랜 세월 고통을 받아서 분쟁이 일어난다거나 평화에 금이 가는 것은 도저히 지켜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런 성향들로 똘똘 뭉쳐진 뱀파이어들은 모두 결연한 의지를 품고 있었다.

“자주 방어! 우리가 지구를 지켜야 합니다!”

“맞습니다! 저 밖에는 우리 가족이나 자손들, 혹은 친구들이 살고 있어요! 가만히 손 놓고 앉아서 극마석이 털리는 걸 지켜볼 수는 없죠!”

윤정은 이들이 단순히 몬스터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니라 지구를 생각하는 마음을 품은 여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감동했다.

그녀는 이곳을 요새로 만들기로 했다.

“도시 전체를 요새로 만들어 줄게. 무려 천 년 동안이나 이곳을 지켜야 하겠지만, 그렇게 극마석을 지켜 준다면 아마 극락왕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야.”

“반드시 지켜 내겠습니다!”

***

제2바벨탑 내 뱀파이어 시티의 기초공사는 모두 끝이 났다.

이제부터는 도시의 요새화가 진행될 것인데, 그를 위해서는 마을의 중앙 제어장치를 설치할 필요가 있었다.

“극마석 발전을 통해서 얻은 전력을 마을 전체로 보내 줄 것이다요! 그리고 이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인공 자외선을 만들어서 보급해 주겠다요! 수경 재배 라인도 만들어 주고 말이다요.”

“아아, 역시! 총총 님은 총명하십니다!”

“헤헤, 아니다요!”

총총과 뱀파이어들은 이제 제법 친해졌고, 뱀파이어들은 과거에 사용했던 식이요법을 알려 주면서 몰먼족과의 친밀도를 더욱 높여 가고 있었다.

허나 언제까지고 이렇게 건설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태하는 앞으로 일주일 후에 이곳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몰먼족을 포함한 헌터들은 일주일 후에 이곳을 떠난다. 그리고 100층 정복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하는 거지.”

“네, 대장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뱀파이어들은 태하를 대장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것은 태하가 강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리더십에 뱀파이어들은 진심으로 감동한 것이었다.

남은 일주일 동안 어떻게든 도시를 조금이라도 더 발전시키기 위해 헬창스는 비지땀을 흘렸다.

그러던 와중에 마을 곳곳을 지나는 트램 라인에서 뭔가 결함이 발견되었다.

“앗! 전력 수급이 끊어지는 곳이 있다요!”

“전선이 잘못된 건가?”

“그럴 리는 없다요! 마정석으로 만든 전선에 극마석을 섞어서 코팅했다요! 내구성은 최고라고 할 수 있다요!”

“흠, 그럼 뭐지?”

진단을 위해 몰먼족과 뱀파이어 전문가들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뱀파이어 지질학자들은 전력이 끊어진 곳에서 뭔가 이상 현상의 징후가 보인다고 설명했다.

“심상치 않은 에너지 반응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심상치 않다니?”

“마치 극도로 수치가 높은 방사선이 유출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방사능이라니. 예전에 여기서 무슨 핵실험이라도 했다는 건가?”

학자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꼭 그래서만 방사능이 뿜어져 나오는 건 아닙니다. 방사능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으니까요.”

“그럼 이건 도대체 뭔데?”

“처음 보는 종류의 것입니다. 아마 이계에서 온 방사선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이계?”

이계 방사선을 제거하기 위해서 헌터들은 그동안 제어 장비를 착용한 후에 던전에 입장했었다.

설마하니 그런 방사선이 이곳에도 있다는 말일까?

“음, 말이 안 되지는 않아. 여기도 던전은 던전이잖아?”

“한번 파 볼까요?”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가 볼까?”

과연 이 안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다는 것일까?

태하는 몰먼호를 타고 지하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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